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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연구
Ⅰ.배경
느헤미야는 에스라와 같은 시대의 인물이다. 바사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인데, 바사의 아닥사스다왕때 왕의 술을 맡아 주장하던 술맡은 관원장이였다. 아닥사스다왕은 B.C465-423년까지 43년 동안 페르시야를 다스렸던 왕이였다.
느헤미아서는 예루살렘성벽을 재건하고 백성들의 율법을 깨닫게 해서 새로운 개혁운동을 일으켰던 한 역사서이다.
1장에서 7장까지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사건이 나온다.
Ⅱ.귀환 역사
예루살렘의 귀환에 대하여 살펴보면,
1)에스라는 458년 아닥사스다 왕 7년에 약 2000명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됩니다. 에스라는 율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귀환했고,
2)그후 느헤미아는 에스라가 귀환한지 13년 후인 20년 주전 446년에 귀환하게 됩니다. 그 귀환동기는 유다땅에 하나니라고 하는 사람으로 부터 유다땅에 소식을 듣게 되는데,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환란을 당하고 있고 예루살렘성이 회파되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Ⅲ.느혜미야의 기도
이때에 느헤미야가 앉아서 울고 수일동안 통곡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게 됩니다.
Ⅳ.느헤미야의 청원
그러다가 그는 일어나서 아닥사스다왕에게 청하게 됩니다. 그가 수심이 가득한 모습으로 왕앞에 나아가니까 묻습니다. "왜 그렇게 수심이 가득한가" "소문을 들으니 내 조상이 묻혀있는 성이 황페하고 성문이 불탄 채 그대로 있으니 어떻게 내 얼굴이 수심이 없을 수 있습니까?" 그러자 왕은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하고 물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잠간기도 한후에 말합니다"나를 유다땅에 돌아가게 하여 성을 재건케 해 주십시요" 아닥사스다 왕은 "그럼 가는데 아주가는게 아니라 돌아와라"
Ⅴ.느헤미야의 여행
느헤미야는 기간을 정하고 왕의 허락을 받아서 이제 떠나게 됩니다. 이때에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에게 유다땅을 다스리라는 총독의 권한을 주어서 유다로 내보지게 됩니다. 그때에 느헤미야를 호위하기 위해서 그의 군대장관과 마병들을 보내서 그를 유다땅까지 호위해 주도록 해 줍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것을 제3차 포로귀환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제1차 포로귀환은 수룹바벨과 세스바살를 지도자로 5만명의 사람이 고래스왕이 해방 발표한 그 다음해 38년에 돌아오게 됩니다. 이들이 돌아와서 한 일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일이였습니다.
그다음 제2차 포로귀환은 약 7-80년후에 에스라가 약2000명을 이끌고 돌아오게 됩니다. 이 에스라가 돌아온 목적은 죄를 범하고 이방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는 그들에게 성경을 다시 가르쳐 주어서 죄의 생활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제3차 포로귀환은 오늘 느헤미야인데 돌아온 목적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서 돌아옵니다. 몇사람이 돌아왔는지는 기록에없습니다.
Ⅵ.느헤미야의 성벽건축
이제 예루살렘에 돌아온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벽을 조사하고 건축설계를 해서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단의 역사도 있습니다. 4장7절"산발락...분하여......쳐서." 예루살렘 성벽이 건축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 지금 진행 되어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 주변에 있던 이방나라들이 "분하게 여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방나라의 반역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장19절"호론사람 산발랏과 종이 되었뎐 암몬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겨 비웃어 가로되 너희의 하는 일이 무엇이냐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 하기로"라고 말하는 산발락, 사마리야의 총독 이였습니다. 성벽 전축의 반대에 제일 앞장섯던 사람입니다.
4장3절에서 암몬사람 도비야는"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지리라" 빈정댓고
7절에서 이방사람들이"심히 분하여"
8절에서 이방사람들이"우리가 같이 올라가서 쳐서 요랄케하자"
11"...저희중에 달려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다시말하면 무력을 행사해서 그사람들 가운데서 혼란케 만들자고 하고 있습니다.
6장에가보면 이렇게해도 자꾸 성전이 건축되어 가니까. 이제는 유화정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2절에보면 산발랏과 게셈이 느헤미야에게 편지를 보내" 오라 오노평지에서 만나자" 한마디로 협상 테이불로 나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왜 이런 협상하자고 했는가하면 느헤미야를 해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어찌하든지 느헤미야를 끌어내서 해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러기를 네번이나 했습니다(4절) 5절에보면 산발랏이 5번째로 하는 말이 "네가 이제 말을 안들으면 저 페르시야 왕에게 반역해서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한다고 고하겠다" 반역죄지요. 모함을 하겠
다고 협박을 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전혀 요동하지 않습니다.
그 첫째는 하나님께 열심으로 기도했습니다. 반대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이 원수을 제거하여 주십시요.
둘째는 총독으로 여기에 와 있으면서도 유다사람들과 예루살렘의 백성들에게 총독의 녹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창고에 있는 곡식을 헐어서 일꾼들에게 충분한 음식을 공급해 주었다고 합니다.
셋째는 낮에는 성을 건축하고 밤에는 예루살렘 주변에서 성을 지키는 보초를 서서 성을 방비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밤낮 직접 그곳에 들어가서 그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15절에보면 "성역사가 52일 만에 끝났다"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적적인 사건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적이 있을 때 16절에보면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얼마나 중요한 말씀입니까? 그들은 자기들의 방해에도 그 성역사가 52일의 짧은 기간에 건축되는 것을 보고 "않되겠다. 하나님이 저 일을 이루셨구나" 유다백성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되고 이방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는 사건입니다. 이렇게해서 성벽은 건축이 되었습니다.
Ⅶ.성전 건축의 역사
8장13장까지는 가장 중요한 부분 성벽이 건축되기전에 성전이 스룹바벨에 의하여 건축이 되었습니다. 이 성전이 건축되고 에스라가 오기전에 약 60여년 까지는 느헤미야가 오기까지는 약 70여년 까지는 공백이였습니다. 물론 페르시야에서 총독으로 파송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만은 다스리는 면에서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선지가들의 기록을 보면 이시대의 타락상이라고 하는 것을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는 지경이였습니다. 그래서 성벽이 건축되고 느헤미야나 에스라는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어요.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가 또 망하겠다. 그들이 같이 의
논하고 부흥운동을 개혁운동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Ⅷ.부흥 운동
에스라는 먼져온 사람이고 느헤미야는 13년후에 따라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같이 부흥운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에스라는 직책이 제사장이요, 율법학자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영적 부흥운동을 하는데 앞장을 서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정치가였습니다. 총독입니다. 바사왕의 술맡은 관원입니다. 그래서 자기나라에 와서 총독으로 있으면서 사회개혁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렇게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협력해서 개혁을 일으키는 것이 8장의 말씀입니다. 에스라10장에 나옵니다. 이 말씀과 그 말씀은 같은 말씀입니다.
그해 7월에 수문앞광장에 백성을 다 모았습니다. 이때에 에스라가 특별하게 만든 강단에 섰습니다. 책을 펼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의 표시입니다. 이렇게 일어나서 몇분동안 말씀을 들었는가하면 3절에 새벽부터 오정까지 최소한 6-7시간동안 읽었습니다. 이렇게 남여노소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다 일어나서 들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부흥회를 하는것입니다.
Ⅸ.회 개
그다음 8장7절 하반절 말씀을 보게되면 "...백성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는데" 8절에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한 것을 다 깨닫게 하매" 9절에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왜 백성이 웁니까? 새벽부터 일어나 말씀을 듣고 우는 것을 볼때 그당시 얼마나 진지했는가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날은 8장13절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 이튼날 뭇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의 곳에 모여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또 알고자 하여 모여 들었다고 합니다. 듣고 또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율법책을 읽어가다보니까 율법책에서 또 잊어버린 것이 나왔습니다.
Ⅹ.초막절
15절에 읽어보면 초막절을 지키라는 말씀을 잊어버렸습니다. 7월달에 초막절을 지키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 말씀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일주일 동안 초막절을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초막절을 지키고 규레를 따라 제8일에 성회를 엽니다.
초막절은 애급에서 나와서 광야생활한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을 구원해주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기키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9장에서 설교가 나오는데 그 설교의 내용이 뭐냐하며는 아브라함을 택하여 언약을 맺어주시고 애급에서 부터 40년동안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9장에서 부터 죽 설교합니다. 범죄하여 잡혀온것과 해방되어 돌아오게 된것을 설교합니다. 전 역사를 설교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다. 그 내용을 설교 하면서 하나님앞에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9장 말씀을 보게되면 그날 24일은 다 일어나서 전 백성이 금식하고 굴은 베를 입고 티글에 앉아서 회개하고 2절에"모든 이방사람돠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하고 이 날에 낮 사분지 일은 그 처소에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지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 이렇게 전 민족적인 회개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새로운 결단
그들은 회개만 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10장에보면 그들은 새로운 결단을 하게 됩니다. 9장28절"이를 치나이다." 글을 써가지고 전부 서명을 했습니다.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하고 서명을 했습니
다. 이제는 우리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서명을 할 정도로 철저하게 하나님 앞애 서명을 했습니다. 회개 했지요, 말씀을 듣고 감사했지요 그리고 일일히 결단하면서 서약을 했지요. 영적인 큰 부흥 운동이 일어나게 되 것입니다.
.바사왕에게로....
다시 느헤미야는 바사왕에게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내가 기간을 정하고 돌아올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느헤미야는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머물러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돌아왔습니다. 언제 돌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돌아왔습니다. 잠간후에 아마 1-2년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13장6절"그대에는 예루살렘에는 있지 아니하였느니라......"다시 말미를 구하고 돌아왔습니다.
사회 개혁
돌아온 느헤미야는 이제 대대적인 사회개혁을 일으킴니다.
이것은 무엇을 위한 사회개혁인가 하며는
첫째는 십일조를 하나님앞에 드리라 성물을 하나님 앞에 드려라 하는 것을 제도화시켰습니다. 십일조는 드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드렸고, 레위인들을 위해 드리는 것 절기를 위해 드리는 것 등 많았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십분의 삼이 드려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율법책에 있는 것을 다시 제도화 시킨 것입니다.
두번째는 성소 섬길자를 세움니다. 성소의 직분자들이 다 없어졌었는데, 그래서 제사도 제대로 드리지 않고, 성소를 섬기는 사람도 없습니다. 백성들이 다 타락해 버리니까 헌물을 바치지 않으니 레위인들도 다 떠났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다시 레위지파들과 각지파의 직분자들을 세워 성소를 섬길자를 일으킴니다.
세번째 안식일 제도를 다시 부활시킴니다.13장 15절이하" 술틀을......팔기로"
1) 상행위 금지
2)일금지
3)거룩하기 지키도록
네번째 이방결혼을 금지 시켰습니다. 13장 23절"아스돗방언은 절반쭘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더라" 아스돗방언은 불레셋을 말합니다. 이방말은 다하는데 히브리 말은 뭇한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타락했는지 알것임니다. 철저하게 이방인 결혼을 금지시키고, 이방인 여인은 다 쫏아 버렸습니다. 이런 작업을 하였습니다. 이렇게하여 사회개혁운동을 철저하게 일으켰습니다.
이것이 유다땅에서 마지막 으로 일어난 성경의 부흥운동입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옥련지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