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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1장> 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3 가라사대 ...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
<신과 예수가 하나라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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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장> 30 나(예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
예수교도들은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라고 자주 이야기 합니다. 이 말은 매우 좋은 말처럼 들리지만 예수의 이 말의 진실은 '빼앗아 나누어 가져라' 입니다. 예수교도들이 전체 글을 설명하지 않고 일부만을 인용하여 가르치고 있어서 그 진실을 인식하지 못 할 뿐 입니다. 누가복음 11장에는 우리가 잘 아는 '구하라 그러면 얻는다'라는 구절이 있고 어떻게 구하고 얻을것인가에 대한 방법이 적혀 있습니다. 이 설교는 매우 길지만 그 중 핵심만 아래에 적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얻는다'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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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장> 9 ...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 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1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22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23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마태복음 7:7~11] |
예수는 누가복음 11장 9절에서 구하라 그러면 준다고 합니다. 예수의 좋은 말은 여기까지 입니다. 예수는 '너희가 악하거나 죄인이라 하더라도 천국의 아버지는 성령을 준다'고 말 합니다. 이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매우 무서운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로 그 내용은 '아무리 강한자가 자신의 재물을 지킨다 하더라도 더 강한자가 굴복시켜 그의 재물을 빼앗아 나누어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3절에서 그렇게 빼앗은 재물을 예수와 함께 모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야훼의 성령을 인정 않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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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2장> 27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
위의 마태복음 12장 27절의 이야기는 유대인들이 예수가 바알세불의 힘으로 귀신을 쫗아내고 있다고 했기 때문에 27절과 같이 예수는 '내가 바알세불의 힘으로 귀신을 쫗아내는 것으로 아느냐'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28절에서 '내가 신의 성령으로 귀신을 쫗아내는 것이면 이미 너희에게 신의 나라가 임하였다'고 예수는 답을 합니다. 이것은 예수가 유대인들의 비난에 대한 해명이 아니며 반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성령이 신의 성령인지 혹은 사탄의 성령인지 명확하게 말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1장과 같이 강한자의 재물을 빼앗아 예수와 함께 모아야 한다고 마태복음 12장에서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예수는 강한자의 재물을 배앗아 예수에게 바치여 한다고 주장하면서 신의 성령과 귀신을 쫗아내는 관계를 설명했습니다. 그 진의는 알 수 없지만 신의 성령과 바알세불의 힘 사이에 관계를 설명하려 했던 것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관계를 명확히 설명하는 내용이 마가복음에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단은 사탄의 한글식 표현입니다. 요즘에는 사단을 안쓰므로 사탄이라는 영문표현을 사용하여 설명 하겠습니다.
<사탄의 단결을 주장하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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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3장>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23 예수께서 저희를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단이 어찌 사단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25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26 만일 사단이 자기를 거스려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이에 망하느니라 |
마가복음에서도 서기관들이 예수의 힘을 바알세불의 힘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한 예수의 답은 서기관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세히 보세요. 마가복음 3장 23절에서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 낼 수 있는냐고 말했습니다. 이는 사탄은 사탄을 쫓아 내지 않는다고 말을 하는 것이고 24절과 25절은 사탄이 사탄을 쫓아 내지 않는 이유 입니다. 그 이유는 나라가 분쟁하면 나라가 설 수 없고 집이 분쟁하면 집이 설 수 없으니 사탄도 분쟁하지 말고 망하지 말라고 26절에서 결론 내렸습니다. 예수는 사탄의 단결을 주장하고 나서 재물을 빼앗을 것을 이야기 합니다. 이어지는 다음 문장을 아래에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죄 사함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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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3장> 27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늑탈치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29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
어떻게 읽으셨습니까? 예수는 강한자의 재물을 빼앗아 나누어 가지는 행동이 악한 행동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악하다 해도 신은 성령을 준다고 했던 것 이며 예수교도들의 악한 행동을 두둔 한 것이며 죄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악하게 빼앗으라고 이야기 한 것 입니다. 이러한 행동이 예수교도들에게는 성령이였고 신의 성령이라고 이야기 한 것 입니다. 나아가 마가복음에서는 예수의 힘을 바알세불의 힘이라며 비난하고 있음에도 오히려 사탄을 찬양하며 재물을 빼앗아 바치라 하였으니 이를 종합하면 이것 입니다. '너희가 바알세불의 힘이라고 비난하지만 신은 악한자에게도 성령을 준다. 그 힘이 사탄의 힘이면 어떠하고 신의 성령이면 어떠하냐? 상관하지 말고 재물을 빼앗아 예수에게 바쳐라'
그렇다면 '내가 신의 성령으로 귀신을 쫗아내는 것이면 이미 너희에게 신의 나라가 임하였다'는 이야기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유대인들이 믿는 신의 나라가 임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예수가 믿는 신은 유대인들의 신이 아니라 사탄이였다고 결론 지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28절에서 '모든 죄에서 사함을 얻고 우리를 훼방하는 자를 훼방하면 그 죄에서 사함을 얻는다'고 이야기 합니다. 또한 29절에서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죄 사함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한다'고 합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먼저 '우리를 훼방하는 자'의 의미는 '재물을 빼앗는 자를 못 빼앗게 하는 자'이며 '재물을 지키고자 하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27절에서 재물을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훼방하는 대상이 재물밖에 없는 것 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훼방하는 자를 훼방하는'은 재물을 지키고자 하는 자를 훼방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재물을 강제로 빼앗는 사람을 의미 합니다. 그래서 28절은 '재물을 빼앗는 사람이 죄 사함을 얻는다'와 같은 것 입니다. 안 믿기시나요? 제가 강제로 해석하는게 아니라 성경에 쓰여 있는 것을 쉽게 풀어 드리고 있을 뿐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죄 사함은 재물을 빼앗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구나'라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또한 28절에서 모든 죄에서 사함을 얻는다는 글이 있습니다. 이는 거짓입니다. 왜냐하면 재물을 빼앗는 성령을 훼방하면 영원한 죄에 있게 된다고 29절에 적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죄에서 사함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빼앗아야만 죄사함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교도들의 죄사함입니다. 혹시 다른 죄 사함이 있다면 반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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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예수에게 죄의 기준은 재물이고 죄 사함은 재물을 빼앗는 것이고 죄는 재물을 바치지 않거나 재물 바치는 것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교도들은 재물을 바치지 않는자와 재물을 빼앗지 못한 사람들을 영원한 옥에 가두었습니다. |
예수가 생각하는 죄와 우리가 생각하는 죄는 그 근본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예수가 말하는 죄 사함에는 여러 의미가 공존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첫째로 사도들과 세리들이 유대인들로 부터 재산을 빼앗는 행위가 처음 부터 죄가 아니였습니다. 둘째로 재물을 빼앗는 세리와 사도들을 비판하는 바리새인들이 죄인이였고 그래서 그들을 천국에 갈 수 없었습니다. 셋째로 바리새인의 비난에 겁을 먹어 재물을 빼앗지 않는 행위도 죄 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예수의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다'라는 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이는 예수의 명언이 아닙니다. 단지 이 말을 하면서 사악한 인류의 적이며 사탄이였던 예수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웃을 굴복시켜 이웃의 재물을 빼앗아 예수 혹은 목사들과 함께 나누어 가지기를 원하십니까? 베드로와 사도들은 예수의 설교대로 이웃의 재물을 빼앗아 나누어 가졌고 그것을 제5장에서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문서 제5장에서 사도들이 유대인과 피지배자들을 죽이면서 빼앗은 재물을 나누어 가지는 모습을 보았고 이제 그 행위가 예수 때문임을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들은 재물을 빼앗아 삼천명의 사람들과 재물을 나눈 것이 아니라 사도들과 그를 따르는 제자들 끼리만 재물을 나누었던 것이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의 재물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다가 죽임을 당한것이며 유대인과 대제사장이 사도들에 대항한 것은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함이 분명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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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장>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
위의 사도행전 2장 45절 이후를 보면 사도들은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적었습니다.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사도들과 그의 제자들이였고 그렇게 모은 재물을 가지고 떡을 떼며 놀았던 것 입니다.
<가난한 척하라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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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0장> 4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마태복음 10장> 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10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
예수가 가난한 자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라고 한 것은 사실입니다. 삭개오가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했고 예수와 사도들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준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무엇입니까? 위의 마태복음 10장 9절과 10절을 보면 가난한 자들은 예수의 제자들이였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가난하다고 이야기하며 재물을 가난한 예수의 제자들과 세리들이 가진 것 입니다. 그러면 정말 이들이 가난하게 보인 건가요? 아닙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준다'라는 설교가 '예수에게 재물을 바쳐야 한다'를 의미한다고 분명하게 밝히기 위한 것 입니다. 이는 '너희가 가난한 것이 아니라 세리들과 예수교도들이 가난하다'며 유대인을 비웃는 것이며 재물을 빼앗는 명분이였습니다.
<살인의 심판 보다 중요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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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
먼저 위에서 말하는 '라가라 하는 자'의 뜻은 '나쁜 말을 하는 자'를 의미하며 '비판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예수가 말하는 비판하는 대상이 형제였고 그 형제는 예수의 제자들을 의미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옛 사람이라 함은 유대인의 선지자들이고 '살인지 말라'는 유대인의 율법입니다. 따라서 너희는 살인하면 심판받는다고 하지만 나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 입니다. 이는 살인하지 말라고 예수가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살인하는 너희 형제를 나쁘게 말하며 비판하면 용서하지 않고 지옥 불에 들어가게 하리라'라고 주장 하는 것 입니다.
<빚은 모두 갚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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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
읽어 보면 예수는 23절 24절에서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그 이후에 형제와 화목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는 말 그대로 입니다. 예물을 제단 앞에 두라는 것은 예수에게 헌금을 바치라는 것이며 재물을 바치라는 의미 입니다. 그리고 형제는 세리와 사도들입니다. 따라서 형제와 화목하라는 것은 '재물을 걷는 형제를 비난하지 말고 싸우지 말라'는 것 입니다.
왜 비난하지 말고 싸우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요? 그 이유가 25절과 26절에 있고 이유는 빚을 남김없이 갚지 못하면 영원히 옥에 가두기 때문입니다. 이는 영원히 옥에 갇히기 싫으면 재물을 바치고 재물을 거두는 세리와 사도들을 비난하지 말고 화평하라는 협박입니다. 따라서 세리와 사도들에게 빚을 갚지 못하면 그것이 죄이고 빚을 갚으면 죄 사함을 받는 것임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예수가 말하는 빚이 정상적인 빚이 아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정상적인 빚이라면 예수와 제자들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고 예수가 이렇게까지 협박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리고 25절에서 재판관에 의해 영원한 옥에 갇힌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정말 재판관이 심판을 했을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예수교도들은 처음에는 제자들이 한명씩 맡아 재물을 빼앗았고 그래도 안되면 두 세명이 함께하여 빼앗습니다. 그래도 안되면 예수교도들의 교회에서 빼앗았고 최후의 수단으로 공회와 재판관의 힘을 통해 재물을 강탈했습니다. 사실상 대부분은 예수교도들의 교회 안에서 모든 핍박이 끝났것으로 추정합니다. 왜냐하면 갈릴리사람들과 유대인들에게 예수교의 뒤에 헤롯과 로마가 있음을 숨기기 위해서 입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비난을 예수교도들이 받으므로서 헤롯과 로마가 비난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확신하는지 그 이유를 성경을 통해 설명 하겠습니다. 아래의 이 이야기는 두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죄 사함의 두가지 의미를 설명했듯이 죄에는 죄 사함을 받거나 영원한 옥에 갇히는 것이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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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
위 마태복음 18장 15절을 보면 예수는 '형제가 죄를 범하면'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은 약간 어렵습니다. 유대인이 죄를 범한 것인지 제자들이 죄를 범한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먼저 형제라고 했기에 제자들 혹은 세리들이라고 생각하고 설명 하겠습니다. 세리들이 죄를 범하면 먼저 1:1로 권고하라고 합니다. 이는 입밖으로 그 죄를 말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정확히는 누구에게서 빚을 받지 않았는지 혹은 얼마를 빼앗았는지를 말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래도 죄를 말하지 않으면 두 세명이 함께 토설케 하라는 뜻이고 그래도 안되면 예수교회를 통해서 말하게 하라는 뜻 입니다. 그래도 안되면 그 때에 이방인과 세리들 처럼 재판을 하라는 의미 입니다. 재판의 결과는 당연히 영원한 옥에 갇히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교회를 예수와 사도들은 알렸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예수교회 역시 최후의 수단이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교회는 알려지면 안되었고 보호해야 할 단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다음과 같이 이어서 설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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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
예수는 다시 한번 설명한다면서 19절에서 두 사람이 합심하면 뜻을 이루고 20절에서 두 세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구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들이 구하는 것은 당연히 재물을 빼앗아 예수에게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재물을 빼앗을 때 예수교회가 직접 나서기를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용서라는 말을 예수교도들은 항상 이야기합니다. 이번에는 예수가 말하는 용서라는 것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예수가 말한 용서는 우리가 아는 것과 완전히 다르고 죄 사함과 다르지 않습니다. 먼저 누가복음 17장을 볼 것인데 여러분은 이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17장의 설명을 듣고 마태복음 18장을 본다면 이 둘의 내용이 같은 것임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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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장>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
먼저 위에서 설명했드시 형제는 예수교도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누가복음 17장 3절에서 형제가 죄를 범하였다는 것은 세금과 재물을 제대로 걷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제가 있다면 경계를 해서 영원한 옥에 가두라는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거든 용서하라고 합니다. 아래의 4절에서는 일곱 번 회개하거든 용서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는 유대인을 용서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대상은 형제이고 제자이며 세리들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용서한 것은 일곱번이 아니고 실제로는 한 번 뿐이고 그 죄값은 무서운 것 입니다.
예수는 위와 같이 용서를 이야기했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비유로 다시 설명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래의 비유가 용서를 설명하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할 것 입니다. 이에 대한 증명은 마태복음에서 설명해 드리고 여기서는 설명만 보시길 바랍니다. 우선은 위의 용서가 누가복음 17장 3절과 4절이고 아래 내용은 같은 장의 7절로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임을 확인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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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장> 7 너희 중에 ...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
위의 이야기는 분명히 용서를 비유로 설명 한 것 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저게 무슨 용서를 비유로 설명한 것이냐고 저를 비난 할 것 입니다. 일단은 저의 설명을 듣고 증명은 뒤에서 해 드리겠습니다. 예수는 7절에서 제자들에게 종이 일하고 돌아오면 앉아서 먹으라고 할 자가 있냐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반어법입니다. 예수는 반어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고 그 의미는 종들이 일하고 돌아와도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8절을 보면 오히려 그 종들이 먹을 것을 준비하여야 한다 했으니 이는 종들이 먹을 것을 구해와 예수에게 바쳐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가 그 음식을 먹는 동안 종들은 수종을 들어야 하고 그 후에 종들이 나누어 먹어야 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위의 누가복음 17장의 이야기는 강한자의 재물을 강제로 빼앗아 예수에게 바치라는 설교와 같은 이야기 입니다. 이 말에는 모두가 동의 할 것 입니다. 하지만 위의 설교는 또 다른 한가지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것은 종이 재물을 바치지 않고 수종을 들지 않으면 월급을 받을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일반인이라면 위의 설교를 듣고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예수를 욕해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일하고 돌아왔는데 예수가 먹을 동안 수종들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했으니 악독한 주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는 사탄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보아도 됩니다. 그러나 위의 행동이 예수에게는 용서 였습니다. 저것이 예수에게는 용서였단 말입니다. 일하고 돌아온 종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는 예수의 모습이 용서라면 도대체 예수는 얼마나 사악한 자일까요? 예수의 용서의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또 다른 용서에 대한 비유를 보겠습니다.
이번에는 예수가 사채 빚으로 여자들과 아이들이 팔리는 모습을 정당화하는 설교를 보겠습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죄 사함과 같이 예수가 말하는 용서라는 의미를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사채빚을 설명하면서 용서를 함께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위의 8번에서 설명한 누가복음 17장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먼저 아래의 내용 중에 회계라는 단어는 이익을 분배하기 위해 계산하는 것을 의미하며 회사등에서 회계를 한다라고 할 때의 그 회계이며 죄를 뉘우치는 회개가 아닙니다. 이는 종들이 재물을 거두어 예수에게 바치고 예수가 다시 종들에게 수익을 분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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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 21 ... 베드로가 ...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22 예수께서 ...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23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이익을 계산하는것)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
위의 마태복음 18장을 읽어 보셨습니까? 베드로가 '형제의 죄를 몇 번 용서 해야 합니까?'하고 묻습니다. 예수는 많이 용서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물론 형제의 죄는 재물을 빼앗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는 재물을 빼앗지 않는 제자 혹은 세리들을 많이 용서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반어법입니다. 예수는 수 없이 용서하라고 진짜로 이야기 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강제로라도 재물을 빼앗아 예수에게 바쳐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우리는 이미 보았기 때문에 짐작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마태복음 18장 22절을 봅시다. 예수는 분명히 많이 용서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23절의 '이러므로'를 통해서 용서를 설명합니다. 그 설명이 천국에서 이익을 나누는 임금의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이 비유가 천국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분명히 인식해야하며 용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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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 24 회계(이익을 계산하는것)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26 그 종이 엎드리어 ...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
예수의 비유를 보면 일만 달란트를 빚진 자가 있는데 종(세리)이 빚진 자를 주인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그의 주인이 빚진 자의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그의 모든 소유를 팔아 갚으라는 모습이 25절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내와 아이들이 팔리는 그곳이 어디 입니까? 23절의 천국과 같은 곳이므로 천국에서도 아내와 아이들이 팔리고 있었던 것 입니다. 예수에게 천국은 빚이 존재하고 그 빚을 갚지 못하면 아내와 아이들이 팔릴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여러분 정신차리세요.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유라고 여러분 마음대로 해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유와 상징이라며 예수교도들은 노래하지만 그 비유가 악한 것이면 그 대상도 악한 것 입니다. 예수는 여자와 아이들이 팔리는 모습을 반박하지 않았고 인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빚진 자를 데리고 온 종(세리)이 주인에게 '참으소서 다 갚겠나이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제서야 주인이 그 빚을 탕감해 주었다고 합니다. 만약 종(세리)이 주인에게 부탁하지 않았다면 빚진 자의 아내와 자식들을 팔았을 것이며 이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짚어야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주인은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누구의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까? 주인의 종이 데리고 온 빚진 자의 빚을 탕감해 준 것 입니다. 그렇다면 종(세리) 그리고 빚진 자는 빚이 없어야하는 것이 분명 합니다. 또한 그 종은 왜 주인에게 빚진자를 데리고 왔습니까? 그 종의 임무가 빚진자에게서 주인의 돈을 받아내야 했고 마감일이 되었음에도 빚을 받지 못해 주인에게 데려 온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에게 재물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데리고 왔다는 것은 이미 여자와 아이들이 팔리는 상황임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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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 28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
그 종이 이번에는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관에게서 빚을 받아 내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동관이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서 종에게 부탁을 하지만 그 종은 빚진 동관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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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 32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
그리고 32절에서 주인은 빚을 받지 못한 종에게 악한 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에게 네 빚을 전부 탕감해 주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사실 그 빚은 종의 것이 아니였고 1만달란트를 빚진 자의 빚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종에게 종의 빚을 탕감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는 결국 빚진자의 돈을 종이 함께 책임을 져야 했던 것 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어이없이 주인을 비유로 들어 그 종에게 너의 빚을 탕감해 주었는데 너는 탕감해 주지 않았다며 옥에 가두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주인은 빚진자의 아내와 아이들을 팔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종을 단순히 옥에만 가두었을까요? 이 이야기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그 종이 빚을 계속 탕감해 주었다면 주인이 그 종을 계속 용서한다는 뜻으로 보입니까? 먼저 이렇게 해석하셔도 예수교도들은 사악한 자들 입니다. 왜냐하면 첫번째 천국은 여자들이 아이들과 함께 사고 팔리는 곳이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여자들과 아이들이 사고 팔려도 아무런 할 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두번째 그 종은 천번 용서를 받아도 천번 월급을 받지 못하고 빚이 종에게 계속 쌓이는 것 입니다. 예수가 말한 탕감은 거짓 탕감이였습니다. 그리고 월급을 왜 못 받습니까? 기억나지 않는다면 [8번]글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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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25 ...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
예수는 조금이라도 남김없이 빚을 갚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재물을 빼앗아 나누고 예수에게 바치라며 사탄을 찬양하는 사람이였습니다. 그러한 예수가 빚진 자의 돈을 받지 않았을리 없습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이것 입니다. 첫번째 그 종의 실수는 1만 달란트를 빚진 자의 여자와 아이들을 주인이 팔려고 했을 때에 최소한 주인을 비난하지 말고 조용히 있었다면 그 종은 1만 달란트의 빚을 넘겨 받지 않았을 것이고 심지어 월급도 받았을 것입니다. 두번째 실수는 백데나리온의 빚진 자에게서 빚을 받지 못하고 옥에 가둔 것 입니다. 세번째 실수는 백데나리온의 빚진자의 여자와 아이들을 팔지 않은 죄입니다. 만약 그 종이 여자와 아이들을 팔았다면 돈을 받아 예수에게 돈을 갚고 자신이 옥에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교도들의 잘못과 같은 것으로 그 종은 예수가 용서하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용서했으면 영원히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굶어죽을 테니 언제까지 용서하는지 두고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여 빚을 받으면 그 때 영원한 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따라서 단 한 번이라도 절대 빚 받는 행위를 중단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해되십니까? 그렇다면 빚을 승계 받은 종이 어떻게 되었는지 다시 한번 마태복음 18장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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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
어떤가요? 그 주인은 그 종에게 빚을 모두 갚도록 옥에 가두었다고 적었습니다. 주인이 빚을 받아내는 방법은 여자와 아이들을 파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종은 착한 짓을 하다가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이 팔리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 입니다. 그리고 35절에 무엇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 천부가 그 종처럼 너희를 옥에 가두고 빚을 받는다는 것 입니다.
다시 한 번 설명 합니다. 35절의 내용은 비유가 아닙니다. 예수가 35절에서 무엇이라고 말 합니까? 너희가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비유로 설명한 주인과 같이 하늘의 아버지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다시 말해서 비유가 아니라 실제의 이야기를 단지 주인이라는 이름만 바꾸어서 설명 한 것 입니다. 예수는 세리들을 구원하기 위해 왔고 재물을 빼앗을 것을 이야기 했고 빚을 모두 갚을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위의 비유도 그와 연결된 이야기이며 이것이 용서 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빚진 사람들과 빚을 지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성경 구절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세리들에게 빚을 지고자 했을 것 입니다. 이들에게 빚을 지면 안 갚아도 되겠구나라던가 혹은 적게라도 탕감을 받겠구나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 합니까? 세리들에게 빚을 지는 순간 세리들은 월급을 받기 위해 그리고 영원한 옥에 갇히지 않기 위해 빚진 자의 아내와 아이들을 팔아 버릴 것 입니다.
죄 사함과 용서의 의미를 보았습니다. 여기에서는 구원의 의미를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병든자가 치료를 받으면 구원 받은 것으로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 아는 것 입니다. 아래의 내용을 보면 예수가 10명의 문둥병자를 고쳐 주었고 16절에서 이방인 한명이 예수에게 사례를 하였고 이에 예수가 너의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고 적고 있으며 그외 9명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9명은 이방인이 아니였고 그들은 예수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유대인이였습니다. 이는 예수에게 병고침을 받았다고 해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의 발아래 있어야 구원을 얻었던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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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장> 11 예수께서 ... 12 ...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13 ...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15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
우리는 이제 분명하게 말 할 수 있습니다. 예수교에서의 구원의 의미는 병 고침이 아닙니다. 병 고침을 받았다고 해서 예수가 여러분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면 예수를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위의 이야기가 병고치는 능력으로 이해했다면 그러한 사람들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위의 이야기는 비유이지 예수가 정말 병을 고친것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첫번째 제사장에게 가서 병 고친 몸을 보여 주라는 것 입니다. 이것은 제사장에게 십일조를 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이에 대한 증명은 하지 않겠으니 목사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두번째로 병 고침을 받았으면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라는 것 입니다. 이를 행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 한 것입니다. 제1장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들만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9명의 유대인은 어떻게 병고침을 받은 것일까요?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다른 장에서 설명합니다. 다만 여기서는 구원이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고 사례하는 것임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탕감을 크게 받은 사람이 더 많은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는 당연합니다. 탕감이 크다는 것은 훗날에 그의 아내와 아이들을 팔아 받을 금액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 하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아래의 47절이 핵심으로 죄 사함에 크기가 있는데 예수를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많이 받고 적게 사랑하면 적게 받는다고 직접적으로 적고 있습니다. 이는 여자가 예수의 발에 입맞추며 향유로 예수를 씻기면서 그 죄 사함이 매우 크다고 말을 하는데 그 이유는 향유가 매우 값 비싼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어떤분은 제가 지금 과장되게 이야기 한다고 말 할 것 입니다. 이는 다른 장에서 성경을 통해 증명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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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7장> 41 ...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
이 이야기를 듣고 빚을 지고자 예수의 제자들에게 달려가면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예수에게 있어서 탕감은 용서와 같은 말입니다. 한 번이라도 탕감한 종과 세리들은 영원히 월급을 받을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예수에게 용서라는 것은 한 번이라도 탕감하지 말라는 뜻임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와 베드로는 이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숨겨진 언어로 대화한 것 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아래 내용을 읽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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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7장> 44 ...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
누가복음 7장 48절에서 여자가 죄사함을 얻었다고 합니다. 여자가 왜 죄사함을 얻었습니까? 그 여자가 어떠한 착한 행동을 했길래 예수가 죄사함을 해 주었나요? 여자의 선한 행동은 예수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설명하지 않았나요? 아닙니다. 설명했습니다. 어떻게 설명했습니까? 그 여자가 예수에게 머리털을 씻기며 입맞춤을 했으며 비싼 향유를 바쳤기 때문입니다. 그 이외의 설명은 예수가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병고침을 받아 예수의 발 아래 엎드려 사례를 한 사람도 이렇게 하여 구원을 얻은 것 입니다.
위의 [10번]에서 설명한 문둥병 환자는 영문판에서 예수에게 예를 갖추는 모습으로 작성되어 있는데 한글판으로 옮겨적은 사람이 예수를 제대로 이해하여 사례금과 같은 의미로 적은 것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발아래에서 예를 갖추는 모습을 사례금을 바치는 모습으로 보았기에 사례라고 적은 것 입니다. 그렇다면 초기 한국의 예수교도들은 정말 나쁜 사람들이며 이를 가르쳐 준 초기 선교사들도 나쁜 사람들이 됩니다. 왜 하필 사례라고 적었는지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한국인에게 사례는 사례금을 의미하고 재물을 바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탕감이라는 단어에 무서운 의미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탕감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채를 장려하기 위한 외부에 보여지는 일부이고 탕감은 언젠가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 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옥에 영원히 갇히는 것이 예수의 교리이며 세리들의 규율이였습니다.
이제 부터 누가복음 16장 전체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매우 길지만 예수교도들을 알기 위해서는 모두 읽어야 합니다. 우선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 청지기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을 들은 주인이 청지기를 탓합니다. 이에 청기지의 생각을 적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4절의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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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6장> 1 ...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저를 불러 ...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
4절에 보면 직분을 빼앗기고 자신을 영접할 것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직분을 빼앗겼는데 영접할리 없기 때문에 영접이라는 말은 영원한 감옥을 의미 할 수 밖에 없습니다. 4절에서의 영접은 아래 9절의 영접과 연결 됩니다. 그리고 4절에서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다'라고 적었는데 5절 이후의 내용이 '이렇게'라는 행위를 설명하는 것 입니다. 먼저 그 행위를 읽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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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6장>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
9절에 보면 영원한 처소에 영접하게 된다고 하는데 그곳은 영원한 감옥을 의미 합니다. 따라서 5절의 내용이 청지기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 내용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을 속여 일부를 빼돌렸거나 재물을 탕감해 주었던 것이고 이러한 행동에 대해서 부자가 청지기를 탓한 것 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용서하는 것 처럼 청지기를 칭찬하고 영원한 처소에 영접한다고 합니다. 영원한 처소는 감옥입니다. 설령 그곳이 천국이라 해도 그곳은 죽어서 가는 곳이기에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그 청지기에게 칭찬하였고 지혜롭다고 한 것은 반어법 입니다.
그리고 9절에서 불의한 재물에 충성하지 않으면 참된 것을 누가 맡기겠느냐며 불의한 재물에 충성을 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것이 진실이며 예수가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청지기는 예수교의 감옥에 갔지만 이를 통해 사도들이 배운것이 있다면 장부를 조작해서 더 큰 재물을 거둘 수 있음을 깨닳게 해 줍니다. 그러나 위의 불의한 재물은 빚을 속여 일부를 착복하거나 받지 않는 행위입니다. 그러한 행위를 하면 영원한 감옥에 가두겠다는 것 입니다.
어떤가요? 위에서 말하는 두가지의 영원한 처소가 아직도 영원한 감옥과 죽음으로 연결이 되지 않습니까? 신약성경을 읽으면서 다시 천천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합니다. 위의 성경구절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무서운 사채를 빌리고자 예수에게 달려 갈 것 입니다. 탕감받는 것이 매우 쉽게 느껴지기 때문이지만 그것은 미끼이며 끝에 가서는 아주 작은 금액이라도 모두 갚아야 영원한 옥에서 탈출 할 수 있습니다. 예수교도는 사채업을 하고 있었고 현대에 사채업을 하는 예수교도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절대로 사채를 빌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영원한 감옥으로 몰고 갈 것 입니다.
빚을 진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해 아내와 아이들이 팔리는 천국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그 빚이 사채임을 분명하게 이야기해 주는 것 입니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빚이 사채임을 증명하는 또 다른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만약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나서 받을 때에 밤에 가서 친구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라도 돈을 받아 내라고 한다면 이 모습은 어떤 모습 일까요? 그렇습니다. 이는 오래전 과거나 현재나 마찬가지로 사채 입니다. 그런데 선지자라는 사람이 이러한 이야기를 한다면 그가 정말 선지자 혹은 신이 될 수 있을까요?
아래의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는 친구들에게 빚을 지게 하라고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강제로 빚을 지게 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나중에 돈을 받아야 할 때가 오면 친구가 괴롭히지 말라며 갚지 않거나 문을 닫거나 그의 아이들과 함께 잠을 자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들 앞에서 강건하게 이야기하면 반드시 빚을 받아 낼 수 있다며 사채놀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강청 혹은 강건이라 함은 앞에서 설명한 천부의 성령이며 사도들의 표적과 기사입니다. 천부는 천국의 아버지이며 사탄을 의미하지 신과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내용이 있는데 예수가 아이들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누가복음 11장에서도 아이들이 자고 있을 때에 돈을 받으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왜 일까요? 아이들을 가지고 협박을 하면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뜻 입니다. 예수는 부모의 마음을 이용해서 돈을 받아내라고 한 사악한 사채업자의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또한 경악스러운 것은 예수는 친구에게 강제로 사채를 받도록 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아래의 누가복음 11장 5절에서 반드시 확인하시고 읽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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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장> 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빌리라 6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7 저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
사채를 장려하는 예수의 모습이 보이십니까? 위의 내용은 세리들을 위해 사채놀이에 대한 정신강화 교육이였던으로 세리들의 동족 혹은 그의 친한 친구들까지 사채놀이를 장려하고 전 재산을 빼앗기 위한 설교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누가복음 11장의 내용을 보고도 예수가 사악하다 말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미 이웃과 원수로 지내고자 하는 정신을 잃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가 5절에서 말한 떡 3개를 가지고 얼마나 많은 돈을 받아 내었을까요? 이에 대한 답도 성경은 정확히 가르쳐 주고 있으니 차후 설명하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은 친구사이에는 돈을 빌리지도 받지도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친구 사이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돈을 빌리는 것을 쉽게 생각하지 않고 받는 것도 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친구사이에 그들의 아이들을 통해 갈라 놓는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말한 아이들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그 아이들을 통해 쉽게 돈을 받아 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없어 돈을 받을 수 없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상상이 가십니까? 예수는 그래서 세리와 아이들 이외에도 창기를 사랑한 것 입니다. 그 증거가 성경에 분명하게 종교적 색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종교적 색체를 제거하고 보면 사도들은 분명한 창기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와 사도들이 과부를 사랑한 또 다른 이유이며 이에 대해서는 다른 장에서 설명 합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라는 율법은 눈에 상처를 입었다면 상대방의 눈에도 똑같이 상처를 입히고 이로 상처를 입었다면 이로서 상처를 입히라는 강력한 전쟁 혹은 투쟁을 의미하며 맹세하라는 의미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맹세하여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항하라고 가르친 세례요한을 비롯한 유대 지도자들의 중요한 계명이며 율법이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는 '너희는 대적하라고 말을 하지만 나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겠다'며 대적하지 말라고 말 했고 때리면 때리는대로 맞으며 살라고 강요하고 그들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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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40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
중요한것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돈에 대해서 예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40절에서 재판을 걸어 재산을 빼앗고자 하는 세리와 제자들이 있으면 그들에게 전부 내어 주라고 외치고 있었고 42절을 보면 빚을 지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거절하지말고 사채놀이를 하라고 장려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친구에게 사채를 권유하듯이 예수는 거절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 자꾸 사채를 장려했을까요? 그 이유는 세금을 걷는 일 이외에 사채가 직업이였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것이 세리들을 위한 예수의 사악한 설교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는데 예수는 항상 너희는 율법을 말하지만 나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겠다고 한 것 입니다. 결단코 예수는 유대인의 율법을 좋아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교도들은 살인하지 말라라는 말을 해서는 안되며 사채업자가 아내와 아이들을 뺏어가도 욕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예수교도들의 교리 입니다.
사채놀이를 통해서 재산을 탕진하거나 빼앗겨 나그네 신세가 된 유대인들을 위해서 예수는 또 다른 설교를 합니다. 이에 대한 내용이 아래에 있는데 나사로라 하는 거지가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기 위해 있었습니다. 이는 개 취급 받는 가나안 여자와 비슷한 이야기 입니다. 여기에서도 나사로가 개와 동등한 위치에 있었는데 거지 나그네였고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가게 되고 부자는 음부로 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거지 나그네가 되어도 괜찮으니 너희가 아브라함의 품에 가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며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너희 유대인들은 아무런 걱정이 없다고 이야기 하는 것으로 유대인을 비웃는 이야기이며 부자였던 세리들도 항상 부자였지만 예수에게 천국에 가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난한 유대인은 아브라함의 나라에 가고 살인하며 돈을 갈취한 세리들과 예수를 따르는 권세가들도 그들만의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일하게 지옥에 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부자였고 예수에게 재산을 바치지 않는 사람들이였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나라와 천국은 다른 곳 입니다. 이 점 또한 분명하게 인식하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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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6장> 20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21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
이미 우리는 [5번]에서 가난한 척하라는 예수의 설교를 보았습니다. 예수와 사도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었을까요? 그렇다면 모두가 부자가 되었어야 옳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라는 거지는 거지인 상태로 아브라함의 나라에 죽어서 갔습니다. 예수는 가난한 자들을 부자로 만들기 위해 돈을 헌금으로 받고 모은 것이 아니며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사로는 생거지 생활을 하면서 죽었습니다. 예수가 보살펴 주었다면 나사로가 헌데를 앓으며 굶주리지 않았을 것 입니다. 이에 대한 증명도 뒤에서 계속 설명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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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21 ...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왔다고 합니다. 우리는 죄가 빚을 갚지 않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여기에 추가해서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것도 죄였습니다. 세금에 관한 이야기는 제7장에서 설명 합니다. 또한 위에서 말하는 백성은 유대인이 아니라 세리들 입니다. 이번에는 예수가 말하는 용서하라는 다른 내용들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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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14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11장> 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누가복음 6장> 37 ...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누가복음 11장>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
이것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스스로 알아 보시길 바랍니다. 답은 뒤에 적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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