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만에 만난
명진 스님
2026년 8월 6일 목요일 사시(巳時)
입추를 하루 앞둔 낮 전, 관음재일에
전 봉은사 주지를 역임하셨던 존경하는 명진스님께서 삼소굴을 찾아 주셨습니다
이 얼마만인가
난 처음 내 눈을 의심하였다.
"나 명진이요"
'백련암에 그 명진'
"그래요 잘 계셨소"
이렇게 쌍계암 삼소굴 뜨락에서 삶 전으로 이어온 명진 행자(行者)를
56년만에 해후하였다.
1969년 명진스님은 성철스님이 주석하시는 백련암으로 출가하셨고
나는 그 이듬해인 1970년 여름 해인사 용탑선원 윤고암 대종사 문하로 입산하였다.
1950년생 명진 행자는 나(1956년)보다 나이가 여섯살이 더 많다
그 때 백련암에는 성철스님의 상좌 천제스님이 계셨는데
나를 무척이나 귀여워 해 주셨다.
갈때마다 다과를 내어 주시며 어린 나에게 많이 먹으라고 하셨는데
그때 명진 행자를 만났다
그런 날이 지나고 나서 다시 가보니, 명진 행자가 백련암을 떠나갔단다.
그리고나서는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1980년 8월에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환계하여
고향마을 강정으로 내려 왔기 때문이다.
해인사 도반들은 지금도 찾아 주시지만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이 그 명진 행자인 줄은 몰랐었었다.
그런데
명진스님은 제주도에 와서도 꾸준하게(???) 수소문을 한듯하다
내가 서귀포에서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포교 활동(?)을 지금껏 하여 오는 과정에서
이곳 지인들이 알게 모르게 나의 얘기를 명진스님께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명진스님을 이곳 쌍계암에 처음 찾아 와보니 사람이 아니 보여서 그대로 돌아가셨고
오늘 8월 6일 관음재일에 영실 등산 가면서 다시 찾아 오셨다는 것이다.
부처님께 예를 올린 명진스님은
내부에 걸어 놓은 옛 사진 해인사 안거기념 대중 스님 촬영 사진(1971. ~1973)들을 보더니
도반 모두를 만난듯 반가워하면서
백련암을 떠나간 다음, 법주사고 간 이야기
월남전 참전부터 봉은사를 지나 여기까지 이야기를 주마등처럼 소상하게 말씀하여 주신다.
나 또한 환계 후
고향마을 강정에서 농사짓던 이야기
서귀포시청에서 문화재연구원으로 있으면서 공직 생활 후, 쌍계암 삼소굴을 세운 이야기
등 등 소상하게 말씀을 드렸더니, 이렇게 만나서 너무 반가우시단다.
그러고 보니
언제 보아도 스님에게선 문경 봉암사의 수좌 기풍이 울립니다
그
울림 그대로 스님은
한국불교의 미래를 열어나가는 승가의 흔들림 없는 명등(明燈)이십니다.
위에서도 밝혔지만
명진스님은
1969년 저보다 1년 먼저 성철 큰스님이 주석하고 계시는
해인사 백련암으로 입산 하신 다음 법주사로 가셨습니다
오늘은
모처럼 1970년대로 회귀하여
스님과 함께 회광반조하면서 그날의 기억들을 소환하며 담소를 나눴습니다
이제는
1970년대 해인사를 회고할 수 있는
스님들도 몇 분 아니 계시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당시 해인총림 해인사에는
고암 종정 큰스님
방장 성철 큰스님
유나 지월 큰스님
동당 자운 큰스님
서당 영암 큰스님을 비롯한 선지식 대종사들이 주석하시며,
오백 넘는 산중 대중을 이끄시었고,
주지 지관스님,
율원장 일타스님.
선원장 혜암스님,
수도암 법전스님,
한주 봉주스님 등
중견 스님들이 호법을 하셨고,
법혜. 도성. 도법. 무비. 장윤. 수진. 수경. 무관.정우. 자승스님 등
젊은 소장들이 용상방을 꾸려 갔었던 시절
저는
학인 시절 소임은
다각(茶角)을 시작으로, 종두(鐘頭), 노스님, 주지스님 시자(시者)를 지냈었지요
그러했던 소중한 인연을 떠올리면서 해인삼매의 바다에 반야선을 띄웠습니다
벌써
56 성상이 지난
참으로 소박했던 시절 귀한 인연들입니다
ㅎ
ㅎ
명진스님과 셀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