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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미국 국립 문서기록 관리청 NARA)
의전차량의 역사, 1부인만큼 오늘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의 의전차량들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부터 1960년까지 12년 동안 3대에 걸쳐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장기집권으로 인한 자유당의 부패와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혁명으로 물러나게 됩니다.
의전차량이라고 해도 공식 차량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이승만 대통령만 해도 여러 대의 차량을 번갈아가며 이용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총 3대의 차량을 의전차량으로 이용했습니다. 1부에서는 3대의 차량 중 생산연도가 오래된 순으로 두 대를 만나보겠습니다.
1. Lincoln Cosmopolitan 1951
대통령 의전차량으로 사용된 기간 ? ~ 1956 (추청)
다음 편에서 소개해드릴 1956년식 캐딜락 시리즈 62가 최초의 의전 차라고 알려져 있지만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의전차량은 1951년식 링컨 코스모폴리탄 (Lincoln Cosmopolitan - 1951)입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에 취임했으니 이 차량의 출시연도보다 3년이나 앞서기 때문에 대한민국 최초의 대통령 의전차량은 다른 차량 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Lincoln Cosmopolitan 1951 (출처 - classiccarsbay)
코스모폴리탄은 포드 자동차 고급 브랜드인 링컨의 플래그십 모델로 1949년~1954년까지 생산되었으며 그중 이승만 대통령의 의전차량은 1세대 마지막 연도인 1951년식입니다. 60년대부터는 링컨의 플래그십으로 컨티넨탈(Lincoln Continental)이 코스모폴리탄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Cosmopolitan [ˌkɑːzməˈpɑː l-]은 세계적인, 범세계주의자적인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드카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 이름이기도 합니다.
차량 제원
전장 (길이) 5,652mm
전폭 1,986mm
전고 (높이) 1,590mm
중량 2,200Kg
엔진 포드 플랫 헤드 V8 엔진
1952
1952-0417 이승만 대통령 진해 해군기지 방문 (미국 국립문서 기록 관리청 NARA)
차량이 등장한 가장 오래된 장면은 미 국립문서 기록 관리청 자료 속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4월 이승만 대통령이 진해 해군기지를 방문한 사진입니다. 차량이 1951년식, 사진이 1952년에 찍혔으니 전쟁통에 차량을 들여온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독특한 C 필러와 측면을 두르는 크롬 몰딩이 51년식 링컨임을 말해줍니다.
1953
1953-0815 대한 뉴스 제25호 광복절 및 리 대통령 재취임 1주년 기념식
1953-0815 대한 뉴스 제25호 광복절 및 리 대통령 재취임 1주년 기념식
1952년 대통령 직선제 등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발췌개헌을 통해 2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1년이 지난 1953년 8월 15일 중앙청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재취임 1주년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휴전협정을 맺은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입니다. 두 번째 사진 중앙에 밝은 정장을 입은 이승만 대통령의 모습이 보입니다. 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는 영상에서 몇 가지 특징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기
먼저 차량 전면부에 대한민국 대통령을 상징하는 문양을 단 번호판이 보입니다. 또한 오른쪽 깃대에 같은 문양의 대통령기가 걸려있으며 왼쪽에는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습니다. 오른쪽에는 태극기, 왼쪽에는 대통령기를 다는 지금의 의전차량과 작은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서는 현재와 많이 다르지 않은 모습입니다.
1954
1954-0725 대한 뉴스 제43호 리 대통령 향미 출발
1954년 7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을 순방하기 위해 여의도 비행장에 도착한 이승만 대통령의 모습입니다. 코스모폴리탄은 앞뒤 좌석의 도어가 양쪽으로 열리는 코치 도어(Coach Door)의 형식을 하고 있습니다. 1950년대 차량이라 그런지 고급 세단치고 인테리어가 단출한 편입니다.
1955
1955-0326 대한 뉴스 제54호 리 대통령 각하 제80회 탄신 경축
1955-0326 대한 뉴스 제54호 리 대통령 각하 제80회 탄신 경축
1955년 이승만 대통령의 80세 생일에 성대하게 열린 경축식입니다. 대통령 각하 탄신 경축식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참 어색합니다. 두 번째 사진 오른쪽에 당시 국회의장이던 이기붕이 보입니다.
봉황무늬 번호판과 대통령기가 더욱 뚜렷하게 보입니다. 대통령 문양이 현재와는 다르게 두 마리 봉황의 간격이 더 좁고 꼬리가 아래로 길게 꺾여 무궁화 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1956
1956-0316 3선 출마 촉구 시위대와 만난 이승만 대통령 (출처-e 영상 역사관)
1956-0425 경무대로 들어서는 이승만 대통령 의전차량 (출처-국가기록원)
1956-0815 제3대 대통령 취임식 및 제11주년 광복절 기념식 (출처-국가기록원)
1956-0815 제3대 대통령 취임식 및 제11주년 광복절 기념식 (출처-국가기록원)
이승만 대통령의 3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사용된 의전차량이 바로 이 링컨입니다. 아쉽게도 초대, 2대 취임식에서 사용된 의전차량에 대해서는 유의미한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측면 사진을 통해 5.5m가 넘는 거대한 차량의 크기를 체감할 수 있습니다.
1952년식 링컨 코스모폴리탄은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대통령 의전차량이자 한국전쟁, 3대 대통령 취임식에 사용된 차량으로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차량이라고 하겠습니다.
여담으로 미국의 트루먼(Harry S. Truman) 대통령과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대통령도 재임 중 1950년식 링컨 코스모폴리탄을 개조한 의전차량을 이용했습니다. 특히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60년 방한 당시 미국에서 공수해온 링컨 리무진을 타고 서울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진행했습니다.
1960-0619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방한 (출처 - LIFE 지)
51년식 링컨의 측면 크롬 몰딩이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이 50년식 링컨은 휠 아치 위쪽으로 눈썹처럼 두껍고 짧게 끊겨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외빈 1'이라고 적혀있는 번호판이 인상적입니다.
날짜 미상 김일성 일가의 일상 사진(출처 - 청암사진연구소, 서울앤)
또한 청암 임인식 사진가가 한국전쟁 당시 평양 사진관에서 노획한 사진을 보면, 어린 김정일로 추정되는 아이가 찍힌 이 사진 뒷 배경으로 1949년식 링컨 코스모폴리탄이 보입니다. 이 차량은 정황상 김일성이 타던 차량으로 추정을 해볼 수 있는데, 사실이라면 재미있게도 당시 남,북,미 정상이 나란히 51년식, 50년식, 49년식의 링컨 코스모폴리탄을 이용했다는 것이 됩니다.
1959-0505 대한 뉴스 제212호 이승만 대통령 귀경
사진 속 차량은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선물 받았다고 알려진1 1956년식 캐딜락 시리즈 62(Cadillac Series 62 - 1956)입니다. 이 차량은 1956년 가을경 처음으로 확인되었고 링컨은 8월의 취임식 행사 이후 더 이상의 자료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상 캐딜락에게 자리를 물려준 것으로 보입니다. 이 차량은 2부에서 자세히 다루어 보겠습니다.
2. Packard Patrician 1956
대통령 의전차량으로 사용된 기간 1956 ~ 1966
소개해드린 링컨과 캐딜락 말고도 이승만 대통령이 애용한 한 대의 의전차량이 더 있습니다. 바로 '서울 관 1' 관용(官用) 차량 번호판을 단 1956년식 패커드 패트리시안(Packard Patrician - 1956)입니다.
Packard Patrician 1956 (출처 - Flickr, Richard Spiegelman)
패커드(Packard Motor Cars)는 1899년 설립된 미국의 고급차 브랜드입니다. 20세기 전반 캐딜락과 쌍벽을 이루며 12기통 엔진을 최초로 개발하고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의 방탄 의전차량을 납품하는 등 호황을 누렸으나 2차 세계대전 이후 변화하는 시장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해 1958년 사라지게 된 자동차 회사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의전차량으로 사용한 이 3세대 패트리시안은 패커드의 사실상 마지막 모델, 그중에서도 마지막 연도 생산 차량입니다.
패트리시안 [pəˈtrɪʃn]은 귀족, 귀족적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고대 로마시대 귀족계급을 칭하는 라틴어입니다.
차량 제원
전장 (길이) 5,580mm
전폭 1,990mm
전고 (높이) 1,580mm
중량 2,075Kg
엔진 패커드 6.2 V8 엔진
1956
1956-1212 대한 뉴스 제99호 공보관 개관
1956년 12월 대한 뉴스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이승만 대통령의 패커드입니다. 보닛 오른쪽의 깃발은 대통령기로 보이지만 특이하게도 번호판은 봉황무늬가 아닙니다. 이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차량에 부착된 번호판은 관용 번호판입니다.
홍종철 문화공보부 장관 관용차량 , 1968년 변경 이전의 승용차량 번호판 (출처 - 국가기록원, 서울 역사아카이브)
관용 번호판은 공무집행을 위해 이용되는 차량에 주어졌던 번호판으로 남색 바탕에 흰색 문자를 부각하였습니다. 1946년 번호판 개정으로 탄생해 1968년 관용, 일반 자가용 모두 백색판에 남색 문자를 부각하는 것으로 통일되고2 1973년 지금의 초록색 번호판으로 변경되면서 사라졌습니다.
정권의 위세가 대단했던 시절이어서 경찰 간부가 공무용으로 지급된 관용 번호판을 자가용에 달고 다니다 적발되거나3 범죄에 위조된 관용 번호판을 사용하는등4 관용 번호판이 악용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자가용도 귀하던 시절에 관용차랑, 나아가 소위 높으신 분들이 받던 특권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1957
1957-0313 이승만 대통령 경남 진해 출발 (출처 - 국가기록원)
이승만 대통령이 경남 진해를 방문하기 위해 패커드를 타고 비행장에 도착한 모습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임기 중 진해 해군기지 내에 있는 대통령 별장에서 정국을 구상하거나 휴가를 즐기곤 했습니다.
1957-0921 응오딘지엠 월남 대통령 방한 (출처 - 국가기록원)
베트남 전쟁에서 패망하기 전까지 대한민국의 우방이었던 베트남 공화국의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의 사진입니다. 처음으로 차량 왼편에 태극기가 달렸습니다. 오른쪽에 깃발은 대통령기인지 베트남 공화국 국기인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후의 자료에서도 태극기를 단 모습은 확인할 수 없어서 국빈 방문차 양국의 국기를 차량 양쪽에 단 것으로 추정됩니다.
1957-1001 이승만 대통령 제2회 국군의 날 행사 참석 (출처 - 국가기록원)
제2회 국군의 날 행사를 위해 차량에서 내리는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차량의 실내가 살짝 보이는데, 링컨보다도 10cm나 더 긴 차량답게 내부 공간이 넉넉해 보입니다.
이승만 대통령 뒤에 보이는 인물은 지금의 청와대 경호실장 격인 경무대 경찰서장인 곽영주(郭永周)입니다.
1960
1960-0103 이승만 대통령 북악산 시찰 (출처 - 국가기록원)
1960-0103 이승만 대통령 북악산 시찰 (출처 - 국가기록원)
1960-0103 이승만 대통령 북악산 시찰 (출처 - 국가기록원)
3년이 지난 1960년 1월의 모습입니다. 집권 후반기에는 이 차량보다는 캐딜락을 더 자주 이용했기 때문에 이 차량이 등장하는 자료가 많지 않습니다. 봉황 번호판을 단 차량은 캐딜락이고 어디까지나 이 차량은 관용차량이기 때문이겠습니다. 오른쪽 대통령기를 덮개로 가려놓았습니다.
역시 이승만 대통령 곁에서 밀착 경호하는 곽영주의 모습이 보입니다. 권력만을 향한 과도한 충성은 결국 몰락을 낳고 말았습니다. 곽영주는 4.19혁명 당시 시위대에 대한 발포 명령 책임 및 권력남용 등의 죄목으로 1961년 사형 당했습니다.
1960-0??? 이화장 내 주차장 모습 (출처 - 조선일보)
1960-0529 이화장을 떠나는 이승만 전 대통령 내외 (출처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경향신문)
헌정 사상 초유의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자택인 종로구 이화장(梨花莊)으로 돌아가 칩거하게 됩니다. 경무대에서 이화장까지 이동하는 길에는 캐딜락을 이용했지만 이후 칩거 중이던 이화장 주차장을 찍은 사진에서 패커드가 확인됩니다.
두 번째 사진은 5월 29일 경향신문 석간의 특종 보도에 실린 사진입니다. 대통령 하야 후 이화장에 주차되어 있는 조선일보의 사진과 경향신문의 사진을 통해 하와이 망명길에 오른 이승만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탑승한 차량이 관용 1호 차 패커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이후 대한민국으로의 귀국 의사를 수차례 전달했지만 1965년 90세를 일기로 사망해 유해로 이송될 때까지 고국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1960-0426 시위대가 탈취한 이기붕의 관용차 (출처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여담으로 동시대에 '서울 관 3' 번호판을 단 차량은 3.15 부정선거에서 부통령에 당선된 이기붕의 1959년식 뷰익 엘렉트라(Buick Electra - 1959) (입니다. 2번이 아니라 3번인 이유는 이기붕은 부통령에 당선되기 직전까지 제4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권분립에 의거해 의전서열 2위와 3위가 각각 국회의장과 대법원장인 지금과는 달리 의전서열 1위가 대통령, 2위가 부통령, 3위가 국회의장이었던 당시 상황에 비추어 부통령에 갓 당선된 이기붕의 관용차량은 아직 국회의장의 번호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부정선거와 과잉진압으로 분노한 시민들은 4월 26일, 하루 전 이기붕과 그의 가족들이 빠져나가고 텅 빈 종로 자택을 박살 내고, 그의 자동차를 끌고 거리로 나와 시위에 사용하다가 부숴버렸습니다. 이 차량은 이기붕 개인의 차량이 아니라 정부 재산이라 망실되지 않았다면 다음정부에서까지 사용되었을 텐데 비극적인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생산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새 차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다소 아쉽습니다.
사진이 찍히고 이틀 뒤인 28일 이기붕의 아들 이강석이 부모인 이기붕과 박마리아, 동생 이강국 등 온 가족을 총으로 쏘고 자살하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1961
1961-0415 윤보선 대통령 4월 공원 기공식 참석 (출처 - 국가기록원)
왼쪽 후면의 일부분만 노출되어있는 차량의 모습이 보입니다. 번호판이 노출된 사진을 구할 수 없어 아직까지 관용 1호차로 이용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망명길에 사용된 이후에도 후임인 윤보선 대통령의 대통령의 의전차량으로 이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66
1966-0531 청와대 차량 (출처 - 국가기록원)
1966-0531 청와대 차량 (출처 - 국가기록원)
출시된 지 10년째인 1966년 청와대의 차고지를 찍은 사진입니다. 이제는 연식이 오래되다보니 박정희 대통령 취임이후 공식석상에서 사용되지는 않아도 청와대 차량으로 폐차되지 않고 남아있는 모습입니다.
패커드 브랜드도 주인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의 1공화국도 망하고 없는 66년의 어느 날 차고 구석에서 쓸쓸하게 말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권력의 무상함이 느껴집니다.
1956년식 패커드 패트리시안은 이후 캐딜락 일색인 의전차량 중 독특하게 패커드의 차량을 이용했다는 것과 이승만 대통령의 관용 1호 차로 쓰였으며 하와이 망명길에 탑승한 차량이었다는 점으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출처] 대한민국 대통령 의전차량의 역사 - Vol.1|작성자 블루원더(2020.1.1, 경자년 첫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