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벌레
김왕노
서리 몇 번에 끝물이 온 벌판 멀지 않아 마른 검불이 뒤덮을 땅에 송장벌레가 송장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누구나 생의 끝은 송장이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송장벌레란 이름을 천형처럼 걸치고 살아온 것이다.
움직이지 않아 죽었나 의심하면 그럴 리 있느냐며 독심술이 있는 듯 다시 천천히 움직인다.
에너지를 아껴 겨울 끝까지 가려는 듯 천천히 움직일수록 어떤 결의가 그의 검은 몸을 꽉 채운 것 같다.
송장벌레가 결국 송장이 되지 않기 위해 서리를 견디는 시간 같은 그런 시절이 내게도 오고 갔던 것이다.
송장벌레가 작은 동물의 사체를 땅에 묻고 알을 낳듯 어둠 속에서 꿈을 품고 죽어지내다 끝내 나 죽지 앉았다며 작년에 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하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던 것이다.
송장벌레가 동안거를 찾아 나선 듯 천천히 움직인다.
송장벌레에게 느끼는 동병상련
겨울 끝에서 송장거미와 내가 살아남아 만나는 해후의 날이 해빙기처럼 반드시 올 것이다.
-------------
김왕노
매일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와편견』 평론 등단. 시집 『백석과 보낸 며칠간』 등 16 권. 디카시집 『독작』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