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웃고
즐기고
힘들어 하고
홀로 외롭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환희에 차고
자랑스럽고
이 모든것을 느끼며 준비한 중앙마라톤 100일 코스.
3시간 30분 완주 목표로 연습하였다. 그러나, 그리 쉬운일이 있더냐.
3시간 43분 36초. 오랫동안 기억될 숫자다.
아래는 오픈케어 카페에 올린 2015 중앙마라톤 후기를 캡쳐하였다.
-----------------------
땅끝
가입일 2014.12.30.
오픈케어 맴버 정보에 보니 가입일이 작년 말로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달리기 10달만에 풀코스 완주하였습니다.
처음부터 풀코스 완주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10km만 뛰자.' 두번째는 '철인 하프만 하자.'로 목표가 바뀌더니 '그래! 해보자! 풀!'로 결정 났습니다.
중앙마라톤 대비 100일 프로젝트를 첫날부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는 마라톤 계획이 아니고 구례 아이언맨 목표였죠. 그러다 오픈케어 분위기에 휩쓸려 저도 모르게 신청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준비기간
열심히 준비했다고 자신합니다. 시작은 SUB4(4시간 이내)로 시작하여 첫번째 5,000m TT를 하고선 340(3시간40분)으로 목표를 수정하였습니다.
두번째 LSD(비오던 날)에서 340 주자가 없어 330에서 같이 했습니다. 이렇게 330 그룹 맴버들과 인연을 맺고 3시간 30분을 목표로 진행하였습니다.
항상 스피드가 부족한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페이스를 맞추기 위해 더 많은 힘을 쏟아 부어야 하니까요. 다행히 후반에 스피드 업 훈련이 집중되어 같은 속도로 뛰는데도 더 수월함을 느꼈습니다.
중앙마라톤을 준비한 개인 블로그 입니다. <중앙마라톤 연습일지 보러가기>
경험 부족으로 불안해 하는 저를 함프로님은 괜찮다고. 불안해 할 것 없다고. 스케쥴 대로 100일을 채우면 잘 될거라고 항상 안심시켜 주셨습니다.
맞습니다.
불안할 것 없습니다. 시험 치루는 것도 아니고, 좋아서 하는 것인데 불안할 필요가 없습니다. 불안하던 마음도 10일 정도 남겨두고선 사라졌습니다.
테이퍼링(tapering. 지구력이 필요한 운동선수들이 시합을 앞두고 훈련량을 점차적으로 줄여나가는 과정)
테이퍼링은 함프로님의 스케쥴 mission 10을 하면 저절로 되는 것이니 문제가 없습니다.
카보로딩(carbohydrate-loading. 마라톤과 같은 장시간 유산소운동의 경우 사전에 취하는 영양섭취법)
카보로딩은 처음 해 보는 거라 어색하고 힘들었습니다. 회사원으로 단백질 음식을 섭취할 때 애로사항이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탄수화물을 많이 먹어야 할 때 쉬웠던 것도 아니구요.
양은 조금씩 자주 먹으라는데 회사원은 쉽지 않은 사항이거든요. 오히려 일주일 동안 평소보다 훨씬 못 먹은 것 같아습니다.
대회
플립벨트 착용할까 말까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앞으로 계속 마라톤을 할 거라면 벨트를 차고 달리자고 결정하였구요. 잘 한 선택이었습니다.
몇일전 함프로님께서 벨트를 차면 복부를 잡아줘서 좋을거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맞습니다.
처음엔 골반에 착용했지만 아랫배를 잡아주니 복부가 더 좋았습니다. 가보샷도 더 많이 챙길 수 있구요.
20km까지는 여유가 있었고 25km까지는 달릴만 했습니다. 32km까지 벌어 놓은 시간을 모두 까먹구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아직은 초보라 혼자 달리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무리에서 떨어지면 무너진다는 문매니저님의 말씀을 어떻게든 지켰어야 했는데 아쉽습니다.
속도가 떨어지니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깁니다.
그래도 내게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14,000여명 중 1,428등. 상위 10% 정도에 속하는 우수한 성적입니다.
아직 10km나 하프 기록이 없는 마라톤 초보 치고는 아주 잘한겁니다. 맞죠?
다음 계획
이번 대회만 바라보고 달려왔기에 아직 다음 계획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계획된 것이라고는 내년도 구례 아이언맨입니다.
구상중에 있습니다.
풀을 한번 더 뛰어보고(SUB4) 킹코스로 갈까... 다시한번 330을 도전할까... 철인 하프코스로 즐길까... 고민중입니다.
다만, 10K는 연습해야겠습니다. 언덕 오를때 처지는 것 보완과 스피드 업을 위해.
무엇보다 철샘이 말하는 멘탈을 키울 수 있는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순간 순간의 모습
오픈케어와 함께하는 운동은 정신 건강에 좋아요. 경기의 결과가 합격, 불합격, 성공, 실패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기에 경기 자체를 즐길 수 있어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역시 이번에도 스트레스 없이 경기에 임했습니다. 철인 경기할땐 출발전에 콩닦콩닦 가슴이 뛰었지만, 마라톤은 전혀 그런 감이 없이 편했습니다. 준비도 잘되었고 욕심도 없고 무엇보다 함프로님을 믿었으니까요.
땅끝이 준비하고 함께할 맴버들이 330 그룹입니다. 3시간30분 그룹. 1km를 5분에 뜁니다. 실제 목표는 4분 50~55초.
드디어 출발 선상입니다. 사람 참 많습니다. 종합운동장 사거리에서 면허시험장 쪽 다리까지 사람으로 꽉 찼습니다. 언론에서 보니 14,000여명 이랍니다. 우리는 주로 첫 경험자들이라 핑크색 D그룹입니다.
330 그룹으로 열분 정도 되는데 제가 닉네임을 다 모릅니다. 페이스메이커로 멸치님을 선두로 미니요거트님, 미드풋러너님, 자룡님, 꽁치님, 총무님 ...(죄송) 특별히 문매니저님도 함께 하셨습니다.
약 4분의 3이 D그룹인 것 같습니다. D그룹 중에서 앞 부분에 자리합니다. 폭죽이 터지고 출발합니다. 330 그룹은 중앙선 쪽 차로에서 달립니다.
사람 진짜 많습니다. 천호사거리(6km지점)까지 가장자리에서 계속 추월해 나갑니다.
8km 정도부터 대열을 맞추기가 쉬워졌습니다. 힘든것도 없습니다. 연습때보다 천천히 가는 것 같은데 시간은 더 천천히 갑니다. 우리의 페이스 매이커 멸치님을 선두로 잘 갑니다. 언덕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주 편안하게 잘 갑니다.
20km지점에서 총무님이 떨어져 나갑니다. 무조건 같이 가자했는데 언덕 꼭대기를 조금 남겨놓고 뒤로 쳐집니다.
21km 하프 지점에서 물먹다가 그룹과 좀 떨어졌습니다. 10m 정도 밖에 차이가 안나는데도 따라 붙기 힘듦니다. 순간 속도 4분10초 페이스로 일단 따라 붙었습니다. 이때 미드풋러너님이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빨리 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힘들어서 뒤를 돌아볼 수 없었습니다.
22km 지점에서 철샘이 보입니다. 같이 합류합니다. 이때부터 힘들기 시작했나 봅니다. 옆으로 경사진 도로도 힘들고 1km 표지판이 왜 그리 나타나지 않는지. 1km가 너무 멈니다.
25km 반환점. 반환점 통과 후 물먹다가 그룹을 놓칩니다. 물먹는 연습도 많이 했는데, 이상하게 급수대에서 느려집니다. 카보샷 꺼낼때 부터 약간씩 느려진 것이 물먹고 그룹을 찾으니 10m 앞서 갑니다.
이때 따라 잡았어야 하는데... 출발 전에 문매니저님께서 '절대 그룹을 놓치지 마세요. 한번 놓치면 그때부터 무너집니다.'. 내게 당부하셨는데, 알고는 있는데 도저히 따라잡지 못하겠습니다.
이때부터 철샘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달립니다. 그러다 철샘이 보이질 않습니다. 혼자서 달립니다. 속도는 점점 느려집니다. 어디 아픈것도 아닌데 느린 것을 알면서도 이상하게 올라가지 않습니다.
5분10초에서 20초 사이로 느려졌습니다.
여기서 또다른 나와 협상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달리면 3시간 35분에 들어갈 수 있겠다. 5분 30초 페이스로 가자!'
한번 떨어진 속도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습니다.
32km 지점. 32km 지점에서 철샘이 추월합니다. 철샘 뒤를 쫓아 갑니다.
34km 지점. 나에겐 제일 높고 긴 언덕인 것 같습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의 추월이 무섭습니다. 엄청 추월 당합니다. 경기 끝날때까지 한 천명에게 추월당한 느낌입니다.
몸도 이상이 생겼습니다. 대회 3일 전쯤부터 오른쪽 종아리 윗부분에 근육이 뭉친 느낌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종아리와 무릅이 아파옵니다. 왼쪽 무릅이 항상 걱정이었는데 오른쪽 무릅이 아픕니다. 도로의 경사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서 그런가... 다리가 아프니 내리막에서도 속도가 나지 않습니다.
이제 8km 남았는데 이렇게 무너지다니 아깝습니다.
36km 지점. 보폭도 작아지고 통증은 계속 됩니다. 그때 어디선가 '땅끝'을 외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눈을 들어보니 불눈님입니다. 불눈님의 특허인 퍼스널 모빌리티를 타고 동영상으로 계속 뛰는 모습을 찍습니다. 예쁜 모습을 보이고 싶어 열심히 뛰었습니다. 잠실역에서 모빌리티를 타고 가는 불눈님을 보았는데 어디 가시나 했더니 이렇게 주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불눈님 고맙습니다.
조금 더 가니 오픈케어 가족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종합운동장으로 돌아가셨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곳에 그대로 남아서 오픈케어 화이팅을 외치십니다.
물도 한컵 먹었습니다. 물먹는 타임이 아닌데도 먹었습니다. 오다보니 다른 모임에서 자기 주자들에게 보급을 해 주는 모습이 좋아 보이고 부러웠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내게도 오픈케어가 있다는 것을. 사실은 그냥 부럽기만 했지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었습니다.
근데, 내게도 물을 들고 있는 가족이 있었던 겁니다. 나를 위해 준비하고 기다려준 오픈케어를 잊지 못할 겁니다.
37km 지점.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어 아무나 붙잡습니다. 마침 남녀 한쌍이 지나갑니다. 뒤를 따라갑니다. 앞은 보지도 않습니다. 발뒷꿈치만 보면서 멀어지지 않도록 열심히 따라갑니다. 두분은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면서 참 쉽게 갑니다. 마지막 조그마한 언덕입니다. 다리인지 고가도로인지 조그마한 경사인데도 그들을 놓쳤습니다.
40km 지점. 처음 계획은 2km 남겨두고 속도 올리려 했으나 이제는 시간에 대한 욕심이 없어졌습니다. 그래도 조금은 더 빨리 달리려고 노력합니다.
41.195km 지점. 여기는 41km 표지판이 아닌 딱 1km 남긴 표지판 입니다. 꺽어져 들어가면 주경기장이 있습니다. '땅끝 화이팅!'을 외치는 오픈케어 가족들의 힘찬 응원에 힘이 절로 납니다.
42.195km 드디어 골인. 다리가 휘청거립니다. 기분은 날아갈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금 당황스런 상황입니다. 주경기장에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선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인들은 경기장 출입을 막았던 것입니다.
메달을 걸고 추운 날씨에 나를 기다려준 아내를 찾아 갑니다. 11시 40분 쯤에 도착할 거라 했는데 조금 늦었습니다. 그래도 많이 기다리지 않아 다행입니다.
메달을 목에 걸고 멋지게 찍혀야 하는데 처음이라 경황이 없어 못 찍었네요.
맺음말
제일 먼저 함프로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너무나 많은 것을 감사해야 하기에 말로 못하고 꼬~옥 안아 드렸습니다.
'어~ 뼈 밖에 안남았는데요.' '이제부터 살좀 찌워야 하겠습니다.' '일부러 찌우지는 마세요.'
준비하는 동안 열심히 잘 먹었어도 63kg 대인 몸무게가 54kg 대 까지 떨어졌습니다. 함프로님 공식에 의하면 52kg 이어야 하는데 그러면 저 죽습니다.
매니저님. 소실장님. 로드리님 오픈케어 모임이 낯설지 않게 반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낯선 모임에 참가해 본 적이 없어 잠보에 가는 것을 항상 망설였는데 너무도 밝은 모습으로 닉네임을 불러주셔서 놀랐습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의 닉네임을 다 알 수 있을까. 아직도 신기합니다.
아이언맨 준비로 알게된 입터벌 맴버님들, 330 그룹 맴버님들, 운동장을 누비며 준비를 같이한 모든 회원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제게는 모두 힘이 되어 주신 분들입니다.
멀리 주로까지 나와서 응원해 주신 자원봉사자님들 감사합니다. 다음에 저도 그런 자리에서 응원할 수 있도록 참석하겠습니다. 신독님 따뜻한 육개장 잘 먹었습니다. 제 아내도 선수들에게 육개장 잘 날랐죠? 추운 날씨에 아침 일찍 대려와서 미안했었는데 심심하지 않게 해 줘서 고마웠습니다.
여보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