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2:11-13,소명의식이 분명한자는 세월을 아낍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내려오는 기간이 3개월정도 소모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3일의 휴식을 취하였는데 그 휴식도 그냥 육체의 쉼이 아니라 기도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어지는 12절에서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다’라는 표현에서 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고 지도자는 기도의 사람이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기도하면서 주의 인도를 따라 할 때 실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기도가 없으면 자기가 들어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시간을 아끼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명,.주께서 부르심이고 사명은 일입니다. 주께서 부르셔서 일을 맡기심이 분명하다면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게으른 자를 싫어하십니다. 1달란트를 받은 자는 그것을 가지고 나가서 일하지 않고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땅은 무엇을 말합니까? 저기에 있는 흙입니까? 그것도 말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자신 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래 쓸모없는 흙 덩이었습니다. 어디에 말하고 있나요? 창1:2절에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위에 운행하시니라’ 혼돈이란 (토후)‘성읍이 무너져 뒤범벅이 된 상태’(사24:10), 또는 ‘아무렇게나 버려진 황무지’(신32:10), 무질서, 불모지, 황무지, 황야, 허무, 헛됨, 무익하다,(사49:4, 45:19) ‘공허’(와보후),‘황페하다’ 거기에 빛도 없어 ‘흑암’, 캄캄했습니다. 어두운 밤입니다. 아예 빛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 캄캄한 땅이 ‘깊음’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 즉 칠흙같이 어두운 깊은 바다 잠겨 있었습니다. 지구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나의 모습입니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전11:5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139:15-16,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버려진 땅 황무지에 빛을 주시고 생기 (호흡)을 주시고 품속에 품어 사랑해 주시며 너는 내 것이라, 그러니 감사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1달란트 주셨다고 자신안 깊은 곳에 묻어 놓았다가 주님이 오실 때 당신의 것을 받으소서 하고 내 놓을 때 주님은 악하고 게으른 종아, 주님은 게으른 종을 악하다고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주님이 주시는 시간을 잘 활용했는지..돌아보아야 합니다. 존재의 의미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했습니다. 그 결과 52일만에 성전을 중건을 했습니다. 내 안에 성전은 잘 지어졌습니까? 예수님처럼, 느헤미야처럼, 우리는 일정한 시간을 주셔서 그 기간에 일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말하기를 살과 같이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이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라”(롬12:11),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2)세월을 아끼라 3)때가 악하니라”(엡5:15,16),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살전2:9)
12절에 하나님은 기도하는 느헤미야 마음에 생각에 일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신 것을 말씀합니다. 주의 일은 많은 사람에게 상의, 혹은 회의, 이것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닌 것을 보여 주십니다. 또한 감동을 주셨을 때 순종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일 하기를 바라시고 감동을 주셨는데 하지 않으면 그것도 역시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는 결과를 가져 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라”(살전5:19), 무언가 하고 싶을 때는 마음에 감동이 밀려오면 그것을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심이 서면 믿음으로 할 때 받으시고 넘치는 은혜로 부으십니다.
느헤미야는 성령의 감동이 왔을 때 환경과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일이라면 주님만 바라보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라하신 일에는 뒷일을 주께서 감당해 주십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1:6),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약2:14-16).
13절에 느헤미야는 용정, 용의 우물이란 뜻입니다. 아마도 이방인들이 붙여 놓은 이름 같아 보입니다. 유대인들은 욥의 우물이라고 했는데 왜냐하면 욥의 피부병을 이 우물에서 씻어서 나았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용정을 지나서 성벽을 둘러보니 많이 훼파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주변에 유대인들이 많이 있어 음에도 수축하지 않았습니다. 아가서는 말씀하기를 포도밭을 허무는 여우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내 안에 성전은 허물어진 곳이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무너진 곳으로 여우가 들어옵니다. 처음에는 작은 여우가 들어오지만 구멍이 커질수록 큰 여우가 들어옵니다. 나의 믿음이 구멍이 나 있을 때, 시험이 찾아옵니다. 거기에는 탐심도 있고 교만도 있고 시기 질투도 있습니다.
미움과 원망, 불평, 혹은 좌절, 낙망이 그것입니다. 이것이 쌓여서 커지면 병으로 자리를 잡고 결국은 큰 병으로 생명까지도 삼켜 버립니다. 이 땅의 상태, 곧 나의 상태를 바르게 진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 문제도 간과하지 않습니다. 청결한자는 더욱 정결하도록 하시고 더러운 자는 더러운 채로 버려둔다는 사실입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계22:11), 이것이 유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그리스도로 펴서 공중에 달아매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늘이라 하늘은 하나님으로 빛을 받아 땅위로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살아갑니다. 나는 하늘의 사명을 잘했는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잘 받아 세상에 비추었는지 그리스도의 성을 쌓는데 최선을 했는지, 아니면 나의 성을 쌓는데 최선을 했는지... 그날에 그 공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사1:7), “ 그들이 이를 황폐하게 하였으므로 그 황무지가 나를 향하여 슬퍼하는도다 온 땅이 황폐함은 이를 마음에 두는 자가 없음이로다”(렘12:11),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관주요9:2, 행28:4)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2,3)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3:17-18)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려서 세상의 황무함도 보고 자신의 땅의 모습도 보고 믿음 안에 바로 서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기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