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적인 광기가 느껴지는 짐 모리슨.. 그의 목소리만큼이나 광기 서린 목소리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닉 케이브Nick Cave다. 거기에 더해 그의 음악엔 세련된 장중함이 있다.
명장 빔 벤더스Wim Wenders 감독의 영화 < 베를린 천사의 시Wings of Desire >(1987)에서
천사가 클럽으로 들어갈 때 울부짖으며 'From her to eternity'를 노래하는 한 남자가 나온다.
그가 바로 닉 케이브다. 1957년 태어난 호주 출신의 국가 대표급 뮤지션으로 대중음악계의
소문난 기인 중 한 사람이다.
'Henry lee'는 완숙한 사운드의 1996년 앨범 <Murder ballads>에 수록된 곡이다. 초창기처럼
불안하고 병적인 목소리는 아니지만 점점 삶을 포기해가는, 그리고 이제는 모든 것에 익숙해져 버린
듯한 그런 목소리다. 상업성이 다분하다는 평가도 감수해야 했지만 피제이 하비PJ harvey와의
앙상블로 빚어낸 서늘한 분위기가 가슴 한 구석이 시린 이 계절에 자꾸만 귀에 감겨든다.
닉 케이브와 피제이 하비는 한때 커플이었다. 이 노래의 인기에 큰 영향을 준 뮤직비디오에서
서로를 탐하는 두 사람의 '케미'는 남달랐다. 그다지 미인, 미남이 아닌데도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이 그대로 드러나는 영상이 백미였다. 보기에 따라서는 오글오글하기도 하겠지만. 두 사람은
이내 헤어졌고 닉 케이브는 하비와의 결별에 따른 아픔을 음악으로 승화시켜 앨범을 만들었다고
한다.
닉 케이브의 아홉 번째 앨범인 <murder ballads>는 그 제목처럼 살인에 대한 곡들로 가득하다.
그야말로 살인에 관한 서사시다. 이 중 '헨리 리Henry Lee'라는 곡은 스코틀랜드 민요라는 설이 있다.
스코트랜드에서 'Young Hunting'이라는 곡으로, 미국에서는 주로 '헨리 리'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민요가 대체로 그렇듯 다양한 버전이 있다. 닉 케이브가 부른 가사를 보면 이렇다.
남자와 여자가 만났다. 남자가 변심을 해서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되돌리려 한다. 남자는 다른 여자를 더 사랑하기에 그럴 수 없다고 한다. 그러자 여자는 마지막
작별 키스를 하자고 한 후 칼로 남자를 찔러서 죽인 다음, 우물에 남자를 버린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갈 때까지 우물에서 지내라고. '영 헌팅'의 경우, 여자가 임신했음을
암시하는 구절이 나오고 나중에 살인이 발각되어 화형을 당한다는 내용도 있다.
닉 케이브는 어린 시절 독실한 영국 국교회 집안에서 성장했다. 이런 환경 때문에 그는 지금껏
종교와 이를 통한 대속적 사랑, 그리고 영생(永生)의 문제에 광적으로 집착해왔다. 그러나
단순한 신봉자로 그를 재단하는 것은 절대금물이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닉 케이브는 줄곧
기독교 전반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멈추지 않았고 때론 극단적 태도로 그것에 린치를 가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닉 케이브는 친구들과 더 보이 넥스트 도어The Boy Next Door라는 밴드를 결성,
음악인생의 시작점을 찍었다. 한 장의 앨범과 EP를 발매한 뒤, 밴드 이름을
버스데이 파티Birthday Party로 바꾼 그룹은 영국 런던의 클럽을 중심으로 서서히 지명도를
쌓아나갔다. 당시 영국의 주류 음악이었던 포스트 펑크post-punk 사운드를 주무기로 장전한
총 3장의 음반을 통해 평자들로부터 높은 성적표를 받아냈다. 1983년에 버스데이 파티를 해산한
닉 케이브는 재도약을 위한 계획 수립에 들어간 뒤 새로운 음악 동료를 영입해
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시즈(Nick Cave And The Bad Seeds)를 출범시켰다.
데뷔작 < From her to eternity >(1984)는 포스트 펑크와 고딕의 그림자를 지운 대신 블루스, 포크 등의
전통적인 음핵들을 한 데 묶어 자신만의 독특한 소리 메커니즘을 조직해냈다. 물론
이런 올드 장르들로 유턴했음에도 그만의 극단적 면모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테마를 다루는
'방식'만 변화했을 뿐 큰 물줄기는 고스란히 유지되었다. 이처럼 과거의 음악 자양분을 맘껏
섭취하려는 그의 욕망은 여러 커버 곡들을 수록한 데서 특히 잘 드러났다. 밴드 최초의 싱글인
엘비스 프레슬리의 ‘In the ghetto’, 1집에 실린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Avalanche’ 등이
이를 대변하는 곡들이다. 이는 < The Firstborn Is Dead >(1985)를 지나 1986년 3집
< Kicking Against The Pricks >에서 전곡 리메이크로 그 완성을 보았다.
1986년 4집 < Your Funeral…My Trial >을 발매한 뒤 닉 케이브는 < 베를린 천사의 시 >에 출연하기
위해 2년 간의 공백기를 가졌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찬사를 얻어낸 덕에 그의 몸값은
급속히 상승했다. 이 외에도 그는 다방면에서 재주를 뽐냈다. 감옥 제도의 잔인함을 고발한
호주 영화 < Ghosts… Of The Civil Dead >(1989)에서 호연을 펼쳤고 OST도 맡았다.
우화 소설 < And The Ass Saw The Angel >(1989)과 시와 가사 모음집인 < King Ink >(1988)를 발표,
작가로서의 재능도 과시했다. 계속해서 정규 5집과 6집인 < Tender Prey >와 < The Good Son >을
1988년과 1990년에 내놓은 닉 케이브는 1992년 걸작 <Henry’s Dream >으로 월드 마케팅을 위한
탄탄한 초석을 마련했다.
4년 뒤인 1996년, 그는 위에서 언급한 앨범 < Murder Ballads >(한국판 Lovely Creature)에서
음악적으로 일취월장하며 비평과 상업 모두 큰 폭의 도약을 일궈냈다. 한 술집에 들어가 그 곳의
전부를 살해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9분 여에 걸쳐 묘사하는 ‘O`Malley`s bar’,
동향 출신의 댄스 여제 카일리 미노그(Kylie Minogue)와 입맞춘 ‘Where the wild roses grow’,
위에서 소개한 ‘Henry Lee’ 등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후속작 < The Boatman`s Call >(1997)은 흥미롭게도, < Murder Ballads >와는 완연히 대조적이었다.
부드러운 크루닝으로 사랑에 관해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물론 이는 1994년의 8집
< Let Love In >에서 이미 시도한 것이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그 맥을 달리했다. 2001년작 < No More Shall We Part >(2001) 역시 마찬가지. 음반은 한마디로
전작의 심화 버전이었다. 잔잔한 발라드와 그에 맞는 심플한 곡 구조가 이를 잘 말해주었다.
Lie there, lie there, little Henry Lee
여기 누우소서, 작은 헨리 리여
'Till the flesh drops from your bones
그대의 살점이 뼛조각이 될 때까지 누우소서
For the girl you have in that merry green land
즐겁고도 푸르른 초원에서 그대 곁에 있던 그 여인을 위해
Can wait forever for you to come home
그대가 집에 올 때까지 영원히 기다릴 수 있을 테니
And the wind did howl and the wind did moan
바람이 울부짖고 있답니다, 바람이 흐느끼고 있답니다
Lalalalala Lalalalalee
라라라라라 라라라라리
A little bird lit down on Henry Lee
작은 새 한 마리 헨리 리 위에 앉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