워낭소리
이 명순
시할머니의 기일을 맞아 시댁으로 출발하였다. 중앙고속도로를 달리다 영주 IC로 내려, 얼마를 지나자 ‘봉화군’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은 영화 ‘워낭소리’를 촬영한 곳이다. 저만치서 늙은 소가 여든을 넘긴 최노인을 수레에 싣고 농로를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듯하다.
요즘 화제의 영화 ‘워낭소리’는 영화팬들의 뜨거운 관심사기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한국영화 중에는 메시지가 가볍거나 코믹하고, 귀청소를 해야 할 만큼의 욕설이 난무한 게 많은데 ‘워낭소리’는 모처럼만에 심금을 울리게 한 작품인 것 같다. 노부부의 삶이 비록 고단할지라도 나름대로의 행복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최노인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지으며 평생을 소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적인 이야기다. 어릴 적에 그는 한쪽 다리에 침을 맞은 후 힘줄이 당겨 절룩거리게 되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금은 귀도 어둡다. 하지만 소의 울음소리와 워낭소리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연륜이 낳은 사랑의 교감인 것 같다.
그의 지극한 소사랑은, 엄동설한에도 어둠이 깔린 새벽에 일어나 군불을 지펴 쇠죽을 쑨다. 봄, 여름, 가을 농사일을 하다가도 소가 여물을 먹을 때가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꼴을 베기 위해 불편한 다리로 매일 언덕을 기어오른다. 심지어 소에게 해가 될까 아예 농약은 치지 않았다. 소의 건강을 위해 친환경적인 농사를 짓는 셈이다. 생명애를 초월한 애틋한 마음이 눈물겹다. 반면에 기계로 농사를 짓고 제초제를 뿌리는 이웃 아저씨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할머니는, 뙤약볕에서 한숨 섞인 신세타령을 하며 호미로 지심(김)을 맨다. 가끔 불평은 하지만 남편을 바라보는 눈빛은 애정이 담긴 측은지심이다. 희비가 엇갈린 푸념과 원망하는 말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도 한다. “사람도 꼬물, 나지오도 꼬물, 소도 꼬물 마카다 꼬물이시더” 할머니의 투박한 사투리 억양이 정겹다.
소의 보통 수명은 15년 정도라고 하나 무려 마흔 살이나 되는 소는, 그의 좋은 친구이자 농기구이며 유일한 자가용이다. 서 있기도 힘이 들어 쓰러질 것 같은데도 주인이 고삐를 잡아끌면 끄는 대로 순종한다. 무거운 나뭇짐도 마다하지 않고 나르고, 행동은 느리나 논과 밭도 열심히 간다. 힘에 겨워 뒷걸음을 칠 때면 아슬아슬한 곡예를 보는 듯 가슴을 졸였지만 무뚝뚝한 노인과 무덤덤한 소는 떼래야 뗄 수 없는 천생의 커플이다.
그러던 어느 봄날, 수의사로부터 수명이 거의 다됐다는 선고를 받는다. 삶이 늘 고단한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고집스런 농사일과 소를 돌보아야하는 고된 일들이 모두 늙은 소 탓인 것만 같아 내다 팔자고 성화다. 그러나 9남매를 키우고, 가르치고, 결혼까지 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준 소를 쉽사리 팔 리가 만무하다. 무조건 “안 팔아”, “못 팔아”라고 반박한다.
어느 날 장에 갔다가 만취한 주인이 수레를 타고 잠이 든다. 소는 자동차가 오면 멈추었다 피해가길 반복하며 알아서 집을 찾아간다. 최노인은 앞이 보이질 않을 만큼 초점을 잃은 눈, 뒤틀린 발굽과 비틀거리는 걸음을 걷는 늙은 소 자랑이 늘어진다. 집까지 데려다 준 믿음직스러움이 자식보다 대견스러웠던 모양이다.
마침내 동고동락한 늙은 소는 수명을 다한 건지 주인이 고삐를 끌어 당겨도 일어나지 못한다. 주인의 아픔과 이별을 의식이라도 한 듯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잠시 시간이 정지된 듯했다. 코뚜레 고삐가 잘려나가고 목에 건 워낭도 풀려나간다. 죽음을 예견이라도 했을까. 늙은 소는 한겨울을 나고도 남을 만큼의 땔감을 쌓아놓고 끝내 눈을 감았다.
땅을 파고 분신 같은 소를 묻고 돌아오는 최노인, 붉은 노을이 어두워지도록 외톨박이 나목 밑에 앉아 쉽사리 일어설 줄 모른다. 떠나고 난 빈자리가 너무 큰지라 내 아픔인 양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의 가슴에 휑한 바람이 인 듯싶어 마음이 아프다. 슬픔은 산자의 몫이거늘 잘 견뎌내야 할 텐데 걱정스럽다. 극장 안은 조명등이 밝게 켜졌으나 발걸음이 바로 떼어지지 않았다. 돌아가신 시할아버지가 산더미 같은 꼴을 지게에 지고, 소와 함께 낮은 걸음으로 조심조심 걷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느 지인이 화제가 된 ‘워낭소리’ 영화를 보고 소와 노부부의 생활이 너무 처참하고 불행하다고 한다. 그들은 정말 그랬을까.
내 시조부모님은 생전에 옆도 돌아보지 않고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사셨던 분이다. 시할아버지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공기를 가르며 먼저 외양간의 소를 둘러보았다. 그런 후, 삽이나 괭이를 어깨에 메고 논두렁 밭두렁 아침이슬을 밟으며 농작물이 밤새 무탈한지 살펴보고 나서야 아침상을 받았다. 그저 농작물이 때맞춰 잘 자라면 기뻐했고, 가뭄에 새순이 타들어 가면 온종일 물질을 하며 몹시 마음 아파했다. 혹 수확기에 폭풍우가 논을 쓸고 지나가면 어두워질 때까지 자식을 돌보듯 벼를 일으켜 세웠다. 최노인처럼 천재지변을 원망하기보단 순리대로 하늘의 뜻에 맞기며 순응했다. 상대방을 미워할 줄도 고깝게 생각할 줄도 모르며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사셨다. 시어른들은 그런 삶이 힘은 들어도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 하기야 행복은 주관이지 객관은 아니니까.
시댁 앞마당에 차가 들어서자 외양간에 매어 놓은 소가 연거푸 음매~ 하고 운다. 우리를 알아보기라도 한 듯 뚫어 놓은 벽 틈새로 눈을 껌벅거린다. 맨발로 뛰어나오신 시어머니는 손자들을 얼싸안으며 눈가를 적신다. 홀로 계서 많이 적적했는지 외로움이 역력해 보인다. 최노인의 자식들이 말한 것처럼 이젠 힘든 농사를 그만두고 좀 쉬라고 했더니 한사코 싫다고 하신다. 그저 당신이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그냥 놔두는 것도 효라면서…. 좀 쓸쓸하긴 해도 소가 옆에 있어서 위안이 된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외출해서 돌아오면 반갑다고, 때가 되면 배고파서, 적막강산에 인기척이 날 때도 소牜가 엄마~ 하고 부른단다. 소는 자식 같고, 말 상대가 없는데 친구 같으며, 또 집지킴이라고 한다. 기제사날 모인 식구들의 화두는 살아생전 시어른들과 소에 얽힌 사연이었다. 외양간을 치우는 등 뒤치다꺼리가 힘들 텐데도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 윗대부터 소와 항상 같이 살았는지라 어쩌면 멀리 있는 자식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소는 가족이었다.
올해는 유난히도 춥기에 따뜻한 아파트에서 겨울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권하자 최노인처럼 한사코 손사래를 치신다. 도시는 답답하고 지루해서 창살 없는 감옥이나 마찬가지며, 오염된 공기는 숨이 막히는 듯 두통이 심해 살 곳이 못된다고 한다. 역지사지로 나 역시 시골에 잠시 다녀가는 것은 즐겁지만 장기간 머문다 생각하면 갑갑해서 조급증이 날 것이다. 하는 일이 힘에 겹다고, 또 생활이 불편하다고 해서 결코 불행한 것은 아니다. 어른이 원하는 대로 마음 편하게 해 드리는 것도 자식 된 도리라는 생각이 든다.
행복은 복된 운수로써 개개인이 느끼는 자신의 삶에 주관적인 기쁨이나 만족 지수를 뜻한다. 그렇다. 상대방의 잣대로 행복의 치수를 잴 수는 없다. 잘못하여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워낭소리’는 삶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어떤 이유든 그저 자신에게는 핑계거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영화다. 스스로 선택했거나 아니면 주어진 자기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순리대로 사는 곳에 진정 행복이 있다는, 평화가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주는 영화다. 바라건대 최노인 부부도, 고향집에 홀로 계신 시어머님도 오래토록 둥지를 지키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첫댓글 "워낭소리", 경제의 어려움에 직면한 우리 서민들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영화였습니다. 영화의 무대인 봉화에 홀로계신 시어머님을 생각하면 "워낭소리"의 장면들이 오버랩되어 오겠지요... 그러나, 행복이란 각자의 기준에 의해 모두 다르게 느끼는 것이라면, 고향집을 지키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도 그 분에겐 행복이 아닐까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원앙소리 영화를 나는 아직 못 보았는데 아주 섬세하게 한눈으로 보는 듯 물 흐르듯이 짧지 않은 문장 막힘 없이 잘 쓰셨네요.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창 밖은 봄비가 촉촉히 내리는 이 밤에 무지개 꿈 꾸시고 잘 자요. 감사한 마음 놓아두고 갑니다.
샛노란 의상이 봄날과 어울렸습니다. 사무국장님, 워낭소리를 꼭보아야겠습니다.시댁가는길과 소와 최노인이 잘섞여 감동을 끌어옵니다. 감사합니다. 이명순님
이명순선생님, 한 달에 한번정도는 글 올린다더니 영화 감상 좋은글을 눈에 보이듯 올리셨네요 뜻깊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