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진 한 장이 있다. 미국 국방부 청사 ‘펜타곤’ 옆으로 검은 연기 기둥이 치솟고 있는 사진이다. 해당 사진은 트위터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팔로워가 300만명이 넘는 러시아 매체 트위터 계정에서 “펜타곤 근처에서 폭발이 있었다”는 소식을 올리며 상황은 더 악화됐다.
‘펜타곤 폭발’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만든 ‘가짜 사진’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해프닝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사안이 무겁다. 폭발 소식이 퍼진 직후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가 4분 동안 80포인트 가까이 급락하고 금·국채 가격이 출렁이는 등 자본 시장에까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심각성을 인지한 각국 정부는 ‘AI 규제법’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국내에서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관련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규제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있다. ‘부작용은 인정하지만 규제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AI 산업이 아직 태동하는 단계인 만큼 규제보다는 진흥과 육성에 보다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이다.
AI 개발에 참여했던 기업인과 연구진이 최근에는 생성형 AI 비판에 앞장서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AI가 인류를 위협할 군사적 용도로 활용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정부가 나서서 통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심지어 ‘챗GPT 아버지’라고 불리는 샘 올트먼 오픈AI CEO조차 규제 논의를 찬성하고 나섰다. 그는 “설득과 조작에 능한 AI가 1 대 1 대화형 허위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우려된다”며 민주주의 선거 제도에 심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라 미국은 올해 초부터 AI 규제법 마련에 나서고 있다. AI가 잘못된 결정으로 피해를 입히는 경우 그 책임 소재를 묻는 ‘알고리즘 책임법’, AI가 개인 데이터를 수집·사용하는 것을 규제하는 ‘데이터 개인정보보호법’ 논의가 대표적이다. 미국 일리노이주는 기업이 영상 면접에 AI 기술을 이용할 때 면접 참가자 동의를 받도록 하는 ‘AI 영상면접법’을 통과시켰고, 워싱턴주는 AI가 공공기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경우 해당 기업 최고정보책임자(CIO)가 규제 체계를 마련하게끔 했다. 올해 5월 미국 의회에서는 ‘AI 청문회’가 열리기도 했다. AI 위험성을 지적하고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중국 등 경쟁국이 AI를 악용할 경우 발생할 해악을 우려하며 별도 규제 기구를 설립하자는 얘기도 나왔다.
‘AI 규제’ 논의는 국내로 확산됐다. 현재 국회에는 AI 관련 법안이 10건 넘게 발의된 상태인데 대부분 규제 방안이다. 정부도 규제 필요성에 동의하는 모습이다.
다만 AI업계와 학계는 ‘급할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AI 후발 주자인 한국에서 선제적으로 법제화에 나설 경우 향후 기술 경쟁력을 완전히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신진우 카이스트 AI대학원 석좌교수는 “AI 후발 주자인 한국 입장에서 각국의 AI 규제 움직임은 기회다. 굳이 한국이 앞장서서 규제 방안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실효성도 없고, 성장하는 산업을 막아서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첨예한 갈등이 이어지자 새로운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 규제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AI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규제를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대표적인 방안이 ‘표시 방식’이다. ‘AI가 만들어낸 콘텐츠’라는 것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면 가짜 뉴스와 저작권 침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첫댓글 AI 규제법이 마련된 배경에 대한 사건을 제시한 부분이 좋았고 미국, 중국, 한국 등 유럽연합을 제외한 국가들의 움직임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어 다양한 사례를 참고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