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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서 2학기가 종강돼 곧 기말고사 기간이 시작된다. 한 해가 지는데 한 달 정도 남은 셈이다. 봄도 여름도 가을도 모두 엊그제 맞았던 것 같은데도 그 새 일 년이 끝나가고 있다.
신기하게도 나는 요즘 꿈을 꾸지 않았다. 이런 현상을 의사가 처방한 약의 효험 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신과 의술을 신뢰하지 않겠다는 거부감과는 무관했다.
그 약이 꿈을 꾸게 하는 뇌의 활동을 억제하거나 꿈의 기억 인자 자체를 죽이는 효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결코 좋은 처방이 아니다. 꿈은 잠 자는 동안에 일어나는 일련의 시각적 심상(心象)으로 정신활동의 일환이고 회상몽(回想夢)이다. 전문서적에서 읽은 바로는 꿈에서 깨어났을 때 기억에 남는 꿈-꿈을 꿨다는 의식이 있는-은 수면이 깊지 않을 때 꾼 것이라고 했다.
요즘에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은 약물이 나를 깊은 수면에 빠뜨린 셈이다. 결국 그 약 속에 수면제 성분이 들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아우슈비츠 감시관'처럼 생긴 그 의사가 권위자라는 점을 나는 인정하기 싫었다.
며칠 전 우연히 <몽마夢魔>라는 그림을 봤다. 18세기 스위스의 <헨리 프셀리>라는 화가의 작품이었다. 잠 자는 여자 가슴 위에 기괴한 짐승-고양이 같기도 하고, 반수(半獸)인간 같기도 한-이 올라가 있고, 커튼 사이로 말의 눈-모두 흰자로 덮인-이 야릇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여자는 상체를 침대 밖으로 늘어뜨린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림에는 ‘정염에 붙타는 불륜의 성적 흥분을 의미한다’라는 해설이 붙어 있었다. 그림 속의 말 때문에 성적 의미를 넣은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꿈에서 오르가슴이 있었거나 거기에 도달하지 못해 안달이 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인의 표정이 꼭 그랬다. 그 그림을 통해서 내가 꿨던 꿈들을 다시 열어 봤다. 그 중에 단란주점에서 여성 도우미가 내 바지를 벗기려고 했던 장면과 아랍여인이 내 코를 자기 국소에 넣으려는 장면이 또렷하게 재생됐다. 몽정 따위는 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야기를 그 여의사한테 들려줬더라면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생각하며 웃었다. 그는 조금도 민망해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녀의 혈관에는 뜨거운 피가 흐르지 않을 테니까.
내 생애에 꿈은 끝인가...?
꿈을 꾸지 않아서 당장은 마음이 편안했다. 그것이 약 때문이라고 생각하자 갑자기 불안했다. 약을 계속 먹을 것도 아니고 복용을 중단하면 몸에서 약 성분이 깨끗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다시 꿈을 꾸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꿈을 꾸지 않는다고 하자 아내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권위자를 찾아낸 자신의 공에 도취된 듯싶었다.
거 봐요. 병원에 가기를 잘 했잖아요. 약효를 본 거라구요. 약을 계속 먹을 건 아니잖아. 약을 안 먹으면 또 꿈을 꿀까 봐 그래요? 두고 보면 알겠지.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요. 설사 꿈을 꾼다고 해도 전처럼 괴로워하지는 않을 거예요. 꼭 의사처럼 말하는군.
내가 서둘러 입에 빗장을 질렀다. 아내가 얼굴에 또 웃음을 발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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