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년 목사
영국의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감리교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분은 옥스퍼드 대학교의 교수였습니다. 아울러 탁월한 저술가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명성을 많이 얻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어느 추운 겨울날 자기 하녀가 날씨가 아주 추운데도 돈이 없어서 속옷을 사 입지 못하고 홑겹의 아주 얇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그는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나를 위해서만 돈을 사용해서는 안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그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그후로는 자기의 생활비로 아주 적은 금액을 정해놓고 그 이상은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소득의 나머지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고, 아울러서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에 다 사용했습니다.
그는 물질과 관련해서 이런 설교를 교회에서 종종 했습니다.
첫째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라는 것입니다.
두번째, 낭비하지 말고 절약해서 아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세번째, 줄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베풀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드릴 때도 많이 드리고, 아울러 이웃을 도울 때도 인색하지 말고 많이 베풀면서 살 것을 교인들에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한번은 어느 교회에서 이 설교를 하고 나오다가 그 교회에 출석하는 부자가 자기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목사님이 듣게 되었습니다. 그 부자가 이런 말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목사님의 설교가 은혜스럽고 다 좋았는데 세번째 대지가 설교를 망쳐버렸어." 세번째 대지가 무엇이었습니까? 베풀면서, 주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을 하십니까? 사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열심히 돈은 잘 법니다. 아껴서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남에게 베푸는 일에는 인색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솔로몬을 통하여 전도서 11장에서 우리에게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식물을 물위에 던져야 할까요?
1절 말씀을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너는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예컨대 여러분이 식빵을 한 덩어리 준비해서 흐르는 한강 물위에 던져보세요.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을 수 있습니까?
이 말은 아랍인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속담에서 나온 말입니다.
[선행을 하라. 그리고 네 빵을 물 위에 던지라. 그러면 그대에게 어느날 반드시 보상되리라]
이 속담의 배경이 다음과 같습니다.
중동의 어느 도시에 왕이 왕자를 잃었습니다. 왕자가 강가에서 놀다가 급류에 빠져 실종되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몇 주 후 강가 바위 위에서 왕자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면 왕자가 어떻게 살았을까요? 바로 강가에 아침 저녁으로 가죽 주머니에 빵이 떠내려 왔기 때문입니다. 왕은 빵을 물 위에 던진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 주머니에 이름이 ‘모하베트벳 핫산’이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결국 핫산은 왕에게 큰 상을 받았습니다.
잠언 11:24-25에 보면 놀라운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흩어서 구제하는데 어떻게 더욱 부하게 됩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너는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어떤 때는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고, 또 손을 펴서 불쌍한 이웃을 구제하는 것이 마치 식물을 물위에 던지는 것처럼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여러 날 후에 너희가 그것을 도로 찾으리라."
반드시 하나님은 보상하십니다. 이 땅에서 다 하지 않으면 영원한 천국에서라도 반드시 보상하십니다.
본문 2절 말씀에 보십시오.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성경에 일곱이라고 하는 수는 완전수입니다. 꽉 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덟이라는 것은 그 수치보다도 하나가 더 많습니다.
"일곱 사람에게 도와주었으니까 이 정도 하면 완전하겠지. 충분하겠지."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숫자에 구애됨이 없이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면서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2절 하반부에 보니까 이유가 나옵니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우리가 아무리 물질을 손에 꽉 쥐고 있으려고 해도 재앙이 임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펴기 싫어도 손을 펴야 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매를 맞기 전에 다니엘의 꿈을 통해서 경고를 듣게 됩니다. 다니엘이 말합니다.
"왕이여, 지금이라도 공의를 베풀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죄를 속하면 그러면 혹시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실 수도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지금이라도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구제하고 정직하고 의롭게 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고넬료 같은 사람은 구원은 받지 못했지만 평소에 구제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한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상달되는 구제입니다.
어떤 분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일 년 동안 병원에서 꼼짝하지도 못하고 누워 있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이 심방을 갔습니다. 그때 이분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옛날에는 물질에 너무 인색했습니다. 지금은 나를 도와주는 사람에게 간병비만 한 달에 100만원씩 꼭꼭 지불해야 합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하나님께 헌금 드리는 일에 인색하지도 말고, 이웃을 돕는 일에도 더 열심을 내었을 텐데." 그러면서 후회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재앙이 임한 후에 후회하지 말고, 재앙이 임하기 전에 미리미리 손을 펴십시다.
우리 인간이 재앙 앞에서 얼마나 약합니까? 그러니 재앙이 오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미리 미리 손을 펴라는 것입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선한 일을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우리의 식물을 물위에 부지런히 던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날 후에 반드시 도로 찾게 하실 것입니다. 후히 되어서,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해서 여러분의 품에 안겨주실 것입니다.
구제할 때의 마음가짐은?
6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씨를 뿌려야 거둔다는 것입니다. 뿌리지도 않고 어떻게 거둘 것을 기대 할 수 있습니까? 뿌리지 않으면 거둘 수도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식물을 물위에 던져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식물을 물위에 던지지도 않고서 어떻게 여러 날 후에 찾기를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지로다."
이제 우리가 얼마를 살든지 간에 항상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손을 펼 줄 알고, 즐거운 마음으로 씨를 뿌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의 식물을 물위에 던지자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러나 캄캄한 날이 많으리니 그날을 생각할지로다 장래 일은 다 헛되도다."
어둔 밤 쉴 때가 곧 오지 않습니까 그때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일을 해야지요.
어떤 사람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헌금도 많이 하고, 부모님께 효도도 하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도 하겠다고 장담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하겠다고 말해놓고 지금까지 실천에 옮긴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여러분 다음주일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어떻게 해서 추수감사절이 생겨났습니까? 영국의 청교도 102명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신대륙에 왔습니다. 그들이 미국에 도착한 것은 11월 21일 아주 추운 날이었습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더 추웠습니다. 그 겨울을 지나는 동안에 102명 가운데 44명이 죽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죽고, 추위에 떨면서 죽고, 병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봄이 되었습니다. 저들은 울면서 씨를 뿌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을에 첫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그것을 놓고서 저들은 울면서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자기들보다도 먼저 간 부모, 형제, 처자를 생각할 때 얼마나 목이 메었겠습니까? "
조금만 더 참고 살았더라면 우리와 함께 이 기쁨을 맛볼 수가 있을 텐데." 그들은 목이 메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을 것입니다. 눈물 속에 드린 그 감사가 첫 번 추수감사절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추수감사절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역경 속에서도 인디언들을 불러서 칠면조 고기 요리를 해서 맛있게 먹으면서 어려움 속에서, 고통 속에서도 즐거움을 함께 했습니다. 눈물 속에서 드리는 감사, 울면서 드리는 감사, 역경 속에서도 잊지 않고 드리는 그 감사가 진정한 감사가 아니겠습니까?
유명한 헬렌 켈러의 자서전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헬렌 켈러의 소원입니다. 그는 맹인입니다.
"내가 단 한번만 무지개를 볼 수 있다면........" 여러분 무지개를 본적이 있습니다.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해 보셨습니까? "내가 떨어지는 낙엽의 아름다움을 목격 할 수가 있다면...." "단 한번만 흐르는 시냇물을 바라 볼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몇만 번이고 공짜로 볼 수가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만약에 아름다운 가르침과 자상한 친절을 베푸시는 설리반 선생님의 그 아름다운 미소를 한 번만 볼 수만 있다면........" "내가 단 한 번만 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악기를 내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나에게 귀한 설교의 감동을 주었던 필립 부룩스 목사님의 그 얼굴을 한 번만이라도 볼 수가 있다면......." "나의 삶을 바꾸어 놓았던 이 성경을 내가 나의 눈으로 직접 볼 수만 있다면........" "그리고 저 지는 석양을 단 한 번만 내 눈으로 바라 볼 수만 있다면......."
여러분 우리가 지금 살아 있고 눈을 떠서 볼 수 있고 건강한 몸으로 활보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격스러운 것이고 신기하고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까? 여러분 감사하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결 론
하나님이 솔로몬을 통하여 주신 결론이 무엇입니까? 1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
젊음도 잠시 잠깐입니다.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그러니 우리의 마음에서 근심이 떠나가게 하고, 우리의 몸에서는 악이 물러가게 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왜 우리의 마음속에 세상 근심 걱정이 자리잡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멀리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이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늘 세상 근심 걱정으로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해 보세요. 경건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속에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악이 내게 가까이 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에 보면 이런 유명한 말이 나옵니다.
"한쪽 다리를 잃었느냐?
두 다리를 다 잃게 하지 않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라.
두 다리가 다 잘렸느냐?
목이 부러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라.
목이 부려졌느냐?
그 뒤에는 결정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 갈 수 있음을 절로 감사하게 될 테니까." 아멘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