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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은 지 벌써 사흘 째.
갑진년 청룡의 해라고 한다.
청룡은 참 좋은 용이라고 하니
올 한 해는 모두가 바라는 소원
그 중에서 작은 소원 하나는 꼭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새해가 밝았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제가 오늘 같았고
내일 또한 오늘과 별반 달라질 것도 없다.
그저 매일이 오늘이고
현재가 바로 그저 이 순간일 뿐이다.
집을 나서면 우선 카페를 찾아 가 차를 한 잔 마시고
그 카페가 품고 있는 박물관을 관람 하고
(사실은 박물관이 카페를 안고 있지만)
그리고 시내 골목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는
조그만 식당에서 끈적 국수가 뭔지 궁금하여
맛을 보러 다니고
집 근처 바닷가를 찾아 가 갈매기 떼도 보고
백로와 왜가리도 보고
그러다가 배가 출출 하면
다시 근처 식당을 찾아 가서
꼬막 정식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후
한 번 더 소화를 시킨다는 핑게로
돌지 못한 나머지 바닷가를 천천히 돈 후
집에 오면 그저 하루의 나들이는 그렇게 끝이 나고 만다.
늘 같은 코스 늘 같은 길이다.
지난 해에 그랬고
어제도 그랬고
나머지 한 해도 거의 그렇게 비슷한
하루 해가 켜켜히 쌓여져 갈 것이다.
집에 오면 엊그제 딸래미가 애비를 보러 오며
커피를 좋아하는 나를 위하여 선물 한 제법 고급 진
바샤 커피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오랫만에 풍미 가득한 바샤커피를 내려 마시는 정도가
일상에서 약간 특별한 듯 하지만
그 역시도 늘 하는 일상의 한 부분이다.
다만 마시는 커피 종류만 달라 졌을 뿐.
오늘의 일상도 어제와 전혀 다를 바 없다.
그저 산책하는 경로만 조금 달랐을 뿐.
어제는 다대포 해변을 거닐었고
오늘은 송도 해수욕장 해변을 거닐었다는
작은 차이일 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며
어제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갈매기 떼를 보고
어디서나 비슷한 연말연시 풍경을 본다.
크리스마스 트리나 불빛 조형물들.
그런데 오늘은 약간 특별한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한무리의 학생들이 각각의 모양대로 벤치에 누워 있다.
마치 설치 미술이나 조각품 같은 자세를 하고서.
그것도 이 추운 계절에 응지에 누워서.
그러다가 순간 모두 웃통을 벗고
바다로 뛰어 들거나 백사장에서 공놀이를 하며 땀을 흘린다.
그 모습을 빤히 보고 있노라니
역시 젊음은 좋고 부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다시 돌아 가고 픈 시절이 없다고 늘 다른 사람에게
또 자신에게도 말을 해 오고는 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 때 그 시절로 돌아 가 보고 싶다.
젊음을 발산하던 열기 외에는 아무 시름도 없었던
그 시절.
바깥을 나오면 꼭 한 두끼는 외식을 한다.
송도 해수욕장에서는 점심으로 돼지 수육백반으로 먹고
어둑해 진 저녁에는 시내로 나와서
조금 있으면 사라질 불빛 축제길을 마음껏 걷다가
저녁으로는 가자미 미역국을 먹고는
그제서야 골목길을 다시 한 번 더 돌아 집으로 발길을 향한다.
새해가 밝았지만 여전히 올 한해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게 또한 바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바람이 만만치가 않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수록 건강은 자꾸 나빠지기 때문이다.
치아도 시원찮아 지고
몸도 예전만 하지 못하다.
걷는 속도도 더뎌 지고 몸의 근육도 자꾸 줄어 들고 있다.
늘 집을 나와 걷기를 하지만.
이렇게 모든 일상이 다 그대로 이지만
해가 바뀌어 딱 한 가지 좋은 게 있다면
국민연금이 조금 올랐다는 것이다.
물론 더 오를 물가가 걱정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