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보고서:], 국내외 트레킹 여행기를 듣고 또 적습니다. 포카라 크루뿐만 아니라 생애 멋진 도전을 해낸 분들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여행을 결정한 순간부터 모험의 과정, 성공의 정점까지. 그 어떤 이야기라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빛나는 용기를 들려주세요. 망설이고 있을 동지들에게 탐험심을 이끌어 낼 좋은 귀감이 될 거예요.
[다녀보고서:]의 첫 번째 주인공은 국립공원공단에서 일하고 계시는 고춘심 님입니다. 언제나 긍정적이고 사랑스러운 매력이 넘치시는 고춘심 님의 [영광의 메라피크 성공기]를 엿보았습니다. 힘든 순간마저 그녀답게, 유쾌하게 이겨낸 현장감 넘치는 이야기 함께보시죠.
글·사진 고춘심
Chapter 01. 설렘
오월 중순이었다. 달력에 메모를 하다가 연초에 적어놓은 버킷리스트를 보게 됐다. 그중 [히말라야 메라피크 가기!]는 목록에 추가해 놓은 지 2년 된 내용이다. 무엇에 홀렸는지 ‘더 나이 들기 전에 가자’는 생각이 불쑥 들면서 몇 군데 검색을 한 결과, 포카라 여행사를 발견했고 빠르게 문의를 했다. 추석을 끼고 가면 회사 일도 어느 정도 커버가 될 것 같아 바로 컨펌서를 받아보고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나니, 어느덧 히말라야로 날아가고 있었다.
미지의 세계를 만날 순간을 기다리는 일은 내게 커다란 설렘이었다."
①② 히말라야 출국 전 등반 훈련
Chapter 02. 출발 그리고 도전
꼼꼼하게 챙긴 캐리어를 바라만 보고 있어도 콩닥콩닥, 설레는 마음을 안고 새벽부터 집을 나섰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이재성 팀장님과 메라피크를 같이 오르게 될 심성호 님을 만날 수 있었다. 8월 서울 훈련 때 뵌 얼굴들이라 무척 반가웠다. 심성호와 고춘심, 앞심과 뒷심이 한 팀이 되어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했다. 출국 수속을 하고 8시간을 날아 네팔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공항에 기다리고 있었던 포카라여행사 가이드들의 환대를 받으며 호텔로 이동하는데, 아니 근데 이게 무슨 일이람. 호텔까지 오면서 카트만두의 교통상황에 정신을 홀딱 빼앗겨버렸다. 신호등도 없이 차와 오토바이와 자전거와 사람이 뒤엉켜서 가는 거리라니!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찔했다. '세상에... 여기서는 달달한 사랑 같은 건 꿈꿀 수 없겠구나'라는 뜬금없는 생각을 하면서. 하하. 또 한 가지 놀랐던 것은 예상했던 것보다 호텔이 깨끗했다는 것. 멀끔하게 잘 정돈된 멀버리(Mulberry) 호텔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짐을 풀고난 후 한식당에서 삼겹살과 김치찌개를 먹었다. 산에 가면 야채를 못 먹을 것 같아 상추를 아작아작 열심히도 먹었더랬다.
다음날 메라피크의 첫 번째 관문인 루클라로 가기 위해 전통시장 느낌 물씬 나는 작은 공항으로 향했다. 20명이 타고 가는 작은 경비행기는 원래 출발 시간으로부터 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출발을 했다. 흥미로웠던 것은 무심하리만치 시간에 관대한 사람들이었다. 이곳에서는 익숙한 일인가 보다 생각했다. 비행기가 출발하자 수수한 차림의 스튜어디스가 사탕 한 개와 솜을 두 개씩 나눠줬다. 의아해하자 귀막이용 솜이라고 했다. 하하. 섬세하기도 하지. 야무지게 솜으로 귀를 막고 루클라에 도착하니 모두 하나 되어 박수를 쳤다. 그렇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비행장이다. 날씨가 안 좋으면 며칠이고 비행기가 뜨지 않는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감사의 박수였다.
루클라(2,840m)에서 점심을 먹은 후 본격적인 출발 신호가 울렸다. 비가 내렸고 산길은 어디든 소와 말의 똥이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 마른 똥이 어느 롯지에선 장작 대신 난로의 불씨가 되어주기도 했으니 참 고마운 똥이다. 추탕가(3,570m) - 카르키텡(4,090m) - 차트라 패쓰(4,610m) 고개를 넘어 툴리카르카(4,300m) - 고테(3,570m) - 당낙(4,358m) - 카레(5,045m) - 하이캠프(5,780m) - 메라피크(6,470m)까지 고소 적응을 해가며 주로 오전엔 걷고 오후엔 우기의 끝 무렵이라 비가 내렸기 때문에 롯지에서 쉬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난로 주변에 앉아서 쉬다가, 다시 걷고 쉬고 걷고 쉬고를 반복하며 희박한 공기 속으로 오르락내리락 정상을 향해 걸었다.
매번 새벽에 일찍 일어났을 때 어둠이 걷히면서 보이는 풍경은 모든 피로를 날려주는 가슴 벅찬 희열이었고, 우리가 지금 히말라야의 어느 산속에 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해주었다. 고개를 넘고 나면 '레삼피리리'라는 네팔 노래를 부르며 다 같이 춤을 추기도 했다. 그럴 때면 고소도 즐거운 순간이 되었다.
카레에서 메라피크 등정 전 마지막 관문인 하이캠프까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빙벽화를 신고 출발을 했고 베이스캠프에서 크램폰을 착용하고 끝도 없이 펼쳐진 하얀 설산으로 진입했다. 동료와 몸을 묶어 안자일렌을 하고 묵직한 다리를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곡소리가 절로 났다. 아니 근데 그와중에도 내 머릿 속 어딘가에서는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조용필의 노래가 들락날락거렸다. 하하.
하이캠프에 도착했을 땐 빙벽화 벗을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리는 내놓고 몸은 텐트 속에 넣은 상태로 쭉 뻗어 버렸다. 눈을 뜨니 밤 9시 40분이었다. 순간 내일이 겁이 났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움 반, 설렘 반 성공적인 피크 등정을 위해 서둘러 다시 잠을 청했다. 새벽 1시에 모두 기상을 마쳤다. 요기를 하고 짐을 챙겨 2시에 피크 등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드디어 오늘이구나! 입맛이 없었지만, 그래도 나아가야 하기에 배낭 속에서 황도 캔을 꺼내서 먹었다. 국물까지 다 먹고 핫초코 한 잔을 마셨다. 다른 음식은 넘어가지 않았는데 이재성 팀장님의 황도 캔 추천은 신의 한 수였다.
2시에 출발해서 6시간 후 정상에 올라섰다. 우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인증샷을 남겼다. 뒤쪽으로 뻗어있는 높은 산들이 잘했다고 일제히 환호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바람도 많이 불지 않았고 날씨가 좋아서 아름다운 풍경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었다. 가슴 벅찬 순간들을 눈에 담고 세상 어떤 일도 다 이루어낼 것 같은 위풍당당한 기세로 산을 내려왔다. 감사했다. 살아온 시간에 대해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① 라메찹 공항에서 한 컷
② 깔끔했던 멀버리 호텔
③ 메라피크 트레킹 시작점으로 출발, 루클라행 경비행기
④⑤⑥⑦ 정상을 향해 걷는 길
⑧ 터줏대감 멍멍이와 롯지에서 일출 감상
⑨ 감동의 메라피크 정상 등정
Chapter 03. 소회
동행했던 심선생님은 또 다른 도전인 아일랜드 피크를 준비하기 위해 루클라에 남고 나 혼자 카트만두로 돌아왔다. 헬기를 타고 카트만두에 도착한 후에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한식당이었다. 김치찌개를 한 술 뜨는데, 정말 너무 맛있었다. 배도 부르겠다, 구글맵을 이용해 수암부나트 불교 사원을 찾아갔다. 불상이 제 놀잇감인 양 놀고 있는 원숭이도 보고, 시장통의 사람들 사이에 떠밀려 더르바르 광장의 목조건물에 새겨진 에로틱한 조각상도 보고 왔다. 하하.
네팔의 훈제 육포 쑤꾸띠를 안주 삼아 네팔 막걸리 툭바를 홀짝거리기도 하고, 호텔 옥상의 수영장에서 수영도 좀 하고 선베드에 호젓이 누워 카트만두 시내를 내려다보기도 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정말 내가 저 드높은 피크를 다녀온 게 맞는지 지난 시간을 다시 되돌아봤다.
"저 멀리 내가 걸어 온 메리피크는 어디쯤 있을까.
꿈만 같았던 시간이 구름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내 안에 또 어떤 꿈이 용기를 내려고 꿈틀거릴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이번에 참말로 멋졌다, 내 자신!"
① 카레 헬기 하산
② 카레 가기 전 당낙 롯지에서, 두 팔 벌려 자유를
메라피크(Mera Peak/6,470m) 트레킹으로 갈 수 있는 네팔 피크 등정의 최고봉. 네팔 정부가 지정한 여러 트레킹 피크 중 가장 높으며 총 세 개의 봉우리로 이뤄져있다. 기본적인 안자일렌과 주마사용법, 아이젠 착용 시 보행법을 숙지하면 일반인들도 큰 무리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코스로 매년 많은 산악인들이 찾는 인기 있는 곳이다. - 메라피크 등정 꿀팁 정리 - ✔ 루클라에서 등정에 필요한 짐 분류하고 정비하기 ✔ 추탕가(3,570m)에서 카르키텡(4,090m) 코스는 첫 4,000m급 고산이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고 고소 적응에 집중하기 ✔ 고테는 3,000m로 낮아지는 구간, 고산 적응 & 체력정비 / 최종 롯지(카레), 메라피크 상황 체크 ✔ 메라피크 어택 전 하이캠프 구축 후 휴식 ✔ 카레로 다시 내려와 헬기 하산 가능 |
SPIRIT OF THE MOUNT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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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분들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