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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히는 것같이
1961-0122
이곳에서 인용된 성경은 GOOD TV 다번역 영어 킹 제임스(흠정) 역이며
메시지 책자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도록
편집하였음을 미리 알립니다.
신명기서에서 우리는 32장 11절을 읽겠습니다,
“독수리가 자기 둥지를 휘저으며 자기 새끼 위에 너풀거리고 자기 날개를 펴서 새끼들을 받으며 자기 날개를 펴서 새끼들을 받으며 자기 날개 위에 그것들을 업는 것 같이.”
야외(자연)을 좋아하는 저는 언제나 어째서 하나님이 자신의 기업을 독수리에다 비유하셨는지 궁금히 여겼습니다.
제 첫 번째 성경은 자연이었는데 저는 자연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려 하신다면 여러분은 자연에서
하나님을 보실 수 있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연을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커다란 새들을 보았고 그 새들이 사는 산들을 높이 올라가 보기도 했습니다. 사냥 감시인으로서 소떼를
치면서, 그리고 나서는 회심을 하여 성경을 읽으면서도 제 속에서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냥 자연을 좋아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우주 가운데서 어떻게 움직이시는지 지켜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기업은 커다란 독수리에 비유됩니다.
저는 팔레스타인에는 40 종류의 독수리가 있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독수리라는 말은 “부리로 먹는 것”이라는 뜻인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말씀을 가지고 그의 입으로
먹이심을 매우 아름답게 표현하고 예표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나님은 말씀으로 자기의 새끼 독수리들을 먹이시는 독수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종종 선지자들을 독수리에 비유하셨고, 자기 자신도 독수리에 비유하셨음을 압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독수리이시고, 우리는 그의 자녀들로 새끼 독수리들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자기의 입으로 먹여
주시지 않으십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나님은 자기의 새끼 독수리들인 우리를 그의 말씀 곧 그의 말해진 말씀으로 먹이십니다.
저는 스테이크나 닭고기 음식을 무척 즐기는 편이지만 하나님의 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할 때처럼 잔치를 즐겨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께 우리를 그의 좋은 말씀으로 먹이시도록 놔두십시오.
그것은 우리 입과 우리의 내적인 기관들에 있어서 너무도 좋은 음식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제 생각에는 굶주려 죽어가고 있습니다. 영적인 때에 대해 말하자면 오늘날 독수리들의 음식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진짜 독수리의 음식이라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독수리들이므로 우리는 독수리가 먹는 음식을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사교적인 모임이 아니라, 교회 지하실에서 갖는 저녁식사 모임이 아니라, 바느질 모임이 아니라.--
우리는 여호와 독수리의 입에서 나와 공급되는 독수리 음식이 필요합니다.
독수리의 커다란 두 날개는 구원함을 위한 것입니다. 두 날개는 또한 구약과 신약을 나타냅니다.
독수리에 대한 또 한 가지는 독수리는 그 어떤 새보다도 하늘을 가장 높이 오를 수가 있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누가 매와 같은 눈을 가졌다고 하는 표현을 들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매는 독수리에 비하면 볼 수 있는
능력에 있어서는 아마추어입니다. 매는 독수리의 절반 정도 밖에 멀리 보지 못하고 매가 독수리를 따라 높은
곳까지 올라가려고 한다면, 매는 죽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독수리는 특별히 고도에서 살도록 창조된 새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선지자들을 독수리라고 하셨습니다.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여러분은 더 멀리 바라보게 됩니다.
만일 높이 올라갔는데 멀리 바라볼 눈이 없다면, 더 높이 올라가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 높은 곳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때 우리에게 더 멀리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저는 그게 맘에 듭니다. 여러분은 더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더 멀리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독수리 새끼로 비유되었다면 우리는 창공 속 독수리의 길로 치솟아 올라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다른 새들이 너무나 높은 곳에 올라가려고 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십시오, 그들은 독수리를 따라서 이륙하여 독수리처럼 높이 올라갈 것이지만,
그 위에 올라간 뒤에 그들은 불평을 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독수리처럼 날을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은, “나는 이것을 견디지 못하겠어.”하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은 어떤 다른 것에 대해서 불평할
것입니다. 그게 뭡니까? 그들은 독수리처럼 높이 날도록 지음을 받지도 부름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차갑고 죽은 교회들에게로 곧장 날아가 굶주려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독수리는--그는 계속 계속 계속 높이 항해합니다.
독수리가 바람을 타고 어떻게 치솟아 오르는지 잘 보십시오. 독수리는 강한 두 날개를 펴고 계속해서 항해합니다.
저는 그 표현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믿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자는 이리저리, 이번 주엔 감리교, 다음 주엔
오순절교로 돌아다니지 않습니다.--그는 하나님께 믿음을 두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바람을 타고서 계속 항해합니다.
저는 제가 콜로라도에서 사냥하면서 겪은 일을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느 날 저는 높은 산에서 엘크사슴을 사냥하고 있었습니다. 사냥하기엔 이른 때였었습니다.
눈이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저는 수목 한계선 안으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제 주위로 70 마일 반경 내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목장주인은 다른 좁은 길을 파 두었는데 우리는 며칠 후에 만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 저는 말을 매어두고 여러해 전 제가 소떼들을 몰아내곤 했던 그 지역으로 높이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렸습니다. 저는 “바람에 쓰러진” 나무속으로 들어가 있었고, 비가 지나갔습니다.
잠시 동안 비가 내리다가 잠시 동안 눈이 내리다가 그 다음에는 해가 나오곤 했습니다.
저는 약간 젖었고 얼굴에서 물을 닦아내고 그 나무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거기에 서 있을 때 계곡 저 꼭대기에서
나는 무슨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리가 울음소리를 내었고, 이 아래 계곡에서 암컷이 그에게 대답했습니다.
다윗은,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른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야생동물을 좋아하는데 그 이리가 울부짖고 그 암컷이
대답하는 것을 들을 때 제 안에 있는 깊숙한 곳에서 뭔가가 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서쪽 지평선에 해가 바위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해가 질 때 해는 상록수들을 비춰 얼어붙은 곳에서 무지개를 만들어냈습니다.
바로 그 때 저는 제가 쫓고 있던 엘크 떼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늙고 커다란 엘크가 저 뒤 빽빽한 수풀 사이에서
둔한 나팔 소리를 냈습니다. 오, 저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안에 있는 무언가가 자연을 사랑하고,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를 때”(시편42:7) 저는 그저
몸이 녹는 것 같습니다. 깊은 것을 부르는 뭔가가 그 안에 있다면, 그것에 대답할 깊은 것이 있어야만 합니다.
물고기의 등에 지느러미가 있기 전에, 물고기가 들어가 헤엄칠 물이 있어야 합니다.
땅에 나무가 있기 전에 먼저 땅이 있어야 했습니다, 안 그러면 나무도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몇 년 전 어떤 소년이 연필 끝에 달린 지우개를 먹고 그의 어머니는 그가 자전거 고무 페달을 먹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진찰을 했을 때 그 어린 소년에게는 유황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만약 여러분 몸에 유황을 갈구하는 뭔가가 있다면, 응답할 유황이 있어야만 합니다.
피조물이 있다면, 피조물을 창조할 창조주가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맛본 사람은 한 남자도 한 여자도 없고
다만 지금 당장 하나님을 더 많이 갈구하는 여러분이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더 많이 더듬어 만지려고 합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을 더 많이 알기를 소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딘 가에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더 많은 부분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무지개 색깔을 보았는데 뭔가가 제 안에 있어서 저는 잠잠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무지개 안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었고, 일몰 속에서도 하나님을 볼 수 있었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어디서나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안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면, 여러분은 어딜 보든지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먼저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 안으로 들어오셔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병아리에서 독수리로 바꾸셔야만 합니다.
그는 여러분에게 뭔가 하고 싶은 소원을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작은 소나무 다람쥐 소리를 들었습니다.
형제님들은 그 다람쥐들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다람쥐들은 소리를 무척 많이 내고 아무 쓸모도 없는 것들입니다.
거기서 그 다람쥐는 그루터기에 앉아서 그저 뭐라고 뭐라고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하기를--꼬마야, 너 뭐하고 있니? 이 다람쥐는 폭풍 속에서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를 보았고 이 쓰러진
나무 아래를 피난처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커다란 놈이 뛰어나왔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오, 작은 소나무 다람쥐야 너 뭘 그렇게 시끄럽게 말하고 있니 하고. 그 다람쥐는 저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 독수리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잠시 동안 그것들을 쳐다보다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왜 저의 생각을 저 위에서부터 여기 이 아래로 바꾸셨습니까? 이것에 무엇이 있습니까?
여기에는 일 페니 값도 안 되는 작은 날아다니는 다람쥐 한 마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늙은 독수리 한 마리가 있습니다.--그 독수리는 하늘에서 날아다니기만 할 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하기를, 어째서 당신은 제 생각을 바꾸셔서 이런 식으로 보게 하셨습니까?
그런데 제가 지켜보는데 그 늙은 독수리는 계속 날개를 움직였습니다. 저는 생각하기를, 넌 내가 무섭지 않니?
난 여기에 총을 가지고 있단다. 원한다면 나는 널 쏠 수도 있어. 저는 총을 쥐었고 그 큰 두 눈이 절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지켜보았고 그는 계속 자기의 깃털을 움직였습니다.
저는 생각하기를, 그래, 네가 그렇게 용감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네가 겁쟁이가 아닌 이유는 이거지.
하나님께선 네게 크고 힘센 두 날개를 주셨고 너는 그 두 날개에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경,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의 날개를 가질 수 있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에 그만큼 확신을
가질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만약 독수리가 자기 두 날개에 갖는 확신만큼이나 우리도 그 정도의 확신을 가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독수리는 자기가 한 번 뛰어 그 삼림 꼭대기로 올라가면 제가 그를 쏴 맞출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독수리를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피곤해지면 독수리는 한 번 크게 뛰어올라
두 번 가량 날개를 파닥거리고, 여러분 독수리가 무얼 했는지 아십니까? 그는 다시는 파닥거리지 않았습니다.
그 독수리는 어떻게 두 날개를 펴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날개를 쫙 폈고 바람이 불어오자 두 날개를
위로 들어 올렸고 저는 서서 그 독수리가 조그만 점이 될 때까지 지켜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다시 울었습니다. 저는 생각하기를, 하나님, 바로 그겁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약속 안에다 믿음의 두
날개를 어떻게 펴는지 알기만 한다면, 주위에 있는 각종 사소한 주의들에 가입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여러분의 날개를 펴는 것이고 그러면 성령은 여러분을 들어 올리십니다.
그 독수리는 그 조그만 땅에 묶인 소나무 다람쥐를 떠났는데 그 다람쥐는 거기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어요, 성령 침례 따위는 없습니다, 당신들은 멍텅구리들이예요, 그게 전부라구요, 기타 등등,
그 독수리는 그냥 가 버렸고, 여기서 이러쿵 저러쿵, 저기서 이러쿵 저러쿵 하고 수다 떠는 그 작은 것을 뒤로
남겨두고 저 높이 더 높이 올라갔습니다.
하나님 우리로 독수리의 날개를 받아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신성한 약속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친구들이여, 여러분이 매여서 살고 있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날개를 펴고 있고 믿음으로 성령께서 여러분을 들어 올리셨기 때문입니다.
독수리는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고 있는데 만약 하나님의 약속, 그의 말씀에 날개를 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살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고, 죄를 뛰어넘어 살게 하고 세상은 전혀 모르는 복스런
분위기 가운데서 살게 하시려고 여러분을 이 비참하고 불의하며 비경건하고 이기적인 삶으로부터 빼내실 것입니다.
저는 제가 오하이오 주 씬시내티에 있는 동물원에 갔었던 때를 기억하는데 저는 방금 잡힌 독수리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가장 안타까운 광경 중 하나였습니다. 이 커다란 하늘에 속한 새는 새장에 갇혔고 누군가에 의해 사로잡혀
새장 속에 던져졌습니다. 그 불쌍한 녀석은 자기가 있을 곳이 아니므로 힘껏 그 커다란 쇠창살에 날개를 파닥거리
면서 뛰어올랐다가 땅에 떨어져 뒹굴곤 했습니다.
계속 그 쇠창살에 날아올라 부딪혀서 날개에서 깃털이 다 떨어지고 얼굴은 상처투성이였습니다.
계속 지켜보는데, 그 놈은 재면서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가 힘껏 쇠창살에 몸을 던졌다가 다시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때 그놈은 바닥에 누워 지친 두 눈으로 하늘을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독수리는 땅에서 지내도록 창조 받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독수리는 하늘에 속한 새입니다, 그의 모든 몸 구조는 이 낡은 세상을 훨씬 넘어 창공에서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때 창공을 치솟아 오르도록 만들어진 새가 그렇게 거기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치솟도록 지음을 받았지만
인간들의 교활함에 의해 사로잡힌 그 독수리가. 얼마나 처참한 광경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형제들, 이 시카고 거리들이나 다른 대도시의 거리들에 나가보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과 딸들로 만들어진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그들은 죄와 버릇과 이생의 염려들 때문에 모습이 바뀐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 독수리보다 훨씬 더 불쌍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사람은 묶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자유롭게 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아들이 자유롭게 한 자는 참으로 자유하리라.” 이 세상 것들로부터 묶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 제가 사람들이 어떻게 변했고 얼마나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특권들 가운데서 살지 못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때,
제 마음에 이는 감정들을 표현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탄에게 매인 노예가 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그분 자신의 형상대로—아들이 되게 하려고--만드셨습니다.
그분은 인간 안에 혼을 두셔서, 하나님을 향한 갈증을 느끼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복되고 거룩한 갈증을 위스키나 알콜이나 담배나 여러 다른 종류의 삶으로 만족시키려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 갈증을 다른 것들로 해소시키려고 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행위입니다.
죄에 매이는 것--하나님은 그것을 원치 않지만 인간은 고의적으로 그런 형태로 만들어갑니다.
독수리의 생활을 연구하고 그 구조를 관찰하여 그에게서 본받을 점을 찾는 일은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말씀을 믿습니다. 성경은 독수리가 새롭게 젊음을 얻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독수리는 종종 새롭게 젊음을 얻고, 다시 젊어진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나중에 우리는 독수리가 다시 젊음을
얻는 게 아니라, 사실상 독수리가 때때로 기분이 좋으면 다시 젊은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부흥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독수리 새끼들은 다소 나이는 먹었다고 해도 부흥이 오게 되면
다시 젊어진 듯한 느낌을 갖기에 이릅니다. 그들은 기분이 상쾌해지고 다시 젊어진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가까이 있음을 알게 될 때 기분이 한결 나아집니다.
이제 자세히 보시면 여러분은 독수리가 새롭게 젊음을 얻는다는 점에서 우리가 어떻게 독수리에게 비유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먼저 독수리는 완전히 지치고 녹초가 되고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가도 젊은 새같이 다시
강해져 하늘을 치솟아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새입니다. 자 어째서 하나님은 우리를 독수리에 비유하셨을까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완전히 “맥이 빠져있을 때,” 우린 그런 표현을 가끔 쓰죠,
좋은 부흥회가 오게 되면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새로워집니다. 저는 부흥회가 마을에서 열리면 노인이든 젊은이든
모두 다 즐거운 아이들처럼 생기를 얻고 주님 안에서 뛰고 기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휠체어에 매이고, 암으로 죽음의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이 부흥회를 휩쓸게 되면,
새 힘을 얻어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고, 기뻐하며 간이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우리 위대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우리 건강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고,
우리에게 새 소망을 주시고, 그는 계속해서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왜 우리가 독수리에 비유되는지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독수리처럼 성령으로 새로워집니다.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어미 독수리는 땅 위에 둥지를 틀지 않습니다.
가장 높은 산봉우리로 올라가서 바위에 둥지를 만들고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는데, 어느 날 어미 독수리는 자기
새끼들은 병아리같이 되지 않게 하겠다고 결심합니다. 병아리도 독수리처럼 새이지만, 땅에 매인 피조물입니다.
병아리는 날개를 퍼덕여 잠시 날 수는 있지만 땅에서 발을 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제게 오늘날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자칭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저 약간의 종교성을 취하여 비참해지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이름이 책들에 적혀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번이라도 하늘을 치솟아 날아본 적이 있습니까?
독수리는 결코 둥지를 여기 아래 땅에다 만들지 않습니다. 가장 높은 바위 속에다 둥지를 만듭니다.
독수리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예표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원수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갈보리의 바위틈 속에 숨기셨음을 아는 것은 얼마나 복 스런 특권인지 모릅니다.
오, 우리는 그런 특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저기 높은 바위 속에는 어미 독수리가 새끼들을 낳는 곳입니다.
어미 독수리는 코요테가 결코 올라갈 수도 없는 높은 바위 속에서 새끼 독수리들을 양육하고 돌봅니다.
저는 우리가 그분에게 허락만 한다면, 우리를 마귀의 울부짖는 소리가 우리를 괴롭힐 수도 없고,
위스키와 나이트클럽의 유혹이 우리에게 닿지도 않고, 이 세상과 세상의 환상적인 것들의 오염된 홍수를 뛰어넘는
높은 곳에 놓으시려고 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가지고 있음을 너무나도 기쁘게 여깁니다.
그런데 둥지를 만들 때 어미 독수리는 포도나무 줄기와 막대기와 나뭇잎들과 잔가지들과 가시나무를 모읍니다.
새끼들이 가시에 찔리거나 잔 나무 가지들이 새끼들을 찌르지 않도록 매우 조심스럽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 어미 독수리가 어떻게 합니까? 그 어미 독수리는 가서 어린 양을 한 마리 잡아서,
가죽을 둥지에 가져와 깔고 새끼들에게 진짜 아늑하고 포근한 둥지가 될 때까지 다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거듭나려고 하는 것을 보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예배 동안에 우리가 어떻게 할 지 우리를 지켜 보십니다—그걸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곧 독수리가 또 한 마리 그에게 태어날 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의 나라에서 여러분을 위한
둥지를 하나 예비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영이 여러분에게 구애하실 때 여러분이 얼마나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가지는지 잘 보십시오. 그리고 보십시오.--하나님은 여러분의 거처를 너무도 아름답고 평화스럽고 안전하게
만드신 어린양이 아닙니까? 그는 여러분의 둥지, 여러분의 거처의 어린 양입니다! 주님을 찬양합시다!
친구들이여 저는 여기서 이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아름다운 거처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오로지 바보들만 천사들이 걷기를 두려워하는 곳을 징 박은 구두를 신고 걸을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불평을 늘어놓고 불만을 털어놓는 것을 들을 때 너무나도 슬퍼집니다.
마음에 가책을 느끼신다면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광신자니 미친자니 하고 말하는 여러분들,
창피한 줄 아십시오!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 여러분은 바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어느 바보는 다른 그리스도인에게 광신자니 뭐 다른 모욕적인 말로 부를 테지만,
천사들은 그렇게 말하는 건 고사하고 그런 것들을 생각하는 것조차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집회에 와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고 바알세불이라 부르거나--냉담한 태도를 보이거나 무시하는 태도로
하루나 이 틀밤 뒤에는 떠나가 버리는 여러분들--창피한 줄 아시기 바랍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종이나 자녀들에게 거스리는 말을 감히 한 마디도 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여러분 모르십니까?
모임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천사들에게 도와주게 하십니다, 그리고 천사들은 여러분을 지켜보고,
모임을 진행하는 동안 여러분을 돌봐주고, 그리고서 그 천사들은 여러분이 집으로 갈 때 동행하면서 여러분을
지켜보고 안전하게 보호하도록 소명을 받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이토록 여러분의 형제에 대해서 염려해 줍니까?--여러분 이토록 모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집니까?
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과 동행하는 일을 너무도 쉽게 만드십니다.
이제 다시 어미 독수리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어미 독수리가 어린 새끼 독수리들을, 그들이 하는 모든 행동을,
얼마나 유심히 지켜보는 지 보십시오. 어미 독수리는 관심을 가지고 있고, 새끼들이 둥지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위대하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어떻게 여러분을 지켜보고 계시는지 보십시오.--
하나님도 우리가 떨어지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여호와 독수리는 그의 새끼 독수리들을 지키시고 있습니다!
오 할렐루야! 저는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지 않으신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고 무모한 짓을
저질러 위험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계를 정해주시고 우리를 둥지 안에 지키고
계시고, 큰 두 날개를 우리 위에 펴시는데--이렇게 하시면 아무도 우리를 해칠 수 없고, 그의 손 즉 그분 자신의
둥지에서부터 빼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분에게 처음 태어났을 때 여러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였는지 생각해
보십시오.--하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떻게 지켜 보호해 주셨는지 보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을 보호하실 것을 중단하지 않으십니다. 얼마나 축복받은 우리입니까!
어미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들의 깃털이 다 날 때까지 지켜봅니다.
그리고 그 새끼들이 충분히 성장했다고 생각되면 보금자리를 어지럽힙니다. 망원경으로 이것을 지켜보면서
저는 울었습니다. 어미 독수리는 둥지를 향해 날아가 그 큰 두 날개로 새끼 독수리들에게 돌풍을 일으킵니다.
그러면 새끼 독수리들 옆에 있던 깃털들이 다 날아갑니다, 어미 독수리는 그 새끼 독수리들에게 첫 번째 단독
비행 준비를 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끼 독수리들은 독수리들이기 때문에 무슨 일인가가 일어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급하고 강한 바람의 돌풍을 피부로 느끼고 둥지는 계속 흔들거립니다.
어미는 어떤 비명을 내고는 날개를 쫙 펴고, 그 어린 새끼 독수리들은 본능으로 어떻게 두 발을 어미의 날개에
놓고, 작은 부리들로 커다랗고 강한 깃털을 물어야 할 지 압니다.
어미는 자랑스러운 듯이 고개를 돌려 날개 위에 탄 자기 새끼들을 보고, 한 차례 비명을 지릅니다,
기쁨의 소리이겠죠. 그 독수리 새끼들은 자기 위치를 알고 있고, 어미 독수리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갑니다.
할 수 있는데 까지 높이 올라가고, 어린 독수리새끼들은 조금도 불만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잠잠히 그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곳들을 갑니다.
그들은 창공 속으로 갔고 높이 오르자 어미는 공중 한 가운데서 새끼 독수리들을 흔들어 떨어뜨립니다.
그들을 떨어뜨린 어미 독수리는 새끼들을 떠나지 않고, 지켜보면서 커다란 원을 그립니다.
이제 새끼 독수리들이 날고 있습니다. 그들은 처음으로 날개를 퍼덕거렸습니다.
그들은 재주를 넘고 별짓을 다하지만 어쨋든 날개를 퍼덕거립니다.
새끼 독수리들이 지치면 어미는 곧장 그들 아래로 내려와 다시 더 높이 그들을 업어 데려갑니다.
때로 어미 독수리는 한 쪽 발로 새끼 하나, 다른 쪽 발로 또 다른 새끼를 붙잡고 더 높은 곳으로 데려 갑니다.
그 어린 새끼독수리들은 걱정근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의지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지켜
보호하고 있는 항상 곁에 있는 어미 독수리의 능력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저 옛날식 오순절 희년잔치를 벌이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서 어미 독수리가 새끼들을 다 훈련시키고, 그들이 맘껏 놀았을 때, 어미 독수리는 큰 두 날개를 펴고 새끼
독수리들은 부리로 깃털을 꽉 물고 어미의 날개 위에 앉습니다. 어미는 다시 새로운 것에다, 저 아래 푸른 초원에
다 내려놓습니다. 새끼독수리들은 전에는 그런 곳에 발을 디뎌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저 뛰고 또 다른 희년잔치를
벌입니다. 그들은 걱정근심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미는 일을 끝내면, 다시 아주 높은 곳으로 바위 안으로
날아가 거기 앉아서 새끼 독수리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새끼들을 해치려고 하는 생물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새끼 독수리들은 어떻게 독수리 날개 위에 발을 두어야 하는지와 부리로 깃털을 무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방법을 말해 주십니다,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지,
그 커다란 강한 구원의 두 날개를, 심하게 흔들리는 일이 일어날 때 모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어야 할 지 압니다.
그들은 어떻게 붙들어야 할지 알고 있습니다.--그들은 독수리의 본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꼭 붙듭니다.
어미 독수리는 자랑스러운 듯이 고개를 돌려 날개 위에 있는 자기 새끼들을 봅니다.
저는 종종 하나님께서 교회가 말씀 안에서 자기의 위치를 발견하고 하나님이 하신 모든 약속을 주장하는 것을
보실 때 어떠실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랑스럽게 쳐다보며 진짜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몸의 모든 지체는 위치상으로 자기 자리를 맡습니다, 목사는 목사 자리에 선지자는 선지자 자리에.
하나님께서 말씀 위에 그의 교회를 태우고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우리가 그 위대하신 하나님의 독수리,
그 위대한 성령의 두 날개 위에서 계속 따라가게 될 그 날은 얼마나 좋은 날일까요.
어미 독수리가 높이 높이 올라갈 때 그 어린 새끼 독수리들은 조금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작은 부리로 어미의 깃털을 물고 있으므로 불평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취하시는 방법도 그와 같습니다.--여러분이 진실로 말씀 안에 파묻혀 있다면,
여러분은 불평하지 않고, 그 새끼 독수리들처럼 그저 계속 붙들고만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셨다면,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 안에 파묻혀 있는 사람들은 계속 붙들고 있습니다.
어미 독수리가 새끼들을 지켜 보호하듯이, 그리스도도 우리를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저 높이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아 계시고 세상이 뭐라 말하든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아무 변동이 없습니다.
그저 좋은 시간을 보내고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이 결코 알지도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예비하고
계신다고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자 와서 한 번 타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의 선지자들을 역시 독수리에 비유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선지자를 저 높은 하늘에 속한 곳까지 데리고
올라가서 그에게 장래에 일어날 여러가지 일들을 보여줄 것입니다. 성령은 구약의 나훔 선지자를 무척 높은 곳에
데리고 올라가 그는 오늘날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를 보았고 길에서 자동차들이 서로 충돌하는 것을 보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병거는 거리에 미치게 달리며 대로에서 이리 저리 빨리 가니 그 모양이 횃불 같고 빠르기
번개 같도다.”(나훔 2:4) 바울 역시 높은 곳으로 올려져 마지막 날에 사람들의 상태가 어떠할 지 보았습니다.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자들을 싫어하며(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디모데후서 3:3-5) 바울은 하나님의 독수리로서 하나님의 영역에까지
비상하며 이런 모든 것을 보고 우리에게 그것을 경고하고자 돌아왔습니다. 오,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저는 독수리와 선지자를 생각하고 그들이 가엾은 땅에 매인 병아리들과 비교할 때 얼마나 높이 날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 독수리는 자기 새끼들이 땅에 매인 병아리들처럼 되지 않아야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어미 독수리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그런데 병아리는 교파에 있는 여러분들의 형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하늘에 대한 것은 아무 것도 모릅니다.--그는 한 번도 위엘 올라가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 헛간의 앞마당 병아리들은 자기네 둥지에 앉아서, “하나님이 병을 고치신다는 건 다 거짓말이야,
방언으로 말한다는 것도 그렇고, 성령의 침례를 받는다는 것도 다 마찬가지야”하고 꼬꼬댁합니다.
글쎄요, 그가 어떻게 압니까? 그는 한 번도 헛간마당을 떠나본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그는 결코 하나님의 위대하신 영적인 고지의 푸른 하늘을 치솟아 날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병아리도 독수리처럼 새입니다, 그렇지만 병아리는 하늘의 대기에 대해서는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
독수리에 대해서 얘기하다 보니 저 서부에 사시는 한 농부가 생각나는데 그는 달걀 무더기에다 독수리 알을
하나 갖다 넣었습니다. 그 독수리 알이 부화가 되었을 때 그것은 정말 우스꽝스럽고 몸집이 작은 놈이었습니다.
다른 병아리들은 모두 다 삐악 삐악거렸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 삐악거리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제가 말하는 의미를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그들을 지켜보았고 뭘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 그가 이상한 자라고 말하면서 그를 못살게 굴었습니다.
어미 닭이 꼬꼬 울면 새끼 병아리들도 꼬꼬 울었습니다,
하지만 그 독수리는 그 꼬꼬울음의 의미를 몰랐으므로 병아리새끼들이 어미에게로 몰려갔을 때, 가지 못했습니다.
저는 많이는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여러분이 제가 뭘 말하고 있는지 알아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진짜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 사람들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이 교회에 다닌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 꼬꼬울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독수리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을 아십니다.
어느 날 그들은 마당에 나와 있었는데 어미 독수리가 그 지역 위를 날아가게 되었습니다.
어미 독수리가 날아오자 커다란 그 독수리 그림자가 헛간 앞마당에 드리워졌습니다.
어미 독수리는 아래로 내려다보고 자기 새끼 독수리를 발견했습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에게 소리를 질렀고
그러자 그 어린 독수리새끼는 고개를 돌려 위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위를 보자, 어미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리 와라, 너는 병아리가 아니란다. 거기는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너는 내 새끼란다!”
새끼 독수리는 그것이 자신도 원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교파의 병아리 뜰 안에서 오래토록 걷고 있는 많은 독수리들이 지금 제 말을 듣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시고, “너는 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에게 말했습니다, “한 번 크게 뛰고 네 날개를 퍼덕거려 보아라” 새끼 독수리는 한 번
뛰어 오르고 날개를 퍼덕거렸더니 자기가 헛간 뜰 말뚝에 올라와 있음을 보고 자기는 더 이상 땅에 매인 존재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어미 독수리는 말했습니다, “아들아, 더 높이 올라와라, 한 번 더 뛰면 내가 너를 업겠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에 필요한 것은 교파주의의 장벽과 모든 주의들을 뛰어넘고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보금자리를 어지럽히는 때는 이미 끝났는데 우리에게는 또 다른 도약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헛간 뜰 말뚝만큼 밖에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로워져서 그분의 날개 위에 올라타
첫 번째 단독 비행을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각계 각처에 자녀들을 두고 계심을 무척 기뻐하는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지닌 복음을 들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교파의 머리를 뒤에 두고 완전히 아래로 꺾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위로부터 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본부로부터의 음성이 아니라, 장로회로부터가 아니라, 집사회로부터가 아니라, 주교로부터가 아니라--
저는 하늘로부터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제 마음에 진한 전율을 가져다주었는지 모릅니다!
문제는 이 뜰에 있는 병아리들은 자기들이 뭘 꼬꼬 대는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독수리가 아니라, 한 번도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해 보지 않은 옛날 헛간 앞뜰의 병아리들입니다.
그들은 한 번도 병이 나아본 적도 없고 위대하신 성령에게 복을 받아본 적도 없고, 성령 안에서 춤도 춰 본 적도,
울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독수리는--그는 이런 모든 것을 경험하고 있고 더 많은 경험을 체험합니다.--
그는 계속 계속해서 하늘에 속한 영역 안으로 날아 올라갑니다.
자 여기서 저는 오순절교인이신 분들에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제가 독수리에 대해서 또 한 가지 가르쳐 드릴려고 하는 단순한 진리입니다.
어미 독수리는 매우 지혜롭습니다. 어미 독수리는 자기의 새끼가 평생 둥지 속에서 살 수는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새끼 독수리는 밖으로 나가 자기를 위해서 일을 해야 하고 살아야 합니다. 새끼 독수리는 포근포근한 둥지 안에서,
양가죽 위를 걸어 다니며, 매일 어미가 먹여주고--이런, 그 새끼 독수리는 세상에 아무 근심걱정이 없습니다!
새끼 독수리는 둥지 안에서 무척 즐겁습니다.--마치 방금 성령을 받아 자기가 전 세계를 뜨겁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 새끼 독수리는 언제나 보금자리 안에서 축복들만 가지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오순절 교회가 가진 문제입니다.
오순절 독수리들이여 들어보십시오! 여러분은 둥지 안에 너무 오래 있습니다.
그 커다란 어미 독수리가 어떤 일을 할 지 잘 보십시오.--어미 독수리는 둥지에 와서 커다란 그 부리로 자기
새끼들을 위해 둥지를 부드럽고 쉽게 만드는 모든 것을 둥지에서 찢어내기 시작할 것입니다.
어미 독수리는 양가죽과 토끼털과 푹신 하게하는 것들을 다 내던져 버리고 새끼독수리들이 앉아 있지도 못하게
보금자리를 아주 비참한 상태로 만들어 버립니다.--
앉아있게 되면 새끼 독수리들은 뾰족한 막대기나 가시나무 위에 앉거나 돌 때문에 상처를 입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기꺼이 뭔가를 하게끔 만드실 수 있음을 아십니까?
그런 일은 우리들 중 많은 이들에게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깃털이 잘 깔린 우리 교회 들 안에서 우리에게서
그 푹신한 것을 잡아당기고 깃털을 다 불어버리셔서, 곧 우리는 너무도 비참하고 싫증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오순절 교회가 불편을 느끼고 싫증을 느껴야할 때는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우리 둥지 밑에 많이 깔았습니다, 오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보금자리를 찢고 계시고 그것들이 불편한 것이 되게 하고 계십니다.
어째서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하시는 걸까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스스로 교파를 떠나서 스스로 날게 하시고
있는 겁니다.--마치 어미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비참하게 만들어서 새끼들이 둥지에 머물기를 원치 않고
나가서 그들의 영역인 하늘을 치솟아 오를 수 있도록 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기꺼이 나가서 그분을 위해 일을 착수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가실 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에게 질환이 생기게 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셔야 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해내야 하는 일이 있는데 교회나 교파에서 쉽게 해내려고 기꺼이
나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평생 동안 둥지 안에 갇혀 지내는 걸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둥지를 아무리 좋게 만들어주셨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나가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복 받기만 하는 일보다 더 나은 일을 하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분을 위해 일하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독수리가 되어, 여러분도 가정을 양육하고, 다른 새끼 독수리들을 먹이기를 바라십니다.
어미 독수리는, 자기의 어린 가족을 첫 비행을 시키려고 데리고 나가기 직전에, 둥지 위로 올라와서 그들 위에
설 것입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들에게 너무나 많은 떨어져 나온 깃털이 있음을 보고 커다란 두 날개를 힘차게
때리기 시작합니다.--그래서 오 세상에, 깃털들이 보금자리 밖으로 나가게 하여 금새 새끼 독수리들은 주위에 있던 떨어져 나온 깃털들이 날아가 버린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의 위대하신 어미 독수리는(여호와) 오순절 둥지 위에 자리를 잡고 교회에서 떨어져 나온 깃털들을 날려 버리기 위해 있는 힘껏 두 날개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오순절 교회는 떨어져 나온 깃털들을 한 아름 가지고는 하나님께로 날아갈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은 오순절교인인 여성들과 현대적인 세상적 교인인 여성들 사이에 아무런 차이점도 발견할 수 없는 상태에
다다랐기 때문입니다--오순절교 여자분은 머리를 자르고, 몸에 꼭 달라붙는 옷을 입고, 화장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제가 말씀드리죠.--떨어져 나온 깃털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환상적인 할리우드 스타일로 말씀을 전하는 여러 남자분들--부끄러운 줄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낮게 날려 버려야 할 떨어져 나온 깃털로 가득하면서 여러분이 설교하는 것들을 설교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텔레비젼을 시청하시는 교인인 여러분들--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깃털은 꽤나 떨어져 있군요,
아더 갇프리와 엘비스 프레슬리와 그런 모든 경건하지 못한 것들을 듣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여러분은 왜 자신은 성령 안에서 날을 수 없는지 궁금하게 여깁니다.
여러분은 왜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은사들을 회복시키지 않는지 궁금하게 여깁니다. 제가 그 이유를 말씀드리죠.--
하나님께서는 은사들을 회복시킬 사람을 한 사람도 찾지 못하십니다!
진리를 전파하지 않으려하는 떨어져나온 깃털들을 가진 설교자들--여러분 부끄러운 줄 아시기 바랍니다!
자 이것만 기억하십시오.--여러분이 병아리들과 함께 헛간 앞뜰에 머물기를 원치 않으신다면,
여러분은 아시는 게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병아리는 하늘로 올라가게 할 깃털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순절 교회들인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힘 전체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과 함께 계속 전진하지 않으신다면, 여러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믿지 않은
교회와 마찬가지로 좋지 않은 상태에 있게 됩니다.
교회는 한번 날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미지의, 가보지 않은 하늘로 가야합니다.
헛간 앞뜰만 걸으려고 안주하지 마십시오. 다 같이 하늘에 속한 영역으로 비상할 준비를 해 봅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여러분은 작은 신조들과 교리들과 떨어져 나온 깃털들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안에서 그 불이 밤낮 타오르게 하여 하나님은 여러분의 하나님이심과 하나님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분과 함께 미지의 세계로 날아가게 하실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 점을 이해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누가 자기의 손에서 빼앗아가지 않나 해서 밤낮 그의 기업을 감찰하고 계심을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의 기업입니다,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일어나서, 하나님을 옹위하십시오.
만약 우리가 일어나 하나님으로 우리를 우리의 모든 떨어져 나온 깃털에서 깨끗케 하시도록 허용한다면 하늘로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을 것이고, 우리는 초대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독수리들이 그러하듯, 하늘에 속한 곳으로 들어가고 싶으시면 한 걸음씩 내디뎌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교회가 여러분과 동행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를 떠나야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든 것을 떠나야할 것이고 하나님을 향해 할 수 있는 만큼 높이 뛰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강한 바람으로 여러분 아래로 급히 오셔서 여러분을 업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모임이나 조그마한 교회를 떠나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여호와의 날개 위로 한 걸음 내디디라고--더 높이 올라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의 교파라는 둥지에서 한 번도 나와 본 적이 없다면 지금이 밖으로 나와 이 광대한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날아볼 때입니다. 지금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가지고 계신 모든 것과 그의 왕국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알아야 할 때입니다. 친구여, 교인만 되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있습니다.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는 것 같이,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서 동일한 일을 하십니다,
그저 우리가 무엇인가에 안주하려고 하면, 하나님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카톨릭주의에서 마틴 루터를 끌어냈습니다, 그리고서 그들이 너무도 형식에 치우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둥지를 흔들고 요한 웨슬리를 들여보내셨습니다. 또다시 그들이 형식적이 되자 하나님께서는
피니(Finney)를 들여보내셨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안주해 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보금자리를 어지럽히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급하고 강한 바람을 보내시고 모든 떨어져 나온 깃털을 날려 버리십니다.
여러분은 혼자서 주님을 위해 날을 때는 떨어져 나온 깃털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금자리를 어지럽히시고 오순절 날 그러셨듯이 급하고 강한 바람으로 들어오시고 모든 옛날 떨어져
나온 깃털들을 날려 버리십니다. 그는 오순절 부흥을 보내시고 둥지를 뒤흔드십니다.
여러분이 흔드시는 때가 온 것을 보게 되면, 독수리들은 축복을 받을 준비가 된 겁니다.
교회는 뭔가를 받을 준비가 된 겁니다.
우리 다 함께 하나님의 약속에, 하나님의 말씀에 양 날개를 펴고 믿음으로 성령이 우리를 들어 올리도록 허용합시다.
아멘.
어젯밤 주님께서는 제게 벽에 쓰여진 손으로 쓴 글씨라는 주제로 얘기 하려는 마음을 주셨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저는 성령께서 저를 기름 부으시고 말하게 하고, 여러분들을 기름부으시고 너무도 가까이에
이른 하나님의 일들을 듣게 하시사 우리에게 나타내주심이 너무도 놀라웁다고 여깁니다.
여러분은 간밤에 제가 어떻게 구약의 큰 바벨론의 모형을 들었고 우리가 벽에 손으로 쓴 글씨가 나타났었던 때인
그들이 처한 상태와 동일한 상태에 놓여있음을 발견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이곳 미국에서도 그 당시 휩쓸었던 동일한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도덕성이 극도로 타락하고 희박해졌고, 우리는 술을 마시고 여자들을 하나님처럼 숭배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했던 그대로,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의 날도 역시 계수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저울에 올려 졌고 부족함이 드러났습니다.
죄는 장소와 때를 막론하고 동일합니다. 죄를 예쁘게 보이도록 만들고 그것을 매력 속에 감추고 치장한다 해도
그것은 여전히 죄일 수밖에 없습니다. 죄는 사방으로 퍼지는데 그 이유는 이곳 미국에서 죄는 사람들의 눈에
너무도 매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종종 술이 가져온 악한 것에 대해 생각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술은 밀조주나 올드 활리 발리콘이라 불렸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멋진 이름을 붙여 화려한
병에 담겨 예쁜 색을 띄기조차 했습니다--그러나 그것은 동일한 옛 썩은 마귀의 양조주입니다.
그리고 담배를 보십시오.--옛날에는 늙은 할머니가 옥수수대로 만든 곰방대로 이가 아플 때 피웠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 마귀가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보십시오. 어머니들, 딸들, 오늘날은 심지어 어린 애들까지도--
담배를 피우는 것이 일상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죄입니다. 그것은 다른 이름으로 감춰져 있을 뿐입니다.
옛날에는 도박하는 것이 나쁜 일이었었습니다. 도박을 하려면 도박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서 평판이 좋지 않은
장소엘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지 보십시오! 옛날에는 여자들이 거리를 다닐 때는 술집 문을 지나가지
않으려고 길을 건너 다른 편으로 가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지 보십시오.:
지금은 술집 안에 발을 들여놓고 자녀들은 애기보는 사람에게 맡겨두었습니다, 어머니 대신에 술집 파리가 되려고
그녀는 더욱 인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기가 있든 스타일이 멋있든지 없든지 간에 모두 다 죄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므로,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참으실 수 없으므로,
여러분들로 여러분이 지은 죄의 댓가를 치루게 하실 것입니다. 죄는 사망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는 자는 이미 자기 허물로 죽은 자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닥친 커다란 죄악들을 볼 때 우리는 지평선 너머에, 이 나라에 임할 커다란 임박한 심판이 몰려
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로부터 빠져나가게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가 만약 우리가 살고 싶은 대로 살게 두고 죄의 댓가를 치루지 않게 하신다면 그는 의로우신 하나님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가 지은 죄의 댓가를 치루게 할 것이고 제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거듭 말씀드리지만, 하늘의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로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서 댓가를 치루지 않게 빠져나가게
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일으켜 세우시고 그들을 멸망시킨 것에 대해서 사과해야 할 것인데,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만큼이나 죄를 지었고 어쩌면 더 많은 죄를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세계를 강타하려 하고 있는 임박한 심판의 강풍을
느낄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은 뭔가가 일어나려 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전 세계는 작은 나라들이든 큰 나라든지 공산주의자들과 악하고 왜곡된 불신자들의 손에 단 일분 안에 이 세상을
재로 바꿀 능력이 놓여져 있기 때문에 벌벌 떨면서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못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자비와 오래 참으심 때문인데--하나님께서는 그들로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명심하고 자기 교회를 친히 돌보시는 하나님께 감사히 여겨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침이 되기 전에 러시아의 인공위성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태평스럽게 그대로 지내고 있습니다.
세계는 신경과민이 되어가고 있는데 정신과 의사들조차도 신경쇠약증을 지니고 있을 정도입니다.
위대한 과학자들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신경전쟁의 악영향 하에서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도시나 시골이나 어느 거리나
어느 장소 할 것 없이 여러분은 지구를 무차별적으로 덮고 있는 그 동일한 흑암의 악한 분위기를 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자녀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인식하고 있습니다.—해답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이 곧 오시고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진정으로 거듭난, 성령 충만한, 성령의 인도를 받는 그리스도인들만이
보조를 맞춰 이 시대에서 올라탈 수 있는 빠른 속도로 성취되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해결의 실마리로 이끄는 빛이 없으므로 아무런 해결책을 찾지 못해 빈둥거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긴장감을 잊어버리고 도피하기 위해서 한바탕 락큰롤 음악에 빠져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믿음이 식은 이들 차갑고 형식적인 교회들은(오순절 교회들도 포함해서)
그들에게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 줄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지 못했으므로 이 악한 괴로움으로부터 마음을 돌릴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전 세계에 만연되어 있는 악을 제거해 그것으로부터 자유케 해달라고
기도에 매달리기 보다는 그들은 편안히 쉬고 텔레비젼을 보는 편을 채택했습니다,
저녁식사모임과 바느질 모임을 가지고, 해변과 세상적인 모임 장소로 달려가고, 꽃들과 파랑새들에 대해 설교하고,
그리고는 핵심문제와 하나님의 축복들은 완전히 옆으로 제껴두고 하나님은 병을 고치실 수 있고 기적을 행하실 수
있고 죽은 자들을 일으키실 수 있다는 것과 그 밖에 다른 모든 진리들을 이젠 설교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열렬히 설교해야 할 때인데 그들은 그런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죠? 믿음이 식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전무하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대신 그들은 기도 모임을 더 이상 갖지
않고, 그 시간에 그들은 사교적인 바느질 모임이나 골프장에서 시합을 벌이는 그런 걸로 대치시켰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세상의 악으로부터 피하고자 한다면 하나님께 매달리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이전보다도 더 어두운 날일지도 모르지만 여러분이 계속 기도하고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응답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계속 성도들 곁에 붙어 있으십시오.
만일 여러분의 교파가 기도하는 것과 이 시대의 하나님의 충만함에 귀를 기울이고 드러난 진리를 대면하기를
포기하고 거절한다면, 여러분은 그 교회를 나와서 진리에 매달리고 있는 다른 교회를 찾아보십시오!
여러분은 기도를 계속하지 않고, 금세 끝내버렸습니다. 축 쳐져있는 그리스도인들인 여러분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여러분은 차단 봉을 내려놨습니다. 분명히 차단 봉을 내려놓기가 더 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세상으로부터 그토록 많은 압력을 받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글쎄요. 여러분들은 얼마 안가서 많은 압력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차단 봉을 내려놓은데 대한
심판을 겪는 것 보다 차단 봉을 계속 들고 있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스러운 요셉에 대해서 잠시라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만약 요셉이 지하 감옥에 있을 때 자포자기하고 기도를 중단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자기가 버림당한 것 같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저버리고 자포자기해 버릴 권리를 가진 자가 있었다면 다른 사람이
아닌 요셉이었을 겁니다. 요셉은 죄에 대항했기 때문에 지하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요셉은 그토록 용감하고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옹호했는데 하나님은 어떻게 그가 감옥에 던져지도록 허용하실 수
있었을까요? 분명히 요셉은 반항할 권리가 있었고 그와 같은 일 이후에 믿음이 차갑게 식어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럴 수도 있었습니다.--그러나 요셉은 기도했고 초자연적인 일을 여전히 믿었고 하나님의 강한 손이 그를
구원해 낼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의 오순절 할리우드 설교자들 중 몇 분이나 요셉처럼 버텨나갈까요?
더럽고 이가 득실거리는 감옥 안에서 악한 본성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삼년이나 되는 긴 세월을 지낸다는 것.
그걸 좀 생각해 보십시오.--삼년이라는 긴 세월을--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매달렸고, 기도에 매진했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몇 주일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도 하나님은 여전히 요셉을 꺼내주지 않았습니다.
오, 요셉은 자포자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그는 거듭났고, 포기할 수 없었고, 속에 있는 뭔가가
욥이 그랬듯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당신이 나를 죽이신다 해도 저는 당신을 의지하렵니다.”
요셉은 긴 삼년을 매달렸는데, 그 후 하나님께서는 권능의 손으로 그를 꺼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초자연적인 표명으로 더불어 요셉을 감옥에서 꺼냈고, 요셉이 그 지하 감옥을 나온 그날 이후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힘은 요셉이 어디를 가든지 그와 함께 했습니다.
오늘날 저는 만약 교회가 기도하고, 오 기도하고 매달린다면, 어느 날엔가는 교회는 일어날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그의 권능의 손으로 꺼내실 것이고, 오순절날 그러셨듯이 교회에게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주시고,
요셉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힘을 소유하고 나아갈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교회여, 믿음을 굳게 지키십시오, 곧 구원이 올 것입니다. 진리를 말하고 있는 저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믿으십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는 이제 잠시 동안 시험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거듭난 아들과 딸들은 이제 함께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있고 성령에게 세상과 세상의 모든 올무로부터 빠져나오라는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오로지 하나님께 주의를 집중함으로써만이 이 세상에 임할 모든 악을 떠나 안전하게 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듣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음성이 매일 거듭 말한다 할지라도 인간은 여전히 죄 가운데 살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것들에 잠깐 손을 대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저물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르게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노아의 때와 같이, 롯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하는 날도 그와 같으리라.” 노아와 롯의 때에 멸망과 심판이 어떻게 왔었는지 한 번 살펴보기로 합시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세번째 멸망의 예표이고 표본입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러 오시기 전에, 또는 물로 지구를 멸하시기 전에, 진짜 자비의 외침을 보내셨습니다. 어떻게 에녹이 왔고 죄를 비난하는 설교를 했는지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천사도 보내셨고, 그의 선지자 노아를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뭘 했습니까?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집을 지었으며 “술과 여자와 노래” 뿐이었고, 그들은 에녹과 노아의 메시지를 배척했습니다.
에녹과 노아의 메시지는 은혜와 자비와 구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말씀은 거절당했고, 그들은 계속 죄를 지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그때 세상은 학식이 많은 위대한 사람들도 있었고 훌륭한 과학적 진보를 성취했
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선지자들보다도 자신들의 지식을 더욱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배척당했습니다.--그래서 하나님도 그들을 버리셨습니다.
심판의 물이 내렸을 때 그 물은 믿는 자를 안전하게 했지만 불신자는 사망과 고통에 이르게 했습니다.
노아를 안전하게 했던 물은 불신자를 멸한 물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불신자를 멸하고 신자를 영광스런 곳으로
데리고 가서 심판이 내리기전에 하나님의 아들들을 휴거하게 할 것은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교회는 심판이 있을 때 안전하게 대피해 있을 것입니다. 아멘.
우리는 마지막 때가 가까 왔음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심적 비젼이 담긴 초자연적인 메시지를 전하려 애쓰고 있지만
현대 교회는 롯의 이웃들이 그랬듯이 그 메시지를 거부합니다. 사람들은 롯의 이웃들이 롯을 비웃고 조롱했듯이
초자연적인 것을 비웃고 조롱합니다. 저는 또 여기에 그의 임박한 강림의 메시지를 설교하려고 하지 않는
설교자들이 계신 것도 보았습니다.--그들은 이 중요한 주제를 회피하거나 추종자들에게 그것은 그들 이후의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라고 말을 슬쩍 받아넘깁니다. 그러나 사실은, 제가 전심으로 믿는 바로는, 이 세대는 하나님께서
영광가운데서 내려오셔서 교회에 그의 권능으로 침례를 주시는 마지막 세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다음 절에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라.”
볼 가치가 있는 것을 직시해 보십시오.--초대 교회 시대 이후로 어느 세대가 이 빛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이런
역사들을 나타냈었습니까? 초대 교회는 이와 동일한 사역을 가졌었는데, 나중에 긴 암흑시대들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끝이 가까이 이르러 예수님의 말씀이 다시금 그의 백성들의 마음 안에 불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모든 나라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 일이 행해지고 나면 마지막 때가 되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는 맨 처음에 시작했을 때처럼 능력을 부여받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십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은 은혜와 자비와 구원의 메시지를 들고 나가고 있고 성경이 말씀하는
표적들이--하늘에 나타날 뿐만 아니라--그들을 따르고 있습니다. 약간의 영적 통찰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스스로 이 세대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시킬 세대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롯은 성경이 선언하는 의로운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백성과 소돔 사람들의 죄가 매일 롯의 의로운 혼을
괴롭혔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진정한 아들들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처럼. 롯은 왜곡들과 인간의 몸을 오용하는
것과 마약 중독자, 술꾼, 비행 청소년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롯의 친척들은 그를 비웃으며 그를 믿지 않으려
했습니다. 오 저는 롯을 조롱하면서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소돔같이 큰 도시가, 큰 힘과 능력과 초과학적인 기구들을 갖춘 도시가 어떻게 멸망할 수 있느냐?” 그런데
사람들은 오늘날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세상이 불로 멸망할 수 있어요, 어떻게 종말에 이르나요?”
사람들은 계속 계속 지껄입니다...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제가 어떻게 세상이 멸망당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을 함으로써 세상을 존재시킨 동일한 말씀이 세상을 사라지라고 말을 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세상은 존재하게 되었고, 주의 말씀으로 세상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시여 이 가련하고
불쌍하고 눈멀고 비참한 나라에 자비를 베푸소서. 이 나라는 부해지고 많은 것을 더 많이 가지게 되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벌거숭이이며 그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광경입니까!
소돔이 하나님에 의해서 무너지기 전에 일어난 일을 알아봅시다. 저는 소돔이 불로 소멸되었음을 주목해 보시기를
바라고, 노아의 때에 세상은 물로 멸망당했음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언약을 맺어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하시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불에 관해서는 언약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불로 세상을 멸하셔도 말씀을 폐하시지 않게 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것을 보고 그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을 멸하기 전에 천사를 보내 아브라함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왜죠?
아브라함은 말씀으로 살고 말씀을 지킨 자였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이 사람에게 오는 것은 그렇게 될 때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세 명의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왔고 그에게(하나님의 경건한
선지자) 하나님께서 소돔을 멸하시리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 천사의 방문 목적을 잘 보십시오.--
그들은 마지막 멸망의 경고 소식을 전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그 천사들은 아브라함을 떠나 소돔에 임박한 심판에
대해 전하려 소돔으로 갔습니다. 반대로 소돔은 그 천사들을 비웃고 심지어 그들에게 악한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오, 오늘날 세상의 자칭 교회들과 얼마나 유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진짜 하나님이 보내신 한 사람이 그들의 도시에
들어오면 그들은 그에게 나쁜 일을 하고 뒤에서 그를 지지하고 후원하고, 메시지를 주의 깊게 듣지 않고 그에게
해를 입힐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마지막 날에 대해서 밝히 말하면서, 그들은 그와 같으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 것을 사랑하는 자들이 될 것이고, 조급하며, 자고하며, 배반하며, 참소하며, 선한 자들을 멸시하는
자들이 되리라.”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뇨,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이 아닙니다.--자칭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마지막 날의 메시지를 부인하고, 초자연적인 일들을 부정하며, 들으려하지 않는 자칭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오 그렇지만 롯과 노아처럼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고 믿고 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충성과 주의 은혜로 피하도록 선택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복스러운 일입니까.
여러분 그 큰 홍수에 대해서 말씀을 이런 식으로 읽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땅에 비가 한 방울이라도 떨어지기 전에, 노아는 방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소돔에 하늘에서 불덩이가 하나라도 떨어지기 전에, 롯은 소돔 밖으로 끌려 나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노아의 때와 같이, 롯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우리 시대에 그와 같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여, 손으로 쓴 글씨가 벽에 있습니다. 깨어나십시오!
만약 그 글씨가 벽에 쓰여 있다면, 그렇다면 교회의 휴거는 얼마나 가까이 이르렀을까요? 그걸 생각해 보십시오.
노아는 안전을 위하여 방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롯은 동일한 이유로 소돔 밖으로 나왔습니다.
하나는 나왔고, 하나는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무엇의 예표입니까?
글쎄요, 저는 마음속으로 그것을 이와 같이 그려봅니다.: 그것은 안전을 위하여 세상에서 나와 영광으로 항해해
가기 위하여 그리스도라는 방주 안으로 들어간 교회의 예표입니다. 노아는 안전한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안전한 방주입니다. 그런데 이점을 명심하십시오.--우박과 흑암과 사망이 이집트를 휩쓸기
전에, 이스라엘은 빛이 있는 고센 땅으로 갔습니다. 남자분들 여자분들, 지금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그 날이 오고 여러분은 흑암과 심판 가운데 있는 여기 이 땅에 남게 되기 전에, 안전한 방주로 힘껏 달리십시오.
그분의 자비의 메시지를 영접하십시오. 그 천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두르세요, 이곳을 피하세요.
난 당신이 나갈 때까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니까요.” 심판은 임할 수 없습니다. 러시아는 우리로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할 미사일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국가적으로 영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회에게 “이리로 오라 네가 나가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하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교회가 그들의 교파적 장벽을 무너뜨리고 함께 그의 교회를 영광에다 들어 올릴 수 있는 성령의
진짜 퍼부어주심을 위해서 나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너희가 이곳에 오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할 수 없노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몸 안에 연합시키고
세계의 멸망이 이르기 전에 우리를 휴거시키도록 함께 모여야 합니다.
교회여,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심으로, 오늘날 여러분을 방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계실 동안에, 귀를 기울여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십시오. 인간이 만든 교파들의, 이들 인간이 만든 바벨론의 벽을 넘어 이리로 오십시오,
인간이 만든 신학과 신조로부터 도망쳐 나오십시오, 하나님의 은혜 한 가운데로 뛰어와 자비를 구하며 외치십시오,
왜냐면 여러분을 구원할 것은 그의 아들의 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의심성향과 미신들로부터 빠져나와,
주의하여 그의 은혜 한 가운데로 도망하시고 사십시오. 왜냐하면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겠는데 인간이 만든
교파들의 벽들은 불신하는 세상과 더불어 무너지고 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의로운 롯과 의로운 노아가 빼냄을 입은 것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도 빼냄을 입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주의 깊게 들으신다면 여러분은 원자탄 하나도 보지 못할 것이고 멸망의 무기가 하나라도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여러분은 하나님의 위대한 나라에서 안전하게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을 그의 살아계신 영으로 지키시고자, 잠자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로부터 빠져나오게 하려고 애쓰시며 당기시는 것을 느끼시지 못하시겠습니까? 주님을 찬양합시다,
그는 우리 눈을 뜨게 하시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우리가 당신께 나아옵니다,
우리가 이곳에 올 때에 우리를 소성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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