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동쪽
인간의 원죄(原罪)는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가? 이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대답이 명쾌하지 않다. 물론 여러 선각자 혹은 종교의 가르침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짐작은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불멸의 경전이며 고전인 성경을 통해 인간의 참다운 가치와 삶의 올바른 방향을 찾아 평생을 살아간다. 누구나 「에덴동산」에서 살기를 희망하지만 현실은 냉담하고 빈곤하며 힘들게 살아간다. 더구나 인간에게는 타고 난 원죄에서 자유롭지 않아 평생을 고통과 신음 속에서 허덕거린다.
그런데 오히려 문학작품을 통해 그 정수(精髓)를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위대하다고 평가하는 작가는 해석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원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인생의 참다운 맛을 제시한다. 고통에 신음하는 인간의 마음을 꿰뚫고 위대한 작가는 새로운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차분하게 바른 길을 제시해 준다.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존 스타인벡(1902~68)」을 통해 새로운 조명을 받았다. 그의 작품인 『에덴의 동쪽』은 「제임스 딘」이 주연을 맡은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더구나 만인의 가슴에 각인된 반항적인 기질의 배우가 오토바이 사고로 요절하여 많은 이에게 애잔한 슬픔을 주기도 하였다.
작가는 캘리포이나 주 「살리나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작품 『분노의 포도 (1939)』는 점점 산업화되고 기계화를 통해 일자리를 잃은 이주 농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통해 자본주의의 모순을 고발한 작품이다. 그러나 작품에 반발하는 각계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퓰리처상」을 수상함으로서 더욱 명성을 얻었다. 만년의 대작인 『에덴의 동쪽(1952)』을 통하여 인간의 원죄와 그 짐을 지고 구원을 얻으려는 인간의 몸부림을 묘사했다. 그는 『에덴의 동쪽』에서 “내 최고의 대표작으로, 이전에 쓴 다른 작품은 이 작품을 쓰기 위한 준비였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이 두 작품을 통해 노벨상(1962년)을 수상하였다.
『에덴의 동쪽』의 주제는 선과 악의 대결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원죄의식, 「카인」과 「아벨」의 갈등 구조를 모델로 한 이 작품에는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 등 인생의 대립적인 양면성이 극명하게 나타나 있다.
이 책의 첫 장면부터 작가는 자연의 풍광을 통해 상징적으로 선과 악을 묘사한다. 캘리포니아 북부에는 넓고 평평한 바닥에 비옥한 흙이 두툼하게 깔려있는 「살리나스 계곡」이 있다. 이 계곡의 동쪽은 햇살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밝고 화사한 「개빌런 산맥」이다. 마치 에덴동산을 상징한다. 반면에 서쪽은 음침하고 시무룩한 표정이어서 매정하고 위험해 보이는 「샌타 루시아 산맥」이다.
그런데 선악의 상징이 지형보다는 인물에 미묘하게 숨어 있다. 주인공의 이름은 「아담 트래스크」이다. 「사무엘 해밀턴」과 그의 아내 「라이자」는 아일랜드에서 온 이주민이다. 「해밀턴」은 아일랜드의 이주자인 작가의 외조부를 배경으로 하는 인물이다. 이들은 「살리나스 계곡」에 자리를 잡고 불모지를 개척하며 9명의 자녀를 키운다.
「해밀턴」의 자녀들이 성장하여 각자 자기 삶을 찾아 갈 때, 「아담(Adam) 트래스크」라는 부자(富者)가 「살리나스 계곡」의 가장 좋은 목장을 구입하여 임신한 아내와 함께 이사를 온다.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기병대에 입대하여 오랫동안 근무하였다. 제대 후 방랑하다가 고향인 「코네티컷」의 한 농장으로 귀향하여 배 다른 동생인 「찰스(Charles)」와 재회한다. 성장하면서부터 동생과는 성격이 맞지 않아 역시 군 출신으로 극히 세속적이었던 아버지의 유산을 정리하여 동생으로부터 벗어난다.
여기에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녀의 이름은 「캐시(Cathy) 에임스」다. 「캐시」는 ‘잘못된 영혼의 소유자’다. 어려서부터 남자 아이들을 창고로 끌어들여 희롱을 하다가 사실 아무 잘못도 없는 그 소년들은 처벌을 받는다. 평소 거짓말을 아주 천연스럽게 하고 순발력을 발휘하여 주위 사람들을 안심시킨다. 그녀는 냉담하고, 잔인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다. 「캐시」는 자신의 집에 불을 질러, 부모를 죽이고 집을 떠난다. 그녀는 후에 남자인 포주를 유혹하여 살면서 돈을 훔치고 보석을 팔아 치우는 등 몰래 돈을 모은다. 그는 그녀가 화제 사건에 관여된 것을 알아차린다. 그녀의 버릇을 가르치려는 그에게 죽도록 두들겨 맞은 다음 「아담」과 「찰스」가 사는 집의 대문에 쓰러지게 된다. 「찰스」는 그녀를 거절하지만 「아담」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녀를 치유하고, 사랑하고 결혼한다.
작가는 주인공의 이름을 통해, 선과 악을 표시한다. 그는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선의 상징을 「아벨(Abel)」로, 악의 상징을 「카인(Cain)」으로 해석하여, 소설 인물에서 A로 시작하는 인물은 선의 상징으로, C로 시작하는 인물은 악의 상징으로 표시한다. 그러므로 「아담(Adam)」은 선의 상징으로, 「찰스(Charles)」와 「캐시(Cathy)는 악의 상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새로 결혼한 부자청년 「아담」은 「살리나스 계곡」의 「해밀턴 목장」 근처에 임신한 「캐시」와 함께 도착한다. 「아담」에겐 완벽해 보이는 삶이었다. 그러나 「캐시」는 캘리포니아 농촌에 남아 아내로, 어머니로 살기를 혐오한다. 쌍둥이를 출산하고서도 아기들을 보려하지 않는다. 떠나려는 「캐시」에게 “아기들은 어떻게 하고” 묻자 “당신이 파놓은 우물에나 던져 버려라”고 말한다. 그녀는 출산한 2주 뒤, 남편 「아담」의 어깨에 총을 쏘고 도망 가 「살리나스」의 사창가로 숨어든다. 「캐시」에게 아직도 미련이 남은 「아담」은 본인의 오발에 의한 사고라고 둘러댄다. 어깨에 총상을 입은 「아담」은 육체적 건강을 회복하지만 심한 우울증에 빠져든다. 그는 하인으로 고용한 중국 요리사 「리」와 이웃 「사무엘 해밀턴」의 도움으로 쌍둥이를 키운다.
한편 「아담」의 부인 「캐시」는 「살리나스」 도시의 가장 비싼 사창가의 창녀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케이트(kate)」라고 바꾸고, 매사에 적극적으로 일해 신뢰를 얻어 친딸처럼 여기는 그 사창가 여주인을 독살, 자신이 주인이 된다. 그녀는 남편 「아담」과 두 아들을 까맣게 잊고 생활한다. 「아담」의 두 아들, 「칼렙(Caleb)」과 「아론(Aron)」도 자신들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른다. 「아론」은 「에이브라」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칼렙」과 「아론」은 자신의 어머니가 실제로 「살리나스」에 생존해 있다는 소문을 듣지만, 그녀가 「케이트」인지는 몰랐다. 친절한 이웃 「사무엘 해밀턴」은 죽기 전에 「아담」에게 「케이트」가 있는 곳을 알려준다. 「아담」은 「케이트」를 찾아 가지만 쌍둥이의 안부는 관심도 없고, 그 자식들이 「아담」의 동생인 「찰스」의 자식들이라고 말한다.
「아담」은 그동안 「케이트」에게 향했던 사랑에서 벗어나 “나는 이제 자유롭다. 그 여자는 사라졌어”라고 외친다. 아담의 새로운 사업(동부에 냉동상추 판매)은 뜻밖의 사고로 어려워진다. 「아론」은 존경받는 사업가가 아니라 웃음거리가 된 아버지 「아담」을 보고 슬퍼한다.
「아론」과 「칼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길을 간다. 「칼렙」은 성서의 「카인」처럼 농사에 간련된 일을 하고, 「아론」은 목사가 되려고 신학교에 입학한다. 「칼렙」은 불안한 성격의 소유자로 모든 사람을 피하고 밤에 도시를 방탕하게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자신의 어머니가 살아 있고, 그 사창가의 우두머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칼렙」은 「사무엘 해밀턴」의 아들인 「윌 해밀턴」과 사업을 시작한다. 돈을 벌어 아버지에게 인정받겠다는 생각이다. 「칼렙」은 「살리나스 계곡」에서 나는 콩을 제 1차 세계대전으로 식량이 부족한 유럽에 수출하여 큰돈을 벌 생각이었다. 그는 사업에 성공하여 사업에 실패하고 의기소침한 아버지에게 현금 1만 5000달러를 드릴 계획을 세운다. 한편 「아론」은 목사가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닫고, 아버지에게 신학교를 그만 두겠다고 하려는 참이었다.
식구들이 추수감사절 식사를 하려고 모인 자리에서, 「칼렙」이 먼저 칭찬을 받겠다는 생각으로 아버지에게 현금을 드린다. 그러나 아버지 「아담」은 그 돈을 거절하며 이 돈을 벌겠다고 사기 친 농부들에게 돈을 돌려주라고 말한다.
“네 형이 가지고 있는 자질, 다시 말해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그 일이 진척되었을 때 느끼는 기쁨 같은 것을 내게 보여 주었다면 나는 정말 기뻤을 거. 아무리 깨끗한 돈이라 하더러도 돈은 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칼렙」은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하자 그 화를 「아론」에게 돌린다. 「칼렙」은 엄청난 충격을 받는 「아론」을 생각하면서, 그를 어머니에게 데리고 간다. 그는 사창가 여주인인 「케이트」가 자신들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아론」에게 알린다. 「케이트」는 자기가 버린 자식 「아론」을 보고 자기 혐오에 빠져 유산을 아론에게 상속하고 자살한다.
목사가 되려 했던 17세의 「아론」은 충격에 빠져 18세라고 징병관을 속이고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전사한다. 아버지 「아담」은 「아론」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리」로부터 듣고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칼렙」은 「아담에게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형이 죽은 것도, 아버지가 쓰러지신 것도 모두 제 탓이에요. 제가 형을 「케이트」의 집으로 데리고 갔어요.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 줬다고요. 형은 그래서 도망을 친 거예요. 정말이지, 저는 나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결국엔 하고 마는 것 같아요.”라며 울부짖는다.
소설은 「리」가 임종 직전의 「아담」에게 죄의식에 사로잡힌 「칼렙」에게 축복을 내림으로써 그를 자유롭게 하고 회생할 기회를 주라고 간청하는 장면에서 끝난다. 「아담」은 「칼렙」」에게 ‘팀쉘(timshel)’이란 용어로 그를 용서한다.
‘팀쉘’이란 단어는 「스타인벡」이 『에덴의 동쪽』에서 말하고 싶은 핵심을 담았다. ‘팀쉘’이란 의미는 무엇인가?
「리」는 샌프란시스코에 있을 때 네 명의 중국학자와 랍비와 함께 이 야기를 토론했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히브리 단어 ‘팀쉘(timshel)’은 실제로는 “너는 ‧‧‧할지도 모른다/ 할 수 있다”란 의미라고 주장한다. 리는 ‘팀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드러내는 단어이며,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자유를 신에게서 부여받은 존재라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죄에 대한 자각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서 죄를 다스릴 수도 있고, 다스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팀쉘’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자유의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는 낱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팀쉘’은 인간에게 그의 과거가 어떻든 그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삶, 희망과 구원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촉구한다. 인간은 누구나 원죄를 지니고 산다. 따라서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언제까지 원죄라는 굴레에 얽매어 있어야 하는지, 또 인간 스스로 죄를 다스릴 수 있는지 등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해답으로 인간의 자각 인식, 관용, 인간애, 인간의 자유의지 등을 암시적으로 내비친다.
작가는 인간은 신의 명령이나 주어진 운명대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본인의 의지대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도 있고, 또 스스로 의 선택에 의해서 자신의 운명과 직접 부딪쳐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은 간단치가 않아 대부분이 운명론자로 살아간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 중의 하나는 바로 주어진 운명에 도전하여 자신의 의지대로 후회 없이 살아가는 구도자(求道者)의 자세를 구비하는 일이다.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끊임없이 변화하고자 하는 곳에 새로운 길이 열려있는 것이다. 그 믿음을 간직하고 묵묵히 뚜벅뚜벅 걸어가는 인생길에 일모도원(日暮途遠)을 재촉하는 석양이 기운다.
(2023.9.3.작성/9.14.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