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515년(백제 무령왕 15) 현호(玄悟)가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의 명칭은 만행사(萬行寺)라고 하였다. 훗날 어느 왕이 이곳에 들렀다가 궁에 돌아가는 것도 잊은 채 3일을 보낸 뒤에야 돌아갔다고 해서 절 이름을 귀정사(歸政寺)로 바꾸었다고 한다. 1032년(고려 목종 5) 대은(大隱)이 중수하였고, 1468년(조선 세조 14) 낙은(樂隱)이 중창하였다. 《용성지(龍城志)》에 따르면 부속 암자가 산을 메웠으며 승려만 200여 명에 달하는 대찰이었다. 당시 건물로는 법당과 정루(正樓)·만월당·승당·연화당·삼광전·문수전·상실·명월당 등이 있었으며, 암자는 남암(南庵)·대은암(大隱庵)·영당(影堂)·낙은암(樂隱庵) 등이 있었다. 대상리 일대가 모두 사찰 소유였다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과 1598년 정유재란을 겪고 난 뒤 약 70년간을 폐사로 남아 있다가 1664년(현종 5) 월담(月潭) 설제(雪霽)가 중건하고, 1804년(순조 4) 현일(玄一)이 대웅전과 시왕전·산신각·칠성각·선당·회승당 등 많은 전각을 지어 옛 모습을 갖추었다. 1942년 배정순이 대웅전을 중수하였으나 1950년 6.25전쟁 때 불에 탔다. 1968년 정동(瀞東)이 중건하였으며, 이후 불사를 계속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보광전과 칠성각·종각·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보광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건물 내에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 등 삼신불이 모셔져 있다. 후불탱화는 영산화상도이며, 칠성탱화와 신중탱화·산신도 등의 탱화가 걸려 있다. 유물로는 대은과 낙은의 부도 2기가 전하고, 옛 절터가 전라북도 기념물 제76호로 지정되었다.
귀정사 입구
귀정사 오르는 길
귀정사 요사채
귀정사 해우소
귀정사 요사채
귀정사 범종각
귀정사 요사채
귀정사 수조
귀정사 요사채
귀정사 보광전
법당 내부에는 중앙에 지권인(智拳印)을 한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을 봉안하였다. 이 삼신불(三身佛)은 모두 금동으로 조성되었으며, 1990년에 봉안한 것이다.
귀정사 보광전
귀정사에서 바라다본 전경
귀정사지
1985년 8월 16일 전라북도기념물 제76호로 지정되었다.
귀정사는 515년(백제 무녕왕 15) 현오국사(玄悟國師)가 창건하여 만행사(萬行寺)라 불렀는데 당시 이 절에서 왕이 3일간 설법을 들으며 국정을 살펴 귀정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한다. 1002년(고려 목종 5) 승려 대은(大隱)이 크게 중수하였고 1468년(세조 14) 낙은(樂隱)이 또 한번 중수하였는데, 이때가 귀정사의 전성기였다.
그 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64년(현종 5) 설제(雪霽)가 비교적 옛 모습으로 복구하였고 1804년(순조 4) 현일(玄一)이 크게 중수하였으나, 9·28수복 이후 유엔군이 작전상의 이유를 들어 불태웠다. 현재는 대웅전·승당·요사채 등 몇 동의 건물만 재건되어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한때는 대상리 일대가 모두 절터였고, 법당·정루(正樓)·만월당·승당·연화당(蓮花堂)·삼광전(三光殿)·문수전·상실(上室)·명월당 등을 비롯하여 부속 암자로 남암(南庵)·대은암(大隱庵)·영당·낙은암(樂隱庵) 등이 있었다.
귀정사 요사채
귀정사 찾아가는 길
88고속도로를 타고 남원IC에서 빠져나와 19번 국도를 이용해 함양ㆍ장수 방향으로 접어든다. 20분 정도(약 15km) 달리다 보면 산동면사무소가 있는 면소재지가 나오는데, 여기서 2km 정도 더 달리면 조그마한 다리(대상교)를 만나게 된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왼편에 대상마을로 진입하는 길이 나오고, 이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면 대상리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그 맞은편에 천황봉슈퍼가 있다. 여기에서 천황봉슈퍼를 끼고 좌회전하여 약 2.5Km 정도 산으로 올라가면 길이 끝나는 곳에서 귀정사를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