훤칠한 키와 수려한 외모의 남자아이는 인기가 한창인
19살에 안타깝게도 교통사고를 당했다. 머리를 다치지
않았다고 했지만, 한순간 아이의 머리가 부풀어오르고
신경도 마비되면서 살아날 확률이 1%도 안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보호자인 아버지는 절망감에
빠졌다고 한다. 함께 죽을 생각까지 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아이와 잡고 있는 손에서 강한
힘이 느껴졌다고 한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을 때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한없이 흘렸던 슬픔의 눈물은
어느새 기쁨의 눈물이 되고 그 후로도 수없이 많은
힘든 시간이 반복되지만, 다행스러운 건 교통사고
보상비와 함께 형제의 금전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많은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느덧 8년의 세월이 흘렀고 아이는 27살이 되었지만
말은 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기도 하고
위루관으로 경구 투입되는 식사와 물로 삶을 이어가는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이다.
24시간 장애인 돌봄 일을 부탁받아 보게 된 장애인의
보호자가 자기 아들 이야기를 해주며 글로 써보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웃으면서 해주는 이야기에 마음이
절대 편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늘 24시간
남의 손에 맡겨두고 일을 나가며 다른 곳에서 생활하는
일이 어찌 편할 수가 있겠는가. 아들이 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있을 때부터 간병을 맡아주었던 분이 장애인
활동지원 교육을 받고서 24시간 아들을 돌봐주다가
집안 행사가 있어 오래도록 자리를 비워야 했기에
다른 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2주가량을
함께하게 되었는데 24시간을 함께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 위루관으로 투입되는
식사와 수시로 물도 챙겼다. 저녁 이후 취침 약을
먹이고 2시간 정도를 자다가 깨고 새벽 세네 시면
깨어서 소리 지르고 주먹을 휘두르고 마치 누군가와
싸우는 것만 같았다. 그게 매일 반복되니 새벽 시간
내가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에 깰 수밖에 없으니 늘 잠을
설치게 되어 피로가 누적되었다.
3시간 정도 간격에 소변 처리를 하고 이틀에 한 번은
좌약을 넣어 배변 처리를 해줘야했고 욕창이 생기지
않게 자주 자세를 바꿔주고 매일 물수건으로 몸을
닦이고 옷을 갈아입히고, 양치해줄 때는 칫솔을 꽉
물어서 피를 보게 하니 조심히 양치해주는 요령도
필요했다. 낮잠은 일절 안 자고 항상 눈을 뜨고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듯 낮에는 자주 웃는 모습을
보이고 밤 8시만 넘어가면 누군가가 찾아온 듯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취침 약을 먹이고 나면 점차 조용히 잠이 들지만
오래도록 그렇게 깊이 잠이 들지는 못하고 보통 새벽
3, 4시면 깨어서 하루가 시작되었다.
낯선 공간에서 처음에는 사실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24시간 동안 장애인과 둘만이 생활해야 하는 공간에서
어떤 돌발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부탁받은 일을 처음에는 못한다고도 했었는데
장애인활동지원센터에 등록된 다른 인력들은 나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했었다. 거듭된 보호자의
요청에 나와 통화까지 원한다고 해서 부담스럽기까지
했는데 지속적으로 해줄 것도 아니고 해서 끝내는
승낙을 하고, 미리 밑반찬을 다 만들어서 해먹을 밥과
간식과 먹을거리를 다 챙기고 갔기에 웬만하면 외출도
하지 않았다.
24시 돌봄 일을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날에는 폭설이
내렸다. 챙겨간 짐들을 메고 들고 버스정류소로 향할
때 눈사람이 될 뻔했는데 한동안 다른 세상에 있다가
온 것처럼 낯설기만 했다. 그리고 며칠은 끼니는 대충
챙겨 먹고 잠에 취한 듯 자고 또 자면서 그동안 못 잔
잠을 자게 되었다. 잠을 자고 깨어난 오늘도 많은 눈이
내렸다. 눈이 내려 세상에 쌓이듯 내 마음도 누군가의
마음에 곱게 쌓여서 소리 없이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비꽃(이은숙)
첫댓글 누군가의 마음에 곱게 쌓여서
소리 없이 스며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