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7일 수요일
성동구청 신우회 예배 설교
제목: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4. 생명의 도미노
https://youtu.be/dhljZ9R4Q2k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로마서 5:17
설교를 위한 묵상
고난주간 저녁기도회에서 첫날 나는 다음과 같은 묵상을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어떤 의미일까요? 성경이 설명하는 방식은 이런 것입니다: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로마서 5:18).
아담이 시작한 범죄는 사망의 도미노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작하신 의로운 일은 생명의 도미노입니다. 그렇게 세상은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일어 혁명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새로운 도미노에 동참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생명의 도미노가 시작되었으며 그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으니 이제 그 원리와 정신과 방향을 이해하고 기뻐하며 춤추면서 앞으로 나아가자!
설교 개요
1. 지난 주 설교 리뷰 – 아브라함의 복을 여는 열쇠
2. 사망의 도미노 vs. 생명의 도미노
3. 어느 방향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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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주 설교 리뷰 – 아브라함의 복을 여는 열쇠
저는 지금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에 대하여 묵상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성경이 창조와 새 창조의 이야기이며 그 둘 사이에는 언약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언약은 하나님이 인간을 부르셔서 이 세상을 치료하고 회복하시는 활동이며 프로젝트입니다.
성경의 언약에는 바르게 이행될 때에는 축복과 번영이 따라오지만 그 언약을 깨뜨리면 저주와 사망이 드리워지게 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과 유사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성경 이야기가 무엇을 들려줍니까? 이 언약의 한쪽 파트너인 인간이 언약을 깨트렸습니다. 그 결과 율법의 저주가 인간에게 임하였습니다.
율법의 저주는 하나님의 회복 프로젝트에서 배제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이며 그 영광스러운 임무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존적 상황이라고 성경은 설명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사도 바울이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주의 상황을 역전시키신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율법의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으시고 비방자들에게 고초를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이 모든 저주를 끝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연합하면 다시 새 창조의 대열에 설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복에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주에 십자가를 새롭게 정의하기를, 아브라함의 복을 세상에 흘려보낼 문을 여는 열쇠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번 고난 주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문득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은 생명의 도미노라는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2. 사망의 도미노 vs. 생명의 도미노
한 사람 아담이 하나님의 언약을 깨트렸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아담은 그 거룩한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그의 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형제살인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이 세상에 점점 악한 일이 늘어났습니다. 마침내 노아 시대에는 죄가 온 세상에 가득했습니다.
저는 이 상황을 사망의 도미노라고 상상해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로마서 5:17~19
이것은 도미노로 설명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 한 사람의 범죄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고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게 사망의 종노릇을 하는 상황에 빠지게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실존을 설명하는 성경의 표현입니다.
그 길고 긴 사망의 도미노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악은 온갖 모양으로 온 세상에 퍼졌습니다. 성경에는 인간의 악이 여러가지 모양으로 나타난다고 소개합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악이 우리 마음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종류를 이렇게 나열하셨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15:18~20
마음에 하나님을 두지 않을 때 그 마음에서 어떤 것이 솟아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사도 바울도 사람이 마음에 하나님 모시기를 싫어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사망의 도미노를 설명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로마서 1:28~32
이것이 사망의 도미노입니다. 이 세상 어디를 가나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 사망의 도미노를 역전시켰습니다. 도미노는 연쇄적인 반응입니다. 사망의 도미노가 한 사람의 범죄로 시작된 것이라면, 생명의 도미노도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시작됩니다.
사망의 도미노가 사람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게 됨으로 시작된 것이라면 생명의 도미노는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함으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구원이란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인도되어 그 영광과 임재 앞에서 살아감으로 시작됩니다(벧전 3:18). 그것은 하나님을 항상 자신의 앞에 그리고 자기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시편 16:8).
그러면 생명의 도미노는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우리는 방금 사망의 도미노가 얼마나 다양한 악을 만들어냈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생명의 도미노도 많은 열매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열리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역전시키신 전쟁의 전리품이기도 합니다.
생명의 도미노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1~2
사도 바울이 말하는 생명의 성령의 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따르는 법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인도와 감화에 순종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럴 때 새로운 도미노가 시작됩니다. 사실 이런 도미노는 우리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우리에게 영향을 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파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것은 우주 역사에서 새로운 파장을 일으켰다고 신학자 톰 라이트는 말했습니다.
생명의 도미노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비교하여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16~23
3. 어느 방향에 서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지금부터 2천 년 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얼마나 큰 사건인지 인류의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사망의 도미노가 지금까지도 여파를 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새로운 생명의 도미노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대열에 동참하여 지금 생명의 여파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생명의 파동은 오늘 우리들의 마음에까지 밀려왔습니다. 이제 우리 마음에서 이 파동이 다시 한번 증폭되면 우리는 그 선한 영향력을 우리 주변에 미칠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설명하는 성경의 방식입니다. 이것이 인생이라면 우리의 매 순간은 얼마나 복되고 아름답습니까? 우리에게 그 사랑과 선행을 나누어 준 사람들은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오늘 손잡고 어깨를 부딪히면서 더불어 협력하고 일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소중합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왜 우리 마음 속에서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런 계획과 선한 뜻이 솟아납니까? 이런 일도 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생명의 도미도라는 영광스러운 대열에 합류해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분명히 보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다른 모양의 도미노가 계속 넘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 여파가 우리에게도 미치고 우리를 넘어뜨리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등 뒤에서 밀어주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넘어진 그 도미노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곁에 있어 주고 그의 벗이 되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고난 주간과 부활절은 바로 이런 싸움이 우리에게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그리고 이 싸움이 반드시 승리로 끝날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저주와 사망의 도미노가 흘러가는 방향에서 돌이켜 생명과 번영의 도미노가 흘러가는 방향으로 서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이미 이 생명의 도미노가 시작되었고 우리 앞에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첫번째 순종이자 최초의 승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이 위대하고 멋진 성도들의 대열에 합류하여 이 길을 달려갑니다. 그리고 우리 성동구청 안에 이 생명의 도미노가 완전히 대세를 이루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일하고 계십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