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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히 1:1~14)
제목: 성도는 삼위일체를 알고자 한다
● 기독교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유대교 등 비(非)기독교 유일신 종교들이나 이교도들은 물론이고, 기독교를 표방하는 이단과 신비주의에게는 삼위일체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정통 기독교의 울타리 안에 겨우 들어왔을지라도 신비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거나 교회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분들도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다만 이런 분들은 정통교회에 계속 출석하며 교회교육을 받고 신앙∙교리 서적을 탐독하면 삼위일체를 알아가는 분량이 증가하고 성숙한 신자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이단∙사이비와 분파들은 삼위일체가 성경에 안 나온다거나 영원히 전혀 알 수 없다는 핑계로 삼위일체 알기를 회피하고 반대하고자 합니다. 이는 무지에 기초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단교주를 하나님의 반열로 우상숭배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보혜사 2만2’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정통교회의 삼위일체론을 부정해야 합니다. 이단만큼 악하지는 않지만, 재세례파의 교리를 채택하고 계승한다고 자처하는 분파들 중 일부는 예수님이 독생자(the only begotten Son)임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이들은 사도신경 신앙고백을 천주교의 작품으로 매도하고 흠집 내려는 시도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불순한 세력이나 무지한 분파와는 달리, 잘 알든 잘 모르든,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인정하고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신앙이 정통 기독교회에 속한 신자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은 아버지를 알기 위해서 힘쓸 것이며, 구원자 그리스도에게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은 성자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이라는 것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삼위일체는 전혀 이해 못할 신비이므로 알 수 없다거나 평신도는 성경만 읽으면 되지 삼위일체는 알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유대교와 이교도들과 이단∙사이비∙분파들이나 하는 저급한 주장입니다. 수학이 타 과목에 비해서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수학을 전혀 못하면 일상생활도 어렵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신학자나 전문 목회자의 수준까지는 아닐지라도 삼위일체에 관해서 어느 정도는 아는 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 유대교와 기독교계 이단∙사이비∙분파들은 삼위일체가 교리나 신학은 될 수 있어도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다고 어거지를 씁니다. 비록 ‘삼위일체’라는 단어 그 자체가 성경에 나오지는 않을지라도 그 내용은 성경의 여러 곳에 나오고 심지어는 유대인들이 보는 구약성경에도 등장을 합니다. 오늘 그 관련 성경구절을 모두 볼 수는 없고 시간 나는 만큼 찾아보고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오늘의 본문을 보시지요!
| 히1:1.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
본문 1절을 보면, 성부에게 아들이신 성자가 있다는 삼위일체의 내용이 갑툭튀한 것이 아니라,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되고 점진적으로 계시되었다는 것입니다. 갑툭튀는 갑자기 툭 튀어 나왔다는 신조어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들(sons of God)이지만, 위 본문의 ‘이 아들’(his Son)은 하나님이신 예수로서 ‘모든 세계를 지으신’(히1:2)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위격은 성부∙성자∙성령의 세 위격으로 구분된다는 것이 기초상식으로서의 삼위일체인데요. 성부의 아들이신 성자 예수는 하나님의 독생자(the only begotten Son)이시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구원자(savior)가 되십니다. beget 동사의 의미는 이미 여러 번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고 죄를 정결하게 하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다음 구절을 보시지요!
| 히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는 특성으로 인해 ‘어린 양’으로도 불리십니다. 혹시 이 어린 양이 만만하게 보이면 구원받지 못한 자입니다.
| 벧전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계5: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
위와 같이 어린 양 앞에 엎드리는 것(계5:8)이 참된 예배입니다.
● 정통교회의 삼위일체 교리에서 성자는 성부로부터 출생하시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발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고 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낳을 때는 beget-begot-begotten을 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독생자(獨生子, the only begotten Son)라고 합니다. 이러한 삼위일체의 내용은 이미 구약성경에도 등장을 하는 것입니다.
| 잠8:22.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23.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24.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25.산이 세워지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26.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27.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28.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29.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30.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31.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 |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출생하고 세움을 받았으며 그 이후에 만물이 창조되었습니다. 위 구절을 읽어 보면 이해되시죠? 만물을 창조하실 때 성자는 성부의 곁에서 함께 창조하셨습니다(잠8:30). 그러므로 성자 예수님은 ‘창조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본질)이 복수(複數)는 아닙니다. 위격들이 복수(성부∙성자∙성령)입니다. 삼위일체를 어느 정도 이해해야만 위와 같은 성경구절도 잘 이해가 됩니다. 위 잠언을 이해하고 오늘 본문(아래)을 또 보겠습니다.
| 히1:8.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9.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하였고 10.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
위에 나오는 주(主)가 성부입니까? 성자입니까? 이단∙사이비와 신비주의는 국어를 못하고 언어에 대한 이해력이 딸립니다. 성경은 노련하지 않고 정직하게 중학생 정도가 국어책을 정독하듯이 읽어야 합니다. 위 구절의 주님은 성자이십니다. 히1:8의 하나님은 성자이시고 9절의 하나님은 성부이십니다. 10절의 주님은 성자이십니다. 삼위일체는 분명히 성경에 등장을 하지만 국어를 못하고 이해력이 딸리면 그 내용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해가 전혀 되지 않고 막무가내로 믿다가 이단∙사이비와 분파∙신비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맹신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정상적인 교단의 신학교육을 받아야 하고 평신도들도 신앙과 신학에 대한 기초수준의 서적 정도는 꾸준히 탐독해야 합니다.
● 구약성경에 나타난 삼위일체와 성령을 살펴보겠습니다.
| 사48:12.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13.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을 폈나니 내가 그들을 부르면 그것들이 일제히 서느니라 14.너희는 다 모여 들으라 나 여호와가 사랑하는 자는 나의 기뻐하는 뜻을 바벨론에 행하리니 그의 팔이 갈대아인에게 임할 것이라 그들 중에 누가 이 일들을 알게 하였느냐 15.나 곧 내가 말하였고 또 내가 그를 부르며 그를 인도하였나니 그 길이 형통하리라 16.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것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것이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에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의 영을 보내셨느니라 |
사48:12의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표현이 조금 낯익지 않습니까? 이 표현은 예수님을 형용하는 표현이지요. 다음 구절을 보자고요.
| 계22:13.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14.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15.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16.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
계22:13의 ‘나’는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신데, 구체적으로 삼위일체의 위격을 구분하면 성자(예수님) 아닙니까? 이건 해석이 아니라 그냥 담백하게 읽으면 나와요. 계22:16에 빼박의 증거로 예수님께서 ‘나 예수는’이라고 하시네요. 빼박은 빼도 박도 못한다는 신조어입니다. 사48:12의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고 그리스어 알파벳으로 표시하면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계22:16에서는 노골적으로 명확하게 ‘나 예수는’이라고 나옵니다. 사48:16에 성부께서 성자와 성령(그의 영)을 보내셨으며 그의 영(his Spirit)은 여호와의 영이십니다. 성자와 성령은 성부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는데요. 이 위격들은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천사들이 아니라, 본질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본질)은 한분∙위격은 세 위격!, 이 공식은 절대 진리로서 항상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단들이 제일 장난질 많이 치는 것이 성령론입니다. 성령이 이단교주 안에 들어왔다고 둘러 붙이기 좋으니까요. 한국교회에 이단이 많이 창궐한 이유는 교인들이 삼위일체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선지자와 인간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삼위일체를 모르기 때문인데요. 그들이 삼위일체를 모르는 것은 유대인의 머리가 나쁘고 신앙이 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에 의한 것 때문입니다.
| 롬11:11.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13.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25.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
● 신약성경에서 유명한 성령 관련 구절이 다음과 같이 있지요. 위 성경구절을 보면 하나님의 경륜에 의한 것으로 인간이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신비(롬11:25)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어쨌든 삼위일체를 모르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서 큰 약점이고 불행입니다. 삼위일체를 알려면 신학이나 교리 이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위 로마서 말씀을 보면 삼위일체 이해는 사람의 노력∙사람의 힘으로 흉내는 낼 수는 있지만 한계가 있고,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신비)임을 깨닫게 됩니다.
| 눅4:14.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15.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16.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
위 눅4:17의 이사야서는 아래 내용입니다.
| 사61:1.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
여호와의 영, 즉 성령은 예수님을 통하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고(눅4:18)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사61:1) 하나님의 위격입니다. 삼위일체와 관련하여 구약을 더 많이 찾은 이유는 이것이 신약에 갑툭튀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려 한 것입니다. 성령의 깨우침으로 삼위일체를 알아 나아갑시다! 그리고 혹시 어렵고 난감하면 하나님의 지혜 주심을 간구하고 성령의 깨우쳐 주심을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기독교만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좋은 묵상의 글 감사합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더 쉽게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귀한 나눔 감사합니다. 저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러신가요? 다행입니다^^ 즐주 및 기쁜 주일 되세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Be flat님의 댓글에 정말로 감사를 드립니다. 인사말이나 덕담도 좋지만 모르는 부분, 이건 무엇인가요? 등의 합당한 반응이 Be flat님의 댓글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제 글을 꼼꼼히 읽고 생각도 많이 해주신 것 등이 저에게는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이제 답글을 (1), (2), (3) 순서로 연결하여 올릴게요. 답글 숫자 제한이 있어서요.
(1) 존 번연은 현대 한국 기준으로 보면 무학(학교교육×, 초졸×)이에요. 초등학교도 못 나온 분이지요. 그런데도 그의 글 솜씨가 너무 뛰어나서 번연의 반대파는 번연의 작품을 번연이 쓰지 않았다고 모함을 했어요. 그래서 번연은 지혜롭게 자신의 저작권을 지키는 장치를 자신의 작품에 설정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지혜와 지식을 주신 것이죠. 번연이 자신의 저작권 진정성에 대한 의심에 대해 불편해 하고 그에 대한 고민의 반응을 한 것이 그의 작품 『거룩한 전쟁』(holy war)에 나옵니다. 저는 그 책을 읽으며 조금 특이한 체험을 했는데요. 어쨌든 번연이 훌륭한 분이고 건전한 분인 것은 사실이지만, 번연의 경우를 모두에게 일반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아래에 계속)
이단자들이 신학교육을 부정하고 교리를 부정하고 심지어는 학교 공부를 안 해도 성령으로 성경을 통달한다는 논리(예: 신촌쥐 교주 2만2)의 전개가 신비주의적 발상입니다. 누구나 존 번연처럼, 누구나 베드로 사도처럼 공부를 안 해도 성령충만하여 성경을 깨닫게 된다고 일반화 시키는 것이 신비주의적 발상의 시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들이나 선지자들이나 존 번연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임했던 분들 즉 비범한 타인의 특별한 경우를 나와 평범한 모두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신비주의의 출발이 될 수 있습니다. pd수첩과 그것이 알고 싶다, 2개의 프로그램에서 악명과 추문을 떨친 베ㄹㅇ 김ㄱㄷ도 자신이 세상의 학력은 없지만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성경을 통달했다고 유난히 강조했습니다.
사도, 선지자, 존 번연 같은 특별한 경우를 평범한 우리에게까지 적용시키면 안 되고요. 우리의 입장에선, 대충 표현하면, 중학생이 국어책을 읽는 정도의 긴장감과 정직함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봅니다. 자의적 해석, 어거지 해석 등이 이단교주에게 나오는 특징은 (아래에 계속)
자의적 해석, 어거지 해석 등이 이단교주에게 나오는 특징은 일반적인 언어학습과 해석에서 겸손히 배우는 과정을 생략하고, 문자•문법•문맥을 무시하는 저학력•낮은 인지 능력을 성령의 감동을 핑계로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섭리로 사역한 존 번연 조차도 책을 틈틈이 읽어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의 『갈라디아서 강해』를 읽고 은혜를 받았다고 번연은 밝힌 바 있습니다.
종교개혁은 문자, 문법, 역사적 해석으로 성경을 온전히 보고자 노력했고요. 칼빈 루터 쯔빙글리 모두 일반학문, 신학, 성경언어(히브리, 헬라) 공부와 연구에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이니까 종교개혁의 선봉장 역할을 하신 거지요. 우리는 그분들처럼은 못합니다. 성경을 주교재로, 종교개혁자의 책을 부교재 내지는 참고서로 놓고 읽는 것이지요.
(2) 삼위일체는 하나님께서만이 가지시는 고유한 존재형태입니다. 저는 최고로 쉬운 설명은 못하고요. 최악을 피하는 설명 정도만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최악의 설명은 3분의 하나님들입니다. 이 공식을 잘 유지하세요.
person은 위격, God는 본질(essence)!!! o는 맞고 x는틀리다는 뜻입니다. (아래에 계속)
person은 위격, God는 본질(essence)!!! o는 맞고 x는틀리다는 뜻입니다.
3 persons in 1 God (o) /// 3 persons in 3 Gods (x)
가끔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다가 세 분이 한 분 안에 있다고 표현하는 분들이 있어요. 심지어는 유명한 분들 중 일부에도요. 그분들을 잘못 됐다고 평가할 필요는 없고요. 어쨌든 최악의 설명을 피하면
3 persons in 1 God (o) /// 3 persons in 3 Gods (x) 입니다. 세 분이 아니라 세 위격들(3 persons)이요.
(3) 천국에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창1:26, 27)을 회복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들 생각하고 당연히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는 하나님께서만이 가지시는 고유한 존재형태이기 때문에 본질(essence)상 한 분이신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대강 추측은 하지만 확답까지는 못하지요. 인간과 천사는 아무리 뛰어나고 업그레이드 돼도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비공유적 속성(incommunicable attributes)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래에 계속)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비공유적 속성(incommunicable attributes)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비공유적 속성은 다른 말로 절대적 속성이라고 하는데요.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창1:26, 27)을 회복한 상태에서 천국에 있을 때 가장 확실하게 하나님을 실상으로 보고 기뻐할 것은 분명합니다. 그 때에 가면 우리의 모든 궁금증이 풀리겠지요. 현재의 우리는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요20:25-29)
다시한번 Be flat님의 좋은 댓글에 감사합니다^^ 기쁜 주일 되세요!
"요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장코뱅 이 본문 글도 흥미롭게 읽었는데 여기 쓰신 댓글들을 통해 더 많은 것들을 배웁니다. 어떻게 이리 박학다식 하실 수 있나요? 종교개혁자들이 뛰어난 자들로서 우리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듯이, 장코뱅님께서도 그 뛰어난 학식으로 제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 주시네요.
존번연에 대한 새로운 배움, 그리고
3 persons in 1 God 이라는 아주 쉽고 간결한 배움도 얻어갑니다.
@다윗을 닮자 칭찬으로 들려 감사하며 부끄럽고요. 칼빈, 벌코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도르트 신조 등을 요약한 것입니다.
개혁주의와 칼빈의 강점은 삼위일체를 정확히 설명하고자 노력한 것입니다. 신학과 교리로 체계화시키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개혁주의가 장점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영어로 치면 중구난방 상황별 회화를 공부하는 것보다 문법을 공부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 방법론이 개혁주의에 있다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잠언 히브리서 누가복음 등등을 통해 삼위일체 근거 구절들을 설명해 주셔서 많이 유익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으로 존재하신다.'를 잘 설명해 주셨네요.
삼위일체를 기초적인 것만 알아도 성경이 더 많이 눈에 들어오고 이해가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이 삼위일체 교육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설명하기 어렵다고만 생각하고 강조를 안하는 것 같아요.
잘못 설명했다간 자기도 모르게 양태론이다 삼신론이다는 비판을 받거나 이단으로 몰리기 때뭄에 위험을 피하려고 잘 안건드릴려고 하죠.
네, 공감합니다. 설명의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개혁주의 신조가 안정감 있고 담백하게 설명한 삼위일체 부분을 제시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