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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니아'를 조심하라
영화 '나니아 연대기: 사자와 마녀, 그리고 옷장'(The Chronicle of Narnia: 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 이하 '나니아')이 마침내 전국에서 개봉됐다. 한국에선 12월30일 개봉된다. 모처럼 좋은 영화가 나왔는데 우리 아이에게 안 보여 줄 수 없지 하는 부모들이 많을 것이다. '모처럼 좋은 영화'? 어떤 점에서 '좋은 영화'라는 것인가?
좋은 영화의 정의가 뭔가? 필자가 알기로는 좋은 영화나 예술작품의 객관적 평가기준 하나는 필리포(빌립보)서 4:8이다.
과연 '나니아'의 내용이 무엇이든 참되고, 경건하고, 올바르고, 순결하고, 사랑할만, 칭찬할만하고, 미덕과 기림이 있는가?
웹에서 이 영화의 줄거리를 비디오 클립과 함께 비교적 자세히 훑어 본 필자로서는 의심치 않을 수 없다.
'기독교 작품'이 마녀도 만드나?
"원작자 C.S. 루이스가 기독교작가가 아닌가. 그래서 좋다는 것이다" 라고 할 부모들이 있을 것이다. 루이스가 정말 기독교계를 대변하는 작가였던가? 정말 그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이 작품을 썼던가? 그래서 이 작품이 자동적으로 기독교작품이 되는가? 일반 세속 작품이 아닌, 소위 '기독교작품'일 때 [사실상 기독교작품이 아닐 경우] 더 미혹적이고 더 위험하다. [부탁이 있다. C.S. 루이스를 더없이 존중해온 독자도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기 바란다.]
"너무 따지지 마라. 아이들에게 세상에 있는 건 뭐든지 다 보여주는 게 낫다"는 관대한 부모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부모 자신이 책임져라. '나니아'를 보고 혹 좋은(?) 결과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무서운 결과가 올 수도 있음을 명심하라.
이 영화가 아닌 루이스의 원작을 읽고 감동 받아 마녀가 된 사람도 있다! "그럴 리가..?" 하고 궁금하다면 빌리프넷에 가서 www.beliefnet.com/narnia 에 실린 글을 한번 보라. 'starhawk'란 공식 마녀 이름을 가진 여성이 바로 장본인이다.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무심코 보여주는 영화 한 편, 책 한 권이 이렇게 자녀의 일생을 좌우할 수 있다!
정말이다. 비슷한 성향의 영화 '해리 포터와 불의 잔'도 한국에서 1일 개봉됐다.
[' 뉴스파워'사이트(기사 검색 기능)에 있는 필자의 관련 글 '해리 포터, 장난이 아니다' 참조 바람.]
복음주의 작품?
C.S. 루이스에 호감을 갖거나 짝사랑하는 복음주의자들이 많다. 심지어 루이스를 '복음주의자' 대열에 올려놓은 언론도 한 둘이 아니다. '복음주의자'가 대체 뭔가? 복음 진리대로 믿는 사람들이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필자가 검증해 본 루이스는 복음주의자는커녕 결코 성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거듭났는지조차 알쏭달쏭한, 한낱 삐딱한 성공회인일 뿐이다. 루이스 자신이 '복음주의자'라는 화려한 명칭을 원하지도 않았다. 우리가 흠모할 만한 '위대한 기독교작가'가 아니다. 그가 생존한다면 자신을 높여주는 복음주의자들을 이상한 시각으로 바라봤을 터.
그러나 루이스와 그의 신학적 오류에 관해선 필자의 바로 다음 글에서 상론하련다. 여기서는 나니아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하고자 한다.
루이스의 대표작 '나니아'는 조지 루카스의 영화 '별들의 전쟁'(Star Wars)처럼 흔해빠진 주제 즉 선과 악의 대결을 다루고 있다. 나니아의 사자 '아슬란'은 크리스토적 캐릭터라고 칭해진다. 아이들을 마녀('사탄')의 저주로부터 구해내려고 죽었다가 되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슬란은 마녀보다 더한 마술(!) 지식을 보유한 존재로 나타난다.
그런 아슬란이 어떻게 "크리스토적"일 수 있는가! 마술과 진리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나. 크리스토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랴. 작가 자신이 '짬뽕' 같은 존재가 아니고서야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아슬란'이란 이름이 터키의 '사자'란 어원에서 왔고 중동에서 폭 넓게 사용된다. 회교와도 직결돼 있다. 최근 미국에서 가장 애용되는 퍼스트네임 중 하나다. 루이스 덕분일 것이다. 루이스는 처음부터 크리스토를 신화/전설 투성이에다 종교다원적 존재로 부각시키려는 어젠다를 지니지 않았을까?
팬터지에서 과연 진리가 나오나?
널리 알려진 것과는 달리, 또 루이스 자신이 일각에 천명한 것과는 달리, 이 팬터지는 처음부터 크리스토의 복음을 소개할 목적으로 쓰인 게 아니다(그의 책 '다른 세계에 관하여' 제36쪽을 보면, 복음과는 거리가 먼 그의 본 의도가 나타나있다).
오히려 스스로 신화/전설/팬터지 따위를 즐긴 탓이다. 그러므로 '나니아'는 결코 기독교적 풍유(allegory)로 디자인된 작품이 아니다. 혹 원작자의 의도가 그랬다 해도 신화나 전설적 스토리는 진리가 될 수 없다. 본질상 악한 것을 갖고 짐짓 "선하다" 하고, 매직을 성령의 권능과 동일시하는 것처럼 어리석고 위험한 것은 없다! '나니아'는 그런 세계다.
루이스의 팬터지 작품에서 '선한' 존재로 일컬어진 것들은 사실상 마법과 이교신화, 북구 전설와 교묘하게 얽히고 설켜있다. 말하자면 악령들이다. 그런 작품 속에서의 '선'과 '악'은 성경의 선과 악이 아니라 단지 누구의 매직에 속했는지 그 소스의 차이일 뿐이다.
신화와 전설의 '짬뽕'
'나니아'의 여주인공 격인 루시가 옷장 속으로 '나니아' 땅으로 들어가 처음 만난 존재는 반신반수의 포운(faun, 일명 pan/목신)인 '미스터 텀너스'(Mr.Tumnus)였다. 산양의 뿔과 귀, 하반신을 지닌 포운은 그리스 신화 중 '술의 신' 디오니소스(바쿠스)의 종자 신이자 양지기인 사튀로스(satyr)다. 양치는 피리를 불어 호리는 포운은 매우 음란한 색정광을 상징한다.
스테판 말라르메의 상징시 '목신의 오후'와 거기 갖다붙인 드비시의 인상주의 교향시 '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그 음악에다 안무한 니진스키의 발레 등은 모두 성을 주제로 한 몽환적/자위적인 음란한 내용들이다. 니진스키는 실제로 목신의 오후 피날레에서 수음 시늉을 했다.
이런 존재를 천진난만한 루시와 첫 대면하게 한 루이스의 머리통은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루이스는 목신이 음란한 존재인지를 몰랐을 리가 없다! 관람자들은 이 조우를 "아름다운 장면"이라고들 하는데 글쎄다. 사람이 악령을 만나는 장면이 그토록 아름다운가? 섬칫할 노릇이다.
텀너스가 악령이라고? 그렇다. 성경에 따르면 신화는 모두 성경밖 초자연적 세계 곧 악령의 세계이고 올림푸스 산의 제우스를 비롯한 모든 신화적 존재는 예외 없이 다 더러운 악령들이다. 성경은 신화를 엄격히 금한다(티모테a 4:7).
한번 확인해 보라. 성경 속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지대는 없다. 성령이 아니면 곧 악령이다. 크리스토가 아니면 벨리알(바알=사탄)일 뿐 그 중간은 없다.
신화 속 악령들을 어린이들의 '친구'로 만들어주는 재간과 테크닉을 지닌 루이스와 그와 대동소이한 동지인 '반지의 제왕'의 원작자 톨킨, '해리 포터'의 작가 로울링 등을 사탄은 넉넉한 웃음으로 칭찬해 주고 있다. 그것도 루이스/톨킨 등을 '기독교작가'로 둔갑시켜 가면서 말이다. 신화를 성경 정신과 적당히 짬뽕한 것도 기독교 작품에 속하는가? 그것이 복음인가. 그것이 정말 복음이라면 우린 제작팀과 디즈니사에 마땅히 박수갈채를 보내야 할 것이다.
루이스의 신화적 얘기가 '기독교적'이라면 단군신화와 성경을 접목시켜 '기독교적'이라고 세계 복음주의권에다 소개하면 어떨까. 한국적/토착적이고 좋을(?) 텐데..독자의 교회에서 반대하진 않겠는가?
오래 전 어린 딸과 함께 영화 'E.T.'를 보면서 ET와 주인공 가족 어린이들이 헤어지는 장면에서 모든 관객 어린이들이 엉엉 소리내어 울고있는 모습에 필자는 하 웃음이 나다 못해 등골이 오싹했다. 도화지 같이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을 악령이 얼마든지 훔칠 수 있음을 봤기 때문이다. 'ET'(외계인)가 뭔가? 악령이 아니던가.
'나니아'중 악의 세계의 대표인 여왕 마녀는 루이스의 머리 속에선 아담의 영적인 '아내'인 사악한 '릴릿'(Lilith)이다. 릴릿은 본래 에집트 신화였던 것을 중세 카톨릭 교회가 받아들여 사탄을 여성으로 봤다. 미켈란젤로 등 중세 화가 다수가 사탄을 릴릿으로 묘사했다. 카톨릭 교도인 멜 깁슨의 영화 '크리스토의 수난'에서 사탄이 여성적으로 묘사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성경은 사탄 즉 천사장 '핼렐'(루키페르)을 남성에 더 가까운 중성적 존재로 묘사했다. 이 모두가 성경에 배치된다.
'순진'으로 포장된 위험
루이스는 '기독교'의 이름으로 악령의 세계에서 깊이 헤엄치고 장난질 치던 인물이다. 어두운 오컬트 팬터지의 세계에 일찍부터 매료됐었다. 어릴 적 엄마가 들려주던 팬터지, 동화에 크게 영향 받고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우리들 다 어릴 때 '귀신 얘기'에 탐닉할 때가 있었지만 거기 늘 상주하진 않는다. 그러나 루이스는 유달랐다.
아이가 어릴 적 들으며 자라는 [성경얘기 아닌(!)] 동화/우화/팬터지/픽션 속엔 여러가지 숨은 위험이 도사려 있다. 온갖 주술/마력/오컬트/악령적 요소가 속속드리 스며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의 '도화지 마음 밭'이 무방비 상태로 이런 것들을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1994년), '포카혼타스' 등은 아이들의 마음을 교묘하게 지구/지신/악령 숭배 쪽으로 이끌어 들인다.
'라이언 킹'은 파워풀한 뉴에이지 상징과 철학으로 가득하다. 그것의 주제 '삶의 순환고리'는 곧 힌두교/불교적 윤회 및 진화론을 가리킨다. 아기사자 '심바'를 지신들에게 바치는 의식은 샤머니즘이다. 심바가 별들을 올려다 보며 아빠사자에게 울부짖자 구름 사이에서 아빠가 나타나 격려하는 광경은 성경이 금한 죽은 자와의 대화(신18:10이하)를 교묘하게 합리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보수단체 '포커스온더패밀리'의 창설총재 제임즈 답슨 목사는 '라이언 킹'을 '건전한 영화'로 적극 추천했다. ㅎㅎ!] 동물들이 말한다는 것 자체가 거짓이다. 성경은 나무를 우화한 적은 있어도 동물을 의인화 한 적은 없다. 동/식물 우상들은 있었어도 말이다.
그런 작품들은 건전하긴커녕 아이들을 영적인 무감각 상태로 끌고 간다. 영화 '별들의 전쟁'(Star Wars)에선 블랙 매직과 화잇 위치크래프트가 판친다. 요즘의 수많은 장난감과 전자게임들은 더구나 그렇다. 그래서 영적 분별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아이들을 위한 세상 것은 다 '순진'하다고 굳게 믿는 부모들은 정말 순진하다 못해 무지하다.
루이스는 평생 팬터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자신이 빠져들었던 그 신화적 팬터지로 온 세상 어린이들을 매료시킬 수 있음을 감지했고 그 판단은 옳았다. '나니아'를 비롯한 루이스의 신화적 팬터지는 지금까지 1 억 권 가까이 팔려 나갔다.
위에서 지적했듯 그걸 읽고 결국 마녀/마법사가 된 소년/소녀들도 있다.
뭘 말해 주는가? 이것도 '복음주의'이고 '복음'인가? 마녀를 만들어내는 복음?
성령의 영감?
'나니아'의 공동제작자인 루이스의 의붓아들 더글러스 그레샴은 아버지의 작품에 관해 걸핏하면 '성령의 영감'을 거드는데 [그레샴은 심지어 이번 영화 '나니아'도 성령의 영감을 받은 것처럼 진술해왔다!] 성령의 영감이 마술사/마녀도 만들어내는가?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은 성령을 받고 난 뒤 마술을 버렸건만 루이스의 작품은 반대 결과를 가져오니 희한하지 않은가. 물론 마녀가 되고 안 되곤 본인의 자유겠지만 말이다. 참 요지경 속이 아닐 수 없다. 혹 자녀가 마법사/마녀가 되길 원하는 독자는 루이스/톨킨/로울링즈 따위의 작품을 맘껏 읽히고 감상시키길 바란다. 장난이 아니다!
루이스의 어릴 적 이 체험이 훗날 그의 핵심 아동문학의 하나로 꽃핀 것을 그 자신은 '유치원 문학이 의인화 된 짐승들'로 불렀다(그의 책 '기쁨으로 놀라' 영문판 6쪽). 그와 그의 형은 '옷 입은 동물들'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는 루이스의 캐릭터들을 "의인화된 악령들", "옷 입은 악령들"로 부르고 싶다.
루이스의 어릴 때 애독서들 중엔 '걸리버 여행기' 말고도 E. 네스비트의 3부작 '다섯 아이들과 그것', '불사조와 주문 카펫', '부적' 등이 있었다. 그뿐 아니다. 25년간 '신자' 생활을 하고서도 그는 "(그런 책들을) 여전히 즐겨 읽을 수 있다"고 고백했다(위 책 14쪽). 팬터지에 탐닉하다 못해 "나의 삶의 핵심 스토리는 그것 말고는 없다"고까지 말했다(같은 책 17쪽).
그 다음으로는 롱펠로의 '올라프 왕 이야기'로 옮겨갔고 북구 전설의 매직과 이교 신화에 매료됐다. 12살 즈음엔 신화와 전설의 등장 인물들과 스스로를 내적으로 '결합'해 간다. 대다수 어린이들에겐 한때 뿐인 팬터지 몰입을 그는 자랄수록, 나이들수록 더 즐긴 것이다.
루이스 자신의 기록을 보자. "나는 전설의 난쟁이들의 주문에 깊이 빠졌다.. 그들을 너무도 강렬히 그렸기에 거의 환각 지경까지 다다랐다. 한번인가는 정원 속을 걷고있다가 난쟁이가 나를 지나 덤불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한순간 착각했다.."(같은 책 55쪽).
루이스가 아일란드 시골을 떠나 잉글랜드의 도시인 헐트포드셔의 보딩스쿨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그의 첫 인상은 영국에 대한 미움 뿐이었다. 그는 복잡한 도시를 경원하여 에로틱하고 음울한 염세주의,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어갔고 라이더 해거드나 H.G. 웰즈의 책을 "탐욕적으로" 즐겼다(35쪽 참조).
그후 와이번의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는 그나마 남아있던 가문의 초라한 기독교적 자산을 상실하고 더욱더 오컬트와 허구세계, 염세주의에 빠져들었다. 그즈음 그가 즐긴 것은 신화로 가득찬 바그너의 오페라, 북구 신화, 켈틱 고대 신화 등이었다.
그리고 27세 때 옥스퍼드 대학교 맥덜렌 대학의 영문학 연구원/강사가 된 뒤인 1926년 5월11일 멘튼대학에서 만난 톨킨과 급속히 가까워진 것도 북구 신화 등 오컬트 팬터지를 즐긴 공통분모 때문이었다. 카톨릭인 톨킨에게서 그가 얻은 것은 크리스토의 이야기야 말로 실제로 일어난 '참 신화'란 결론이었다.
루이스의 최고 작품의 하나로 쳐지며 작자 자신도 아끼던 소설 '우리, 얼굴을 갖기까지'는 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에 관한 그리스 신화를 재구성한 것이다. 즉 귀신들의 사랑 얘기다! 그런 루이스에게 무슨 영적 분별력인들 있었겠는가.
이 책엔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온다.
"우리는 모두 한 온누리(one Whole)의 팀즈(Timbs)요 부분이다. 그래서 각 사람과 신은 한데 흘러들고 나가며 섞인다."(그 책 300~301쪽). 이것은 보편주의적 구원을 암시해준다. 사실 루이스는 생애 말기에 갈수록 더욱더 카톨릭과 다름없는 보편주의적 구원론으로 기울어졌다. 이 책 17쪽에서 그는 또 자살을 '자연사'의 하나로 정의했다.
팬터지는 상상에 불과할 뿐 진실도 진리도 아닌 허구요 거짓이다(요일 2:21, 요8:44). 루 월레스 원작 소설 '벤 허'도 허구이기에 크리스토에 관한 부분적 얘기만 빼놓고는 진실이 아니다. 그런데 어린이들에겐 진리와 허구를 구분할 능력이 없다. 그런 자녀에게 아무 경고나 지도가 없이 무차별로 팬터지 책과 영화를 보여주는 건 한마디로 도화지에 오색 물감으로 물든 전염성 오물을 뿌려주는 격이다.
사탄은 광명한 천사처럼 가장하는 거짓의 앞잡이다. 영화 '나니아'는 광명한 천사들처럼 탈을 쓴 악령들 얘기로 가득하다!
루이스의 팬터지에 관해 오컬트 족들이 아무 거부감을 갖지 않는 것은 이상할 것 없다. 심지어 루이스의 팬터지에 바탕을 둔 일종의 컬트들도 생겨나고 있다. '나니아' 배후의 어두운 힘이나 오컬트 역할 게임 '암굴과 용들'(Dungeons and Dragons)에게 내린 '영감'이나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까닭이 여기 있다.
이 글에 대한 독자의 조직적이고 근거 있는 반론을 기대한다.
http://www.usaamen.net/bbs/zboard.php?id=ssq3&page=2&sn1=&divpage=1&sn=on&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34
첫댓글 앗 이거 놀랐습니다. 자료실 뉴에이지 관련 자료 중에 이티 이야기하면서 제가 댓글로 나니아 연대기에 관해 목사님께 여쭤봤더니 괜찮다고 한 것이 있는데요. 김삼목사님 글을 보니 괜찮지가 않네요... 저희 목사님께도 이메일로 알려드려야 겠어요~!!
와우~~~C.S 루이스는 많은 목사님들이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인데~~~우리 아이도 좋아하는 작품이어서 책으로도 여러번 읽었습니다. 그 시리즈도 읽고 ~~`성경외에 정말 구분해야 할것 들이 너무나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