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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에 베토벤이 있다면 피아노에는 쇼팽이 있다'
지금의 폴란드 바르샤바 인근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던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 귀족 출신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재주를 보여 7세에 작곡을 하고 8세에 공개 연주회를 하며 14세에 최초의 작품집 론도를 발표한다 이후 바르샤바에서 계속 활동한다
20세 빈으로 연주여행 하던 중 러시아에 지배당하던 조국 폴란드의 봉기 실패 소식을 접하고 그 아쉬움에 '혁명' 에튀드를 작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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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폴란드의 역사를 보면;
폴란드는 풍요한 지역에 자리잡은 게르만족이 모여 살다가
스웨덴 공국 출신 지그문트3세 바사 왕 시절 우크라니아를 지배하고 1609년 모스크바를 2년간이나 점령할 정도로 국력이 왕성해진다
이후 스웨덴 공국의 침략 이슬람교 투르크족과의 긴 전쟁등으로 국력이 쇠퇴해지던
1770년경 우크라이나가 봉기하고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삼국이 유명무실해진 폴란드의 영토를 나누어 가진다
이후 120년 이상 특히 러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1918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주창에 힘입어 비로소 독립한다
그러나 2차대전 초기부터 독일과 소련에게 다시 잔인하게 점령당하는 강인하나 슬픈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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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쇼팽으로 돌아가자
다음 해 파리로 건너가 동년배인 리스트의 도움으로 많은 예술인들을 만나며 연주회를 갖는 동안 그의 세련된 외모와 유려한 피아노 연주는 많은 여성 팬들을 몰고 다닌다
27세 때 폐결핵으로 인한 건강문제로 오래 사귄 여자친구와 이별한다 이즈음 그 유명한 조르주 상드 George Sande 를 만난다
조르주 상드는 누구인가
조르주 상드는
'인생의 목적은 사랑이다' 라고 외치며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만을 위하여 사는 소설가이자 자유인이자 파리의 셀렙이다
많은 연인과 남자친구를 거느리고 여자친구와도 자유롭게 사랑을 나눈다 일찌감치 이혼하고 바지를 입고 다니고 줄담배를 피는 그녀는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엄청난 파격이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수십년간의 살륙행위를 거치면서 공화정과 군주제가 반복되고 이웃나라들이 공격해오고 하는 혼란기의 파리에서도 그녀의 옷차림과 줄담배 피는 모습은 극찬과 극혐의 두갈래로 나누어진다
6세 연하의 유명한 그러나 병약한 쇼팽을 눈여겨 보던 그녀는 쇼팽과 함께 사랑의 도피를 한다
스페인 마요르카의 한 수도원에서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프랑스 노앙으로 옮겨가 요양을 하면서 작곡 생활을 계속한다
10년 가까이 부부처럼 지내다가 조르주 상드의 딸 솔랑쥬와의 관계를 오해 받는 등 잦은 싸움으로 결국 헤어진다
그 이후 런던으로 건너가 빅토리아 여왕을 위한 연주회 등 무리한 활동을 하다 결국 다음 해 1849년 3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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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를 떠나올 때 조국을 잊지말라고 친구들이 담아준 폴란드 흙과 함께 파리의 페르 라세즈 공동묘지에 안장된다 지금도 수많은 팬들이 찾아오는 쇼팽의 묘지에는 항상 꽃이 놓여있다
폴란드를 지배하는 러시아의 눈을 피해 그의 누나 루드비카는 그의 심장을 치마폭에 숨겨 겨우 바르샤바의 성십자가 교회에 안치한다 조국 폴란드에 돌아가고 싶다는 쇼팽의 유언이다
폴란드 국민들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위인 중의 한명이며 바르샤바 국제공항도 바르샤바쇼팽 국제공항으로 이름 붙힐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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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은 피아노 페달을 활용하는 연주기법을 좋아 하였으며 손가락이 길어 자연스러운 레가토(음잇기) 기법을 구사한다 그의 음악은 어렵지는 않으나 연주하기에는 교묘하게 힘들고 평범하나 추상적인 요구사항들이 많다고 한다 스트라빈스키는 이런 말을 남긴다 '슈만의 웅장한 30분 보다 쇼팽의 짧은 연습곡이 더 어렵다'
녹턴 월츠 마주르카 폴로네이즈 등 다양한 피아노곡을 200곡 이상 남겼다
대표작으로
폴로네이즈 3번 '군대' Op 40
폴로네이즈 6번 '영웅' Op 53
즉흥곡 4번 '즉흥환상곡' Op 66
...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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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과 같은 해 독일에서 또다른 위대한 음악가가 태어난다 이 음악가는 정신장애에도 불구하고 클라라와 세기적인 사랑을 한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