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62
관료사회의 영혼
공무원에게 영혼이 있느냐는 타박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제기돼 왔다. 어떤 공직자가 자신의 소신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면 눈 밖에 난다. 그렇다고 상부나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순응했다간 뒤탈이 난다. 영혼이 있어도 욕을 먹고 영혼을 팔아도 욕을 본다. 여기서 말하는 영혼은 양심과 자유 의지에 따른 주도적 자기 의사결정이다.
관료사회의 생산성은 민간 조직에 못 미친다. 이 고질적인 문제는 그들의 무능에 기인한 것만은 아니다. 공무원들은 시험이란 절차를 거쳐 능력을 검증받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관료사회 취약점인 저위의 생산성은 규정의 구속에 따른 피동의 결과다.
공무원 수는 제한적이어야 한다. 모두가 붓놀림만 하고 있으면 소는 누가 키우느냐는 문제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이는 생산성의 문제만이 아니다. 관료조직이 비대하면 필연적으로 규제가 늘어난다. 규제는 사회 역동성을 해하고 파생되는 권력은 비리의 온상에 기생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관리가 많은 나라가 흥한 적이 없는 이유다.
중국에서 1958년 이른바 대약진운동이 벌어졌다. 마오쩌둥은 10년 안에 영국과 미국을 따라잡겠다고 호언 했다. 근대화의 필수 소재인 철을 생산하기 위해 터무니없는 목표가 지방에 하달되었다. 동네마다 토법고로를 만들고 나무를 벌채했다. 농민들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양철지붕을 뜯어 가마에 넣고 관까지 태웠다. 상당량의 철강 생산이 통계에 잡혔다.
공산당 간부들은 영혼을 팔았다. 징벌을 면하고 상부에 아부하기 위해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그러나 원시 고로 방식으로 만든 철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잡철이었고 생산량도 거짓으로 보고됐다. 대약진의 결과는 참담해서 적어도 북한 인구에 달하는 사람이 굶어 죽었다. 하지만 마른 시신의 몰골이 종잇장 같아서인지, 국가통계국의 사망자 통계 보고서는 총리였던 저우언라이(周恩來)의 담뱃불에 하얀 재가 됐다.
역사가들은 엉터리 통계가 대약진운동의 참사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통계 조작은 중국의 고질병이 되었다. 지금도 지방정부의 통계는 마술사 소맷자락 고무줄이다. 오죽하면 중국 경제 상황은 밤에 찍은 위성사진 불빛이 통계보다 낫다고 말한다. 최근 중국공산당도 통계 조작의 폐해를 심각하게 인식하는 모양이다. 허위 통계 보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호들갑이다.
남의 일이 아니다. 감사원 감사에 따르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통계 조작이 일어났다. 직접 연루된 사람만 20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들은 없는 잡철도 강철로 만들었다. 부동산과 소득에 관한 통계는 갖은 변칙을 동원했다. 주택가격 통계는 5년간 94차례 이상 조작됐다고 한다. 그 정도면 마사지 차원을 넘어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생경했다. 주류경제학자들은 마차가 말을 끄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 경제팀과 임명직 고위 경제관료들은 대담하게도 국민을 상대로 한 실험실 유리를 광나게 닦았다. 2018년 가계동향조사 결과 소득 분배가 악화한 것으로 나타나자, 통계청장을 마르크스 경제이론 전공자로 바꿨다. 새로 임명된 통계청장은 감투가 황송했는지 통계로 보답하겠다는 망언을 늘어놓았다. 그때 많은 이들이 오늘날의 사단을 예단했다.
통계를 말하는 영어의 Statistics는 국가라는 뜻의 State에서 파생된 단어다. 한 나라의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조사하여 비교 검토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한다는 의미다. 기업으로 보면 국가의 재무제표가 정부통계이며 그 일을 하는 곳이 통계청이다.
통계의 신뢰성은 시민의 삶은 물론 나라의 번영과 쇠락을 좌우할 수 있다. 정부의 모든 정책이 통계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우려는 통계 작성에 많은 오류의 함정이 있는 점이다. 또 독립적 지위와 사실에 충실한 통계청 자료라고 해도 해석의 문제가 남는다. 따라서 고의적인 국가통계 조작은 기업의 분식회계와 다름없는 중범죄다.
평균의 오류만 봐도 통계를 얼마나 신중히 다뤄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강을 건너야 하는 부대가 있다. 강의 평균 수심은 150㎝이고 병사의 평균 신장은 180㎝이다. 통계를 신봉하는 부대장이 대원들에게 강을 건너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강의 최대수심은 300㎝다. 이처럼 통계 작성과 해석에는 여러 가지 오류를 고려해야 함에도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조작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런 탓에 영국 총리였던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거짓말에 세 종류가 있다고 했다. '거짓말', '빨간 거짓말', '통계'라는 우스개다.
문재인 정부에서 고용지표가 괜찮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속 빈 강정만도 못했다. 문 정부는 일자리를 민간이 만드는 것으로 알면 착각이라며 정부가 고용주를 자처했다. 5년 사이 40만 개 이상 공공 일자리 수를 늘렸으니, 세금 고용이 뭔지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 심지어 빈 강의실 불 끄기와 같은 초단기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만들어 고용지표 통계를 좋게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제 관련 발언에서 많은 이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인지, 알면서 억지를 쓰는지 이해가 어렵다는 점에서다. 그의 퇴임 후 불거진 통계 조작 사건을 보면 전자가 맞는 것 같다. 문 전 대통령은 지금도 잔잔한 강물을 보고 병사들이 모두 강을 건넜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대통령의 눈과 귀를 멀게 한 죄는 무겁다. 자신들의 정책실패를 감추기 위해 국민을 속인 죄는 훨씬 중하여 저울에 올리기도 어렵다. 더구나 통계를 조작하면서까지 경제정책의 오류를 성과로 포장했다면 고약한 왜곡이고 파렴치다. 그들에겐 진실을 가려 법이 정한 가장 무거운 납덩이를 짊어지게 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 과제가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다수 의석인 야당만 탓할 수 없다. 그렇다고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는 관료조직을 닦달해서 성과를 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선친은 통계학자였다. 통계의 중요성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은 충분할 것이다. 먼저 사실에 기초한 근거를 갖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유념할 것은 공무원에게 영혼을 버리라고 말할 수는 있으나 영혼을 팔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