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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공부의 즐거움 The Joy of Bible Study
샬롬! 구정도 지나고 또 토요일입니다. 아침에 하남에서 차로 송파로 오니 도로가 다 비었습니다. 설을 맞아서 일주일을 쉬는 사람도 있고 또 어제 시외로 많이 빠져나간 관계로 평소의 출근길과 달랐습니다. 날씨로 조금씩 풀리고 곧 삼월인데 성경을 읽는 분은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짬짬이 읽는데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열심히 통독도 하고 공부도 합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평신도의 열기는 세계에서 최고인데 이들을 가르치는 시스템은 너무나 낙후가 되어 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가 설교도 하고 성경도 가르치고 구역장 교사를 지도를 하나 성경공부에 별로 투자를 하지 않고 목사도 목회로 바쁘고 이 물질이 넘치는 시대에 성경 연구에 너무나 많은 헌금과 기증과 원조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먼저 모든 교인이 컴퓨터로 문서를 만들고 글을 써서 올릴 정도로 컴퓨터를 모든 성도가 능통하게 다룰 수가 있게 컴퓨터 교실을 열고 누구나 무료로 공부를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어도 쉬지 않고 가르쳐서 모든 교인이 영어로 성경도 보고 회화도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고 어떤 성도는 깊이깊이 성경을 이해하고 싶으니 이들이 연구도 하고 공부도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모든 성도를 위해서 이렇게 투자를 하는 교회도 드뭅니다. 성도의 영적인 갈증을 풀어주지 못하기에 기존 교회에 다니던 사람이 이단이 가르치는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있으면 홀깃해서 빠지는 것입니다. 수십만에 이르는 이단은 대부분 기성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갈증을 느껴서 다른 곳으로 갔다고 빠진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열심이 있는 것입니다. 열심이 있는 성동의 갈증을 목사가 채워주어야 하는데 큰 교회 목회는 다른 분야에 물질을 많이 쏟아붓고 진작 성도의 영적인 성장에는 소극적인 면이 있는데 온 한국적인 현상입니다.
미국의 경우는 성경 연구에 너무나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신학교도 잘 짓고 연구 시설도 잘 갖추고 다양한 성경 공부 교재도 개발하고 성경 연구 기관도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테리 홀이라는 성경 연구가의 파노라마 성경을 보고서 신학 대학원 공부를 하려 갔다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법을 배우고 홀로 오랜 시간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야에 투자를 하시는 분도 많아서 성경을 읽고 또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읽고 정리하는 방법도 배워서 일생을 이렇게 해서 성경을 온전히 깊이 알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고 복도 많이 주시리라 믿습니다.
성경은 성경만 본다고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다양한 공부도 병행해서 하고 언어도 잘 배워서 한국어 버전도 보고 영어 버전도 보고 헬라어 히브리어도 참고를 하면 더욱 깊은 성경의 이해로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목사나 성경 연구가에게 배우는 것은 그들이 이해한 내용을 잘게 잘게 씹어서 주는 것입니다. 내가 자라게 되면 내 스스로 성경을 읽고 딱딱한 것도 스스로 섭취를 해야 하는데 그 기쁨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먼저 성경을 배워야 하는 동기입니다. 저는 목사가 되기로 했으니 신학도 해야 하는데 성경을 공부해야 신대원에 가기에 그래서 강제로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시험 공부를 하러 갔는데 테리 홀의 책에서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법을 보고서 신학이고 뭐고 다 잊고 그냥 1년 정도를 성경을 읽고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1189장을 창세기부터 한 장씩 읽고 이를 절별로 정리를 해서 내 나름대로 장 제목을 정하면서 정리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니 내용이 아는 부분은 정리가 되지만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그냥 이미 정리해 놓은 장제목을 적었습니다. 이렇게 하는데 하루에 8시간씩 약 1년가까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이를 다시 손으로 직접 기록을 했으니 컴퓨터로 옮기는 작업도 해야 되는데 이 작업은 제가 아는 신실하신 집사님께서 도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장 제목을 다시 약 1년에 걸쳐서 분류를 하고 이를 다시 정리하고 성경 한권 제목을 찾아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민수기의 경우는 36장인데 먼저 36장을 읽으면서 장마다 절별로 정리를 합니다. 그리고 절의 내용을 보면서 장제목을 정합니다. 누가 해 놓은 것을 그대로 옮기면 공부가 되지 않습니다. 그냥 자신이 파악한 데로 장제목을 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장제목을 정하고 이를 다시 장제목을 보면서 분류를 하고 이 분류한 것을 보면서 민수기의 제목을 정합니다. 우리가 아는 민수기는 인구 조사를 했기에 사람의 숫자에 대한 기록이라 민수기라 불립니다. 그런데 제가 정리한 자료는 이 민수기가 일어난 무대가 3-4개의 광야를 거치면서 약 40년 동안의 일을 기록했기에 저는 순간 광야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했기에 "광야에서"라고 자체적으로 제목을 붙였는데 후에 이스라엘 사람이 민수기를 광야에서 부르는 것을 보고서 너무나 뿌듯하고 기뻤습니다. 성경의 내용도 잘 모르는 완전 초보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열심으로 약 1년을 쉬지 않고 성경을 읽고 정리했는데 하루하루 1189장의 남은 장은 줄고 정리를 하면서 순서대로 하루 한장이 늘면 노트에 여태까지 공부한 장의 합을 적어갔는데 이는 놀라운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단숨이 한 번 정리를 했고 후에 또 장제목을 한눈에 보게 정리표를 다 66개를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 로마서를 소개해 드립니다.
로마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의와 사랑의 확실한 증거
| 1부 서언 | 2부 바울의 복음 2-11 | 2-3 하나님 공의의 필요성. 하나님 의, 그리스도의 희생 4 이신칭의 5-8 사랑의 확증과 자유 9-11 이스라엘 문제와 공의 | 3부 바울의 윤리와 추천서 12-16 | 12-13 성도의 윤리 14-15 권면 16 추천 |
| 부 | 장 | 키워드 | 주요 내용 | 부 | 장 | 키워드 | 주요 내용 | ||
| 1부 | 1 | 서언 | 인사. 복음의 능력. 이방인의 죄와 하나님의 의 | | 9 | | 이스라엘 문제 |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 섭리 | |
| 2부 | 2 | 바울의 복음 하나님의 공의 자유 성령 | 공의의 필요성 | 유대인의 죄. (율법, 할례) | 10 | 이스라엘의 죄와 타락 그리스도와 복음 전파 | |||
| 3 | 모두가 죄인 하나님의 공의 계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 11 | 이스라엘과 이방인 구속사의 비밀 | ||||||
| 4 | 칭의 |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음(아브라함) | 3부 | 12 | 성도들의 신앙 윤리 | 일반적 교훈 | 산제사. 몸과 지체.은사. 평화의 윤리 | ||
| 5 | 죽음을 통한 자유 . 합력성선 | 하나님 사랑의 확증 아담과 그리스도 죽음으로부터 자유 | 13 | 권세 복종 사랑 윤리 | |||||
| 6 | 세례, 죄로부터 자유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음과 부활 | 14 | 권면 | 강자와 약자 문제 화평 하라. 하나님 나라 | |||||
| 7 |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율법에 대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모세) | 15 | 일치 권면 바울의 선교 계획 | ||||||
| 8 | 생명의 성령의 법 성령의 인도로 율법의의를 이룸, 합력성선 | 16 | 추천서 | 추천, 인사 | |||||
16장의 제 정리를 보면서 도표를 만들었는데 위와 같이 다 한 눈에 보게 정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위의 자료는 장신대 성종현 교수님의 신학 연구를 참고를 했습니다. 제가 성경 지식이 부족해서 그럴때는 다른 분들의 주장을 참고했습니다. 제가 성령을 받고 전도하는 사람이라 성령의 인도로 성경을 읽을 때 혹은 그냥 있을 때 너무나 많은 성경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성령께서 주셨는데 저는 그때마다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모든 일을 멈추고 종이에 다 적었습니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수년을 그렇게 받아적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일은 성경을 잘 이해하게 되면 그 정리가 더욱 정확해지고 풍성해지는데 25년 이상 해 오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서 보면 너무나 부실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도 그 자료를 오천만의 로마서에 다 올렸습니다.
그리고 잠실교회 교사로 3년을 봉사하면서 목사님으로부터 성경 공부도 잘 했습니다. 학생에게 가르쳐려 하면 먼저 잘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데 한 번 배우고 그 내용을 가르치고 하는데 일년 52주 가량을 대부분 성경 전체를 한 번 훓어나가기에 3번을 훓은 것입니다. 20년 30년 교사를 하시면서 성경을 백독하신 분들은 이미 성경의 모르는 부분이 별로 없는 대가들이십니다. 이런 분들이 한국에 수도 없이 있습니다.
그리고 배운 내용을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전도는 내가 배운 성경의 내용을 전하는 일입니다. 전도 책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책이 바로 성경책입니다. 성경책을 전해 주면 성령께서 그 심령을 감동해서 읽게 합니다. 저는 행정고시를 공부하는데 불교에 심취해서 산에서 도를 닦는 사람인데 누가 성경을 주길래 왜 내가 성경을 받아야 하나 하고 거절하고자 했지만 남해 동향의 분이라 안면을 보고서 거절하지 못했는데 그냥 받아서 방에 두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산에서 수행을 하고 방에 왔는데 하나님께서 오시고 제 머리를 까뒤집으시고 두려움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어쩔줄 몰라 하는 제게 성경이 눈에 들어오고 봐야 하겠다는 생각에 폈느데 한번에 고린도 전서 13장이 펴지는데 그냥 눈에 들어오는 글자가 아니라 제 마음을 비추는 거울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흉악하고 타락한 제 마음을 너무나 생생하게 보았고 절대로 그와 같이 살면 안된다는 강한 결단이 동시에 오고 완전히 그로부터 다르게 5년을 회개하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오셔서 저를 눈물을 흘리고 무픞을 꿇게 하신 후에 저를 도구로 써 주세요 하는 기도까지 나오게 하셨습니다.그래서 저는 성경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다양하게 200권은 전도용으로 나눈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음해 성령을 예수님께 받아서 쉬지 않고 전도했습니다. 행정고시는 2차에서 1점차 낙방하고 목사가 되려고 성경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고시 공부책과 달리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고 하루에 책을 300페이지 속도로 읽었는데 성경은 하루에 한 장도 읽히지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제가 배운 사회과학과 너무나 다른 책이었습니다. 그런 중에 하나님께서 열심을 주심으로 한 번을 읽고 정리를 한 것입니다.
2011년 7년 동안 질질끈 신학공부를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고도 목회를 하지 않고 일반인과 같이 직장에 다니면서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이를 조금씩 다듬었습니다. 그리고 2015년부터 미군부대에 근부하면서 영어도 배우고 2018년부터 제가 받은 은혜를 온 세상에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전도에 대한 자료, 성경 정리 자료, 그리고 로마서의 애해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지금까지 약 8년 동안 하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보기에 제가 글을 올리는데 늘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성령의 인도로 그냥 읽고 감동이 되어서 이해가 되는 부분이 대부분인데 이렇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아지면서 책으로 엮기도 했는데 완전한 발행에는 갈 길이 많습니다. 이렇게 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이 너무나 즐겁게 느끼게 해 주셨는데 영어를 보면서 한글 번역과 비교를 해서 의미를 알고 전하는 즐거움이 말로 다 할 수가 없게 기뻤습니다.
제가 새롭게 소개를 한 구절입니다. 너무나 많지만 조금만 소개합니다.
마 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52.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맺으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는 마치 자기 곳간에서 새 것도 꺼내고 낡은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2. He said to them, "Therefore every teacher of the law who has been instructed about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the owner of a house who brings out of his storeroom new treasures as well as old."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되 그러므로 천국에 대해서 교육을(예수님께) 받은 모든 율법학자(율법을 가르치는 선생)는 그 주인(예수님께서)이 자신의 보물 창고에서 새 보물도 꺼내서 나누어 주고 옛 보물도 꺼내서 나누어 주는 것과 같다. (때에 따라서 신 구약 말씀을 나누심, 반드시 이렇게 예수님과 같이 되기 위해서는 율법을 잘 공부해야 한다는 말씀임)
롬 1:16.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because it is the power of God for the salvation of everyone who believes: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 믿는 믿음입니다. 기록된 바와 같이 오직 의인은 믿음을 갖고 매일 매일 삶을 사는 사람이다 함과 같습니다. (제가 영어로 다시 정확하게 번역을 했습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6. But now, by dying to what once bound us, we have been released from the law so that we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개역개정, 공동 번역, NIV)
[그러나 이제는 우리를 한때 얽매였던 것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율법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는 것이지 즉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지 옛날에 하던 낡은 방법 즉 율법을 가지고 섬기던 방법으로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서 믿음으로
21.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율법서와 예언서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십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24.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주셨습니다.
25.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과거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를 참고 눈감아주심으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고
26. 오늘날에 와서는 죄를 물으심으로써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올바르시다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21. But now a righteousness from God, /apart from law, /has been made known, /to which the Law and the Prophets testify.
22. This righteousness from God comes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o all/ who believe. There is no difference,
23. 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24. and are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came by Christ Jesus.
25. God presented him/ as a sacrifice of atonement, /through faith in his blood.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justice,/ because in his forbearance he had left the sins committed beforehand unpunished --
26. he did it to demonstrate his justice /at the present time, /so as to be just/ and the one /who justifies those /who have faith in Jesus.
But now a righteousness from God, /apart from law, /has been made known, /to which the Law and the Prophets testify.
This righteousness from God comes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o all/ who believe.
There is no difference, 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and are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came by Christ Jesus.
God presented him/ as a sacrifice of atonement, /through faith in his blood.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justice,/ because in his forbearance/ he had left the sins /committed beforehand unpunished -- /he did it to demonstrate his justice /at the present time, /so as to be just/ and the one /who justifies those /who have faith in Jesus.
제가 영어를 주어와 동사를 색을 다르게 했고 끊어놓았습니다. 개역개정만 보신 분은 율법 외에 한 의라는 표현도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율법과 선지자의 증거도 이해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의미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셨다는 부분도 어렵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부분이 많으니 모든 분께 이 구절이 어렵게 느껴지고 로마서도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천주교와 개신교가 로마서로 서로 나누어졌고 그 주장을 서로 옳다고 굽히지 않고 500년 동안 다툰다는 내용을 알면 내가 아는 것이 맞는가 하고 또 걱정이 되니 이리저리 로마서는 어렵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천주교는 어떻게 해석을 했나 보면서 더 쉽게 풀어놓았으면 그 이해를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두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오직 개신교만 옳다고 믿고 개신교 성경 이외에는 이상하다 하면 개역 개정만 죽도록 보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헬라어 본문에서 해석 혹은 번역으로 나온 성경은 크게 천주교,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 번역이 있고 이도 각 나라말로 다양하게 번역이 되어 있어서 개역개정은 수백 개의 번역 중에서 한 번역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역사가 150년이고 이제는 한글로도 5개의 번역이 있으니 용기를 내어서 본문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국의 성경의 이해도 세계적으로 올라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면 여기저기 흔들리지 않고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진리에 대한 열정을 막을 이는 없고 개신교에서 잘 가르치지 않으면 이단에 가는 사람도 있고 천주교로 가는 사람도 있는데 절대로 이단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이해는 단 시일에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온전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목사님의 가르침을 먼저 잘 받고 내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그리고 삶에서 전도와 선행을 성령의 인도로 하면서 성령의 조망에 따라서 한 가지 한 가지 새롭게 이해를 하면서 그 이해가 느는 것이지 한 번에 어디서 진짜다 하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은 누가 검증합니까? 저도 역시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아서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이렇게 온 세상에 누구나 보고 검증하게 글을 올리니 차근차근 여러 글을 읽어 보시고 잘 판단하시고 믿으시면 되는 것입니다.
천주교 번역은 예언서와 율법서가 증명한다고 더 쉽게 풀었습니다. 그리고 죄를 범하여서 영광스러운 모습을 읽어버렸다고 설명합니다. 더 쉽습니다. 25절도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더 쉽게 이해가 되게 합니다. 그런데 의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설명을 했습니다. 이제 조금 더 나아간 이해로 영어를 봅니다. 제가 마지막 영어는 절을 없애고 그냥 문장으로 새롭게 배치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하나의 의가/ 율법과는 별도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의는 율법(모세 오경)과 예언자들이 증거한 것입니다.
이 의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누구냐 하면 믿는 사람입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합니다. / 그리고 모두가 값없이 의롭게 됩니다. / 그분의 대속의 은총에 의해서 /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하나님께서는 그를 내어 주셨습니다. / 속죄의 제물로서 / 그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그분은 이를 하셨습니다./ 그의 정의를 나타내기 위해서 / 왜냐하면 그의 길이 참으시는 중에/ 그분은 미리 우리의 죄를 간과하셨습니다./ 전에 지은 죄를 벌하지 않고/ -- 그분은 그분의 정의를 나타내기 위해서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 현재 시점에서 / 정의롭고 / 정의롭게 하시는 분이심/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위의 내용을 구글 번역에 넣고 아래와 같이 해석을 받았습니다.
21 22 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이 증거한 것이라.
이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임하는 것이라.
23 24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어진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25 하나님께서 그를 화목 제물로 세우사 그의 피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셨느니라.
26 이는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 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지금 이 시대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시는 이시니라.
이제 제가 이를 풀어서 모두가 더 쉽게 이해가 되게 하겠습니다. 로마서의 가장 중요한 구절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구절보다 더 중요하고 로마서 1장 17절의 근거가 되는 구절입니다.
율법과 별도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율법은 모세 오경이며 성경의 가장 근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통치의 근본으로 각국에 가장 최상위에 헌법이 있듯이 이 율법은 온 인류의 공통적인 헌법이며 모든 성도의 헌법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이 법대로 온 우주를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법을 알든 모르든 이 법의 통치를 그대로 온 인류는 받습니다. 사는 동안에도 그렇고 죽고 난 후 영생과 영벌의 기준이 바로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율법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그리고 신실함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율법의 정신이 바로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그리고 우주 만물 인간을 포함에서 가장 높은 곳에 가장 오랜 시간 존속하는 거룩한 법이 바로 율법입니다. 우주 만물이 사라져도 일점 일획 변치 않고 존재한다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셨습니다. 이를 이스라엘 역사 1000년을 통해서 정확하게 보여주셨고 우리 인간의 역사를 보아도 역시 모든 인간의 역사가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고 그 통치는 법치로 율법에 의한 통치입니다. 그런데 법은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래서 율법에는 하나님의 의가 그대로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 하면 의인데 이 율법과 별도의 의가 이번에 나타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는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미 예언서를 통해서 율법서(모세 오경)를 통해서 이미 증거가 되어 있다고 하십니다. 율법과 다른 의가 율법서와 예언서에 있다고 하시니 우리는 이를 찾아서 보아야 합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모세 오경 중에서 창세기에 15장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의롭다 하시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언서의 하박국서 2장 4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를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구약의 율법서와 예언서에 기록이 된 바와 같이 믿음으로 오는 의가 있는데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의가 있습니다. 즉 율법서에 기록이 된 조항을 잘 지킴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닌 이미 예언서와 율법서에 기록이 된 믿음을 통한 의와 같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이 오는데 모든 믿는 사람에게 온다고 하십니다. 21-22절이 설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의는 차별이 없습니다. 즉 믿는 모든 사람이 다 의롭다 인정을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와 너 모두가 하나님께 죄를 범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이는 인간이 죄를 짓기 이전의 상태를 잃어버린 것을 설명합니다. 우리는 죄가 없다면 에덴에서 늙지도 병들지도 그리고 수고도 하지 않고 영생을 누릴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이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창조하셨는데 그분의 영광을 함께 누리도록 창조하셨는데 우리의 죄로 인해서 이를 잃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낙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대속인 하나님의 은총으로 값없이 의롭게 됩니다. 누구나 이 하나님의 은총과 예수님의 대속을 믿기만 하면 아무 값도 없이 의롭게 되기에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복낙원이 되는 것입니다. 23-24절입니다.
25절을 봅니다. 이 구절의 복음이 핵심입니다. 로마서에 이 구절에 대한 이해가 다 있습니다. 먼저 로마서 5장 8절을 봅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화목 제물로 세우셨다고 하는 것은 구약의 율법에 따라서 죄를 지은 사람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는 흠이 없는 양이나 소를 잡아서 피를 흘리는 제사를 성막에 가서 혹은 성전에 가서 제사장과 함께 드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사람의 죄를 씻어야만 하나님 앞에 나가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께 죄를 범했고 이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예수님 즉 독생자를 희생의 제물로 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내어 주는 사랑 그 사랑으로 우리 모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증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는데 이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모두의 죄를 씻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세우시고 믿는 우리를 의롭게 하신 일이 자신이 의로운 분이심을 나타내시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26절에 있는데 이 부분부터 잘 보아야 합니다. 누가 설명을 잘 하지 않는 부분입니다.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justice에서 밑줄 친 this는 앞의 문장 전체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그분의 피 흘리심을 통해서 이를 믿는 우리를 의롭게 하신 일이 그분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시려고 하신 일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를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희생이나 피 흘리심이 없이 누구를 용서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법에 의하면 죄에는 대가가 반드시 따르고 죄는 대가가 죽음과 피 흘림이 반드시 있어야 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즉 죄에 대한 처벌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잃고 이 땅에서 살다가 죽는 신세가 되어서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은총이 값이 없이 우리의 희생이 없이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그런데 그 은총은 너무나 큰 하나님의 사랑으로 큰 희생으로 옵니다. 즉 하나님의 죄에 대한 처벌로서 오는데 그 처벌이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아들에게 대신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과 예수님의 죽으심이 바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처벌로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정의가 이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법대로 우리를 죽게 그대로 두어야 하나 우리 대신 예수님을 피를 흘리시고 죽게 하신 것입니다.
이 대속을 믿는 이를 하나님께서 그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설명으로 이렇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그분의 정의로우심을 나타내시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죄에 대해선 절대로 피 흘림이나 죽음이 없이는 용서가 불가하다는 것으로 이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사는 사람에 대해서는 반드시 죄에 대한 심판이 있고 그 심판이 최후의 심판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죄는 그대로 넘어가는 경우가 없고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 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라는 것입니다. 이 죄에 대한 처벌을 우리 대신 예수님께서 받게 하심으로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정의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독생자를 주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받는 길을 은총으로 주셨지만 이를 믿지 않는 자에겐 틀림없는 죄에 대한 심판을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절대로 죄는 두 가지 방법 외에 피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분이시기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를 용서를 받든지 아니면 그냥 그 사람이 피를 흘리고 죽는 것 외에는 달리 어떤 방법의 해결책도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로서 모든 세상에서 악하게 살고 마음대로 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는 사람에겐 틀림없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존재함을 온 세상에 하나님께서 전하시는 것입니다. 죄는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인생의 순간이고 하루살이나 불나방과 같이 순간의 권력욕이나 재물의 욕심에 죄를 범하는 인간의 말로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결단코 피해 갈 길이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죽음으로 내어 모는 사건을 통해서 온 인류에게 엄중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이렇게 죄에 대해서 무서운 분이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절대로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는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같이 나타나 있음을 굳게 믿으시고 절대로 죄에서 멀어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셔서 그 아들의 피와 죽으심과 수치와 조롱을 통해서 구원하셔서 그 백성이 된 죄인이 이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정말로 예전과 달리 죄를 멀리하며 정의롭게 살기를 너무나 간절히 바라십니다. 로마서는 이렇게 정의에 대한 법적인 글인 것입니다. 율법학자 바울과 같이 성령을 받아서 그리고 그의 전도 경험과 교회를 세우고 치리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로마서를 쓸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검사, 판사, 법률 교수와 같은 분을 강제로 선택하시고 성령을 주셔서 전도하게 하시고 이렇게 로마서를 기술하게 하셨으니 로마서는 지금의 검사, 판사, 그리고 변호사와 법대 교수가 예수를 믿고 성령의 도움으로 설명하되 반드시 바울 사도와 같이 복음을 전하면서 이해하고 설명을 해야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가운데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를 미리 간과하셨다는 구절이 또 이해가 어렵습니다. 죄에 대한 즉각적인 처벌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우리가 원죄도 있고 자범죄도 있는데 이렇게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간과 즉 처벌을 즉각 하지 않고 이를 참으시는 것이 어려운데 참으신 것이 바로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어주시고 또 희생하게 하신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간과와 용서와 처벌은 다릅니다. 간과는 죄를 보시고 그냥 처벌도 용서도 아니하시고 참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자신의 지갑에서 큰돈을 훔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즉시 불러서 야단을 치고 돈은 내놓아라 해야 하는데 우선 지켜보는 것을 말합니다. 참기에 절대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 돈이 액수가 커고 긴급한 자금이었다면 더욱 참기 어렵습니다. 돈에 대한 회수와 아들의 악행에 대한 처벌을 바로 하고자 하는 것이 보통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기회를 주시면서 참고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간과를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미리 하나님께서 하셨으니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예수님의 오심이 바로 이 간과에 대한 해결이라는 것입니다.
영어로 보면 대과거로 되어 있습니다. 과거 이전의 행위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간과가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길이 참지 않고 모든 우리의 과거에 죄에 대한 처벌이 있었다면즉 우리의 죄로 인해서 우리가 재산이 다 날아가고 우리가 병이 들고 우리가 이미 죽어서 없어졌다면 예수님의 대속의 의미는 많이 작아질 것입니다. 이미 벌을 받고 낭패에 빠진 사람에게 너 죄를 용서할 길이 열렸다고 하면 누가 이를 믿겠습니까? 즉 여러분이나 저나 흉악하게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은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간과하시고 계셨습니다. 즉각적인 처벌이 없이 산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바로 용서를 하시는데 없는 것과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용서는 이와 같지만 세상의 처벌은 세상의 처벌대로 가는 것입니다. 금당살인 사건의 살인범 박 철웅은 사형을 언도받고 감옥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회개하고 수백 명에게 복음을 전하며 편지도 자신의 동생 천웅에게 남겼습니다. 저는 그 편지를 읽고 바로 성령의 감동이며 모든 죄를 회개한 사람임이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살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처벌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세상의 법은 사형이니 사형이 집행이 되었으나 저는 그분이 천국에 있는 것을 확실히 믿고 저도 역시 그분 못지않은 흉악한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간과가 있고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그런데 이는 정의로우신 하나님 편에서 길이 참으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악인이 죄를 범하면서 하나님이 계시냐 하면서 아무런 두려움이 없이 사는데 이는 죄를 알고도 용서하기를 바라시며 그분의 아들을 피를 흘리고 죽게 내어주신 정의로우시며 사랑이신 하나님을 너무나 무시하는 행위로 절대로 최후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이 영벌에 처해질 것입니다. 악인의 형통을 절대로 부러워 말고 절대로 따라갈 생각도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모든 하나님의 행위는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나타내는 것은 물론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아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을 의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시려고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온 천하에 밝히려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역시 정의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려 하십니다.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서 이렇게 강조하십니다. 사람이 정의롭게 되고자 하면 이런 하나님의 은총을 배우고 기억해서 예수님을 믿고 정의롭게 되어라 하는 온 인류의 초대의 말씀입니다.
온 세상이 정의를 외칩니다. 정치학은 한 마디로 정의에 대한 한문입니다. 법학도 한 마디로 정의에 대한 학문입니다. 법으로 정의를 세우고 정치로 정의를 세우고자 인간은 애를 쓰나 진정한 정의롭게 되는 길은 겸손히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을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법이 무너지고 정치가 무너지면 불의한 세상이 되고 이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를 증명합니다. 이 불의한 세상을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면서 정의롭게 해야 되는 사람이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 즉 예수님을 믿는 신자입니다.
이렇게 정의를 강하게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구원이 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시고자 하는 일이 바로 모든 크리스천의 사명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국가의 신자가 이렇게 한마음과 한 믿음으로 인종, 국적, 성별을 초월해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일부만 예를 들었습니다. 너무나 셀수도 없이 이렇게 올바로 이해를 해야 이해가 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 번역의 역사가 겨우 150년 정도 되지 않기에 그렇습니다. 적어도 500년은 흘러야 제대로 번역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증거는 많은 성경의 이해를 돕게 될 것입니다. 제가 성령을 틀림없이 바울이나 베드로와 같이 받고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어서 세상의 일을 하면서 가정을 꾸리고 이렇게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전하는 것을 장려하시고 목회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책망은 없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가운데 로마서를 아래와 같이 이해하게 되어 온 세상의 신학 대학의 교수님께 전했습니다.
여기까지 약 35년은 걸린 것 같습니다. 새로운 성경의 이해가 하나 하나 모여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정리를 해야 하는데 모르니 이 버전 저 버전을 보다가 그 의미가 성령의 인도로 이해가 될 때 기쁨은 온 세상에서 가장 큽니다. 가난을 이기고 핍박을 이기고 세상의 무시를 이기는 능력이 여기에 있습니다. 참으로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는 축복은 이 세상의 무엇과도 비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수천년이 갑니다. 지금 시대 모든 빌딩과 부자와 권세자들은 아침의 이슬과 같이 사라지고 모든 권력자들이 언제 있었지 하고 사라질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육신과 함께 우리가 누리던 집과 차와 돈도 다 나라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주님께서 오시는 날까지 수도 없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그 사람들이 올바로 살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일에 가장 똑똑한 사람이 다니엘과 같이 전 생애를 걸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한국의 물질을 이런 일에 끝도 없이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교회 건물도 성도도 다 사라집니다. 그래도 바울의 로마서는 영원합니다. 그리고 루터의 가르침도 너무나 놀랍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루터와 천주교의 갈등을 이런 모든 과정을 통해서 완벽하게 푸셨습니다. 이를 650명의 가장 세상의 유명한 신학교 대학 교수님께 보내고 그리고 여기에도 다 소개를 했습니다.
그림으로 누구나 알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당연히 영어로 번역해서 보냈습니다.
정말로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즐거움은 온 세상에서 최고요 최선입니다. 이렇게 중요하고 영원한 것은 이 세상에 절대로 없습니다. 성경의 이해로 세상의 역사가 바뀝니다. 종교개혁으로 지금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500년을 흘러왔습니다. 이제는 25억 명 이상의 예수를 믿는 사람이 온 세상에 흩어져 있고 크게 세 교회와 개신교는 수백개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나누어진 상태로 거대한 어둠의 세력과 전투에서 절대로 이기기 어렵습니다. 이제 이 전투는 모든 믿는 교인이 전세계에서 하나가 되어서 예수님의 지휘로 싸워야 합니다. 이를 위한 성경의 이해가 위의 내용입니다. 제 도표는 창세기와 로마서와 그리고 야고보서를 다 동원했습니다. 설명도 간단합니다. 모두가 이해가 되셔야 합니다.
우리 개신교는 100년이라는 긴 아브라함의 생애 중에서 약 75-85세의 믿음에 치중했습니다. 정확하게 성경도 개신교의 주장과 같이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설명합니다. 그래서 조금도 틀리지 않고 옳습니다. 이에 반해서 천주교는 아브라함의 말기 신앙 즉 118-125세 신앙에 주목합니다. 그래서 아고보서 창세기 22장과 같이 정확하게 믿음과 행함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습니다. 그래서 두 주장이 너무나 성경적으로 완벽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100년을 신앙생활을 하신 분이십니다. 성경은 그의 신앙을 초기와 중기와 말기로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정확하게 세 번이나 오셔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보시고 세 번 의롭다 하십니다. 이제 천주교는 그래 개신교는 초기 신앙으로 너무나 정확하니 맞습니다. 그리고 개신교는 천주교는 말기 신앙으로 역시 정확합니다. 이렇게 서로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서로 이제 99-100세의 신앙도 같이 봅시다 하면서 제 위의 그림 믿으니 불뚝! 행하니 임신! 이라는 로마서 4장 17-22절도 인정을 해야 합니다. 이 세 번의 테스터를 같이 보면서 더욱 더 깊은 이해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가 첫 믿음 생활을 시작하면 당연히 믿으니 의롭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신앙이 어느 정도 깊어 질 때 이제 하나님께서 믿고 행해 보라 하면 그렇게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신앙의 말기에 믿고 이삭을 바치듯이 바쳐라 하면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 생애를 걸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원리를 로마서 1장 17절은 종합해서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구체적으로 구절도 다 적어 놓았습니다. 틀림없이 찾아서 확인하시면 개신교의 주장도 맞고 천주교의 주장도 맞습니다. 서로 틀리는 내용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처음과 끝의 두 부분의 아브라함의 신앙이 다가 아니고 중간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를 인정해야 되는 부분도 역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00년의 아브라함의 신앙을 초기에도 보시고 중기에도 보시고 말기에도 보시고 총체적인 평도 하시고 초기의 평도 하시고 중기, 말기의 평도 하십니다. 즉 의롭다 하심입니다. 천주교 주장대로 이제 막 예수님을 믿는 성도에게 천주교의 주장과 같이 믿고 아들까지 바치는 행위를 해라 하면 누가 이런 행동을 합니까? 우선은 예수님의 제자와 같이 적어도 3년-5년은 성경도 배우고 교회 생활도 배우고 기도 하면서 예수님을 믿고 그리고 그 다음에 믿음과 행동을 동시에 잘 할 수가 있는 것이고 종국에는 바치는 행위도 쉽게 하는 것이니 이렇게 초기 신앙을 보면서 의롭다 하는 개신교를 용납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개신교는 일생을 오직 믿음이다 하면서 아브라함의 중기와 말기 신앙을 따라서 믿고 행하고 믿고 바치는 행위는 하지도 못하고 일생을 믿기만 하고 산다고 하면 기적도 못 보고 바치지도 못하고 살면 너무나 안타까운 믿음의 삶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존중하면서 믿음이 세월이 가도 변치 않고 더욱 강해져야 하면 믿고 행하고 믿고 바치는 삶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은 너무나 정확하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보시겠습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 믿는 믿음입니다. 기록된 바와 같이 오직 의인은 믿음을 갖고 매일 매일 삶을 사는 사람이다 함과 같습니다. (제가 영어로 다시 정확하게 번역을 했습니다.)
여러분 천주교와 개신교의 갈등이 이제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뭘로 다툽니까? 이렇게 분명한 데도 이를 모르고 다투는 사람은 구식이고 뒤 떨어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서로 부분만 알고 서로를 비난하면 이 사람은 못 배운 사람입니다. 신학자, 목사 다 소용이 없습니다. 신학자요 목사면 더욱 더 부끄러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동영상으로 온 세상의 수치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정확하게 놀람으로 때론 말로 다할 수가 없는 기쁨으로 느끼면서 살아왔습니다 40년의 혹독한 가난이 그냥 지나갔고 무시와 인정하지 않음도 지나갑니다. 박대도 지나갑니다. 이제 박대하는 분이 나쁜 분이 됩니다.
여기까지도 놀랍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은총으로 믿습니다. 그런데 더욱더 진도가 나갑니다. 더욱 더 놀랍고 깊은 성경의 이해로 온 민족이 함께 가기를 바랍니다. 동방의 빛으로 저는 믿습니다. 온 세상의 교회를 깨울 성경의 이해로 저는 굳게 믿습니다.
놀랍게도 아브라함의 삶에 대한 사후의 하나님의 평가는 그가 믿음으로 일생을 잘 살았지만 그의 생존에 3번 믿음으로 혹은 믿음과 행함과 혹은 믿음과 바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지만 사후의 그의 100년 동안의 삶에 대한 평가는 이 믿음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두 번의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봅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 혹은 믿음 + 행동하고 서로 아브라함 한 사람을 두고 다투나 하나님의 평가는 이와는 다릅니다.
창 25:8 וַיִּגְוַ֨ע וַיָּ֧מָת אַבְרָהָ֛ם בְּשֵׂיבָ֥ה טוֹבָ֖ה זָקֵ֣ן וְשָׂבֵ֑עַ וַיֵּאָ֖סֶף אֶל־עַמָּֽיו׃
8 아브라함은 숨을 거두어 스바에서 죽었는데, 그는 선량한 노인이었고 장수했으며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다.(히브리어 원문과 번역)
8 아브라함은 자기가 받은 목숨대로 다 살고, 아주 늙은 나이에 기운이 다하여서, 숨을 거두고 세상을 떠나, 조상들이 간 길로 갔다. (표준 새 번역)
8 Then Abraham breathed his last and died at a good old age, an old man and full of years; and he was gathered to his people.
아브라함이 숨을 거두어 죽었는데 그는 선량한 노년이었고, 장수했으며 그러함이 평생에 그러했고 그의 조상에게로 돌아갔다. (NIV 번역)
창세기 26장 [개역개정]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다
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3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히브리어와 영어는 분명하게 선한 삶을 산 사람으로 기록을 했고 그리고 법을 잘 지킨 사람으로 평가를 했습니다. 여기서 선한 삶이 무엇인지 성경으로 풀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착한 사람의 의미도 있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선한 삶이 무엇인지 풀었습니다.
미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자비, 사랑)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8 He has shown you, O mortal, what is good. And what does the LORD require of you? To act justly and to love mercy and to walk humbly with your God.
아브라함은 100년의 삶을 비록 때론 아주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대부분의 삶은 정확하게 위의 말씀과 완벽하게 일치를 합니다. 진실로 그의 삶을 성경을 통해서 보면 그렇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제가 생략을 합니다 절대로 위와 같이 살지 않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그렇다 하시면 어찌 됩니까? 누구도 하지 못하는 일을 제가 말씀드립니다. 집을 떠나서 2000km 가라는 명령을 믿고 갑니다. 99세 된 노인이 믿고 잠자리해서 자녀를 낳습니다. 믿고 아들을 불에 태워서 바치려고 합니다. 이 중에 누가 한 가지라도 따라서 할 수가 있습니까? 감히 하나님 앞에서 악한 자들을 멸한다고 하시는데 덤비면서 그렇게 하지 마시고 봐 주세요 하고 4번이나 간청할 뱃장의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자기 식솔 건장한 남자 400명 이상을 믿고 표피를 자를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자신이 일생을 일군 토지와 초지를 조카 롯에게 양보하고 다른 황무지로 우물도 파면서 떠날 사람이 있습니까? 4개국 연합의 왕의 군사에게 잡힌 롯을 구라려고 용감하게 덤빌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리고 늙은 사람이 온 세상의 복의 근원이 되고 자녀가 하늘의 별과 같이 된다고 하는데 믿을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그리고 아브라함 이후에 약 4000년 동안에 26장 5절의 평가를 받을 사람이 성경 전체와 성경을 모르는 사람 전체를 통틀어서 몇명이나 있습니까? 진실로 행하여 완전한 사람의 명령에 순종한 사람이며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 의와 공도를 행하려 하심을 그대로 완성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위대한 사람을 오직 믿고 의롭게 되어서 26장 5절과 같이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의견은 틀리지는 않지만 개신교가 오직 믿음만 주장하고 행함을 주장하는 말기의 신앙을 보면서 천주교가 주장하는 내용을 포용하지 못하는 단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또 누군가가 아니 아브라함의 시대는 율법, 규례, 명령, 규칙 등이 세분화가 된 명령이 없는데 어찌 하나님께서 다 지켰다고 하십니까? 하면서 이는 믿어서 의롭게 되어 하나님께서 다 봐준 것이 아니냐 하면서 믿음을 내세울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거부할 수가 없는 명령이 있습니다.
창 17 :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 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명령을 아브라함이 잘 수행을 한 것입니다. 믿음으로도 하고 행위로도 이렇게 산 것입니다. 이도 완벽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해결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뭐라 하셨습니까?
예수와 율법(개역개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가장 큰 계명
막 12: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정의와 사랑과 믿음이 율법의 정신이 됨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율법 613조문을 나누면 크게 두 가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됩니다. 그리고 이를 다시 나누면 10계명으로 하나님께 4계명, 사람에게 6계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율법의 정신이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입니다. 이제 이 율법을 완성하는 방법이 로마서에 있습니다.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아브라함과 같이 행함에 온전하고 사랑하면서 의와 공도를 행하게 되면 우리는 율법을 완성하게 됩니다. 즉 규례, 율례, 규칙, 명령을 다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됨으로 설명도 가능하고 역시 이렇게 온전히 행함으로 설명도 동시에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 보완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 생활을 잘 하면 우리가 우리 조상 아브라함과 같이 잘 하게 되면 이렇게 됩니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고 살면 율법을 굳게 세웁니다. 그리고 사랑을 통해서 율법을 완성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위대한 조상 아브라함께서 1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사는 날 동안에 하나님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불의에 대항했습니다. 그리고 소소한 하나님의 명령을 전부 다 지켰습니다. 이제 이렇게 하나님과 일생을 함께 하며 별로 흠이 없는 즉 행함에 흠이 없는 것을 보시고 위와 같이 법과 율례와 규례를 잘 지켰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믿고 행하지도 바치지도 않는 사람과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분을 땅으로 꺼집어 내리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을 올바로 이해를 하시는 분은 아브라함과 같은 이는 진실로 아브라함 이후에 약 4200년 동안에 참으로 보기에 어려운 분이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아브라함의 후손이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후손이 400년이 지나서 수백만으로 늘어나고 모세를 통해서 출애굽합니다. 그리고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이 정신인 그리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중심이고 십계명이 중심이 되는 613조항의 율법을 주십니다. 세세하게 어떤 때 어떻게 행하는 것이 의롭고 사랑을 실천하며 신실하게 규정한 모세 오경의 법 율법입니다. 그리고 그냥 법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 법대로 사는 법을 무려 40년을 광야에서 가르치십니다. 법을 주시고 40년을 배우게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께 제자들이 3년을 붙어서 배우고 의심할 필요가 없이 바로 나가서 전할 수도 있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아서 능력을 받고 행하라는 것과 대동소이 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약속한 땅을 확보합니다. 그리고 약 1000년을 이 법대로 살면 축복 어기면 저주를 그대로 반복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아무리 해도 법을 지키지 않자 멸망을 당합니다. 1000년의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선택한 민족에 대한 특별한 사랑입니다 순종한 사람도 있고 대부분의 사람이 불순종합니다. 그리고 의롭고 신실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인간 전체를 구원하실 계획을 세웁니다. 그 계획이 에스겔서에 있습니다.
겔36: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아브라함에 명하신 데로 명령과 규례를 지키라고 하시는데 이제는 방법이 바뀝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물로 깨끗하게 되고 성령을 받아서 거듭나서 성령의 인도로 율버을 지키는 사람을 창조하십니다. 즉 우리의 예수님을 통한 구원으로 율법을 지키는 새로운 계획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위의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오셔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십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하늘에 오르시고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죄를 씻습니다. 그리하면 성령께서 선물로 오시고 마음이 새롭게 된 우리 부드럽게 된 우리가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지키게 됩니다. 새로운 율법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완벽하게 이를 수행합니다. 먼저 우리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명령을 했듯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을 하십니다.
예수와 율법(개역개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아브라함에게 오셨던 분, 모세에게 오셨던 분이 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모든 것을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예수님께서 계셨다고 하셨고 만물이 예수님없이 된 것이 없다고 하셨고 근본 하나님의 본체가 되시는 분이 예수님이라 하셨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뜻은 시공을 초월해서 한치도 변함이 없습니다.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신약을 사는 우리는 어떻게 율법을 완성합니까? 바울 사도가 그렇게 사십니다. 그리고 이를 로마서에 기록을 했습니다. 먼저 믿음으로 사라고 하십니다. 로마서 1장 17절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 생활을 성령의 인도로 사라고 하십니다. 로마서 7장 6절입니다. 아브라함과 달리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서 죄를 용서를 받고 새롭게 된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성령도 선물로 받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차원이 다른 존재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삽니다. 바울과 같이 선하게 살고 복음을 전하면서 삽니다. 과거에 자신이 살던 율법대로 살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율법을 어찌하지 않고 언제나 존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배합니다. 구약의 백성이 찬양하듯이 여전히 율법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고백합니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 사도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고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이룹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명령도 이룹니다. 그리고 에스겔서의 예언도 이룹니다. 이제 아브라함이 한 일을 그대로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바울은 차이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냥 사람 그 자체이고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를 받고 성령을 받아서 거듭난 사람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율법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차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믿음으로 완성했다고 할 것이고 저와 같이 행함에 온전하신 분으로 즉 사랑과 정의와 신실한 삶으로 율법을 완성했다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달리 율법이 없는 우리 조상과 같은 분들도 있으니 이분들을 자신의 양심으로 법으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고넬료와 같이 구제와 의로운 삶이 하나님께 상달이 된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의 세례를 받기 전에 성령께서 먼저 오시기도 합니다. 욥과 같은 의인도 있고 그리고 노아와 같은 의인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삶에서 양심에 따르든지 율법에 따르든지 혹은 이렇게 사랑하고 정의롭게 살므로 그 삶을 인정을 받는 것도 봅니다.
가장 위험한 것이 믿느다고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믿는다고 하면서 막 사는 사람이 인정을 받는 경우는 없습니다. 믿고 자기 마음대로 물질에 집착하고 권력에 집착하고 하나님의 명령도 율법을 지킴도 없이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가장 위험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것이 아주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받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데 그리하면 누구나 이런 사람에게 성령이 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게 되면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으로 우리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 율법을 잘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바울 사도에게 하듯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우리를 복음을 전하는 일로 매진하게 하시고 혹은 선한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성령을 받은 사람이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완성하게 되어 천국에서 큰자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능력으로 이렇게 되는 것은 아브라함과 같이 믿고 행하고 바치면서 일관되게 처음부터 끝까지 잘 믿으면서 살아야 하는데 4200년 동안 온 인류를 통털어서 얼마나 이런 삶에 성공을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런데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지구가 다 비어 있었습니다. 노아 홍수후에 약 350년이 흘러서 8 명이 수백만 명으로 늘어났을 것인데 온 지구가 다 비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양보도 쉽고 땅과 토지 그리고 집에 대한 분쟁이 지금과 같이 치열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널널하게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 같이 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현대는 소돔과 고모라와 별로 다를 바가 없는 소란스럽고 죄악이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어찌 우리 힘으로 이 악한 세상을 이기면서 율법대로 삽니까? 오직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가 율법을 지킴으로 이 땅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나라를 세우게 하십니다.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우리는 이렇게 예수님을 통한 구원과 성령님을 통한 거듭남과 능력으로 그분의 인도로 율법이 온전히 지켜짐으로 이룩하게 되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공동체의 나라로 개인주의의 나라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지도자로 계시고 모두가 형제와 자매로 있는 공동체의 나라입니다. 초대 교회와 같은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가정에서 교회에서 세워져야 하고 이들이 모여서 한국도 하나님의 나라와 같은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미국이나 영국은 대통령이나 왕이 성경을 중심으로 살고자 합니다. 우리는 믿는 이들이 겨우 30% 수준입니다 모든 면에서 발전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온 한국의 빛을 비추고 정의로운 나라로 가야 합니다. 우리의 분발이 아주 아주 필요합니다.
우리는 시작이 있고 이때는 오직 믿음이 아주 아주 중요합니다. 적어도 예수님을 믿고 3-5년은 교회에서 사랑을 받고 잘 배워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미숙하고 실수도 하고 그리고 예전에 행하던 데로 하고 싶은 욕구가 너무나 강합니다. 그리고 성경도 잘 모르고 교회의 질서와 돌아감도 모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막 교회로 와서 여전히 세상의 유혹이 너무나 강해서 가끔 세상으로 가기도 합니다. 누구나 처음에 겪는 일입니다.
모든 아직은 믿음의 생활이 익숙하지 않는 분들에게 믿고 행하하는 이야기와 제가 전하는 내용이 너무나 멀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10년 20년 교회에 다녔고 40년 50년을 다녔는데 여전히 믿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 있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고 행한 것 처음 우리도 믿고 불가능한 일에 도전을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말기는 바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온 세상의 자본주의의 폐해는 갖고 나누지 않음에서 비롯이 되고 오직 나눔을 통해서만 이를 고칠 수가 있고 이는 바치는 신앙이 모든 교회에 자리잡아야 합니다. 왜 바치지 못합니까? 자녀를 생각하고 노후를 생각해서 바치지 못합니다. 그리고 가진 것을 놓기가 싫습니다.
제 글이 이렇게 바쳐야 하는 순간에 있는 분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한국의 문제를 고치고 믿지 않고 막 사는 사람을 회개시키고 소망이 없는 우리 이웃에게 소망이 되는 것은 오직 믿는 이가 나누는 길 외에 자본주의에서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하시는 분들은 하나님께서 후세에 즉 천국에 가서 놀라운 복을 영원토록 주십니다.
우리가 일생을 70-80이 사는데 이렇게 성경의 진리를 알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가장 큰 보람이며 가장 큰 상급을 받는 일이며 우리의 자녀에게 지옥을 물려 주는 것이 아니라 살 만한 세상을 물려 주는 것입니다. 부디 제 글을 읽고 이렇게 결단하시고 가벼운 마음으로 주님을 뵙기를 바라는 분들이 속출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한국에는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본주의 경쟁에서 진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의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성경을 이해하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너무나 가난한 가운데서 불의를 너무나 많이 겪었습니다. 그리고 소망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보았을 때 저는 율법이 이 세상을 반드시 고칠 수가 있는 너무나 좋은 법임을 보게 되었습니다. 즉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이며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을 동시에 주는 법이며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가 있는 법임을 정확하게 보았습니다. 저를 이렇게 보도록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셨습니다. 제가 은행원으로 지점장이 되었거나 혹은 행정고시 2차에서 35년 전에 합격해서 1-2급 공무원이 되었으면 하나님께서는 전 세계를 보시면서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선택이 되고 가난한 삶을 살면서 이렇게 성경의 진리를 보게 되고 전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그 복이 가히 온 세상의 최고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 복을 온 세상에 값없이 나눕니다. 여러분께서도 좋은 것이 있으면 저와 나눔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믿는 예수님의 도구입니다. 정확하게 그분께 불을 받고 그분의 인도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렇게 온 세상에 전합니다. 절대로 절대로 성령이 없이 이렇게 이해하고 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 절대로 650 명 온 세상 신학 교수님게 이런 편지를 보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브라함이나 바울 같이 믿음과 행함에 너무나 부족하고 부족한 사람입니다. 이런 연약한 사람을 선택하셔서 모든 연약함을 다 용납해 주시고 이렇게 온 세상에 전하는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삼으셨으니 이는 모든 저보다 나은 분이 혹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해서 나쁜 길로 갈 때 진리의 말씀을 듣고 바로 갈 때 모든 그간의 죄를 다 용서하시고 자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복을 주시겠다는 증거로 아주 모든 사람보다 못한 사람을 선택하신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을 극진히 대접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부지 불식중에 예수님을 대접하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 약하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도울 때 그렇게 예수님께 잘 대접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는 너무나 많은 약한 이웃이 있습니다. 집도 땅도 없는 우리 형제와 이웃이 국민의 70%인 3500만에 이릅니다. 집과 땅이 넉넉하신 분은 모두 나누시기 바랍니다.
바로 못하시더라고 깊이 묵상하시고 기도하시고 결단하셔서 주변을 보시고 어려운 이웃에게 행하시기 바랍니다. 경제가 어려우니 먼저 세를 든 세입자의 세를 감해주시고 병든 이들을 몰래 도우시고 문제가 생긴 형제를 이유를 묻지 말고 도우시기 바랍니다. 우리 아들을 바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순교를 하는 것도 아니고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리는 것이 아닙니다. 10억이 되신 분은 2억 정도 남기시고 8억은 나누시기 바랍니다. 60대 후반의 분들에게 권합니다 속히 나누시기 바랍니다. 지금 한국은 거짓이 판을 치고 무너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빛이 없기에 어둠이 기세를 떨칩니다. 모든 범죄자들이 조금도 수치심도 없이 세계 5위 경제를 삼키려고 하고 중국이 그냥 다 가져가려고 하고 북한도 한국을 가지고 놉니다. 강남 구청 정도도 못되는 나라가 세계 5위 경제 군사 대국을 가지고 놉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빛을 밝히지 않고 어둠과 똑같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천국에서 뵙기를 바라는 분은 다 아브라함과 같이 바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뜻뜻하게 그분의 영접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정말로 정확하게 지혜롭게 온 세상에 잘 전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분께 하나님께서 굳센 믿음과 깊은 성경의 이해와 행하는 담대한 용기를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한국을 구하는 것은 한국을 사랑하는 기독교인이 나누는 것입니다. 전도를 말로 하면 전도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받은 축복을 마음껏 주면서 하면 전도 너무나 잘 됩니다. 교회가 두 배로 느는 것도 문제가 절대로 없습니다. 이렇게 물질을 전도하는 데 나누는 것이 가장 귀하고 좋습니다.교회는 전도하는데 수십억 수백억을 쓰시길 부탁을 드립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할 대상이 한국에 3500만 명 중국에 14억 일본에도 1억 그리고 동남아와 인도들 수십억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우리 소유를 다 팔아서 나누면서 전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60대 후반이고 일생을 가난했고 지금도 보험도 여유가 있는 물질도 없습니다. 하루 벌어서 하루 사는 존재입니다. 그래도 삽니다.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잡아주시니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저를 힘을 주십니다. 쉬지 않고 이렇게 전하게 하십니다. 그 힘으로 이렇게 삽니다. 부디 한국을 살리시고 온 세상을 비추시는 큰 빛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성경의 진수를 전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용기를 주시기 바랍니다. 이 나라를 분별하게 하시고 우리가 빛을 발하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이나라 이 시대에 빛이 되어야 합니다. 믿고 행하고 바치는 성도가 즐비해야 합니다. 이들을 감화 감동하시고 나눌 용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나눔을 통해서 부활의 신앙을 갖게 되고 나눔을 통해서 교회가 배로 성정하고 나눔을 통해서 주변을 살리고 정의가 해와 같이 빛이 나는 나라로 만들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쉬지 않고 70년을 복을 주신 것이 이 나눔으로 온 세상을 구하라는 뜻임을 굳게 믿고 너도 나도 나눔에 인색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