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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의 새 지도자
(신명기 31:1-8)
우리 교회에서는 안수집사님들을 장로로 호칭하여 부르는데 오늘 저녁에 지도자인 호
칭 장로를 선출하는 투표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정치지도자, 경제 지도자, 혹
은 교육 지도자가 아닙니다. 교회 지도자는 영적인 일의 지도자입니다. 기도생활과 예
배생활, 전도생활을 지도하고, 성도들을 돌보며 위로하는 사람들이 교회의 지도자입니
다. 그러므로 세상의 지도자를 뽑는 것과는 목표와 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제 모세가 120살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지팡이 하나들고 애
굽 왕 바로 앞에 가서 ‘내 백성을 가게 하라’고 큰소리를 쳤던 사람입니다. 모세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애굽에 재앙이 내렸고, 홍해가 갈라졌으며, 반석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또한 시내산에서 사십 주야로 음식과 물을 먹지 않고 금식하며 인류 최고
의 법인 율법인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40년 동안 200만이나 되는 대군을
먹이고 입히면서 광야생활을 인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모세는 하나님과
친구처럼 지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탁월한 모세도 인간이기에 그의 지도력은 영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본
문에서 모세는 “곧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날 일백 이십세라 내가 더는 출입하기
능치 못하고 여호와께서도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 하셨느니
라”(2절)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더 이상의 지도력을 행사할 수 없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출입하기에 능치 못하다’는 말처럼 체력적인 이유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모세에게 지도력을 행사하지 말라고 지시하셨기 때문입니
다. 모세 같이 위대한 사람도 하나님께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가데스의 므리바라는
곳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지팡이를 가지고 반석을 가리켜 물을 내어야 했는데, 모
세는 백성들 앞에서 화를 내며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쳤습니다. 모세가 여호와
의 회중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
는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이유로 모세는 더 이상 지도력을 행사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
시여 원컨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
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으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민
27:16-17).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神)에
감동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라”(민 27:18)고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여
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지도자는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국가가 되었든, 학교가 되었든 어떤 조직이든 간에
지도자 한 사람을 잘못 뽑으면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조직이든 조직의 흥망성쇠는 지도력에 달려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
로 지도력이 변한다는 것은 한 조직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대단히 중대한 사건입니
다. 오늘 저녁에 혹시라도 투표를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지금 결심
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지도자를 뽑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1. 영적인 지도자의 자격
하나님께서 모세의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결정하신 사건을 보면서 영적인 지도자의 바
람직한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영적인 지도자는 아무나 되는 것
이 아닙니다.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지도자는
첫째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자원하여 하는 것
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뽑는 것입니다. 군대로 말하자면 자원병이 아니라 차출병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할 때, 학생들이 입학상담을 하면 저는
가급적 학생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아무리 돌아가라고 해도 끝까지 하겠다는 학생들을
뽑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이기 때문에 쉽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여호수아가 너를 거느리고 건널 것이요”(3절
a)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모세에게 말씀하신 바처럼 여호수아가 모세
를 이은 지도자가 된다고 택하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저녁에 시행할 투표도 사람이 뽑
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 우리 가운데 하나
님께서 택하신 자를 보이시옵소서’ 하는 마음으로 투표에 임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다면 그냥 딱 찍어서 쓰시면 되지 왜 번거롭게 투표
하는 방법을 쓰십니까?”고 질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해
서 자살하자 이에 사도들이 죽은 유다의 뒤를 이어서 누구를 후계자로 뽑을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제비뽑기라는 원시적인 방법을 채택하여 사용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
다(행 1:26). 그러므로 제비를 뽑든, 아니면 투표가 되었던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
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라는 생각으로 투표에 임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믿음이 검증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영적인 지도자는 신앙의 연조가 있어야 합
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 1-2년밖에 안된 사람은 교회의 안수집사나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연조를 통해 그 사람의 믿음이 검증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3-14장에 모세가 가데스바네아에서 열두 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으로 보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40일의 정탐 후에 열두 명이 가데스바네아로 돌아왔는데,
그 중 열 명은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고 그들은 대장부 같다”(민
13:33)고 보고하며 가나안 7족과 자신들을 비교합니다. 이들은 가나안 7족과 하나님
을 비교하지 않고 자신들과 비교해서 자신들을 메뚜기 같다고 비하하는 메뚜기파입니
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민 14:9)고 선포합니다. 밥파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열 명의 메뚜기파를 좇아갔습
니다. 그래서 돌을 주워 여호수아와 갈렙을 쳐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
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40년 동안 방황하는 고난을 겪게 하셨습니다. 이
스라엘 백성들은 잘못된 지도자를 뽑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을 인정받았습니다. 하나님과 모세의 인정을 받아 여호
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
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지도자는 믿음이 검증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께서 지도자를 선출할 때에도 믿음이 검증된 사람을 선출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영적인 지도자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기 몸을
드려서 백성들과 함께 하는 사람이 지도자입니다. 영적인 지도자는 뒤에서 리모컨을
가지고 지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천국에 가만히 앉으셔서 누구는 구
원 받고, 누구는 구원 받지 못하게 리모컨으로 조정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성육
신(Incarnation)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셔서 배고픔과 피곤, 목마
름, 고통과 같은 모든 고난을 함께 겪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능
히 우리를 불쌍히 여기실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더 이상 자신이 출입하기에 능한 사람이 아니라고 고백했습니다(He was not
going to be with them). 이처럼 백성들과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지도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예배에
도 함께 해야 하고, 기도에도 함께 해야 하고, 성경공부에도 함께 해야 합니다. 또한
기쁜 일에도, 슬픈 일에도 함께 해야 합니다. 기도회에는 얼굴도 비추지 않고, 성도들
의 슬픈 일, 기쁜 일에도 함께 하지 못하며, 예배도 한 주는 드리고 한 주는 빠지는
사람이 어떻게 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지도자는 백성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삶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넷째로 지도자는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신앙연조가 오래 되어서 영적
인 일에 기쁨도 느껴보고, 위험도 겪어보면서 쌓인 경험으로 어떤 사안이든지 균형 있
게 파악할 수 있는 성숙도를 가져야 합니다. 한 가지만 보고 한 가지만 이야기하는 사
람은 성숙한 사람이 아닙니다. 두루 돌아보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
다.
영적인 성숙도가 반드시 나이와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이가 많아도 영적으로는
어린 아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는 비록 어릴지라도 영적 성숙도가 높아 영적
인 지도자가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누구든
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딤전 4:12)고 말하였습니다. 디모데는 어렸
지만 영적으로 성숙했기 때문에 교회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이 16살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때부터 벌써 설교를 시작한 것으로 유
명한 분입니다. 어느 날 설교를 하기로 예정되어있던 집사님이 미처 설교 준비를 하
지 못하여 16살이었던 스펄젼에게 설교를 부탁했습니다. 어린 스펄젼은 갑작스러운 부
탁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보배로우심을 생각하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러자 한 할머니가 “젊은이, 자네는 몇 살인가?(Young man, how old are
you?)”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그러자 스펄젼은 설교와 상관없는 질문을 하지 말고 그
리스도의 보배로우심만 생각하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도 이 할머니는 끈질기게 스
펄젼에게 나이를 물어보았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다시 이 할머니가 스펄젼의 나이를
물어보자 스펄젼은 “저는 60살 미만입니다(I’m under sixty)”라고 대답했다는 유명
한 일화가 있습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보다, 영적으로 성숙했는지 그렇지 못한지가 더
욱 중요합니다.
여호수아도 어린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가데스바네아에
서 20살 이상이었던 여호수아가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했으므로 최소한 60살 이상은
되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호수아도 120살인 모세 앞에 서면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영적으로 성숙했던 사람입니다. 온갖 영적인 훈련을
다 받았습니다. 출애굽기 17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르비딤에서 전쟁을 할
때, 모세는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였고 여호수아는 장군으로서 칼을 가지고 아말렉과
싸웠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르비딤 신학교에서 모세가 기도하면 전쟁에서 이기고 기도
하지 않으면 진다는 사실을 배웠을 것입니다. 또한 출애굽기 24장에서는 시내산에서
40주야를 금식하며 율법을 받는 모세와 함께 했습니다. 이곳에서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몸부림칠 때, 하나님께서 큰 계시를 주시므로 영적인 지도자는 하나
님과 일대일로 씨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
호수아는 40년의 광야 방황기간 동안 모세를 따라다니면서 큰일이건, 작은일일이건 가
리지 않고 훈련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미성숙한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적인 지도자는 자기가 최상의 지도자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지도
자 위에는 또 다른 지도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또 다른 지도자가 없다고 하더라
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최상의 지도자로 계십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지도자는 자
신의 판단과 권위가 최종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자기 위의 합법적인 지도
자가 누구인지를 분별해서 충성해야 합니다. 자기 위의 지도자에게 충성하는 것이 궁
극적으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는 궁극적인 지도자이신 하나님께 충성할 뿐만 아니라, 교
회의 최종 지도자인 담임목사와 뜻을 맞추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
이라도 담임목사에게 반대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그 교회에는 문제가 일어날 것
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영적인 지도자는 내 위의 지도자가 누구인지를 잘 생각하고,
자기 위의 지도자가 나이가 어리거나 조금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순종하고 충
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영적인 지도자의 권위
지도자는 권위를 가진 사람입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
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딤전 5:17). 여러분들도 장로님들을
배나 존경할 사람으로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지도자의 권위는 어디
서 나오는 것일까요?
첫째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동행하시는 데에서 권위가 옵니다. 영적인 권위는 재물
의 소유나 사회적 지위, 명예와 학식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따라 권위의 여부가 달라집니다. 본문 6절과 8절을 보면 모세가 여
호수아를 격려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
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
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6절).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
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8절). 여호수아의 영적 권위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신다는 약속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
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강남중앙침례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은
세상 것으로 권위를 세우지 말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증거로 영적인 권위를 세우
는 지도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영적인 권위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권위가 따라올 수
없습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전에도 우리에게 복 주셨고, 앞으로도 우리에게 복
주시는 변함없으신 분이라는 사실, 즉 하나님의 불변성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시기에 큰 변화를 겪기 시작했습니다. 광야에서 유목민으로 살
던 사람들이 땅을 얻어서 농사를 지으며 농경민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또 광야 방황 시
기에는 모세를 따라다니기만 했지만, 가나안에서는 손에 칼을 들고 여호수아를 따라
가나안 7족과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삶의 터전과 방식이 모두 바뀌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따라야 될 지도력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근본적으
로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서 모세 오경을 기록하고 백성들을 가르친 ‘책의 사
람’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칼의 사람’입니다. 칼을 들고 전쟁에 나가서 지도
력을 발휘하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지도력의 목표와 역량과 방향도 달랐습니다. 이처
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삶의 방식과 지도력이 변화되는 과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해도 한 가지만큼은 결코 변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
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멸하신 아모리왕 시혼과 옥과 및
그 땅에 행하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실 것이라”(4절)고 기록되었습니다. 모세
는 여호수아에게 변함없이 동일한 하나님께서 아모리왕 시혼, 바산왕 옥을 멸하신 것
처럼 가나안 7족들도 동일하게 멸하실 것이므로, 하나님의 불변성을 믿고 믿음으로 전
진하라고 권면합니다. 영적인 지도자가 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침례교회는 모태신앙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믿는 성도들에게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스스로 복음을 듣고 깨달아 예수님을 믿어야 침례를 줄 수 있습니다. 우스개소
리로 모태신앙을 ‘못해신앙’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마지못해 예배는 참석하지만 믿음이 없기 때문에 목사님이 봉사를 요청하면
‘못해요’라고 대답하기 일쑤입니다. 이처럼 모태신앙이 ‘못해신앙’이 되는 경우
를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봅니다. 따라서 모태신앙만으로는 영적인 지도자가 될 수 없
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28세에 대흥침례교회에서 예수님을 믿고 총각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 때 담임목
사님께서 저에게 예산위원회 서기를 하라고 임명하셔서 5년 동안 예산위원회에서 봉사
를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함께 봉사하던 어떤 안수집사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예산위원들이 어떤 사안을 가지고 열심히 의논을 하다가 나중에 그 집사님께 물어보
면 그 집사님은 언제나 “해 봅시다”라는 대답을 하셨습니다. “안 됩니다”라는 말
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분은 오랜 신앙의 연조를 통해 신앙의 무게중심이 든든
하게 서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늘 긍정적으로,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시더니 자
녀들이 모두 목회자가 되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하나님께서 전
에도 강남중앙침례교회를 축복해 주셨으니 앞으로도 축복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라
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을 선출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영적인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서 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 붙이시리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것이
라”(5절). 명령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말
씀에 불순종하는 사람에게 무슨 권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무슨 일
을 하든지 순종하는 일에는 책임을 져 주십니다. “내가 올해 주식에 투자를 했는데
대박이 터질까요?” 하나님께서는 주식투자의 성공을 보장해주시지 않습니다. 성공할
수도 있지만 망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는데 하나님께서 성공
시켜주실까요?” 하나님께서 사업의 성공은 보장해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
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겠습니까?”라고 묻는 사람
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연하지. 승리를 줄 것이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
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먼저 가나안 땅에 건너가서 그 백성
을 치고 그 땅을 점령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축복을 누리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십시오. 순종은 승리와 축복을 보장
합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시험지를 채점하면서 겪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몇
가지 있습니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사람은? 답) 죽었음’. ‘불행한 일이 겹쳐서 일
어나는 것을 네 글자로 설( )가( )이라고 한다. 정답은? 답) 설사가또’. ‘부모님
은 왜 우리를 사랑하실까요? 답) 그러게 말입니다’. 아직 어린 학생들의 엉뚱하지만
귀여운 대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까요?’라
는 질문에 ‘그러게 말입니다’라고 대답해서는 안 됩니다. 정답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승리를 얻게 되고, 순종한 사람에게
영적인 권위가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영적인 지도자의 어려움
영적인 지도자에게는 어려움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조금 어렵다고 포기하고 욕먹었
다고 사표를 내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여호수아에게도 여러 가지 어려움
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지도자에게는 어떤 어려움들이 있을까요?
첫째로 영적인 지도자에게는 고독함이라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지도자는 높은 곳에 있
기 때문에 고독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여호수아가 너를 거느
리고 건널 것이요”(3절a). 거느리고 건넌다는 것은 여호수아가 앞장을 서서 백성들
을 이끌고 건너간다는 말입니다. 세상 군대의 전쟁에서는 지도자가 뒤에 서 있지만 하
나님의 전쟁에서는 지도자가 앞서서 갑니다. 앞에 가는 사람이 얼마나 고독합니까? 의
논할 사람도 없고,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 고독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비록 고독했지만 하나님께서 앞서
행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을 때에 고독감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영적인 지도자는 고
독해도 이겨내야 합니다. 고독을 이기기 위해서 영적이지 못한 사람들과 어울려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고 고독감을 이겨내야 합니다.
둘째로 영적인 지도자의 맡은 사명이 크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맡은 사
명은 본문 7절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 목전
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로 그 땅을 얻게
하라” 거대한 땅에 들어가서 지금 살고 있는 강한 민족인 가나안 7족을 몰아내고 거
기에 국가를 건설하라는 명령이 얼마나 어려운 사명입니까?
저는 지금까지 하고 싶은데 못해본 일이 하나 있습니다. 조그만 땅을 사서 거기에 제
가 살 집을 직접 지어보고 싶은 일입니다. 거기에 남성용 화장실도 만들고, 멋진 서재
도 만들어서 꾸며보고 싶은데 집을 짓는 일이 대공사이기 때문에 아직 엄두를 내지 못
했습니다. 집 한 채 짓는 일도 엄청나게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인데 가나안 땅을
차지해서 국가를 건설해야하는 여호수아의 사명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아마
마음 한 구석에는 사표를 내고 싶은 충동이 일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
워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간
여호수아는 결국 큰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적인 지도자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
은 사람으로부터 옵니다. 사람이 밤에 혼자 산길을 갈 때,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 뱀일까요? 귀신일까요? 호랑이일까요? 아닙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뱀
을 만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피하거나 아니면 잡으면 그만입니다. 월남에 파견된 한
국 군인들이 뱀이 득실득실한 소굴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월남 사람들은 조
금 있으면 모두 시체가 되어서 끌어내야 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조금 있
다가 한국 군인들이 이를 쑤시며 모두 굴에서 나왔다는 우스개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
습니다.
어두운 산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무섭습니다. 모세도 사람이 무섭다는 사실을 이야기하
고 있습니다. 모세가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면서 인간에 대해 내린 결론
이 27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의 패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날 내가
생존하여 너희와 함께 하여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하나님을 직접 대면해서 계시를 받은 모세에게도 거역한 이스라엘 백성들
이 여호수아에게는 얼마나 거역할지를 걱정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사람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을 잘 이겨내야 합니다.
결 론
지도자를 뽑는 것은 참 즐거운 일입니다. 어떤 분들은 패가 갈라지기 때문에 교회에서
는 투표를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논리는 국민과 나라가 갈
라지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도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와 같습니다. 교회가 민주주의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투표를 통해 패
가 갈려서는 안 됩니다. 원하는 사람들에게 투표를 하되, 패는 가르지 않는 성숙한 신
앙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지도자가 되는 일도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대통령, 국회의원, 하다못해 시
의회 의원만 되도 집안의 경사라고 좋아합니다. 하물며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가 되는
일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제가 가끔 목사님들의 모임에 가면 신앙의 계
보를 자랑하시는 목사님들을 종종 봅니다. 3대째 기독교 신앙이라, 4대째 기독교 신앙
이라, 혹은 목사님, 장로님, 순교자들을 배출한 집안이라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합니
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영적인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자손 대대로 가문의 영광이 된
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곤 합니다.
여러분도 모두 영적인 지도자가 되기를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되겠다
는 소망은 나쁜 소망이 아닙니다. 세상의 지도자와는 다르게 섬기는 지도자, 낮은 위
치에 서는 지도자, 희생할 줄 하는 지도자, 성도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는 지도자가 되
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도자는 남을 누르고 꺾으면서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
가지만 영적인 지도자는 섬기고 순종하면서 지도자의 위치에 오릅니다. 그러므로 오
늘 좋은 지도자를 선출할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영적인 일에 좋은 지도자가 되도
록 성장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피영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