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출애굽기 29:10-37
본문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아론과 그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위임하는 것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저는 아론과 그 아들들의 제사장 위임식이 저에게는 목사를 안수를 받던 것을 생각나게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요금 목사 안수식은 십자가에 대한 무거운 부담을 느끼는 그런 거룩한 분위기는 없습니다. 일가친척과 교인들과 친구들이 꽃다발과 돈 봉투를 건네주고 교회 밖은 장사꾼들로 시끌벅적하고 안수식이 끝나면 주변 식당은 밥을 먹는 축하객들로 요란합니다.
목사 안수를 받을 때 저는 교인들에게 아무 말도 했습니다. 혹시나 알까 겁났습니다. 온다고 할까 말입니다. 저는 목사 안수를 축하를 받을 만큼 십자가에 환장한 그런 종은 못 됩니다. 목사 안수를 받으려면 가운를 맞추는데 저는 가운도 안 샀습니다. 가운도 계절 별로 맞추면 큰돈이 들어갑니다. 안수식에 아버지 가운을 빌려갔습니다.
나중에 성도님들이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을 알고 가운을 사라고 30만원을 주었는데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타고난 성격이 그런지 처음부터 가운을 입고 싶지가 않습니다. 제가 가운을 입은 것을 거의 못 봤을 겁니다. 아버지가 은퇴하면서 물려준 가운도 장롱 안에 두니 곰팡이가 났더군요. 현대 아파트에서 이사할 때 다 버렸습니다.
전에 교회에서 목회할 때 어떤 분은 헌금봉투에 저에게 편지를 썼더군요. 왜 목사님은 가운을 안 입으시냐고 말입니다. 가운을 입고 안 입고 목사 자유이지 옷 입는 것 까지 상관하는 정말 한 일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안 입었습니다. 앞으로도 안 입을 겁니다. 가운도 있지도 않고요.
가운을 입으면 치렁치렁하니 거추장스러운 것도 있지만 왠지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내가 입어야 할 옷이 아닌 기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렇고 사람들을 볼 때도 그렇습니다. 나를 포장하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 옷을 입는 다고 거룩해지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벌레만도 못한 더러운 죄인이고 사람들 앞에서도 나는 아무 것도 아닌 놈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 마음이 편합니다.
목사 안수를 무거운 마음으로 받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제 앞에는 무거운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대천에 올 때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깨닫게 하셨습니다.
제 마음은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내가 어떤 길을 갈 것인지는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대천에 가면 처음에는 예수님처럼 큰 환영을 받겠구나. 여러분은 저를 환영하지 않았지만 저를 미워하며 쫓아낸 사람들은 호산나를 외치며 환영했습니다. 그 환영을 받을 때에도 앞으로 이 사람들이 나를 미워할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내가 가는 이 길이 예수님처럼 죽으러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대천에 오기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결국은 제가 죽어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교회를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한 설교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며 외치신 것처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였습니다.
그때 저는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일 때 사람들은 얼마나 좋아했습니까? 눈에 가시 같은 것을 제거 했으니 우리가 이겼다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좋아했을 것입니다. 몇몇 성도들만이 예수님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버림을 받는 그 고통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사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 죽음으로 영원한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지금 나는 패한 것 같고 여러분은 승리한 것 같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잘은 모르지만 이게 끝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고 우리가 드디어 이겼다고 좋아하였지만 하나님은 십자가에 죽은 그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것처럼 이 고난과 고통으로 나도 살려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교회를 나와 개척하고 3년 동안 대인기피증과 때때로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제가 교회를 나온 그때가 되면 마음은 다 찢어지는 같은 깊은 슬픔이 몰려왔습니다. 왜 죽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렇게 고통 중에 말씀을 붙들고 3년이 되던 어느 날 꿈에서 주님이 흰 옷, 가운을 들고 찾아오셨습니다. 제가 받은 고난에 대하여 다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제 믿음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별 것도 아닌 그 치렁치렁한 가운은 입고 싶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진짜 부러워하는 힘 있는 가운은 입고 싶었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가 그랜저를 타면 사람들은 돈은 있나보네 인정하면서도 교만하다고 정죄할 것입니다. 그러나 큰 교회 목사가 모닝을 탄다면 사람들은 정말 겸손하다고 존경할 것입니다.
제가 입고 싶었던 목사 가운은 몇 십만 원 짜리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인정과 존경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높은 곳에 올라가기를 원했습니다. 주님은 이미 교회에서 쫓겨날 때 요한복음 8장으로 제가 누구인지 말씀해주셨습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 매를 맞고 옷이 다 벗겨져 주님께 끌려온 그 여자가 바로 저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사람들을 시켜 네가 입고 자랑하고 싶었던 그 옷을 다 벗겨내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옷이 다 벗겨져 부끄러운 곳을 겨우 손으로 가리고 고개를 들지도 못하는 그 여자에게 자기 옷을 벗어 그 부끄러움을 가려주셨을 겁니다.
주님은 제 방에 흰 옷을 걸어놓으시고 이 옷을 입고 내게 오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하나님으로 만들고 싶은 그 정욕과 탐심의 옷을, 내가 죽고 주님이 사는 그 십자가의 회개와 죽음으로 주님의 주시는 흰 옷을 입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생각해 봅니다.
불신자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중에 대부분은 끝까지 자기 옷을 입고 죽습니다. 자기 옷을 벗고 흰 옷을 입는 사람들은 정말 소수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벗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간음하다 주님께 잡혀온 여인이 스스로 그 정욕의 옷을 벗겠습니까? 숨어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니 두렵지만 그래서 더 달콤한 것입니다. 그 여자가 어느 날 그 간음을 들킨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입니다. 회개하고 돌이켜서 새롭게 될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안 들켰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을 때까지 욕망을 섬기며 죄를 짓다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제가 교회에서 치욕을 받고 쫓겨난 것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날 버리신 게 아니라 나에게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회개하는 자들만이 흰 옷을 입기 때문입니다. 흰 옷을 입은 자들이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며 구원을 이루어가고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위임식은 먼저 속죄제로 시작합니다. 속죄제를 드린 다음에 번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숫양을 잡은 이후에는 그 피를 아론과 그 아들들의 오른쪽 귓불과 엄지손과 엄지발에 바르게 하셨습니다.
위임식 숫양의 가슴과 넓적다리는 아론과 그 자손에 돌아가는 분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위임식을 7일간 진행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 위임식을 통해 성도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먼저 속죄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즉 천국으로 가는 첫 걸음은 내 죄를 대속하는 속제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철저하게 마음과 영으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속죄의 제물이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듯이 내 죄를 대속하신 그 십자가 앞에 내 죄를 깨닫고 자복하고 그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가 없이는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 앞에 죽어야 할 죄인임을 깨닫게 될 때 그 십자가에서 내 죄를 대속해 주신 보혈의 은혜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씻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죄를 용서받지 못하면 누구든지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회개는 무엇입니까?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을 박고 죽을 때까지 그 죄와 싸우며 결국은 그 죄를 끊어내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회개를 한 이후에도 죄에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과 영으로 회개한 자들은 죄에 종노릇 하지 않고 자신을 대속한 그 십자가로 죄와 싸우며 다시 일어나 거룩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을 십자가 앞에서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정말 십자가 앞에 회개하였는지 말입니다. 자아숭배를 끊어내고 죄와 싸우고 있는지 말입니다. 누구든지 십자가를 만나 회개만 하면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만나 마음과 영으로 회개하고 거듭난 자들이 번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번제는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를 깨끗하게 씻음을 받고 죄와 싸우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부어져 흐르게 될 때 우리는 죄와 싸워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속죄제로 죄 사함을 받고 번제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려 헌신하는 자들을 하나님 나라에서 함께 먹고 마시는 자들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영원히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은 완전하여서 영원한 안식과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완전하고 영원한 영광을 함께 누릴 거룩한 제사장들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있는 것입니다.
그 영광을 믿고 소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고난을 받아도 절대로 자기 옷을 벗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벗어주시는 그 흰 옷을 입으셨습니까?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절대로 그 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회개가 가장 중요합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이 큰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우리는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내 죄와 싸우며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자신을 못을 박고 회개하는 자들은 죄와 싸워가며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한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속죄제의 믿음과 번제의 삶을 사는 거룩한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이루어 우리 주님 앞에서 함께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는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 영광에 참여하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