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3. 17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기존 공급망 붕괴…기업 경영 한 축으로 자리 잡은 ESG 의문 확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예상과 달리 장기화하면서 세계경제는 큰 충격과 혼란에 직면하고 있다. 러시아를 제재하기 위한 미국과 유럽의 강력한 조치들이 등장했고, 러시아 역시 주요 품목에 대한 수출금지 조치를 시행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혼란이 더하다. 원자재 공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공급망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미국과 영국이 러시아의 석유 및 가스 수입금지 조치를 발표함에 따라 파장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가장 크게 영향을 받고 있는 분야는 니켈이다. 러시아는 2021년 기준으로 전체 니켈의 13%를 공급하고 있다. 전쟁과 제재 등으로 러시아산 니켈 공급이 중단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확산됨에 따라 니켈 가격은 런던 금속거래소에서 톤당 4만2400달러에서 톤당 10만 달러로 급등하기도 했다. 이는 런던 금속거래소의 145년 역사에서 가장 극단적인 가격 변동 중 하나였다. 니켈 가격 급등은 배터리 제조업체와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의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 2022년 2월24일 서울 강남구 전략물자관리원에 국제사회 수출통제 및 제재 대상 주요 국가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원자재 가격 동시다발적으로 급등
미국과 영국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면서 브렌트유는 배럴당 2.9% 상승한 131.64달러를 기록했다. 미국 서부텍사스유 역시 2.4% 상승한 126.68달러를 기록하면서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이 차단될 수 있다는 우려 탓에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 역시 급등하고 있다. 세계 최대 수출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밀 수출이 차질을 빚을 것이 확실해짐에 따라 밀 선물가격은 60% 이상 상승했다.
급격한 시장의 변화는 다양한 측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최근 기업 경영 및 금융투자 흐름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ESG다.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의 머릿글자를 따서 만든 ESG는 기업과 금융기관이 단순히 이익 확대 이외에도 고려해야 할 요소들을 나타내고 있다. 기후 및 환경적으로 건전하며, 사회의 다양성 증진에 기여하고, 동시에 합리적인 지배구조를 갖춰야 하는 ESG 경영 흐름은 최근 기업 및 금융기관의 투자에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
기관투자가들은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석탄 및 석유 등에 대한 투자를 축소 또는 폐지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특히 환경적으로 큰 영향을 주는 광산업에 대한 투자는 거의 중단되기도 했다. 국가 간 분쟁 시 큰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군수산업 역시 바람직한 투자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가 좀 더 평화롭고, 안전하고,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본이 나서서 큰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에 대해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니켈, 코발트, 리튬 등의 공급을 제한함으로써 가격 상승은 물론이고, 에너지 전환과 저탄소 사회 구현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이차전지를 비롯한 풍력발전용 터빈 등 대규모 신규 투자가 필요하며, 이는 각종 희토류 및 전환광물의 수요 확대를 가져올 것이 명백함에도 이를 위한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모순적이라는 비판이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각종 에너지 및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ESG가 과연 현 상황에서 유효한 방향인지에 대한 의문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신규 광산 및 자원 탐사와 투자가 감소·중단됨에 따라 소수의 에너지 및 광물자원 공급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높임으로써 미국과 유럽의 전략적 취약성을 가져왔고, 이것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독일이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과도하게 러시아의 천연가스에 의존함으로써 러시아의 움직임을 제어하지 못했던 상황과 맞물리면서 ESG 경영과 투자가 리스크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환경(E)뿐만 아니라 사회(S)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S의 경우 통상적으로 기업 내 다양성 존중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인명 살상 및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산업에 대한 투자 역시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은행과 펀드매니저가 ESG 지침을 준수하도록 압력을 가함에 따라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는 축소됐다. 유럽의 경우 유럽연합(EU) 차원에서 방위산업을 사회적으로 유해한 산업으로 분류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에 따라 프랑스 방산업체인 탈레스(Thales)의 경우 2016년 이후 프랑스 이외의 유럽 투자자가 보유한 지분이 50% 이상 감소했다. 독일의 대표적인 방산기업인 라인메탈(Rheinmetall) 역시 올해 1월부터 바이에리쉐 란데스방크(BayernLB)와 바덴뷔르템베르크주립은행(LBBW) 등 대형 은행으로부터 거래를 중단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스웨덴 최대 은행인 SEB의 경우 투자대상에서 방위산업체들을 제외하기로 2021년 결정한 바 있다. 대기업에 비해 자본력이 부족한 방위산업 분야 중소기업의 경우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의 은행들이 대출과 투자를 중단함에 따라 관련 분야에서의 철수를 고민해 왔다. 하지만 러시아의 위협이 구체적으로 등장하자 관련 기관들은 입장을 바꾸고 있다. 스웨덴 SEB의 경우 심각한 안보 상황과 증가하는 지정학적 긴장에 따라 올해 1월부터 입장을 재검토했으며, 4월1일부터 운영하는 6개 펀드가 방위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이 2022년 2월25일(현지시간) 러시아 제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AP 연합
합리적인 ESG 경영과 투자기준 마련해야
ESG는 지속 가능한 사회 구현을 통한 안정적인 이윤 창출을 목표로 하는 인간적 자본주의의 대표적 경영 및 투자 기법으로 각광을 받아왔지만 상황 변화에 따라 그 타당성과 근거에 대한 의문이 제기됨으로써 큰 위기를 맞고 있다. 기본적으로 국제적 공급망의 안정적 운영과 사회 시스템 유지라는 전제하에 발전해 왔는데 국가 간 무력충돌과 공급망 붕괴 등 예상치 못한 상황이 초래되면서 오히려 위기를 키우고 있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021년부터 ESG와 관련한 기업의 대응이 본격화됐다. 하지만 ESG를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가 불분명하며,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갖춘 우리나라에 적합한 ESG 모델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불분명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무조건적인 추종이 아닌 리스크와 우리의 상황을 고려한 합리적인 ESG 경영과 투자기준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최준영 /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