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신라 화엄의 다양한 전개
의상의 화엄을 계승한 의상계는 신림 법융 순응 등으로
나누어 보기도하고 부석사계와 표훈계 및 해인사계 등으로
세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의상의 직계 제자들과는 사상의 내용을 달리 하는
신 화엄도 많아 여러 갈래로 파악된다.
일차적으로 의상을 계승한 주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로
구분된다. 비주류는 원효계 비의상계 황룡사계등으로 나눈다.
이중 원효계는 원효와 법장의 융합에 따른
화엄과기신의 융합이 특징이며,
비의상계는 다시
원효계, 오대산·지리산·천관산계, 기타의 셋으로 구분한다.
법장의 제자인 승전(勝詮)은690년대에 당에서 귀국하면서
법장이 의상에게 보내는 서신과 함께 집필 중인『탐현기』등의 저술을 가져왔다.
심상(審詳, ?~742) 역시 법장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일본에 건너가 일본화엄종의 초조가되었다.
화엄사의 연기(緣起)는 754년에 화엄사경(寫經)을 주도했는데
『개종결의(開宗決疑)』『화엄경요결(華嚴經要決)』『진류환원락도(眞流還源樂圖)』와
『기신론』관계 저술을 남겨 원효의 사상과 연관된 면모를 보였다.
화엄사에서는 이밖에도 정행(正行)·정현(定玄)·영관(靈觀) 등이 활동하였다.
황룡사에는 경덕왕 13년(754)에 법해(法海)가 활동하였으며
원성왕대에 지해(智海)는 화엄을 강의하였다.
경덕왕 말년(759 경)에 보림사를 창건한 원표(元表)는
천관(天冠)보살 신앙을 지녔던 화엄행자였으며,
원성왕 3년(787)에 소년서성(少年書省)을 지낸
‘범여(梵如)는『화엄경요결(華嚴經要決)』6권을 지었고,
범수(梵修)는 소성왕 원년(799)에 징관의 화엄소를 강의하였다.
의상의 화엄과 다른 사상을 보여주는 자료들도 한 부류를 이룬다.
8세기 중반 경에 활동한 황룡사의 표원(表員)은
화엄사상의 중요 과제에 대한 제 학설을 집대성하여
『화엄경문의요결문답(華嚴經文義要決問答)』을 편찬하였다.
표원은 화엄경의
구조·설시(說時)·설불(說佛)에 대한 문제,
화엄교설의 중심사상인 육상·
수십전유(數十錢喩)·
연기·탐현·보법 등의 문제,
그 진리성으로서의 실제
여여(如如) 법계의 문제,
일승론과 교판 문제,
대승보살의 수행도 문제 등을 18과로 묶어
각 과목을 석명(釋名)·출체(出體)·문답(問答)으로 설명하였다.
표원은 80화엄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법계연기의 근원을 밝히고 각종 법계와 역대 교판을
두루 이해하였으며,보살의 수행 계위에도 정통하였다.
표원은 신라화엄학의 주류인 의상의 사상을 위주로 하지 않고
법장의 사상을토대로 하면서 원효와 혜원 안름 등의 학설을
집중적으로 인용하고 있어 의상계가 아닌 원효계의 화엄학승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원효와 법장의 사상을융합한 형태가
태현-표원-견등으로 계승되어 한 흐름을 이루었다.
(吉津宜英, 1991) 표원은 법장의 교학을 대체로
수용하였지만 다른 사상가들의 이론도 자신의 취지에
따라 선별적으로 수용하는 독자성을 보였으니,
예를들면 일승의(一乘義)에서 법장의 5교판 위에
혜원과 원효의 교판을 수용하여 구성한 것이 그런 예이다.
원효와 의상계의 사상을 통합해 보려는 시도는 나말 여초에 찬술된 것으로 생각되는
『건나표하일승수행자비밀의기\(健挐標訶一乘修行者秘密義記)』에서도 엿보인다.
화엄과 기신론 사상을 바탕으로 밀교적 요소와 주술적 요소를 가미한
이 책은 이런 시도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해 이후 계승되지 못한
한계와 노력을 동시에 보여준다.
명효(明皛)는『해인삼매론(海印三昧論)』을 저술하였는데 형식상 의상의
법계도인과 같은 상징적 형상을 취하고있으나『기신론』과 상통하는 해석을 하였다.
따라서 의상의 계통보다는 화엄과 기신을 동일한 경계로 보았던
원효와 같은 계통에속한다.
은 양자가모두도인(圖印)을 사용하여 성불을 지향한 것은 동일하지만,
내용상으로는 의상이 원교 화엄을 법성성기의 구래불(舊來佛)로 드러냈고
명효는 생사즉열반의 연기 구성불(舊成佛)을 주장하였다.
견등(見登)은
화엄사상의 성불의(成佛義)를 밝힌『화엄일승성불묘의』(華嚴一乘成佛妙義)』와
『기신론동이략집(起信論同異略集)』을 저술하였다고알려졌다.
견등은 법장의 저술을 집중적으로 인용하며 삼승 유가교의 경계와는 판연히
다른 화엄의 성불의를해석하며 원효와 법장의 사상을 융합수용하였다.
그러나 견등은 의상계와 비의상계 화엄을 고루익혀 일본에서 활동 하였으며
,『기신론동이략집』은 견등이 아닌 지경(智憬)의 저술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