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등섬, 물이 가르쳐 준 시간
소등섬으로 가는 길은 늘 바다의 허락을 먼저 구해야 한다. 물이 차오르면 길은 사라지고, 물이 물러서야 비로소 섬은 사람을 받아준다. 그날도 하늘은 낮게 깔려 있었고, 바다는 회색의 숨을 고르고 있었다. 눈발이 잦아들다 다시 흩날리는 오후, 섬으로 이어진 좁은 바닷길은 마치 오래된 문장처럼 느릿하게 펼쳐졌다.
섬은 늘 고요했지만, 그 고요는 비어 있음이 아니라 가득 참에 가까웠다. 썰물에 드러난 갯벌은 수천 겹의 주름을 가진 생명의 얼굴 같았다. 작은 굴곡마다 물이 고였고, 그 물은 하늘을 담아 은빛으로 흔들렸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물웅덩이는 미세하게 떨며 서로 다른 하늘을 비췄다. 같은 하늘인데도 갯벌의 그릇에 따라 표정이 달랐다.
소등섬의 생태는 ‘기다림’이라는 단어로 설명된다. 조개는 깊이 숨어 있다가 물이 빠지면 숨을 내쉬고, 게는 구멍에서 나와 잠시의 세계를 누빈다. 철새들은 그 짧은 시간을 정확히 안다. 물이 빠질 무렵, 날개는 더 분주해지고 울음은 낮아진다. 이곳의 생명들은 시계를 차지 않는다. 대신 달과 바람, 물의 무게를 읽는다.
섬 한가운데에 선 소나무 몇 그루는 바다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바람에 눌려 자라난 가지는 사방으로 뻗지 못하고 한 방향으로만 향한다. 생존은 선택이 아니라 적응이라는 사실을, 나무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몸으로 보여준다. 바닷바람이 세질수록 뿌리는 더 깊어졌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노력만이 보이는 풍경을 만든다.
눈이 내리자 갯벌은 잠시 숨을 고르는 듯 보였다. 검은 진흙 위에 내려앉은 흰 눈은 금세 녹아 물길을 만들었다. 그 물길은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섬에서 태어난 모든 것은 결국 바다로 되돌아가는 순환을 안다. 남아 있으려 애쓰지 않는 태도, 그것이 이 섬의 윤리처럼 느껴졌다.
바닷길을 따라 걸으며 나는 자꾸만 발걸음을 늦추게 되었다. 서두르면 놓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갯벌 위에 남은 작은 발자국들, 조개껍질의 결, 바람에 눌린 풀의 방향. 이 모든 것은 느린 시선에서만 읽힌다. 소등섬은 빠르게 소비되는 풍경이 아니라, 오래 머무를수록 의미가 쌓이는 장소였다.
섬의 가장자리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수평선은 늘 흐릿하다. 날이 맑아도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경계는 명확할수록 좋다는 믿음이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바다와 하늘, 섬과 육지는 서로 스며들며 살아간다. 소등섬의 생태는 경계를 흐리는 기술 위에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인간은 늘 방문자에 불과하다. 길은 잠시 열렸다가 다시 닫힌다. 우리가 머무는 시간은 조수 간만의 한 박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섬에서는 말수가 줄어든다. 자연 앞에서 설명은 불필요해지고, 관찰이 남는다. 듣는 대신 보고, 주장하는 대신 기다리게 된다.
해가 기울 무렵, 바다는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드러나 있던 길은 서서히 물에 잠겼다. 돌아갈 시간이다. 섬은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린다. 그러나 쫓아내는 기색은 없다. 다음 썰물을 약속하는 침묵이다.
소등섬을 떠나며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살아간다는 것은 늘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아니라, 물러설 줄 아는 능력일지도 모른다는 것. 때로는 길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고, 다시 열릴 때를 믿는 태도 말이다. 이 섬의 생태는 우리에게 그렇게 속삭인다.
돌아오는 길, 발밑에서 마지막으로 물이 찰랑였다. 바다는 이미 길을 덮었고, 섬은 다시 고립되었다. 그러나 고립은 단절이 아니었다. 그것은 리듬이었다. 소등섬은 오늘도 자기만의 시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우리보다 오래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