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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즈 코헛(Heinz Kohut, 1923-1981)
목차
1.하인즈 코헛의 생애와 업적
(1)성장과정
(2)대학생활
(4)결혼생활
(3)어머니와의 관계
(4)결혼생활
(5)자기심리학 태동
2.코헛 사상의 발달과정
(1)방법론 계발시기(1950~1959)
(2)나르시시즘의 전이 현상 분석과 구체화 시기(1960~1966)
(3)나르시시즘 연구 시기(1966~1977)
(4)자기 심리학 완성시기(1978~1981)
3.맺는 말
참고문헌
하인즈 코헛(Heinz Kohut, 1923-1981)
하인즈 코헛은 자기 심리학(Self Psychology)를 창시한 사람으로서 무엇보다도 나르시즘의 정신역동을 이해하는데 크게 공헌을 한 사람이다. 정통 프로이트 학파에서 정신분석 훈련을 받고 그의 이론의 가르치는데 탁월한 분석가였으나 말년에 자기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내놓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이론에 반기를 들었으며, 오이디푸스 이전에 어머니와의 양육과정에서 결핍이 생겼을 때 정신병리가 생기는 것으로 보았다. 이것을 치유하는 과정에서도 프로이트의 중립성에 반기를 들고 공감(empathy)를 가장 중요한 치료 요인으로 꼽았다.
1.하인즈 코헛의 생애와 업적
(1)성장과정
하인즈 코헛은 1913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코헛의 아버지는 피아니스트로서 전문 연주가의 길을 걷고 있었으며, 어머니는 활달한 사람이었다. 서로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한 이들은 한때 행복한 나날을 보냈으나 이러한 그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코헛이 태어난 이듬해(16개월)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아버지가 전쟁터에 나갔으며, 그 사이 코헛과 어머니는 외할머니 집에서 지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를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자라게 되며, 이것은 훗날 코헛으로 하여금 프로이트를 떠나 자기심리학을 탄생시키는 경험적.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아버지가 이탈리아에서 지내던 중 부상을 당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이때 자신을 돌보아주던 간호원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으며,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남편에 대한 애정을 거둬들이게 된다.
중요한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없이 자랐다는 사실과 그 이후에도 아버지의 존재가 어머니에 의해 차단당한 채 자란 코헛은 오이디푸스적인 갈등을 핵심으로 하는 프로이트의 이론에 종지부를 찍고,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신의 이론인 자기심리학을 내놓게 된다.
코헛이 자기심리학을 설명하기 위해서 내놓았던 사례, 하지만 그의 사후에 그 자신의 자서전적 이야기라고 알려지게 된 “Mr. Z"사례에서 코헛은 아버지가 돌아오는 꿈을 보고한 적이 있다. 아버지가 양손에 선물을 가득 들고 들어오려고 하는데, 소년은 문을 닫으려하며 완강히 거부한다.
훗날 코헛이 처음으로 정신분석을 받게 되었을 때, 그 프로이트 학파 정신분석가는 이 꿈을 그의 오이디푸스적 경쟁에 대한 양가감정이라고 해석했다. 즉, 온전히 어머니 독점을 하고 있던 상황이 끝나게 된다는 두려움과 몇 년 동안 집을 비운 후 돌아와서 그를 거세(castration)하여 파괴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확실히 좀 더 깊이 이해한 바에 따르면 ”그 소년은 너무 오랫동안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살았으며, 따라서 심리적으로 대체할 대상(psychological substance)을 박탈당했고, 따라서 아버지의 장단점(assets and defects)을 관찰하면서, 그는 조금씩 자신의 독립적인 자기의 핵(the core of independent self)을 세워나갔을지 모른다.” 꿈 속에서 싸움은 생존을 위협하는 위협적인 상황을 의미했다. 누군가는 말하기를, 그 꿈에 대한 첫 번째 해석에서 하인즈가 아버지에게 가졌던 것, 즉 아버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완강하게 저항했던 것,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아버지를 들어오게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인즈가 느꼈던 두려움은 이러한 모든 일들이 ‘갑작스럽게’일어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펠릭스는 전쟁을 통해서 모든 것을 잃었다. 사랑하는 가정을 잃었으며, 젊은 시절의 굼과 희망이었던 피아니스트의 길을 접어야만 했다. 전쟁을 치르는 5년 동안 피아노를 만지지 않았고, 연주가로서의 경력은 끝났다. 청중들의 환희 속에서 연주하는 꿈을 키워왔던 펠릭스는 그의 꿈을 접고 사업을 했으며, 피아노는 취미생활로 하는 데 그쳤다. 30대에 그의 전성기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모든 것이 무미건조했으며, 무능하고 위축된 세계로 들어갔다. 코헛의 오랜 친구였던 지그문트 레바리(Sigmund Lavarie)가 회고한 바에 따르면 그는 “건조한” 사람이었으며, 기억할 만한 것이 없고, 아들의 친구들에게 말을 건넨 적이 거의 없었다.“ 가족들 특히 부인과 심리적으로 멀어지면서 슬픔 속에서 지낸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그는 엘제와 다시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으며, 아들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이후 가끔 피아노를 쳤지만, 그저 즐기는 정도였다. 도처에 음악이 있었지만, ”그의 심장은 그곳에 있지 않았다.“ 전쟁은 펠릭스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코헛은 말했다. ”나는 젊고, 정력적이었던 아버지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코헛이 자신을 아버지와 동일시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아버지의 외모를 빼닮았다. 아버지와 멀어졌지만, 코헛은 그를 이상화(idealized)했다. 여주자로서 탄탄대로를 걷다가 전쟁 후 모든 자신감을 잃어버린 아버지, 한때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였던 어머니로부터 멀어지면서 집안에서 초라한 위치를 차지하게 디고, 무늬만 부부로 지내게 된 사실을 코헛은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아버지에게 다가갈 수 없었던 코헛은 주위에 많은 동성 친구들과 어울려 지냈으며, 남자 선생님들에게도 많은 애착을 갖게 된다. 특히, 청소년기에 자신을 가르쳤던 개인지도 선생님과 코치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중 한 개인지도 선생님과는 동성연애를 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자란 코헛에게 있어 주위 선생님들에 대한 아버지 역할의 기대는 매우 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대학생활
코헛은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비엔나 의과대학에 들어갔다. 의과대학 역시 집에서 다녔기 때문에 어머니의 울타리를 떠나지 않았다. 대학에 간 후에는 의과대학 공부보다는 과외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여전히 음악과 문학에 심취했으며 항상 절친한 친구를 옆에 두고 지냈다.
그는 여자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거의 이성을 사귀지 않았다. 유일하게 이성을 접한 시기는 어머니를 떠나 6개월간 파리에서 병원 실습을 할 때 였다. 그의 첫사랑은 독일을 떠나 시카고에서 의사 생활을 하던 때 있었다. 사귀는 중에 단 한 번도 어머니에게 여자 친구를 정식으로 소개하지 않았다.
(3)어머니와의 관계
1937년 코헛이 24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사망했다. 루케미아가 갑작스럽게 발병하였으며 발병한 지 6개월 만에 사망했다. 코헛은 아버지를 잃은 이들 해에 1년 정도 정신분석을 받았다. 그리고 나찌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왔고 시카고에 정착하였다.
코헛의 삶은 어떻게 보면 평생을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기 우해 몸부림친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어머니는 자기중심적이고 자기애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전쟁 중에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알게 된 후 남편을 버리고 외아들인 코헛을 자신의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았다. 훗날 코헛은 ‘Z'의 사례에서 어머니와의 관계를 ’질식할 것 같은‘ 관계였다고 회고하고 있다. 어머니는 외아들인 코헛을 자신의 자기애적인 욕구를 채우는 ’도구‘로 삼았다. 아들을 사랑했고 아들에게 헌신했지만 이것은 ’어머니가 원하는 아들‘이 되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계약 하에서였다. 코헛은 자라면서 이 약속을 충실히 지켰다. 공부를 잘하는 자랑스러운 아들이었고 능력있는 의사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자기 나이 또래의 어느 여자와도 데이트를 하지 않았다. 문학과 예술에 심취했으며 이것들을 향유하는 절친한 남자 친구들로 둘러싸인 채 청년시절을 보냈다. 24세가 되던 해인 1937년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했고 이후 평생 어머니를 돌보았다. 1939년 코헛이 미국으로 망명한 이듬 해에 어머니도 시카고로 건너왔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머니는 점점 정신병적인 상태가 되었으며 고집스럽고 요구적인 노인이 되어갔다. 정신분석을 통해서 어머니가 얼마나 코헛의 삶을 통제하고 왜곡시켰는지를 깨닫고 나서 그의 나머지 삶은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기 우해 몸부림치는 세월이 되었다. 코헛은 36세에 결혼했다. 다행히 결혼이 그에게는 큰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결혼 한 이후에 아내를 더 사랑했고 아들을 낳은 후에는 자신이 원했던 아버지 상을 아들에게 모두 실천하며 살았다.
코헛이 프로이트 학파를 떠나서 자기 심리학을 창시하게 된 배경에는 이러한 어머니의 관계의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코헛은 자기심리학에서 정신적인 병리(특히 자기애적 성격)의 원인을 ‘어머니의 잘못된 양육’으로 보고 있다. 이것이 자기심리학의 핵심이며 어머니로부터 받지 못한 부분을 치료자의 ‘공감(empathy)’으로 채워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이유이다. 어머니와의 ‘질식할 것 같은’ 관계 속에서 지낸 청소년기에 이미 어머니로부터 거세되어버린 아버지와 오이디푸스적인 경쟁을 할 기회조차 없었던 코헛의 삶을 보면 그가 왜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을 버릴 수 밖에 없었는지 짐작케 한다.
(4)결혼생활
자신의 일 이외에는 음악과 예술에 심취하였고 항상 주변에 친구들을 곁에 두고 지냈던 코헛은 비교적 늦은 나이가 되도록 이성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단 한 번의 이성교재를 할 때에도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은 채 헤어졌다.
그는 36세에 결혼을 했다. 1년 전부터 같은 연구소에서 알고 지내던 사회사업가였고 한 때 독일에서 정신분석을 공부한 적이 있는 엘리자베스 메이어(Elizabeth Meyer)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었다.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된지 6개월 만에 결혼했다. 누가 보아도 질투를 일으키지 않을 수수한 외보에 무난한 성격의 여자였다.
결혼과 더불어 눈에 띄게 안정되어갔다. 결혼할 당시보다도 결혼 후 부인과 사랑에 빠졌다. 부인이 없이는 단 하루도 혼자 여행할 수 없었으며 외부에서 일을 하고 온 후에는 항상 가족과 함께 지냈다. 1950년 3월 11일, 아들이 태어났다. 자신이 이상화하고 존경해마지 않던 토마스 만(Thomas Mann)의 이름을 따서 토머스 어거스트 코헛(Thomas August Kohut)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자신이 이상화하고 있던 사람의 이름을 지어준 아들에게 코헛은 이상적인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같이 놀아주고 박물관과 음악회에 데리고 다니고 여행과 낚시를 다니면서 아들에게 로마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는 자상한 아빠였다. 한때, 자신을 이어서 의사가 되기를 바랐고 병원에 데리고 가서 소의 심장을 보여주면서 같이 슬라이드를 만들어 관찰하기도 했다.
(5)코헛의 자기심리학 태동
1940년 코헛은 미국으로 이주하여 시카고 대학에서 신경의학과 정신분석학을 전공하게 되는데 이것도 역시 프로이트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정신분석가로서의훈련을 시카고 정신분석 연구소(Chicago Institute for Psychoanalysis)에서 받았고 평생을 그곳에서 임상과 교육으로 연관을 맺게 된다. 임상가로서 그리고 교육가로서 활동하던 초기의 코헛은 아직 자신의 독특한 정신분석의 이론인 자기 심리학을 주장하기보다는 프로이트의 충실한 제자였다. 이 시기의 코헛은 'Mr. Psychoanalysis'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전통적 프로이드 정신분석의 이론에 기반을 둔 임상과 교육의 활동을 하였다. 1964년 코헛은 51세의 나이로 미국 정신분석학회(American Psychoanalysis Association)의 회장직과 국제 정신분석학회(International Psychoanalytic Association)의 부회장직을 맡게 된다. 그러나 그는 1968년 프로이드의 패러다임과 결별함으로써 정신분석학회로부터 소외되고 자신만의 자기심리학의 주장과 임상훈련에 몰두하게 된다. 1981년 California의 Berkely에서 있었던 자기 심리학회에서 “Reflections on Empathy"란 논문을 마지막으로 발표한 후 사흘 후인 1981년 10월 8일 서거했다.
2.코헛 사상의 발달과정
코헛의 자기 심리학은 시기적으로 4단계의 변천과정을 겪으면 하나의 체계로 자리를 잡는다.
(1)방법론 계발시기(1950~1959)
이 시기에 코헛은 시카고 정신분석 연구소의 교수로서 그리고 분석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자신의 독창적 이론 성립을 위한 준비기로 보낸다. 코헛은 자신의 환자들로부터 임상적 자료들을 채집할 때 전통적 프로이트적 방법론인 과학적, 합리적, 객관적 방법론인 외부로부터의 방법론(Extrospection)만을 사용하지 않고 환자의 내부세계의 입장에서 그의 감정과 사고 경험의 체계를 이해하려는 내부로부터의 관찰의 방법(Introspection)을 자신의 임상적 자료 수집과 환자치료의 중심적 방법론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 점에서 그는 이미 프로이트와의 결별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특히 이 시기에 발표한 논문가운데 하나인 “내성적(內省的) 방법”, 공감, 그리고 정신분석“이란 글에서 코헛은 정신분석의 방법론을 새롭게 재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전통적 방법론의 핵심으로 활용되며 시행되고 있던 자유연상과 저항 중심의 해석에서 내성적 방법과 공감의 방법론 중심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론적 전환의 촉구는 단순히 정신분석학의 테크닉만을 바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속에는 코헛의 인간이해와 그에 따른 정신분석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축을 내포하는 전통 정신분석이론과의 중요한 차이점이요 동시에 코헛만의 독자적 방법론의 출발점이라 하겠다. 즉 코헛의 인간이해는 보다 따뜻한 주관과 감정의 교류가 내포된 관계적 틀 안에서의 인간이해이며 이러한 인간이해를 기초로 한 내성적-공감적 치료의 방법론으로만 비로소 한 인간의 삶의 중심에서 들려오는 삶의 진정한 문제의 근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2)나르시시즘의 전이 현상 분석과 구체화 시기(1960~1966)
이 시기에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에 대한 이론을 나르시시즘적 성격장애의 치료에서 나타나는 전이의 현상을 중심으로 분석해 감으로써 구체화시키는 단계이다. 이 시기에 코헛은 특히 전통적 정신분석의 방법론으로는 치료의 효과를 크게 볼 수 없었던 환자들의 출현에 주목하며 그들에게 내성적-공감적 방법론을 통한 치료적 효과를 논술하고 있다. 이 시기의 특징은 코헛이 전통적 정심분석의 한계를 그의 임상적 경험에서 만나는 새로운 환자의 집단들의 특성을 면밀히 분석하며 그들을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그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론과 치료적 기술 및 이론을 계발하고 있다는데 있다.
특히 이 시기에 코헛은 중요한 논문 두 편을 발표하는데 그는 이 논문들을 통해 프로이트의 한계점을 예리하게 분석하며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서 임상적 경험 안에서 유용한 내성적-공감적 방법론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코헛의 내성적-공감적 방법론을 통한 자기애적 성격장애 환자들에 대한 치료법의 제시는 이때가지 거의 불가능하게 보아왔던 나르시시즘적 장애를 지닌 환자들의 이해와 치료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코헛에 의하면 자기애적 성격장애를 지닌 환자들은 특히 임상의 상황에서 특수한 자기애적 전이를 많이 일으키게 되는데 치료자는 이러한 전이가 발생할 때 당황하지 말고 이 전이를 활성화하여 치료적 목적으로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즉 자기애적 성격장애를 지닌 환자들은 자신들의 발달과정에서 성취하지 못한 발달의 결핍적 요소들을 치료의 상황에서 치료자와의 관계를 통하여 전이를 활성화하며 자신을 표현하게 된다.
따라서 자기애적 성격장애의 치료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치료의 방법은 이러한 발달 결핍(Developmental Deficit)에 기인한 자기애적 전이의 퇴행과정과 증상들을 명확히 구별하여 공감해주는 분석가의 분석과 동시에 그 분석의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관계를 통해 경험하는 새로운 경험들이 내담자의 인격의 체계 안에서 어떻게 다시금 재구성되느냐에 달려다 하겠다. 즉 코헛이 발견한 새로운 환자군들(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의 치료에는 전통적 정신분석의 방법론을 가지고 접근하는 통찰적 접근과 그에 따른 자기 갈등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치료 목표보다 어린시절의 발달과업의 미숙으로 인한 정서적 자기결함을 치료자와의 새로운 관계의 경험을 통해 다시금 재급유 받아 보강시키는 자기의 재 결집에 치료적 목표가 집중되게 되는 것이다.
즉 프로이트적 전통적 신경증의 환자들은 억압된 본능의 해방과 그를 통한 만족감(satisfaction)을 추구하지만 코헛적인 자기애적 환자들은 상처입은 자기애적 자아(Narcissistic ego)의 개념이 후에 코헛의 자기 심리학의 근간이 되는 자기애적 자기(Narcissitic Self)의 개념을 형성하게 되고 나아가 과시적 자기(grandiose self)의 개념으로 발달하게 된다.
(3)나르시시즘 연구 시기(1966~1977)
이 시기의 중요한 저술로서 코헛은 3편의 논문과 1권의 책을 발표하게 된다. 첫 번째 논문으로 “Forms and Transformations of Narcissism)”을 1965년 12월 5일 미국 정신분석 협회에서 발표하는데 이 논문에서 그는 이상화된 부모의 이미지가 어떻게 자기애적 성격장애의 인격구조 안에 편입되는가를 논하고 있다. 코헛에 의하면 아이들은 발달과정에서 힘, 아름다움, 선함, 완전함 등을 부모의 모습에 투사하며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투사된 덕목들을 성장과정에서 내면화와 변형화의 과정을 통해 이상화도니 부모의 이미지를 자신의 인격구조 안에 간직하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자기애적 자기(Narcissistic Self)는 한 개인의 인격 구조 안에서 세상을 향한 야망과 자신에 대한 과대적 환상의 기초를 형성하게 된다.
두 번째 논문인 “The Psychoanalytic Treatment of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s: Outline of a Systematic Approacn"에서 코헛은 그의 자기 심리학이론의 가장 기초 개념들인 자기애적 전이의 현상들-이상화 전이(Idealizing Transference)와 거울 전이(Mirroring Transference)-을 임상적 경험의 환경 안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상화 전이란 이상화된 부모의 이미지와 관련된 전이의 현상을 말함이고 거울 전이란 유아기 시절의 과대적 자기와 관련된 전이의 현상을 말한다. 이 논문에서 코헛은 자신의 임상사례인 "Miss F"의 임상적 증상과 전이 현상들을 분석하며 전통적 프로이드 개념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의한 전이로 설명하지 않고 발달 초기(즉 전 오이디푸스 시기)의 발달 결핍에 의한 거울전이로 설명하고 있다.
이 시기의 세 번째 작품이며 코헛의 첫 번째 저술인 "The Analysis of the Self"에서 코헛은 자신의 발표도니 논문들을 종합하여 자기 심리학의 중요 개념들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 코헛은 임사의 사례들에서 활성화되어 나타나는 이상화 전이와 거울 정이에 초점을 맞추어 자신의 자기 심리학의 기초 개념들인 자기(Self), 자기 대상(Selfobject)등의 개념들을 설명하고 있다. 코헛은 자신의 일관된 방법론인 내성적 공감의 방법론을 통하여 임상의 현장에서 발견되는 내담자들의 전이 현상들을 분석하며 내담자의 자기 구조 안에 깃들어 있는 발달 결핍과 그에 따른 전이 현상들을 치료에 활용할 것과 이때 분석가는 전통적 프로이트 방식의 중립적이며 객관적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의 결핍된 자기애적 상처에서 나오는 대상을 찾는 욕구를 심리적 산소로서 공급해 주는 내담자의 자기 대상(Selfobject)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코헛의 강조점은 전통적 정신분석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관계 중심적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이라 말해 좋을 것이다.
이 시기의 마지막 작품인 “Thoughts on Narcissism and Narcissistic Rage"란 논문은 1971년 뉴욕 정신분석 학회에서 발표한 것으로 여기에서 코헛은 나르시시즘과 공격성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이 논문에서 코헛은 자기애적 성격 장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기애적 분노의 기전, 형태, 경험의 내용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코헛에 의하면 자기애적 분노는 응집력있는 건강한 자기(Cohesive Self)의 구축에 실패한 인격 구조의 산물이며 이는 근원적으로 유아기적 발달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핵심에는 유아기의 과대적 자기와 이상화된 자기의 출현에 적절히 응답하지 못했던 중요한 타인들(부모들)의 자기대상(Selfobject)의 실패에서 기인됨을 밝히고 있다.
(4)자기 심리학 완성시기(1978~1981)
이 시기에 코헛은 그의 주요 저작인 "The Restoration of the Self"와 그의 유과 작이 된 “How does Analysis Cure?"를 발표한다. 이 시기의 코헛은 자신만의 독특한 자기 심리학을 완성함으로써 프로이트의 전통적 정신분석으로부터 독립된 독자적 패러다임의 정신분석의 체계를 구축하게 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전통적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 체계에서 주목하는 신경증의 원인은 4-6세 사이의 심리-성적 발달 과제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실패로 인한 만족되지 못한 내적 욕구의 불충분에 기인된 심리적 갈등의 구조이다.
그러나 코헛의 임상 경험에 의한 새로운 패러다임 안에서는 이러한 프로이트적 신경증으로는 자기애적 성격장애의 원인과 치료에 모두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코헛의 주장이다. 즉 자기애적 성격 구조를 지닌 사람들은 발달의 초기에(전 오이디푸스 기간인 4세 이전)자기를 구축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기 대상(부모)이 아이의 발달적 욕구(이상화 대상과 거울 대상)에 공감을 주며 응답하는데 실패함으로써 건강한 응집적 자기를 구축하는데 실패하고 그 취약한 자기의 구조가 상처 입은 자기애적 자기(Narcissistic Self)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아이들은 출생 이후 건강한 자기 구조를 지니기 위해서 끊임없이 심리적 산소(Psychological Oxygen)로써의 자기대상의 적절한 사랑과 공감적 응답을 요구하는데 부모의 무관심이나 공감의 실패로 인하여 이러한 아이들의 대상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함으로써 아이는 건강한 응집적 자기를 구축하는데 실패하게 되고 그 결과 파편화된 자기의 취약한 자기 구조로써 일생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코헛의 견해는 프로이트의 정신병리의 원인론과는 정반대의 입장이다. 즉 프로이트는 아이들의 심리-성적 발달의 단계에서 해결하지 못한 리비도의 갈등의 잔재로써 신경증의 원인을 말하는데 반하여 코헛은 관계의 실패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심리적 성장의 기초로서 태어나서부터 자기대상(Selfobject)인 부모로부터 충분한 공감적 사랑과 양육을 제공 받아야 하는데 어떠한 이유에서든 이 사랑과 양육의 과정에 결핍을 빚게 되면 소위 심리적 산소의 결핍으로 인한 발달 결핍이 발생하게 되고 따라서 아이들의 자기구조(Self structure)는 취약하고 파편화된 자기구조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 코헛의 설명이다.
코헛의 임상경험에 의하면 부모들의 어린 아이들에 대한 공감의 결여와 충분한 사랑의 결여는 결국 한 인간이 성숙의 과정에 필요한 충분한 심리적 자원을 박탈하게 되는 것이며 그 결과 그 인간은 이러한 발달 결핍을 충족시키고자 성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자기대상을 찾아 방황하게 되는 자기애적 성격장애의 환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코헛의 관계 중심적 정신병리의 원인에 대한 이해는 고전적 정신분석의 갈등이론과는 대조적인 이론이라 하겠다.
나아가 코헛은 정신치료에 관해서도 고전적 정신분석이론과는 다른 입장을 주장하고 있다. 고전적 치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통찰과 해석의 강조를 최소화시키고 대신 분석가와 내담자 사이의 치료적 상황 안에서의 새로운 관계의 경험을 강조한다. 이 새로운 관계는 전이를 통해서 활성화되기 때문에 코헛은 치료적 상황 안에서의 전이를 치료적 수단으로서 매우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코헛과 프로이트의 차이점은 양자사이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인간이해에 기인하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인간이해는 인간에 대한 결정론적, 부정적, 양면적 인간이해에 기인한다. 따라서 프로이트의 인간은 언제나 과거의 사슬에 메여 갈등하며 고통받는 인간, 즉 죄된 인간(Guilt man)이다. 반면에 코헛의 인간 이해는 프로이트의 인간보다는 통전성을 지닌 인간이다. 코헛의 인간은 통일된 자기를 지니고 자기를 힘있게 주장하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합일을 이룰 줄 아는 인간, 즉 독립적이고 응집적이며 관계 안에 있는 인간인 것이다. 코헛의 인간은 관계의 그물 망 안에서 태어나고 관계 안에서 자라다가 관계 속에서 죽는 관계적 인간인 것이다. 이러한 관계적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랑과 관심이라는 심리적 산소를 필요로 한다. 충분한 심리적 산소를 공급받는 인간은 충분히 성숙하며 자신과 타인과 세계 안에서 자신을 표현할 줄 알고 타인을 긍정하며 공감할 중 알고 세계 안에서 자신의 창의력과 유머를 계발하고 건강한 관계 속에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이러한 건강한 인간의 심리 구조를 코헛은 응집적 자기(Cohesive Self)의 구조를 가진 사람이라 말하며 이러한 응집적 자기는 “자기대상과의 관계 안에서 충분한 공감과 사랑의 응답을 받으며 충분한 심리적 산소를 공급받음으로써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자기의 회복(The Restoration of the Self)이라는 책에서 코헛은 특히 그의 자기 심리학의이론과 치료의 기술로써 내성적-공감적 이해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프로이트의 전통 전신분석학이 분석가의 중립적 합리적 과학적 객관적 내담자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는데 반해 코헛은 내담자의 경험 중심적 공감의 방법론을 일관되게 자기 심리학의 방법론과 이론의 뼈대로써 강조하고 있다. 특히 코헛은 이 책에서 자신의 이중적 자기 구조(Bipolar Self)의 개념을 다시금 강조하는데 과대적 자기의 축과 이상화된 자기의 축이 건강하게 구축되기 위하여 자기대상과의 건강한 관계의 경험이 필수적 요인이 됨을 강조하고 있다.
코헛의 마지막 작품이 된 “어떻게 분석이 치료하는가?(How does Analysis Cure?)"에서는 다시 한번 정신치료의 과정에 있어서 공감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 코헛은 공감의 3요소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기한다.
첫째, 공감은 정신치료의 과정에 있어서 내담자의 주관적 경험의 세계에 이를 수 잇는 가장 좋은 통로가 되며 공감의 방법론을 통해서 분석가는 내담자의 내면세계의 진실에 도달하여 치료적 자료들을 수집할 수 있다.
둘째, 공감을 통하여 분석가와 내담자는 심리적 결속을 강화하며 치료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발달의 결핍을 보강해 주는 심리적 산소로서의 자기대상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다.
셋째, 따라서 공감은 한 개인에게 있어서 심리적 건강도를 유지할 수 있는 심리적 산소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코헛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감에는 낮은 수준의 공감으로서의 이해와 높은 수준의 공감으로서의 해석이 있음을 말한다. 더 나아가 코헛은 이 마지막 책에서 쌍두이 전이(Alter Ego Transference of Twinship Transference)의 특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즉 인간에게는 공감하며 수용해주는 자기대상을 통해 자신의 과대적 자기를 확인 받고 싶은 욕구와 이상화된 자기대상을 통해 다르고 싶고 되고 싶은 자기를 실현하고 싶은 이상화의 욕구뿐만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동료로서의 자기대상에 대한 욕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분석 및 치료의 과정에서 이러한 쌍둥이 전이는 분석가를 자신과 비슷한 제 2자아로서 생각하고 분석가가 자신과 똑같이 말하고 생각해주도록 갈망하는 욕구로서 표현되기도 한다.
3.맺는 말
이상과 같이 발전되어 온 자기 심리학은 1981년 코헛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그의 동료들과 제자들에 의해서 더욱 다듬어 지고 보강되며 최근의 정신분석학의 새로운 흐름을 대변하고 있다. 그들은 코헛의 독창적 아이디어들을 많은 임상의 사례들과 결부시키며 자기 심리학의 이론을 더욱 정교화시키고 현대의 자기 실현의 시대를 살며 자기애적 정신장애에 시달리는 많은 인간들의 삶에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치료적 심리학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코헛은 자기애적 인격장애 환자를 중심으로 그들에 대한 이해가 전통적 자아심리학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코헛은 대상과의 평생 지속적인 관계가 있어야 자기의 경계가 세워지고 그로 인해 자기라는 개념을 세울 수 있다고 보았다. 코헛은 전통적 자아심리학이 분석할 수 없다고 판정한 환자들에 대하여 자아심리학적 접근 및 기법이 환자에게 미치는 공감 결여를 예리하게 파악하였다.
또한 인간은 결코 타인과 분리된 육체적, 심리적, 사회적 독립체가 아니라는 점과 인간의 정서적 심리적 건강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자기대상이라는 관계의 경험을 필요로 한다. 이 자기대상의 관계경험에는 타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고 인정하며 수용해주는 공감적 이해가 필수적이다.
21세기는 나르시스트의 시대라고 표현할 만큼 코헛의 자기심리학은 이 시대에 많이 발생하는 자기애적 성격 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도울 것인가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코헛은 “인간은 관계의 그물 망 안에서 태어나고 관계 안에서 자라다가 관계 속에서 죽는 관계적 인간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관계적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랑과 관심이라는 심리적 산소를 필요로 한다. 충분한 심리적 산소를 공급받는 인간은 충분히 성숙하며 자신과 타인과 세계 안에서 자신을 표현할 줄 알고 타인을 긍정하며 공감할 중 알고 세계 안에서 자신의 창의력과 유머를 계발하고 건강한 관계 속에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이러한 건강한 인간의 심리 구조를 코헛은 응집적 자기(Cohesive Self)의 구조를 가진 사람이라 말하며 이러한 응집적 자기는 “자기대상과의 관계 안에서 충분한 공감과 사랑의 응답을 받으며 충분한 심리적 산소를 공급받음으로써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치료자는 발달 결핍에 의해 자기애적 성격 장애를 지닌 내담자의 관계에서 새로운 공감적 관계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
참고문헌
이재훈, 이해리(2002). 프로이트 이후. Freud and beyond. Mitchell, Stephen A.
박경순(2009). 코헛과 자기심리학. Journal of Psychotherapy. Vol. 9, No.1. P.129-141.
정석환(1999). 코헛의 자기심리학과 목회상담. 신학논단. Vol.27. P.319-348
최의헌(2001). kohut의 자기 이해. 한국기독교상담학회지. Vol.2. P.105-126.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쯤의 요약이 마음에 드네요. / 코헛은 “인간은 관계의 그물 망 안에서 태어나고 관계 안에서 자라다가 관계 속에서 죽는 관계적 인간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관계적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랑과 관심이라는 심리적 산소를 필요로 한다. 충분한 심리적 산소를 공급받는 인간은 충분히 성숙하며 자신과 타인과 세계 안에서 자신을 표현할 줄 알고 타인을 긍정하며 공감할 줄 알고 세계 안에서 자신의 창의력과 유머를 계발하고 건강한 관계 속에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저는 코헛에 대해서 "자기심리학(self psychology)의 창시자이다."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단행본 책을 읽어본 적은 없고, 교과서나 또는 이책 저책에 소개되는 자기심리학에 대한 짧은 글들을 읽어본게 전부인데, 늘 그 요점이 무엇인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 글을 통해 코헛의 개인사를 어느 정도 알게된 게 좋았습니다. 심리학의 경우 특정 이론을 이해하려면 그 이론을 내놓은 사람의 개인사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개인사에 대한 지식이 많으면 많을 수록 그가 내놓은 이론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지요. / 그리고 코헛 이론의 강조점이 "공감과 관심"에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카페를 운영하다 보니 다양한 지식을 접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혼자 공부하다 보면 자신이 관심을 갖는 주제만 공부하게 되지요. 저는 그렇구나님께서 올려주시는 펌글들을 통해서 제가 모르던 지식들, 어렴풋이만 알고 있던 지식들을 새롭게 공부하는 기회를 갖고 있습니다. 편식하지 않도록 밥상에 다채로운 반찬을 올려주시는 것 비슷한 느낌으로 그 글들을 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구나님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렇구나님 덕분에 제 지식 창고가 조금씩 확장되는 기쁨을 느끼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