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고전 소설과 현대 소설의 정의를 두어야 할 것 같은데요. 고전 소설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할 명작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굳이 그 정의를 분별하기 어려우니, 20세기~ 21세기의 소설과 19세기 이전 소설로 나누어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오래된 고대의 소설로는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뽑을 수 있습니다. 그 작품은 소설이 아니라 서사시인데요. 이러한 서사시를 통해서, 원시 종합 예술에서 빠져나온 노래. 노래에서 다시 탈출한 가사문학에서 새로이 소설 문학이 형성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고전 문학을 논할때, 원시 종합 예술의 형태에서의 문학은 보통 노동요의 종류가 많은데요. 이것은 소설 문학이라 보기 어려우니 제하도록 합니다.
기원전에서 3세기까지의 소설문학은 대부분이 영웅설화의 형식을 띄고 있으며, 영웅들의 일대기를 논하는 서사시의 구조가 많았습니다. 영웅 소설의 틀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유럽은 크리스트교의 시대가 오게되고, 문학의 이렇다할 발전은 없습니다. 그러다 13세기에 등장한 단테의 신곡은 그야말로 주목할 수 있을 법한 소설인데요. 기독교에 대한 고찰과 자신의 철학적 지식을 잘 함유시킨 최초의 철학적 소설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 후에 등장하는 것이 17세기의 세르반테스입니다. 이때에 와서야 우리가 소설이라고 부르는 소설의 형식이 완성되는데요. 그 형식에 맞춰서 완성된 소설이 바로 돈키호테입니다.
또한 그에 맞춰서 15세기 한국에서는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씁니다. 시기적으로는 서양에 앞서는 소설이지요. 즉, 완전한 소설의 형태를 지닌 소설 문학이 등장하게 된 시기를 우리는 15세기로 보아야 합니다.
서사 라는 장르종의 등장은 원시종합 예술... 많이 봐줘서 호머의 서사시라고 한다면, 소설이라는 장르종의 등장은 15세기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즉, 우리가 소설을 이야기 한다면 15세기 이후의 발전 양상을 주의깊게 봐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위에서 고전 소설을 20세기 이전의 소설로 가정했기에, 고전 소설은 15~19세기의 소설을 논하는 것이며, 현대 소설은 20~21세기의 소설을 말한다고 가정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 다시 보죠.
15세기 금오신화 이후에도 우리는 수 많은 소설을 내게 됩니다. 16세기에는 허균, 17세기에 김만중, 18세기에 박지원이 나오지요. 그들의 소설은 매우 다채롭습니다.
내용의 측면에서 보자면, 어직도 영웅 서사시적인 내용이 많으며, 신분제의 타파나 당시 조선시대를 꼬집는 내용이 많으며,(풍자라고 하지요) 아주 원색적인 연애담도 많았던 시절입니다.
서양의 경우, 17세기에 세르반테스를 비롯 18세기의 괴테가 등장하지요. 17세기는 서양의 고전주의가 판치던 시절입니다. 감정에 대한 이성의 우위를 논하게 되지만, 소설의 입장에서 볼때, 그렇게 뛰어난 소설은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이 지닌 문제의식이라거나, 주제 자체는 훌륭했을지라도, 형식과 구성의 측면에서 그들의 소설은 헛점이 무척 많습니다. 물론, 우리의 소설도 그와 크게 다르지는 않지요.
18세기에 괴테는 그야말로 걸작을 썼지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그것입니다. 18세기는 낭만주의인데요. 낭만주의 소설이란 이성에 대한 감정의 우위 입니다. 다만, 개인적인 감정의 누설을 신성한 영혼의 고백 따위로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많은 점수를 받을 수 없습니다만, 분명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뛰어난 작품이었습니다.
18세기까지의 소설은 서양과 우리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서, '젊은 베르테르으 슬픔' 정도를 제외한다면 우리의 문학과 수준차이가 난다고 까지는 볼 수 없지요. 자주 보이는 주제는 영웅의 삶과, 삶의 부조리, 사회적 문제, 그리고 연애담이 주를 이루었답니다.
19세기에 들어와서 저렇게 대등했던 관계는 무너지는데요. 19세기의 조선은 참담할 정도의 실패를 거듭하며, 문학쪽 인재가 거의 나오지 않게 됩니다. 찬란했던 조선의 문화도 이제는 시들고, 정조의 죽음과 더불어 세도정치로 대변되는 19세기 조선의 몰락을 맞이함에 따라, 제대로 된 문학작품이 나오지 않지요. 그에 반해서 서양은 찬란한 문학의 빛을 발했기에, 서양 문학을 중심적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는 대부분의 작품은 19세기 서양 문학입니다. 예를 들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이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톨스토이의 '부활', '전쟁과 평화',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첫 사랑'. 참고로 저 들의 공통점은 러시아인이라는 것이고, 러시아 3대 리얼리즘 작가라는 것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19세기 서양 문학이 그토록 위대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아닌 리얼리즘의 정착이지요. 러시아의 발자크를 효시로 리얼리즘은 서양 문학에 새로운 길을 열어줍니다.
우리가 읽는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하디의 '테스', 그리고 헤세의 '데미안'이나 '지와 사랑' 같은 작품들이 모두 19세기에 등장합니다. 리얼리즘 소설이 대부분이지요.
리얼리즘 소설은 서구의 봉건 중세 시대가 무너지고 왕권이 무너지며, 산업혁명이 등장함에 따라 빈부의 격차가 벌어졌고, 그 줄어들지 않는 빈부의 격차 속에서 고생하며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삶의 애환을 담는 데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리얼리즘 문학이라고 한다면 삶의 추악한 점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서양의 문학은 철학적 사상과 결합되며 실존주의 문학과 같은 부분이 나오게 됩니다. 프란츠 카프카라거나 알베르트 까뮤, 장 폴 사르트르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렇다면 20세기의 문학은 어떨까요? 서양의 경우 문학은 계속 발전을 거듭합니다만, 19세기와 같은 거대한 거장들은 등장하지 않게 됩니다. 문학사적 입장으로 본다면 100년 동안의 빅쇼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한국은 조선이 멸망하고 일제가 들어옴에 따라 그 동안 닫혀있던 문호가 개방됩니다. 그리고 서양의 발전된 문물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게 되지요.
결국 우리도 서양의 발전된 소설의 형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한국 소설은 시작되지요. 따라서 학교 국어 교과서를 공부할때, 20세기의 문학을 중점적으로 공부하고 그 부분이 어려운 것도 당연하답니다.
20세기의 현대 한국 소설에서의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한문학의 종말을 들 수 있습니다. 한국의 양반 문학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한문학이었는데요. 서구식의 소설이 유행하면서 한문학은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문학을 대표하는 문자 자체가 뒤바뀐 것이니, 문학사적으로 보자면 아주 큰 변혁입니다.
1910년~1930년 까지의 일제치하 문학은 일본어 문학과 한국어 문학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보통 일본어 문학은 상대해주질 않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채만식 같은 경우만 보더라도 그의 문학의 상당 수가 일본어로 쓰여졌기에, 채만식을 논함에 있어서 일본어 문학을 배제한다는 것은 약간 모순적인 부분입니다.
아무튼 1910년~1930년까지 우리 사회는 소설의 커다란 힘을 맛보게 됩니다. 비록 서양의 문학을 대부분 빌려온 것입니다만, 그런 모방 속에서 창조의 물결이 있었지요.
일제치하에서 우리는 소설을 통해 일제치하의 삶이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1950년대는 우리 문학의 황금기라고 개인적으로 보고 있는데요. 1950년대에는 김수영, 박인환, 김관식, 조병화와 같은 시인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위대한 소설가도 한명 나오게 되는데요. 그는 1960년대 문학의 기수인 김승옥입니다.
50년대 문학은 6.25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보통 전쟁의 상흔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요. 60년대의 김승옥 문학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파편화되어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현대화가 진행되고 본격적인 자본주의가 시작됨에 따라 인간성의 상실이 드러나게 된 것이지요. 한편, 독재정권과 민주주의의 공존이라는 불합리에 대항하는 문학도 크게 성행하였는데요. 시로는 김지하나 신동엽, 김수영과 같은 분들이 있겠지요. 소설로는 조세희가 있습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소설인데요. 우리의 노동자 계층의 어려운 삶과 빈부의 격차의 부조리함을 논한 소설입니다.
70년대까지 한국 소설은 큰 역할을 차지하는데요. 그것은 철학의 부재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철학을 비롯한 기타 인문학이 발전되지 못한 시기에, 문학이 그러한 갈증을 풀어주는 유일한 매체였던 것이지요.
80년대 부터는 서양과 마찬가지로 문학의 거대한 발전은 없게 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문학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문열, 황석영, 조정래, 이창동, 김원일, 이청준 같은 분들이 아직도 건재하시죠. 특히 조정래의 소설은 분단 국가의 현실을 잘 반영한 작품들로 큰 호평을 받았답니다.
20세기 말 21세기를 시작하는 우리들은 귀여니로 대표되는 인터넷 소설, 그리고 일본 문학의 범람에 휩쌓이게 되는데요.
그것은 소설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우리의 삶과 가깝게 밀착되어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90년대 초만해도, 귀여니씨가 그러한 어체와 그러한 완성도로 소설이라고 내놓았다면 맞아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데요. 이것은 소설을 바라보는 이들이 지성인에서 일반 독자들로 층을 넓게 하고, 최근에는 청소년, 어린이층의 독자들과 성인의 독자층이 나위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귀여니씨와 같은 인터넷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과 같은 소설들이 주류를 이루고는 했지요. 그것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다가가기 쉬운 소재, 다가가기 쉬운 어법과 문체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수준 높은 문학을 읽지 못한다는 것은 큰 문제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귀여니씨의 책이나 판타지 소설등에 질려버린 우리의 청소년들이 수준 높은 문학을 읽게될 날도 머지 않을 것이고, 다시금 문학은 부흥할 수 있겠지요.
여기까지, 한국을 중심으로 우리의 소설 문학이 걸어온 길을 적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