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雲夢
두 공주와 성례하다.
이튿날 천자는 양승상을 불러들여 하교하시기를,
“지난번에 공주의 혼사로 말미암아 태후께서 엄한 처분을 내리사 짐의 마음이 불안하였는데, 이제는 다른 생각이 없게 되었기로 경의 돌아옴을 기다려 공주의 혼례를 거행하려 하였노라. 다만 경은 아직도 소년이요, 당상에는 대부인이 있은즉 제반의식을 어찌 스스로 분별하여 황차 대승상 관부(官府)에 여군(女君)이 가히 없지 못할지며, 위국공(衛國公)의 가묘(家廟)에 아헌(亞獻)을 궐하지 못할지라 짐이 이미 승상부 공주궁을 짓고 성례할 날을 기다릴 따름인데, 경은 지금 허락지 아니하겠느뇨?”
승상이 머리를 두드리며 아뢰되,
“신이 여러 차례 거역한 죄는 일만 번 죽어도 아까움이 없삽는데, 칙교(勅敎)를 거듭 내리시고 말씀이 온후하시니, 신은 진실로 황감하와 죽고자 하여도 죽을 수가 없나이다. 신은 진실로 아무런 기예(技藝)도 없사오며 문벌이 미천하옵고 재주가 옅사오니 부마(駙馬)의 자리에는 합당치 못하옵니다.”
상이 매우 기뻐하며 곧 조서를 흠천감(欽天監)에 내리시어 길일(吉日)을 가려 잡아 올리라 명하시니, 태사(太師)가 구월 십오일로써 아뢰매 다만 수십 일이 남아 있을 다름이더라.
상이 승상에게 다시 하교하시기를,
“전일에는 혼사를 완성치 못한고로 경에게 미쳐 말하지 못하였지만, 실은 짐에게 누이가 두 사람이 있으니 다 현숙함이 비범하고, 비록 다시 경같은 사람을 구하고자 하나 어느 곳에 가히 있으리오? 이러므로 짐이 태후의 명을 받들어 두 누이로써 경에게 하가(下嫁)케 하고자 하노라.”
승상이 문득 진주(眞州) 객사에서의 꿈을 생각하고, 매우 괴이쩍에 여기 엎드려 사뢰기를,
“신이 부마 간택을 입사온 후로는 항송무지하옵는데, 이제 폐하께서 두 공주로 하여금 한 사람 몸에 하가코저 하옵시니, 이는 나라 있는 이후로 듣지 못한 바이오라, 신이 어찌 감당할 수 있겠사오리까?”
상이 타이르시되,
“경의 공업은 족히 나라에 제일 되니 그 공로를 갚을 도리가 없는고로 두 누이로써 섬기게 함이요, 또 두 누이의 우애가 다 천성에서 나와 서로 따르고 앉으면 서로 의지하여, 매양 늙어도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고로 한 사람에게 하가시킴이요, 또 태후마마의 의향이시니 경은 가히 사양치 말지어다. 또한 궁녀 진씨(秦彩鳳)은 대를 거듭한 사환가(仕宦家)의 여자로서 자색이 있고 글을 잘하매 공주가 수족같이 사랑하므로 하가할 대에 잉첩을 삼고자 하니, 아울러 경에게 일러두노라.”
하시니, 승상이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며 사은하고 대궐에서 물러 나아가니라.
이 무렵 영양공주가 궁중에 머무른지 이미 여러 달이라, 태후를 섬김에 충성을 다하고 또 난양공주와 진씨와 더불어 정의가 친동기 같으니 이로써 태후는 더욱 사랑하시더라. 혼삿날이 임박함에 조용히 태후께 아뢰기를,
“당초에 난양과 좌차를 정하던 날 상좌에 있사옵기 극히 참람하였사오나 끝까지 사양하오면 태후마마의 자애하시는 온정을 거역할 듯 싶사와 따랐사오니, 이제 양승상께로 돌아가 난양이 제일좌를 사양하오면 이 역시 옳지 않사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데 태후마마와 황상폐하께옵서는 그 정례(情禮)를 짐작하시고 그 위차(位次)를 바르게 하시와 사분(私分)이 편안케 하시고 가법이 문란치 않게 하옵소서.”
난양공주가 태후 곁에 있다가 이르기를,
“저저의 덕행과 재주가 다 소녀의 스승이 되고, 저저가 비록 정씨 문중에 있을지라도 소녀가 마땅히 조녀(조최의 처)가 위를 사양함과 같이 할 터인데, 이미 형제가 된 후에 어찌 존비(尊卑)의 분별이 있을 수 있겠나이까? 소녀가 비록 둘째 부인이 될지라도 스스로 인군의 딸로서 전귀함을 잃지 않을 것이요, 만일 제일 위에 있게 되오면, 태후마마께서 저저를 기르시는 본의가 과연 어디 있겠나이까?”
태후가 황상께 의논하기를,
“이 일을 어찌 조처하면 좋을꼬?”
상이 대답하시었다.
“난양의 사양함이 지성에서 나오나, 예로부터 국가 공사에 이런 일이 있음을 듣지 못하였사오니, 복원컨대 마마께서는 그 겸양하는 덕을 아름답게 여기사 이 일에 그 아름다운 뜻을 이루도록 하소서.”
태후가 말씀하시기를,
“상의 말씀이 옳으시오.”
하시고, 이에 전교를 내리시어 영양공주로서 위국공의 좌부인을 삼으시고, 난양공주를 우부인을 보하시고, 진씨는 본래 사부가의 여자이므로 봉하여 숙인(淑人)으로 삼으시라.
전례로는 공주의 혼례를 궐문 밖에서 거행하였으나 이번에는 태후께서 특별히 대내에서 행례하라 하시니, 양승상이 인포옥대(麟袍玉帶)로써 두 공주와 더불어 성례하는데 몸차림의 화려함과 예모의 장함은 이르지도 말 것이고, 예식이 끝나 자리를 잡은 다음에 진숙인이 또한 예로써 뵙고 이어서 공주 곁에 시립을 하여, 승상이 자리에 서니 마치 세 사람의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온 듯, 휘앙찬란하여 승상이 꿈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더라.
이 밤에 승상은 영양공주와 더불어 베개를 같이 하고, 이튿날에 일찍 태후께 문안드리니 태후가 잔치를 베풀어 주시는데, 황상과 황후가 또한 태후 좌우로 시립하시고 종일토록 즐겨하시더라. 승상이 이날 밤에는 다시 난양공주와 이불을 한 가지로 하고, 다음 날에는 진숙인 방으로 가니 숙인이 눈물을 흘리는지라 승상이 놀라 물어보기를,
“오늘 웃는 것은 옳거니와 우는 것은 옳지 못하렸다! 그러나 무슨 까닭이 있음직하니 사실을 말하라.”
진숙인이 대답하되,
“소첩을 기억 못하시니 승상께서 이미 잊어버리심이나이다.”
이 때 승상이 자세히 보더니 이윽고 숙인의 가냘픈 손을 잡고 말하기를,
“그대 화음현(華陰懸)의 진씨로다! 오매불망하던 그대로다.”
채봉이 목이매어 소리가 입에서 나지 못하므로 승상이 이르되,
“낭자는 이미 지하로 들어간 줄로 알았는데 궁중에 고히 있었으니 천만 다행이다. 그때 화주(華州)에서 헤어지매 낭자의 집이 참혹한 화란을 겪음은 다시 말할 길 없거니와, 객사에서 피란 후로어찌 하루라도 그대를 생각지 아니하였으리오? 오늘 옛 언약을 이루게 됨은 실로 내 생각에 미치지 못한 바요. 낭자 역시 반드시 기억지는 못하였으리라.”
하고, 드디어 주머니 속에서 진씨의 글을 내어 놓자, 진씨 또한 승상의 글을 받들어 올리매, 두 사람의 양류사(楊柳詞)가 의연해 서로 화답하던 날 같은지라, 진씨가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오직 양류사로 옛 언약을 맺은 줄로 아시고, 비단 부채로써 오늘의 연분이 이루어짐을 알지 못하시나이다.”
하고, 이에 상자를 열어 그림 부채를 꺼내어 승상에게 보이고, 이어서, 그 연유를 자세히 말하니, 승상이 이르되,
“그때 남전산(藍田山)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와 객점 주인한테 물어본즉 낭자가 액정(掖庭)에 박혔다 하며, 어떤 이는 먼 고을에 관비로 되어갔다 하며, 혹은 흉화(凶禍)를 면치 못하였다 하여 적실한 소식을 알지 못하니 다시 가망이 없는고로 부득이 다른 집에 혼처를 구하나, 매양 화산과 위수를 지나매, 몸은 짝 잃은 기러기 같고 마음은 낚시에 꿰인 고기 같더니, 천은이 융숭하사 비록 서로 함께 모였으되 마음에 불안한 일이 있으니 이는 다름이 아니요, 바로 객점에서 정한 언약이 어찌 부실(副室)로서 서약 하였으리요? 마침내는 낭자로 하여금 이 위에 굽히게 하였으니 어찌 아깝지 아니하며 부끄럽지 아니하랴?”
진씨가 이에 대답하기를,
“첩의 기막힌 신수는 첩이 스스로 알고 그대 유모를 객점으로 보낼새, 낭군이 남일 아내 있는 몸이라면 스스로 부실되기를 원하였거늘 이제 공주에 다음가는 자리에 있사오니, 칩이 영광이요 다행이온즉, 첩이 만일 원망하고 한탄하면 하늘이 벌을 내리시리라.”
이러므로 이 밤에는 옛정이 새로워 전일의; 두 밤에 견주어 더욱 친밀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