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6339]靜菴先生-제강청로은난죽병팔수(題姜淸老㶏蘭竹屛八首)중1首
題姜淸老[제강청로] 㶏[은] 蘭竹屛[난죽병] 8-1
趙光祖[조광조]
청로 강은의 난초와 대나무 병풍에 쓰다 8수-1
一首逸[일수일] : 한 수는 잃었다.
人生本自靜[인생본자정] : 인생은 스스로 깨끗하게 함이 근본이고
淸整乃其眞[청정내기진] : 탐욕이 없이 온전함이 곧 그 참됨이라네.
穩毓馨香德[온유형향덕] : 향기로운 덕을 꽃답게 편안히 기르니
何殊草與人[하수초여인] : 어찌 풀과 더불어 사람이 다를까 ?
淸老[청로] : 姜㶏[강은, 1492-1552]의 자, 호는 葵亭[규정].
검열, 예빈시참봉, 전적 등을 역임한 문신.
靜菴先生文集卷之一[정암선생문집1권] 詩[시]
1681년 간행본
한국고전번역원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1988
趙光祖[조광조, 1482-1519] : 자는 孝直[효직], 호는 靜庵[정암]
시호는 文正[문정], 기묘사화로 능주에 유배후 사사 됨.
자료= 돌지둥,돌지 돌https://gudo57.tistory.com/8522지둥[宋錫周] 2024. 5. 3. 07:50 둥[宋錫周] 2024. 5. 3. 07:50
인생본자정人生本自靜
(인생은 본디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니)
청정내기진淸整乃其眞
(맑고 바른 것이 그 본질이라)
온육형향덕穩毓馨香德
(안정되게 길러야 꽃다운 향기가 크니)
하수초여인何殊草與人
(어찌 풀과 사람이 다르리)
조정암의 〈제강청로은난죽병팔수(題姜淸老㶏蘭竹屛八首)〉
시에 나오는 구절인데,
그 시는 한국문집총간 22집에 수록된 정암집(靜菴集)권1에 실려 있으며,
8수 가운데 1수는 잃어버려 7수만 실려 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人生本自靜 淸整乃其眞 穩毓馨香德 何殊草與人.
崖懸蘭亦倒 石阻竹從疏 苦節同夷險 危香郁自如.
筍生俄茁葉 稚長却成竹 觀物做工夫 如斯期進學.
嫩質托巖隈 孤根依雲壑 倩描寓逸懷 擬取幽潛德.
南巡飄不返 哭帝喪英皇 血染成斑竹 淚沾漾碧湘.
數竿蒙瞽雨 葉葉下垂垂 天意雖同潤 幽貞恐卒萎.
幽芳誰共賞 高節衆同猜 所以隱君子 孤懷倚此開.
원문=靜菴先生文集卷之一 / 詩
題姜淸老 㶏 蘭竹屛 八首○一首逸
人生本自靜。淸整乃其眞。穩毓馨香德。何殊草與人。
崖懸蘭亦倒。石阻竹從疏。苦節同夷險。危香郁自如。
筍生俄茁葉。稚長却成竹。觀物做工夫。如斯期進學。
嫩質托巖隈。孤根依雲壑。倩描寓逸懷。擬取幽潛德。
南巡飄不返。哭帝喪英皇。血染成斑竹。淚沾漾碧湘。
數竿蒙瞽雨。葉葉下垂垂。天意雖同潤。幽貞恐卒萎。
幽芳誰共賞。高節衆同猜。所以隱君子。孤懷倚此開。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88
蘭竹詩(난죽시) -조광조-
人生本自靜(인생본자정) 인생은 본디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니
淸整乃其眞(청정내기진) 맑고 바른 것이 그 본질이다.
穩毓馨香德(온육형향덕) 안정되게 길러야 꽃다운 향기가 크니
何殊草與人(하수초여인) 어찌 풀과 사람이 다르리.
崖懸蘭亦倒(애현란역도) 언덕에 매달린 난초 또한 거꾸로 인데,
石阻竹從疏(석조죽종소) 돌에 막힌 대나무가 트인 곳을 좇네.
苦節同夷險(고절동이험) 굳은 절개는 평탄커나 험하거나 한가지인데,
危香郁自如(위향욱자여) 향기가 위태로워도 침착하고 태연함이 가득하네.
筍生俄茁葉(순생아줄엽) 죽순이 나더니 곧 잎이 자라고
稚長却成竹(치장각성죽) 어린 게 자라 다시 대나무가 되네.
觀物做工夫(관물주공부) 사물을 보는 것을 학문 닦는 일로 삼으니
如斯期進學(여사기진학) 이 같이 하여 학문의 진보를 바라네.
嫩質托巖隈(눈질탁암외) 연약한 몸을 바위 모퉁이에 의탁하고
孤根依雲壑(고근의운학) 외로운 뿌리는 구름 이는 골짜기에 의지하네.
倩描寓逸懷(천묘우일회) 예쁘게 그려 빼어난 마음을 부치니
擬取幽潛德(의취유잠덕) 숨어 잠겨있는 덕을 가진 듯하네.
南巡飄不返(남순표불반) 남쪽으로 순행하다가 표연히 돌아오지 않으니
哭帝喪英皇(곡제상영황) 여영과 아황은 임금을 잃고 슬피 우네.
血染成班竹(혈염성반죽) 피로 물들여 반점의 대나무가 되었고
淚霑漾碧湘(누점양벽상) 눈물이 적셔 푸른 상강(湘江)에 출렁이네.
數竿蒙瞽雨(수간몽고우) 대 줄기 몇 개가 무분별하게 비 맞더니
葉葉下垂垂(엽엽하수수) 잎들이 점점 아래로 늘어지네.
天意雖同潤(천의수동윤) 하늘의 뜻은 같이 윤택하게 하려는 것이지만
幽貞恐卒萎(유정공졸위) 숨은 절개가 마침내 시들까 두렵네.
幽芳誰共賞(유방수공상) 그윽한 향기를 누구와 함께 감상할까?
高節衆同猜(고절중동시) 높은 절개를 무리들이 함께 시기하네.
所以隱君子(소이은군자) 그런 까닭에 은거하는 군자는
孤懷倚此開(고회의차개) 외로움을 품으며 이렇게 피는 것에 의지한다네.
조문정공(趙文正公 조광조(趙光祖)) 유권(遺卷) -〈난죽(蘭竹)〉서(序)
내가 일찍이 조 문정공의 〈난죽(蘭竹)〉 시를 읽고는 읊조리고 탄식하기를 마지않았으니, 굴원(屈原)에 대해 “그 뜻이 고결하고 그 행실이 청렴하다. 그 뜻이 고결하기 때문에 그 사물을 헤아린 것이 아름답고, 그 행실이 청렴하기 때문에 죽어서도 세상에 용납받지 못하였다.”라고 평한 것과 같아, 사람으로 하여금 감개(感慨)하여 눈물이 흐르게 하였다. 지금 또 그 유편(遺編)을 읽어 보니 시(詩)가 13편, 부(賦)가 1편, 책(策)이 1편, 묘표(墓表)가 1편, 간독(簡牘)이 2편, 상소(上疏)가 1편, 계사(啓事)ㆍ진언(進言)ㆍ논학(論學)이 도합 29편이었는데, 정학(正學)을 밝히고 인심을 선량하게 하며, 왕도(王道)를 높이고 패공(霸功)을 내치며, 사설(邪說)을 물리치고 이단(異端)을 배격한 큰 요체가 모두 여기에 담겨 있으니, 당대에 공을 도학(道學)의 종주(宗主)로 추앙했던 것이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는 옛날과 멀지 않아서 선왕이 끼친 교화와 선한 풍속이 아직 남아 있고 상(上 중종)께서 유술(儒術)이 있는 자를 등용하여 잘 다스리려는 뜻이 있었기 때문에 공을 신임하는 것이 특히 돈독하였고, 공 또한 유학자를 널리 초빙하여 도덕을 높이 장려하고 정교(政敎)를 다듬고 밝혔으니, 일세(一世)의 중임(重任)을 자임한 것이 어떠하였겠는가. 그러나 마침내 소인들이 요얼(妖孼)을 만들어내서 바른 선비를 참소하여 해쳐서 유림의 화가 참혹하였다. 슬프다. 이 때문에 선량한 사람이 모두 없어진 것이다. 옛날 진(秦)나라 때 시서(詩書)를 불사르고 학사(學士)를 생매장하였고, 한(漢)나라 때 당고(黨錮)의 화(禍)가 있었으며, 송(宋)나라 때 위학(僞學)의 금(禁)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두 망국(亡國)의 일이었다.
다행히 인종과 명종의 선치(善治)에 힘입어 여러 현인들이 배출되고 치교가 다시 밝아져서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기묘년(1519, 중종14)의 현인, 기묘년의 다스림, 기묘년의 화를 말하고 있다. 이제 기묘년 제현(諸賢)의 억울한 화가 풀리어 만고에 현사(賢邪)가 변별되고 세교(世敎)가 크게 부식(扶植)되었다. 그러나 소인이 충량(忠良)을 참소하여 해친 것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아, 백대의 의론이 이미 지하에 계신 분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 참으로 슬프고 참으로 슬프다. 태상시(太常寺)가 시호(諡號)를 문정(文正)으로 의정(議定)하고 국학(國學)에서 제향하고, 공이 평소에 노닌 곳과 명을 마친 곳과 분묘가 있는 고을에 모두 사당을 세웠다. 이상과 같이 나열하여 써서 조 문정공 유권의 서문에 갈음한다.
記言卷之二十九○下篇 / 書畫
趙文正公蘭竹詩畫帖跋
丙戌冬。穆行嶺南。過趙君於三年城下。君出示墨畫蘭竹七帖。上皆有五言詩。昔正德年中葵亭姜內翰㶏。得尹彥直蘭竹八帖。趙文正公各題詩其上。未久禍作。至今爲儒林之痛。何可勝道哉。嗟乎。世移事易。墨跡猶在。而語苦志潔。足令人感惋。嗚咽出涕。姜氏傳世寶畜之。至萬曆兵亂失之。適有趙平澤守倫。少時一誦玩而悅之。及年老猶誦之。尙恨忘其一。文正公有曾孫婦柳氏。聞其事。手織素。求畫於當世之名能畫者李澂。而又各題詩其上。一如舊跡。善哉乎。賢者之世。果有賢婦人。能不泯其古事如此。君文正公之玄孫。而柳夫人之子。今宗廟令趙松年也。
병술동。목행령남。과조군어삼년성하。군출시묵화란죽칠첩。상개유오언시。석정덕년중규정강내한㶏。득윤언직란죽팔첩。조문정공각제시기상。미구화작。지금위유림지통。하가승도재。차호。세이사역。묵적유재。이어고지결。족령인감완。오인출체。강씨전세보축지。지만력병란실지。적유조평택수륜。소시일송완이열지。급년로유송지。상한망기일。문정공유증손부류씨。문기사。수직소。구화어당세지명능화자리징。이우각제시기상。일여구적。선재호。현자지세。과유현부인。능불민기고사여차。군문정공지현손。이류부인지자。금종묘령조송년야。
-조문정공(趙文正公)의 난죽시화첩(蘭竹詩畫帖) 발문-
병술년(1646, 인조24) 겨울, 나는 영남(嶺南)에 갔다가 삼년성(三年城) 아래에 사는 조군(趙君)을 방문하였다. 조군이 묵화(墨畫)로 된 난(蘭)과 죽(竹) 그림 7첩을 꺼내 보여 주었는데, 윗부분에 모두 5언시가 있었다.
지난 정덕(正德 명 무종(明武宗) 연호) 연간에 규정(葵亭) 내한(內翰) 강은(姜㶏)이 윤언직(尹彦直)에게서 난과 죽 그림 8첩을 얻고, 조 문정공(趙文正公 조광조(趙光祖))이 첩마다 그 위에 시를 썼다. 얼마 안 되어 사화(士禍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 지금까지도 유림(儒林)들이 애통해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아, 세상이 변하고 인사가 바뀌어도 묵적(墨跡)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강직한 말씀과 고결한 기개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비탄에 잠겨 목이 메고 눈물을 흘리게 한다.
강씨(姜氏)가 이것을 대대로 전하여 귀중하게 보관해 오고 있었는데, 만력(萬曆) 연간의 병란(兵亂 임진왜란)에 그만 잃어버렸다. 마침 평택 군수(平澤郡守) 조수륜(趙守倫)이 젊었을 때에 한 번 읽고 그 시구를 음미하며 좋아하였는데 늙어서도 여전히 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 한 첩을 잊어버린 것을 한스러워하였다.
문정공의 증손부(曾孫婦) 유씨(柳氏)가 이 사실을 듣고 흰 비단을 손수 짜서 당대의 명장(名匠)이라 할 수 있는 이징(李澂)에게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하고, 또 첩마다 그 위에 시를 써서 한결같이 옛날의 그림처럼 만들었으니, 참으로 훌륭한 일이다. 현인의 후손 중에 참으로 현부인이 있어 고사를 이처럼 사라지지 않도록 하였다.
조군은 문정공의 현손(玄孫)이며 유 부인(柳夫人)의 아들로, 지금 종묘서 영(宗廟署令)으로 있는 조송년(趙松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