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계에서 이단시하는 교파들 -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안식교로 널리 알려진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주장하는 교단인데, 개신교회는 이 안식교를 이단으로 보고 있습니다. 안식교는 19세기 중엽 미국에서 윌리엄 밀러(1782-1849)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밀러는 침례교회 교인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 사상에 심취하여 성경 연구를 한 후 1843년 8월 21일을 예수님 재림 날짜로 발표했으나 그해에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자 재림 날짜를 1844년 10월 21일로 바꾸었는데 이때도 예수님 재림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밀러의 추종자 중 한 사람인 히람 에디슨은 1844년은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해가 아니고 예수님께서 하늘의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는 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은 후에 안식교의 조사심판교리가 되었습니다. 조사심판교리란 하늘의 성소에서 지성소로 자리를 옮기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을 일일이 관찰하신 후 그들의 신실성과 신앙심을 들추어내신다는 것입니다.
안식교의 진정한 창시자는 재림교의 전도사인 제임스 화이트와 결혼한 엘렌 지 화이트(1827-1915년) 부인인데, 이 부인은 밀러의 설교를 듣고 감동하여 감리교회를 떠나 안식교를 믿은 사람입니다. 화이트 부인은 두 번에 걸쳐 환상을 본 후, 안식교의 지도자로 활약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를 예언자로 받들어 섬김으로써 이 부인은 명실상부한 안식교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화이트 부인은 1860년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라는 명칭을 채택하고 최초의 안식교 본부를 미시건 주 베틀 크리크(Battle Creek)에 두고 5월에 전국 총회를 개최함으로써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가 공식적으로 출발하게 됩니다.
안식교가 한국에 전래 된 것은 1904년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던 손흥조가 일본 고베에서 안식교 전도사인 구리야 히데에게 침례를 받고 귀국한 후 평안남도 용강에서 전도를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이후 구리야 히데가 일본 안식교 책임자인 필드(F.W. Field) 선교사와 함께 내한하여 교회를 세우고 전도하면서 한국에 안식교가 본격적으로 전파되었습니다.
그 후 선교사들이 내한하여 선교사업을 했는데, 1912년에는 선교본부와 인쇄소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에 설치했습니다. 1915년에 이근억, 정문국이 한국인 최초의 안식교 목사가 되었습니다. 안식교는 전국 각지에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세웠고 서울 태릉에 삼육대학교를 설립했으며, 서울과 부산에 위생병원이라는 종합병원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안식교는 윤리적인 면에서는 본받을 점이 많으나, 신앙 면에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화이트 부인의 계시를 더 중시하는가 하면 성경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가톨릭교회를 비판하는 등 그리스도 교계로부터 이단시되고 있습니다. 안식교가 한국에 전래된 지 100년이 훨씬 지났지만, 그 성장은 미미한 편입니다.
- 유충희 대철베드로 신부(둔내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