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호(1032-1085) 자는 백순, 하남 이천사람.
성품이 뛰어나 충만한 수양으로 도를 지님. 온화하고 순수한 기풍이 몸에 배어 있었다.15-16세부터 동생 정이와 함께 주돈이와 학문을 논함 죽은후 이천에 장사지낼때, 문언박이 모표를 작성하면서 명도 선생이라 칭했다.과거공부에는 염증을 느끼고 구도의 뜻을 품어 여러 학파의 책을 널리 읽었다.10년이 넘게 도교와 불교에 출입하다가 마침내 육경에서 비로소 도를 터득.장재와 마찬가지로 정호가 걸어온 ‘두루 섭렵하고 심취한’ 뒤에 ‘육경으로 되돌아온’길은, 송명 시기 수많은 리학자들의 사상 발전에서 보편적인 경로였다.정호가 죽었을 때 사대부들은 모두 애통해할만큼 큰 학자였다고.. 송나라 재상인 문언박은 중론을 모아 묘비명에 명도선생이라고 썼다. 송나라 신종 원풍 8년인 1086년, 54세의 나이에 숨을 거둠.주돈이는 정호로 하여금 세속의 명리를 벗어나 자득을 추구하는 정신생활을 영위하도록 인도했다. =>도인적인 성격의 토대? - 정이(1033-1107) 자는 정숙
읽지 않은 책이 없었으며 그의 학문은 성에 근본을 두고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을 표방하고 육경에 통달했다. 행동거지와 언어와 침묵에서 한결같이 서인을 스승으로 삼았고,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중단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역’과 ‘춘추’에 대한 전을 지어 후세에 전했다. 세상은 이를 이천선생이라고 불렀다.정이는 관리에 오를 수 있는 기회는 많았으나, 대부분 거절하였고 정호가 죽은 뒤에야 벼슬길에 나섰다. 휘종 대관 원년 1107년 75세의 나이로 숨을 거둠.** 송명 도학은 정씨 형제에 의해서 확립되었다.여기서 도학이란 바로 ‘도’를 말하고 ‘도’를 추구하는 학문이다. 이 ‘도’를 ‘리’또는 ‘천리’로 부른다. 이정은 특히 ‘리’에 관한 학설을 중시하여 발전시켰다. 이후 이정의 태도를 계승, 발전시킨 학문이 바로 송명리학이다. 명도와 이천 두 형제는 염계가 스승, 강절이 벗, 횡거가 친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