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관 시인이 본 53 선지식 21차. 7, 100년만에 차를 올린 삼화령
100년 만에 차를 올린 삼화령 미륵님
충담 차 승이 차를 올린 옛 삼화령
고려가 신라를 점령한 이루에 삼화령은
차를 올리지 못했다는 전설이다
조선이 고려를 멸하고부터 삼화령은
삼화령에 차를 올리지 못했던 슬픈 날이었다
얼마나 많은 날을 눈물로 보냈다
아 차인들은 충담 차 승이 차를 올리는 날을 기다렸다.
조선에서도 삼화령에 미륵 님 앞에 차를 올리지 못했다
삼화령은 너무도 한이 서린 곳이다
조선이 6백 년을 유학을 중심으로 정치를 수행함에
삼화령이 있는 옛 미륵님이 서 있는 지역에 차를 올리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고려가 경주 남산을 폐허로 만들어 버리고
그러한 역사를 지워버리는 행위만을 자행하였다.
조선은 불교의 흔적을 지우려고 했던 것같이
삼화령에 충담 차 승이 차를 올린 삼화령을
본래의 삼화령의 흔적을 지워버렸다.
그런데 일본은 조선을 점령한 이후에
신라에서 충담 차 승이 올린 삼화령을
문화재 지역으로 선정하여 발굴하였다
충담 차 승이 차를 올린 날에 등장한 미륵 님
일본 식민지 시대에 삼화령에서 발굴한
삼화령 미륵 삼존불이 등장했다.
삼화령이 발굴한 미륵불은
경주의 국립 방 불과 보관하고 있는데
삼존불을 본래의 삼화령으로 모셔야 한다.
그런데 삼화령 모신 미륵불을
본래의 삼화령에 모셔야 한다.
삼화령에 모셔야 하는데 아직도
삼화령에 모시지 않고 있다
삼화령에 차를 올린 날을 기억하는데
100년 만에 본래의 자리에 차를 올린 날
하늘에는 구름이 일어나고 있었다
남산 멀리로 바람이 일어나
충담 차 승이 차를 올리듯
목탁을 울리는 행사를 하였다
충담 차 승이 차를 올리는 날에 만났던 경덕왕은
충담 차승에게 안민가를 지어
신라의; 백성들에게 알리었다
지금도 안민가는 전해지고 있음을
남산에 삼화령 미륵님을 기억해야 한다
충담 자 승에 헌사
충남 차 승에 헌사 하는 날
나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날이다
바위, 돌을 안고 흐르는 맑은 물
물속에 떠오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차를 올리는 언덕에 찻잔을 올리면
미륵 님이 내려와 잠을 청하는 자리
바위에 올리는 차를 마시려 한다.
신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에 노래를
충남 차 승은 차를 받들어 모시는 날에
찻잔을 올리는 날에 추억이여
나에게 주어진 삶에 노래는
충담이 부르던 찻잔를 미륵에게 올리고
신라의 안락을 위하여 발원했다
오늘 나에게도 주어진 것은
바로 나를 잠에서 깨어나게 함이니
충담 차 승에게 이 시를 바친다.
충담 차 승이여 어서 일어나
나를 미륵 세계로 안내하소서
충담 차 승이 걸었던 숲
충담 차 승이 거주했던 사원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는데
충담 차 승이 경주 남산에
미륵 님에게 차를 올린 전설
충담 차 승이 날마다 올라간다는 소식을
들은 경덕왕은 이름 모르는 승을
만나고 싶었던 것은 충담 차 승이
차를 올리는 행렬이 있었을 수 있다
차 승이 홀로 차를 올리는 모습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는데
홀로 차를 올리는 행은
분명히 아니라는 점은
남산을 항해 오르는 숲
원효가 요석 공주를 만났던 냇가
그 냇가를 건너서 오르는 숲
남산에 숲이 우거진 길을 걸으니
충담 차 승이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충담 차 승이 숲속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숲속에 까마귀가 울고 있어
그날을 바라보고 있음이다,
충담 차 승이 거주한 사찰
충담 차 승이 거주한 사찰은
황룡사가 아니면 경덕왕을
만날 수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충담 차 승은 남산에 모셔진 미륵
미륵님에게 차를 올린다는 것은
경덕왕이게 충담 차 승의 모습을
보이기 위함이라고 보아야 한다
황룡사는 경덕왕이 보이는 근처인데
충담 차 승도 경덕왕이 보이는 숲
그 숲길을 오르는 숲 속에
요란한 모습을 보인 것이라고
그리하여 경덕왕은 차 승에게
관심을 보였전 것이 아닌가 한다
2023년 4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