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 속에서도 진실이 있을까? 웨인 왕Wayne Wang 감독이라면 “물론”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온 가족이 몰려가서 손수건을 돌려가며 눈물을 닦고 보아야 할 <조이 럭 클럽The Joy Luck Club>은 음식과 마작, 엄마와 딸, 탄식과 격려 속에서 시종일관 소란스럽고 아름다우며, 가슴을 종종 쥐어짜는 듯한 순간이 여덟 번 등장해 여덟 번 울리는 영화다. 도대체 어떻게? 우리가 초대받은 저녁 만찬 석상은 여덟 명의 여자들이 40년 동안 눈물과 고통을 꾹꾹 눌러 참아가며 준비해왔던 한과 용서를 베푸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미국 차이나타운의 작은 파티에는 네 명의 어머니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세상 사는 이야기도 하고 심심풀이 마작도 하는 ‘조이 럭 클럽’이 있다. 여기에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딸 준이 초대된다. 그리고 그녀들의 성장한 딸들도 함께 자리한다. 마작하는 어머니들의 추억 속엔 중국에서 그들을 낳고 길러 준 어머니들이 자리잡고 있다(딸들에겐 외할머니 즉 조이 럭 클럽의 어머니들이 추억하는 그들의 어머니들은 사방이 막힌 불행한 결혼생활 속에서 기지를 발휘해 스스로를 해방시키거나 어쩔 수 없이 부호의 첩이 되지만 자살함으로써 딸의 장래를 구원해 주고 있다).
피난길에 쌍둥이 딸을 버리고 미국으로 이민 온 수유 안과 마음 착한 딸 준, 남의 첩이 된 어머니를 둔 안 메이와 결혼생활에 실패한 딸 로즈, 15세에 강제로 시집 갔다가 자유를 찾아 떠나온 린도와 그녀의 자유분방하고 반항적인 딸 웨벌리, 바람 핀 남편에 대한 복수로 자식을 죽여버린 잉잉과 남편 때문에 삶이 망가진 딸 레나.. 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자신들의 삶을 찬찬히 돌아본다.
중국계 미국인 웨인 왕 감독의 여섯 번째 영화 <조이 럭 클럽>은 에이미 탄Amy Tan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영화는 여덟 여자의 인생 여정 속으로 쉴 사이 없이 들락날락하면서 봉건제와 자본주의, 가부장제와 인종편견, 전쟁과 경쟁, 남편과 주인, 이민 1세대와 2세대, 아내와 엄마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국과 미국 속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차분하게 묻는다. 서로의 목소리는 때로 겹치기도 하고, 기억들은 서로 다르게 진술되기도 한다.
그러나 웨인 왕 감독은 능수능란한 이야기꾼이다. 그는 그녀들의 기억과 회상 속에서 복잡하게 뒤엉켜 눈물 젖은 실타래를 솜씨 좋게 뽑아내어서 잘 짜인 비단결 같은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그래서 진부한 플래시백flashback은 마치 마술을 부리는 복화술처럼 여덟 명의 목소리를 한 자리에 모아 놓는다. 그리고 그것이 아무리 복잡하고 구구절절한 다른 사연인 것 같더라도 사실은 어머니와 딸 사이에서만 할 수 있는 은밀한 고백, 곧 모두 같은 아픔이라는 공감의 바탕 위에 놓는 것이다. 그걸 더욱 곱게 단장하는 것은 아미르 모크리Amir M. Mokri의 카메라다. 그는 여덟 대목 모두 다른 색조를 써서 그녀들의 감정에 충실하면서도 모두 같은 방법으로 찍는다. 그건 낡은 앨범 사진 속에서 모두 함께 모여 찍은 기념사진처럼 차례로 넘겨지는 추억 속의 거리다.
네 모녀가 삶 앞에서 겪는 희노애락이 씨줄날줄의 베옷처럼 촘촘히 짜여 모녀관계에서만 가능한 사랑, 모녀관계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심리적 파장, 모녀관계에서만 전달되어 오는 여자의 슬픔 등을 느끼게 해주는 이 영화는 세상의 어머니와 세상의 딸들이 숙명적으로 받아놓은 모성 앞에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바쳐진 영화로 보인다(멜로드라마에도 진실은 있는 법이며 눈물 젖은 손수건을 들고 영화관을 나선다고 해서 꼭 잡은 어머니의 손이 흠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