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광덕산
2024년 12월 25일(수요일)
산행코스 : 강당골주차장(08:00) - 철마봉(08:40) - 광덕산(09:20) - 장군바위(10:00) - 마늘봉(10:20) - 절골임도(10:50) - 강당리주차장갈림길(11:05) - 강당골주차장(12:00)
산행거리 : 11.0km
강당골 주차장
망경산정상 7.4km, 배방산정상 16.2km, 광덕산정상 3.2km, 설화산정상 11.9km, 각흘고개 10.9km
광덕산 들머리
물푸레골
강당골주차장 0.9km, 광덕산정상 2.3km
외암리갈림길
광덕산정상 1.9km, 망경산정상 6.1km, 강당골주차장 1.3km, 외암리주차장 4.3km
작은천마봉
강당골주차장 1.6km, 광덕산정상 1.6km, 설화산정상 10.3km
철마봉 정상이 보입니다.
나무사이로 광덕산이 보입니다.
임도 정자쉼터
광덕산정상 1km, 망경산정상 5.2km, 각흘고개 8.7km, 강당골주차장 2.2km, 물프레골 1.3km
광덕산임도
강당골주차장 2.2km, 광덕산정상 1km
임도를 지나 다시 산길로 올라갑니다.
약수터갈림길
강당골주차장 2.7km, 광덕산정상 0.5km, 설화산정상 9.2km, 각흘고개 8.2km, 배방산정상 13.5km
광덕산 정상까지 된비알길입니다.
된비알 돌계단을 앞만 보면서 올라갑니다.
올라온 돌계단길을 뒤돌아봅니다.
마지막 돌계단길
광덕산 정상
강당골주차장 3.2km, 광덕산임도 1km
정상석 뒷편에서 바라본 설화산, 배방산
당겨본 영인산
당겨본 설화산과 우측 배방산
좌측 천방산, 봉수산, 중앙 봉수산, 용굴산, 덕봉산, 도고산과 그 뒤로 가야산
당겨본 봉수산 그 앞 좌측 천방산
당겨본 덕숭산, 가야산, 일락산과 그 앞으로 용굴산, 덕봉산, 도고산이
광덕산 전망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계룡산 방향 파노라마
고려산, 운주산 방향
당겨본 고려산
태봉산, 우측 천태산
당겨본 운주산
당겨본 천태산
계룡산, 무성산 방향
당겨본 무성산
곤줄박이
장군바위 1.2km, 광덕사 2.3km, 광덕쉼터 3.6km
장군바위와 마늘봉을 지나 강남골로 하산합니다.
약수터갈림길
광덕산정상 0.5km, 장군바위 0.8km, 강당골 3km, 멱시마을 2.2km
장군바위
광덕쉼터 3.0km, 광덕산정상 1.2km, 광덕사 2.3km
장군약수터 0.3km, 배방산 정상 11.8km, 망경산 정상 3.1km, 설화산 정상 7.8km
뒤돌아본 장군바위
부용묘 갈림길
가야할 마늘봉
마늘봉을 향하여 올라갑니다.
마늘봉 오르막길
지나온 능선
마늘봉 정상이 보입니다.
마늘봉
망경산 정상 2km, 망경삼거리 0.8km, 설화산 정상 6.5km, 광덕산 정상 2.2km, 장군바위 1km
나무사이로 망경산이 보입니다.
망경산
망경삼거리
망경산 정상 1.2km, 배방산 정상 10km, 광덕산 정상 3km, 장군바위 1.8km, 설화산 정상 5.7km
나무사이로 광덕산이 보입니다.
절골임도
광덕산 정상 3.6km, 장군바위 2.4km, 망경산 정상 1.7km, 망경삼거리 0.5km, 설화산 정상 5.3km
절골임도를 지나 설화산 방향 오르막길
망경산
조망터에서 바라본 망경봉 방향 파노라마
설화산, 배방산
배방산에서 태화산으로 올라가는 능선
망경산
설화산으로 가는 등로
강당리주차장 갈림길(묘)
강당리주차장 2.4km, 설화산 정상 4.3km, 초원아파트 6.5km, 광덕산 정상 4.6km, 망경산 정상 2.8km
지나온 우측 광덕산
345봉 바위쉼터
강당골 주차장 1.6km, 광덕산 정상 5.1km, 설화산 삼거리 0.7km
302봉 쉼터
강당골 주차장 1km, 광덕산 정상 5.7km, 장군바위 4.5km
강당사(講堂寺) 표지석
용담교(龍潭橋)
관선재
관선재는 조선 숙종 34년(1708년)에 외암(巍巖)과 천서(泉西) 두 선생이 학문 탐구와 인성도야를 위해서 건립한 강학원(講學院)으로서, 강호 사방에서 모여든 문하생들이 수학하고, 형설의 공으로 많은 고제(高弟)와 석학을 길러낸 사설학원입니다. 1868년경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있자 이를 모면하고자 가까운 마곡사에서 불상 한분을 모셔다 봉안함으로써 비로서 사찰의 시원이 되었습니다.
관선재는 정면 5칸, 측면 4칸 건물에 정면 2칸, 측면 2칸의 부속건물을 이어 붙인 'ㄱ'자 형태의 건물로, 민도리 홑치마 팔작지붕을 하였으며, 길 쪽의 3칸은 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깔았습니다.
관선재(觀善齋) 편액
수암 권상하로부터 받은 당호 관선재 편액은 수암 권상하(遂庵 權尙夏 1641~ 1721) 가 썼다고 하고, 추사 김정희( 秋史 金正喜 1786~1856)의 글씨라고도 하는데, 관선재라는 현판 때문에 관선재로 더 잘 알려졌습니다.
행랑채
팔작지붕의 행랑채 겸 대문이 나타납니다.
사찰은 동향의 사면을 정지하고 조영되었으며 현재 전체 배치는 ‘ㅁ’자형을 하고 있습니다. 건물 구성은 인지헌(仁智軒)이란 현판이 걸려있는 본래의 건물과 함께 그 정면에 법당과 절의 입구에 해당하는 솟을대문 형식의 건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근년의 보수 시에 ‘숭정후세삼을유삼월이십일일묘시중수상량(崇禎後歲三乙酉三月二十一日卯時重修上樑)’이라는 상량문이 발견되어 영조 41년(1765)에 중수가 있었음이 밝혀졌습니다.
문천사
문천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에 주심포 겹처마 맞배지붕의 건물로, 외암 이간과 천서 윤혼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자 외암유고 목판을 보관하던 곳입니다.
문천사는 조선 영조 때 경연관(經筵官)을 지낸 외암 이간 선생과 같이 강론하던 지기인 윤혼선생을 위해 제향을 올리는 곳입니다. 문(文)은 이간의 익호인 문정(文正)에서 따온 글자이고 천(泉)은 윤혼 선생의 아호 천서(泉西)에서 따서 붙인 것입니다. 안에는 두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지금은 새로 건립한 외암 집판장(외암선생 문집판각)에 외암유고 목팍을 옮겨 보관하였고, 문천사는 외암과 천서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5월 30일 제향하는 사당의 기능만 수행하고 있습니다.
문천사(文泉祠) 편액
인지헌(仁智軒) 편액
편액에 ‘千秋歲月(천추세월)’이라는 두인과 ‘李用璨印(이용찬인)’이라는 도서가 있습니다
외암집판장(巍巖集板藏) 편액
강당사(講堂寺) 대웅전
정면 3칸, 측면 2칸에 풍판이 달린 중심포 겹처마 맞배지붕의 건물이며, 정면 3칸 모두 4분합 빗살문을 달았습니다.
대웅전은 1995년 조계종 비구니 월해(月海), 종민(宗旼) 스님이 강당사와 인연이 닿아 1999년에 대웅전을 중창하고, 와서 2002년(불기 2546년 임오) 대웅전을 새로 건립하였습니다.
대웅전 주련
佛身普遍十方中(불신보편시방중) 부처님은 우주에 가득하시니
三世如來一切同(삼세여래일체동) 삼세의 모든 부처님 다르지 않네
廣大願雲恒不盡(광대원운항부진) 광대무변한 원력 다함이 없어
汪洋覺海竗難窮(왕양각해묘난궁) 넓고 넓은 깨달음의 세계 헤아릴 수 없네
대웅전(大雄殿) 편액
목조 석가모니 삼존불
석가모니불을 가운데로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하는 목조 석가모니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으면, 2002년에 조성되었습니다.
연꽃 대좌 위에 결가부좌 한 석가모니불이 좌선하며 선정인을 취하다가 왼손을 그대로 둔 채 오른손을 풀어 오른쪽 무릎에 얹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수행을 방해하는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자 지신이 홀연히 뛰쳐나와 이를 증명하였는데, 이 모습이 항마촉지인입니다.
양 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은 아미타여래 9풍인 중 하품중생(또는 중품하생)의 수인을 하였는데, 관세음보살은 연꽃가지를 길게 쥐었고, 지장보살의 오른손에는 육환장을 끼워 넣었고 왼손에는 보주가 올려져있습니다.
삼존불 뒤의 후불탱화는 석가모니불을 좌우에는 협시하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포함한 8대 보살과 10대 제자 및 8부중 그리고 사천왕을 그린 영산회상도입니다.
신중탱화
삼존불 좌측 신중단에 걸려있는 신중탱화는 2002년에 조성된 것으로, 예적금강을 가운데 두고 상단에 제석과 범천을, 아래 좌측에 동진보살을 배치하고, 주위에 금강신을 비롯해 성군, 명왕, 천녀 등을 묘사하였습니다.
외암선생 문집 판각(巍巖先生文集板刻)
문집판각은 정면 4칸, 측면 1칸에 풍판이 달린 민도리 홑처마 맞배지붕의 건물로, 2017년에 새로 짓고 문천사에 보관해 오던 충남 유형문화재 제333호 외암유고 목판 307매를 옮겨 보관하고 있습니다.
외암 선생 문집 판각은 조선 영조 때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외암 이간(巍巖 李柬 1677~1727)의 문집 '외암유고(巍巖遺稿) '를 새겨 놓은 목판각으로, 장판각 안에 307매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외암선생문집판각(巍巖先生文集板刻)은 조선 숙종·영조 때의 학자 외암 이간(巍巖 李柬1677~1727)의 문집 '외암유고(巍巖遺稿)'를 인쇄하기 위해 만든 목판(木板)(책판) 307매를 말합니다.
이간 사후에 이간의 둘째 아들인 이이병(李頤炳)이 1760년(영조 30)에 자신이 현감으로 있던 경상북도 경산현(현재 경산시)에서 판각한 것입니다.
이간은 송악면 외암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중심인물로서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주창하였습니다. 당시 기호학파 안에서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주장하였던 남당 학원진(南塘 韓元震 1682 ~ 1727)과 대립하며 호락논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판각 안에 새겨져 있는 '외암유고'는 대부분이 이간의 이론을 설명하는 것이지만 그 안에 시와 상소문(疎) , 서간문(書) 등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를 통해 첨학, 문학, 생명, 환경 부문에 관한 그의 사상과 의식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시 지성계의 동향과 학술적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가 실려 있어 조선후기 지성사를 연구하는데 소중한 자료라 할 수 있습니다.
판각이 보관되어 있던 관선재는 이간이 숙종 33년(1707) 윤혼(尹混)과 함께 후학을 양성하고자 건립하였고 스승인 수암 권상하(遂庵 權尙夏 1641~ 1721) 가 편액을 내려 준 곳입니다.
출렁다리
아산 강당골 용추 석각
강당골 계곡에서 아름다운 장소가 용추(龍湫)입니다. 계곡 초입의 용추는 비스듬한 폭포 아래의 깊은 못이며 용이 승천하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좌우가 수직에 가까운 암벽으로 이루어져 폭포 부분이 돌문과 같다고 보아 '석문용추'라고도 불렸습니다.
조선 후기 아산 출신의 성리학자 외암 이간(1677~1727)이 그 상류쪽에 외암정사(巍巖精舍)를 지을 당시도 용추라고 하였습니다.
외암정사를 흔히 강당이라 불렸으며 계곡과 마을 이름도 강당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용추 주변에는 한자로 새긴 다양한 석각이 있습니다. 곳곳의 바위에는 예안이씨 7명, 이간의 법신 윤혼의 후손 파평윤씨 2명, 그 밖의 2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예안이씨 사람들은 조선말기와 일제감정기의 인물들입니다.
이백선(李伯善)
윤태희(尹泰熙)
강당골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