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미증진제flavor enhancer의 원료로 사용되는 ‘가수분해 식물성 단백질’에서 세균 오염이 발견되었다는 어느 신문의 보도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건 음식 재료가 아니라 화학물질처럼 보인다…'
음식 재료가 화학물질이 아니라면 대체 뭔가. 이 세상 모든 것은 화학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화학물질은 모든 물질의 구성 요소이다. 숨 쉬는 산소, 마시는 물, 달콤한 설탕 모두 화학물질이다. 세수하는 비누, 바르는 화장품, 복용하는 약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제 ‘화학물질=독성물질’이 되어버렸고, '화학물질 무첨가'는 인기 광고 문구가 되었다. 화학물질 자체는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고, 위험하거나 안전한 것도 아니다. 화학물질은 스스로 나쁘거나 좋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우리가 판단하고 결정한다. 이 결정은 감정이 아니라 과학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화학물질의 성질은 그 물질을 이루는 분자의 조성과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그 물질이 식물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든, 화학자가 실험실에서 합성했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연구를 통해 그 물질의 성질에 대해 밝혀낸 사실이다. 이런 연구는 아주 방대하다. 2025년 현재, 미국화학회의 화학 초록 서비스Chemical Abstracts Service,CAS에는 2억 9천만개 이상의 화합물이 등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자연적이든 합성이든, 과학 논문과 특허에 수록된 모든 물질이 포함된다. 올해 12월 1일에 등록된, 산화방지제로 사용되는 한 물질은 CAS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펜타에리트리톨 테트라키스(3-(3,5-디-tert-부틸-4-하이드록시페닐)프로피오네이트).
누가 이렇게 부르기 힘든 이름의 화학물질을 가까이하고 싶을까. 하지만 이름 부르기의 난도와 글자 수는 그 물질의 성질과 아무 관련이 없다. 자연산이든 합성이든 마찬가지다. 2억 9천만 개가 넘는 화합물에 각각 고유한 이름을 붙여야 하니 복잡한 용어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화학자들은 체계적인 명명법을 좋아하지만, 일반 대중은 이런 복잡한 이름을 두려워하고 위험성을 떠올린다. 일부 마케터들은 이런 두려움을 이용해 '화학물질 무첨가' 제품을 광고한다.
화학물질 무첨가 화장품, 세제, 심지어 '화학물질 없는 아이들'이라는 책까지 나와 있다. 화학물질이 없으면 더 안전하고, 건강하며, 친환경적이라는 것인데, 말도 안 되는 표현이다. 화학물질 무첨가 제품은 특히 합성 화학물질이 없다는 뜻이다. 합성 화학물질이 자연 화학물질보다 더 문제라는 암시를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예를 들어 화학물질 무첨가 선크림을 보자. 이런 제품에는 천연광물인 이산화티타늄이 주로 들어 있다. 그런데 특정 형태의 이산화티타늄은 안전성 우려가 있고, '흡입 시 발암물질'로 분류되어 있다. 선크림에서는 안전하지만, 이런 제품을 화학물질 무첨가라고 부르는 것은 완전한 허구이다.
식품 제조업체들도 반反화학 열풍에 편승한다. 한 냉동피자 판매회사의 광고를 한번 보자. 이 회사는 자사 피자에 '진짜 재료'만 사용한다고 광고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예전에는 상상의 재료를 썼다는 건가, 아니면 가짜 재료, 밀가루 대신 회반죽 가루, 치즈 대신 장난감 고무흙을 썼다는 건가. 이 회사는 이렇게 광고한다. "모든 것은 재료에 달려 있다. 냉동 식품이든 아니든, 좋은 음식은 진짜 재료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여러분이 재료 목록에서, 발음하기조차 어려운 낯선 재료가 아니라 익숙한 재료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안다." 정말이지 발음하기 쉬운 어휘를 골라 꾸짖어 주고 싶은 심정이다.
광고에 따르면, 이 회사는 한두 가지 낯선 재료를 뺐다고 한다. 스테아로일 젖산나트륨과 아스코르빈산나트륨이다. 이걸 왜 뺐는지 과학적 근거는 밝히지 않는데, 그저 마케팅 목적이다. 두 물질 모두 '승인된 식품첨가물'로, 철저한 안전성 검사를 거쳤다. 스테아로일 젖산나트륨은 제빵 류에 사용하는 유화제로, 지방을 고르게 분산시켜 지방 사용을 줄이고 도우의 질감을 부드럽게 한다. 이 물질은 우유에 있는 젖산과 소기름에 있는 스테아르산으로 만드니, '자연산'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아스코르빈산나트륨은 비타민 C를 중화시킨 나트륨염으로, 지방의 산패를 막아주는 항산화제이다. 당연히 이런 첨가물들은 피자 반죽을 더 부드럽게, 변하지 않게 해준다. 이런 물질을 빼는 것은 화학물질 공포증에 영합하는 것일 뿐이다.
이 회사는 또 덩굴에서 익은 토마토만 사용한다고 홍보한다. 덩굴에서 자연히 익은 토마토는 확실히 더 맛있다. 또 토마토가 익을수록 자연 아스코르빈산 함량이 높아진다. 한편으로는 아스코르빈산을 뺐다고 떠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화학물질을 더 많이 넣고 있는 셈이다. 소가 웃을 일이다. 아스코르빈산 나트륨이나 스테아로일 젖산나트륨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더 웃기는 것은, 피자 반죽에서는 아스코르빈산을 뺐다고 홍보하면서, 감자에서는 비타민 C(아스코르빈산의 덜 위험하게 들리는 일반명)이 많다고 자랑한다.
우리는 화학물질로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다. 새로운 물질이 약 2초마다 하나씩 발견되거나 합성된다. 걱정할 일이 아니라 과학의 놀라운 발전이다. 새 화학물질 중 일부는 CAS에 이름만 남기겠지만, 다른 물질은 신약, 섬유, 플라스틱, 전자제품, 건축소재 등 수많은 제품의 핵심 성분이 될 것이다. 이 글을 다 읽었으니 이제는 아시겠지만 이런 제품은 '화학물질 무첨가'가 아니다. 그래도 여전히 '화학물질 무첨가 제품'을 사고 싶으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