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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호! 하얀 털 강아지야! 맛있는 것 많이 줄 테니까 이리 와볼래?
뼈다귀 무지 많이 있는데? 그래도 안 올래? “
고작 유혹한다는 것이 개 뼈다귀였으니 백호의 심사가 더욱 뒤틀려
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번 물릴 뻔한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홍의소녀는 전혀 위축됨
이 없이 백호의 머리를 쓰다듬기 위해 손을 가져다 대었고 백호는
여전히 으르렁 거리며 홍의 소녀의 손길이 닿는 것을 거부했다.
“거참! 강아지 성격한번 드럽네! 야! 이 똥깡아지 주인이 너 맞지?
애완견 교육좀 똑 바로 시켜라. 이래서야 사람들한테 미움만 받을게
분명해! “
연속해서 자신의 손길을 거부하는 백호 때문에 심술이 난 홍의소녀가
볼을 부풀리며 그 책임을 강운에게 떠넘겼다.
[으악! 저게 감히 누구보고 똥 강아지라는 망언을 지껄이는 거야?
운아 이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일이야. 당장 달려가서 혼쭐을 내주
고 올 테니 이번에는 말리지 말어! ]
단단히 결심을 하고 홍의소녀에게 달려들 기세를 취하고 있는 백호를
향해 강운은 순순히 길을 비켜주었다.
그 동안 백호가 여러 번 사고칠 뻔한 상황에서 참을 수 있었던 것은
강운의 만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유일무이한 방해자라 할 수 있는 강운이 마음대로 해보
라는 듯이 길을 터주고 있으니 백호로서는 더 이상 가릴 것이 없었다.
그 동안 억눌려 왔던 본능이 한꺼번에 표출되어 나오는 것일까 그 동
안 강아지로 둔갑을 한 후에 한 번도 제대로 된 기운을 발산해 본적이
없었던 백호의 작은 몸뚱아리로부터 엄청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
했던 것이다.
홍의 소녀는 쪼그만 한 강아지 한 마리가 자신에게 하얀 이를 들어내
며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같잖다는 표정을 지으며
코웃음을 쳤다.
“후훗! 똥 강아지 주제에 지금 나한테 덤벼보겠다는 거야? 호호호!
이것 참 기가 막혀서! 야! 너 거기서 멀뚱거리고 서 있지 말고 네
똥강아지 좀 데리고 가라. 자꾸 내 성질 건드리면 아무리 귀엽다고
해도 곱게 놔두지는 않을 테니까! “
백호의 모습을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강운에게 자기 딴에는
경고의 말을 해주었지만 당사자는 전혀 그녀의 말을 귀 담아 듣지
않는 듯 보였다.
미물 주제에 감히 대 화운문의 사천 분타의 외동딸인 자신에게 적개
심을 들어내며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백호도 괘씸했지만 지금
그녀를 더욱 화나게 만드는 것은 뚱한 표정으로 자신의 말을 흘려
듣고 있는 강운의 태도였다.
“흥! 개세끼나 주인 놈이나 하는 짓거리가 똑 같군! 나중에 네 똥강아
지 죽었을 때 질질 짜면서 후회하게 될 거다. 호호호! 하지만 그때
후회해봤자 이미 늦었을 거야. 너도 성한 몸으로 있진 못할 테니까
말이야. 호호호! “
홍의 소녀는 내 팽개쳤던 몽둥이를 다시 집어들며 가까 다가오고 있
는 백호를 여전히 같잖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이 곧 뭐 씹은 표정으로 변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처음에는 거리가 멀었기에 백호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홍의
소녀는 백호가 점점 가까이 다가올수록 전신을 엄습하는 공포심에
온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하얀 이를 들어내며 형형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백호의
모습은 결코 강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백호와 홍의 소녀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떨림은 더
욱더 심해졌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고작 강아지 한 마리에
이렇듯 겁을 집어먹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기 까지 했지만 그녀를
떨게 하는 주 원인은 본능적인 공포심이었다.
맹수의 제왕 호랑이들의 우두머리라 칭해지는 백호의 살기를 감당하
기에는 아직 홍의소녀의 능력이 너무나 부족했던 것이었다.
아니! 백호의 살기를 그대로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리가 더욱 더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공포심은 심해져만 갔고 마침
내 백호와의 거리가 지척으로 가까워 지자 이제는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하는 홍의소녀였다.
‘마, 말도 안돼! 멈춰! 왜 몸이 말을 안 듣는 거지? 저런 미물따위가
감히! ‘
두뇌에서는 뒷걸음질을 멈출 것을 강력하게 명령하고 있었지만 그녀
의 몸뚱아리는 그런 명령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뒷걸음질을 계속했다.
백호는 이미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홍의 소녀를 바라만 보고 있었
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등 뒤를 촉촉하게 적시는 식은땀에 비로소 자신의 한심스런 모습을
인식하게 된 홍의소녀는 마침내 뒷걸음질을 멈추었고 그때는 이미
백호와의 거리가 10장이 넘게 멀어져 있었다.
동작은 멈추었지만 눈빛만으로도 여전히 적개심을 들이내고 있는 백
호. 그리고 백호의 뒤에서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
는 강운.
홍의 소녀는 이제는 공포심 때문이 아니라 분노 때문에 온 몸을 떨기
시작했다.
지금껏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살아왔던 그녀였기에 지금과 같이
고작 강아지 한 마리 따위에 철저하게 농락당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
을 결코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분노심에 몸을 떨던 그녀가 마침내 몽둥이를 거칠게 내 팽개쳐 버리
고 검을 뽑아들었다.
어렸을 적부터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혹독하게 수련을 받아온 홍의소녀
였기에 검을 손에 쥐게 되자 알수 없는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다.
얼마 전 자신의 추한 모습을 만회하겠다는 뜻이 강력하게 담겨 있는
살기가 느껴지는 그녀의 두 눈이 백호의 눈을 마주 바라보았다.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였으나 시도는 가상하였지만 결과
는 역시 너무나 처참했다.
백호의 두 눈과 다시 마주보게 된 홍의소녀는 다시 몸을 가늘게 떨기
시작했던 것이다.
의지만으로는 도저히 백호의 시선을 맞 받아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재빨리 백호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이.. 이! 내가 오늘 왜 이러는 거지? 안 돼! 정신 차리자. 보란 듯이
저 똥강아지를 갈기갈기 찢어 죽인 다음에 그 주인 놈도 병신으로 만들
어 버리고 말 테다! ‘
다시 한번 전의가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한 홍의소녀는 고개를 번쩍들
어 백호의 두 눈을 마주 보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슬그머니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홍의소녀였다.
아무리 전의를 불태워 봤자 무엇 하겠는가. 백호의 두 눈과 마주치기만
하면 곧 바로 그 전의라는 것이 사라지다 못해 공포심까지 그녀를 괴
롭혀 오는 것을.
몇 번을 그렇게 백호의 시선을 맞 받아내기 위한 시도를 하던 홍의소
녀는 마침내 울상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싸움이고 뭐고 간에 제발 백호와 강운이 자신의 눈앞에서 사
라져 주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이제는 감히 백호의 두 눈을 마주 볼 용기가 생기지 않았던 홍의소녀
는 백호로부터 시선을 돌려 강운만 힐끔힐끔 바라볼 뿐이었다.
뭔가 재미난 싸움이 벌어질줄 알고 기대감을 가지고 있던 강운은 막
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지루한 상황이 계속돼자 연신 하품을
해대고 있었다.
‘아웅! 간만에 몸 좀 풀라고 가만히 내 버려뒀는데 백호 왜 저러고
있는거지? 혼 내주려면 화끈하게 혼내주든가.. ‘
[백호야! 뭐해? ]
[응? ]
[아까 도저히 못 참겠다고 혼내준다구 했잖아! 근데 왜 그렇게 가만히
있는 거야? ]
[아니! 처음에는 나도 실컷 두들겨 패 줄라고 했는데.. 흐흐 운아
저 인간계집 저렇게 꼴사납게 떨고 있는 모습도 가만히 보니까 재미있
단 말이야.. ]
강운은 백호의 어이없는 대답에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백호의 말을
듣고 있으니 그의 화가 많이 풀려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쯧쯧! 아무튼 백호 성격이 꼭 사부 성격이랑 똑 같단 말이야. 어떻게
하는 행동이 저렇게 사악한… 흠.. 갑자기 또 사부가 보고 싶네.. ‘
자신의 성격 또한 그에 못지않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강운
이었다.
갑자기 생각난 사부의 모습에 침울해져 버린 강운은 동쪽하늘을 바라
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