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02동에서 살아요
정경숙
이른 아침 분주하게 아침 출근 준비를 하고 현관문을 나서려다 현관 앞에 있는 거울 앞에서 한 낯선 여인을 마주한다. 머리는 은빛에 흰머리, 얼굴엔 주름이··· 어느새 검던 머리는 희끗희끗 하나씩 늘어난 흰머리가 되고 팽팽하던 얼굴에는 주름이 생겨 그 젊던 여인은 어디로 가고 나이 먹은 중년에 아줌마를 마주 보고 순식간에 변해버린 시간 앞에 한참을 거울 속에 여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세월이 이다지 빨리 가는 줄도 모르고 아래층 직장과 위 4층 가정집을 오르락내리락 다람쥐 쳇바퀴 돌 듯 302동에서 살아온 지 언 18년이란 세월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던 나의 청춘도 이곳에서 사라지고 남은 것은 흰머리와 주름살뿐인 것 같다.
흰머리를 감추려 머리를 끈으로 질끈 묶고 나는 나의 총칼인 노트북과 서류 가방을 옆에 끼고 얼굴은 미소로 가슴은 따뜻함으로 무장하고 행복의 전쟁터로 걸어 내려간다.
나의 아래층 행복의 전쟁터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 재잘재잘 이야기 소리로 하루 종일 행복이 충만한 곳이기도 하지만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수많은 문서와 씨름하며 가슴이 답답해 지쳐 쓰러질 것 같아 포기하고 싶고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을 때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껏 302동 이 자리를 지속적으로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우리 행복 바이러스인 해맑은 천사들 때문이 아닐는지···
힘이 들고 지쳐갈 때 “원장 선생님 이것 드세요”라며 고사리 같은 손에 비타민을 갖고 와 내밀고 모형 놀잇감 과일, 고기, 생선 등을 접시에 담아 오거나 교사실에 하나씩 넣어주며 이야기하는 모습에 미소가 머금게 되고 엔도르핀이 돌며 종이에 알지 못하는 글씨와 그림, 거꾸로 쓰고 삐뚤어진 하트를 가정에서부터 써 곱게 접은 손 편지를 아침 등원 길에 수줍게 내밀며 “ 원장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사랑해서 집에서 그렸어요.”라고 하며 안기는 귀염둥이 울 천사 이런 선물을 받을 때면 그동안에 피곤함이 싹 사라지고 아무리 좋은 보약도 필요 없는 행복감이 밀려온다.
그 행복감에 302동을 떠나지 못하고 302동에 나의 삶과 묻은 채 흰머리와 주름살이 생기는 줄도 모르고 열정적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보며 이런 천사들과 만남이 없었다면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거울 속에 여인을 만나고 있을까? 그리고 302동에서 18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리고 출산율이 낮아 영아들이 점점 줄어드는 이 시점에서 앞으로 302동에서 언제까지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
2. 5박 5일 & 2박 2일
정경숙
“여보 이번 주 금요일에 무슨 약속 있어요?”
나는 언제부터인가 수요일만 되면 신랑에게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지고 신랑은 대답하는 버릇이 되었고 어느 순간에 그것이 익숙해져 일상이 되어 질문을 하지 않아도 금요일이면 퇴근과 함께 습관처럼 가방과 반찬을 챙긴 후 신랑에 퇴근을 기다리는 여인으로 되었다.
몇 년 전 신랑이 노후에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던진 말에 그냥 TV에서 나오는 자연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접했고 40~50대 중년이 말하는 시골살이가 로망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나 또한 어릴 적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이 현실에 열정적인 삶에서 벗어나 노후에는 한적한 곳에서 시골살이를 하고 싶었고 그렇게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었기에 신랑의 말에 동의하며 노후에 정착할 곳을 찾아다녔다.
여행을 다니며 동해, 남해, 서해 이곳저곳 경치 좋고 살기 좋은 곳을 찾아보았고, 인터넷으로도 찾아 신중히 고려해보고 논의한 결과 신랑은 그 어느 곳보다 나의 고향인 안면도를 선호했다. 안면도는 신랑이 좋아하는 배를 구입해 낚시를 할 수 있고 산과 바다가 있어 좋고 특히 친정집이 있어 좋다는 소리에 나는 걱정스러움과 고마움 두 가지 맘을 갖고 친정집 근처 바닷가 근처에 조그마한 땅을 구입해 1~2년 동안은 1달에 한두 번을 다니며 친정집에서 머물며 조금씩 농사를 배우며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작은 농막을 설치하고 엄마와 동생을 도움을 받아 밭에 감자, 마늘, 냉이 등을 심어 수확하고 과일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4계절이 몇 번이 지나면서 우리의 생활 리듬도 바꾸어가며 어느 순간 토요일에 내려와 일요일에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아쉽고 농막에 머무는 시간이 짧다 보니 미련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최대한 시골에서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하고 고민하여 결론을 내린 것은 지금 실천하고 있는 금요일에 퇴근과 동시에 시골로 출발하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와 신랑은 일주일을 5박 5일 & 2박 2일 5일은 직장이 있는 천안에서 2일은 바다가 있고 산과 들이 있는 휴식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골살이를 하게 되었다.
시골에 금요일 밤에 도착하여 밤하늘을 보며 도시에서 잘 볼 수 없는 별들이 하늘을 상자 삼아 반짝반짝 별 보석 상자가 되어 가득 담고 하나, 둘 세보려고 하지만 셀 수가 없고, 풀 벌레 소리와 어릴 적 도깨비불로 불리던 반딧불이를 볼 수 있을 만큼 공기가 좋다.
낮에는 하던 일 멈추고 고개 들어 보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소나무와 봄에 심은 한 뼘도 안 되는 코스모스를 마당 한가운데 심으며 물을 주고 매번 내려올 때마다 만져주던 코스모스가 훌쩍 자라 나보다 더 커서 키다리 코스모스로 변해 다양한 색에 예쁜 꽃을 피워 바람이 불 때마다 한들한들 흔들리고 고추잠자리가 날아다니며 밭에는 들깨가 누런 잎으로 변하며 열매를 맺어 추수철이 되었다고 알려주고 있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에 머릿결이 날리며 얼굴을 간지럼치고 핸드폰에서 나오는 감미로운 음악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내가 살아 있음을 알려주고 오늘도 행복함을 느끼게 해 준다.
이렇게 양쪽의 삶을 터전을 번갈아 생활하면서 변화된 것은 직장 생활에 더욱더 열정을 쏟을 수 있고 활력소를 찾았다는 것이다.
그 무엇보다 5박 5일 & 2박 2일 생활은 내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알게 해 주고 살아가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누가 나에게 “행복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이것이 행복이지 않을까?” 싶다. 아니 행복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3. 봉숭아 물들이기
정경숙
“원장님 손가락이 왜 빨갛게 되었어요?” “손가락이 아야 해요?”라고 묻는 울 꼬맹이들과 “원장님 손가락 봉숭아 물들이셨네요. 예뻐요!”라고 이야기해 주는 우리 식구들 추석 명절을 보내고 달라진 내 손가락을 보고 주변에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추석 명절 가족과 함께 친정집에 내려갔다. 친정집 앞 화단에 작고 탐스럽게 피어 있는 봉숭아 꽃을 보고 딸과 나는 “와 예쁘다.” 하며 꽃을 만져보았다. 어릴 적 봉숭아 꽃과 잎을 따서 소금을 넣고 콩콩 찧어 손톱에 올리고 비닐로 감싼 후 무명실로 칭칭 감고 아픔을 참고 자고 일어나면 자다가 잠결에 실을 풀어 이불에 봉숭아 물이 들고 그렇지 않은 손가락은 퉁퉁 부어 감았던 실 자국이 손가락에 돌돌 감아 있는 듯 남아 있었다.
그렇게 손톱에 물도 들고 손가락 두 마디만큼도 같이 물이 들어 2주일 정도는 붉은 손가락으로 생활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손톱에 물만 예쁘게 남아 있어 손톱 매니큐어를 바르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 매니큐어보다 더 예쁜 색깔로 치장할 수 있었고, 물들인 손톱이 첫눈이 내릴 때까지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소리에 사춘기 시절에는 설렘을 갖고 첫눈이 올 때까지 손톱이 다 자라지 않기 기도도 하고 첫눈이 내리기 직전에 손톱은 최대한 자르지 않고 첫눈이 내리기만 손꼽아 기다렸다
꽃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을 때 딸이 “엄마 우리 봉숭아 물들일까?”라는 말에 어려서 딸과 함께 물들여 보고 오랜 시간 함께 한 적이 없어 “그래 그럼 저녁 먹고 하자”라고 이야기를 나눈 후 소쿠리를 갖고 와 봉숭아 꽃과 잎을 따기 시작했다. 딸과 함께 봉숭아 꽃을 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친정엄마도 함께 따기 시작해 금방 한 소쿠리가 되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작은 절구통을 준비하고 따 놓은 봉숭아 꽃과 잎, 백반을 절구에 넣고 딸이 콩콩 찧어보기도 하고 그 뒤에 내가 찧어 물 들릴 수 있는 상태로 만든 후 일회용 투명 비닐장갑에 손가락을 맞는 부분을 자르고 무명실 대신 고무줄을 준비하여 곱게 빤 것을 딸의 손톱 위에 도톰하게 올리고 비닐로 쌓아 주려고 하자 불편하다고 손을 탁자에 올린 체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고, 옆에 지켜보고 계신 친정엄마를 보고 딸이 “할머니도 함께 하세요.”라는 말에 친정엄마 “손이 쭈글쭈글한데 무슨 아니다”라고 말씀하셔 “손이 쭈글쭈글하면 어때 나이를 드시면 다 그런 걸 그리고 손톱에 하는 건데 하세요.”라고 말씀을 드리자 “그럼 두 손가락씩만 해볼까?”라고 하셨다.
그렇게 우리 3대 여자들은 손톱에 봉숭아 물을 친정엄마는 양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에 곱게 반 것을 올리고 비닐로 감싸고 고무줄로 묶어 밤을 지새웠고 딸 역시 두 손가락에 올리고 비닐을 감지 않은 채로 몇 시간 난 열 손가락에 올린 후 비닐로 싸고 몇 시간을 버티다 아픔과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중간에 뺐다. 이렇게 3대가 앉아 물 드리기에 의미는 같았지만 세대가 다르듯 견디는 시간과 방법도 달랐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시간이 짧았던 딸의 손톱이 가장 엷게 봉숭아 물이 들었고 그다음 나, 손톱을 보고 미련이 남아 절구통에 있던 곱게 찐 봉숭아를 다시 손톱에 올려놓고 2시간을 꼼짝 안고 있었지만 밤새 인고에 시간을 견딘 친정엄마만큼 곱게 들지 않았다. 3대 여인들이 식탁에 손을 올려놓고 서로 예쁘다고 이야기하며 사춘기의 설렘보다 3대가 앉아 소소한 추억이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주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게 큰 의미로 가슴 깊이 와닿았다. 그리고 이렇게 세대를 가리지 않고 즐길 수 있는 행복한 추억 만들기는 대를 이어 꾸준히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첫댓글
정경숙 님의 수필을 읽으면서 삶이 곧 콘텐츠라고
역설하는 어느 시인의 말과 공감합니다.
'302동에 살아요'
18년이라는 시간을 직장에 박제한
작가의 고백이 행복하게 들립니다.
'5박 5일 & 2박 2일'
작금 중년의 로망이 5도 2촌(5일은 도시에서, 2일은 시골에서 삶)이라지요.
임께서는 알콩달콩 꿈을 이루고 지내고 계십니다. 부럽습니다.
'봉숭아 물들이기'
할머니와 어머니와 딸
삼대가 봉숭아 물들이는 모습이 귀감입니다.
좋은 글 쓰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