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부모의 파산 선고와 십자가의 은혜
제2강. 은혜 (Grace): 텅 빈 손을 채우시는 집요하고도 완벽한 공급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12:9)
1강에서 우리는 자녀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포기하고 위탁받은 '대사'의 자리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그 거룩한 사명을 깨닫는 순간, 모든 진실한 기독교 부모들은 뼈저린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 내 안에는 이 아이를 거룩하게 이끌 만한 지혜도, 인내심도, 사랑도 텅 비어 있다!"
바로 이 처절한 영적 파산과 한계의 순간, 폴 데이비드 트립은 우리 기독교 가정의 하늘을 찢고 쏟아지는 가장 압도적인 복음의 선포, 곧 '하나님의 은혜(Grace)'를 끌고 들어옵니다.
첫째, 부모됨의 짓눌림(Overwhelmed)은 저주가 아니라 '은혜로의 초청장'입니다.
밤잠을 설치며 우는 아이를 달랠 때, 반항하는 십 대 자녀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할 때, 부모는 자신의 밑바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분노가 치밀고, 도망치고 싶으며, "나는 부모 자격이 없다"는 자책감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이 양육의 무게에 짓눌려 완전히 탈진하기를 의도적으로 기다리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가 자신의 능력과 경험을 신뢰하는 한,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느끼는 그 지독한 무능력함과 벅차오름은 부모로서 실패했다는 증거가 아니라, "이제 제발 너의 알량한 지혜를 내려놓고 나의 무한한 은혜를 붙잡으라"는 창조주 하나님의 맹렬한 초청장입니다!
둘째, 은혜는 죄를 덮는 수동적 용서가 아니라, 무능을 뚫고 일하는 '폭발적인 공급'입니다.
많은 기독교 부모들이 '은혜'를 그저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난 뒤 회개할 때 주어지는 '사후 처리용 연고' 정도로 얄팍하게 취급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은혜는 결코 그런 수동적인 찌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만드는 맹렬하고도 주권적인 '능력(Power)'입니다. 대사로 부르신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맨손으로 전쟁터에 밀어 넣지 않으십니다. 내 안에 인내가 바닥났을 때 십자가의 인내를 쏟아부어 주시고, 내 지혜가 고갈되었을 때 진리의 말씀을 조명하여 주시는 것, 즉 '텅 빈 손을 기어이 채워내고야 마시는 집요한 하나님의 공급',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부모의 약함은 은혜가 일하기 위한 가장 완벽한 무대입니다.
셋째, '완벽한 부모'라는 교만한 우상을 박살 내고 당신의 약함을 자랑하십시오.
세상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완벽해져라"라고 끊임없이 정죄합니다. 인스타그램과 육아 서적에 등장하는 '화내지 않고 늘 미소 짓는 완벽한 엄마, 아빠'라는 허상을 좇느라 부모들의 영혼은 병들어갑니다.
이제 사도 바울의 위대한 선포를 들으십시오!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기독교 부모는 완벽한 척 위장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녀 앞에서도 나의 연약함과 죄성을 숨기지 않고 고백해야 합니다. "얘야, 아빠 엄마도 참으로 연약하고 부족한 죄인이란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예수님의 은혜가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단다." 부모가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며 십자가 앞에 엎드릴 때, 그 가정에는 부모의 율법적인 통제가 사라지고 오직 '그리스도의 능력'만이 온전히 머물게 됩니다.
기독교 부모여, 무거운 육아의 짐을 나 홀로 지고 가려는 그 독선적이고 교만한 자기 신뢰(Self-reliance)를 당장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 당신의 빈손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거룩한 대사로 부르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를 열고 당신이 감당치 못할 압도적인 은혜를 오늘 당신의 가정에 폭포수처럼 쏟아부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