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자님께서는 모통 사람으로서는 가질 수 없는 훌륭한 상호를 갖추고 태어 나셨습니다. 왕자님께서는 훗날 훌륭하게 성장하셔서 전 인도를 통일하여 덕으로써 다스리는 이상적인 제왕인 ( a )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출가하여 수행자의 길을 걸으시면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구제하는 ( b )이 될 것입니다." 하고는 태자의 얼굴을 살피면서 우는 것이었다. c " 저는, 그러나 늙어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
(1) a - 전륜성왕, b - 부처님
(2) a - 전륜성왕, b - 우바새
(3) a - 빔비사라왕, b - 부처님
(4) a - 빔비사라왕, b - 우바이
8-2 밑줄 친 c " 저는, 그러나 늙어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의 이유로 바른 것은?
(1) 어머니 마야 왕비가 곧 돌아갈 것을 예감해서
(2) 미래의 부처님의 출현을 뵐 수 없는 것이 한스러워서
(3) 태자가 출가한 후 카필라국이 멸망하게 됨을 예감해서
(4) 미래의 전륜성왕을 보지 못하고 먼저 죽게 된 것을 슬퍼해서
8-3 태자의 앞날을 예언한 이 선인은 누구인가? ( )
9. 다음은 불기(佛紀)에 대한 설명이다 틀린 것은
1.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불기는 네팔에서 열린 제1차 불교도 대회에서 결정되었다
2. 부처님의 탄생연도를 불기1년으로 결정하였다
3. 제4차 세계불교대회가 열린 그해(1956년)를 불기2500년으로 정하였다
4. 제4차 세계불교도 대회에서는 부처님의 탄생연도를 기원전624년으로 통일하기로 결의하였다.
불기[佛紀] : 불멸기원(佛滅紀元)을 줄인 말이다. 불교를 국교로 삼은 국가에서 연대를 표시하는 방법으로서 부처가 열반한 해가 기준이 된다. 하지만 부처 열반 연도는 정확하지 않다. 옛 인도인들은 역사 기록 자체에는 큰 가치를 두지 않아 부처의 탄생 연도는 물론 열반 연도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거의 없다. 단지 부처 사후 100년째 되는 해에 마우리아 왕조에서 아소카 왕이 즉위했다고 전해져 이를 토대로 역으로 셈하여 입멸 연도를 잡기도 한다.하지만 남방불교에서는 아소카 왕이 부처 사후 218년에 즉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인도를 침입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연대로 따진 것인데, 이 기록에 따라 1956년 스리랑카에서 부처 입멸 2500년을 기념하며 제1차 세계불교대회가 개최되었고, 이 연대를 대부분의 불교국가들이 받아들여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2010년은 불기로 2554년이 된다.
9-1 우리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불기는 1956년 네팔에서 열린 제4차 세계불교도우의회에서 부처님의 탄생연도를 기원전 624년으로 결의한 것을 채택하고 있다. 금년은 불기 몇 년인가? ( )
10. 다음 중에 부처님전기와 관계가 적은 것은
1. 마하바스투 2. 불본행집경 3. 불소행찬 4. 사십이장경
1. 마하바스투 : 인도에 전하는 율장서적. 인도의 대중부 중 설출세부(說出世部)의 율장(律藏) 자료를 집대성한 것이다. 《자타카》나 《아바다나》를 증보한 것으로 여겨지며 《대사(大事)》라고도 한다. 아주 오래된 내용에서 4~5세기경의 내용까지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여러 편저자가 저술한 내용을 한데 모은 것으로 보인다. 부처가 연등불(燃燈佛) 시대에 보살로 대원(大願)을 세우고 현세에 태어나 성도하여 중생을 교화하기까지의 전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일대기에 그치지 않고 중간중간에 여러 경전과 설화, 인연담, 교리 등을 소개하는 등 내용이 다채롭다. 이러한 내용의 다양성은 인도 고전문학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특히 다른 경전과 논서 등의 내용과 비슷한 이야기가 많이 있어 주목된다. 단, 한역본과 티베트본이 없고 용어도 불교 산스크리트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형태에 속하는 까닭에 다른 경전에 적용되는 문법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원전에 대한 교정본은 프랑스의 동양학자 스나르(E.Senart)가 1882~1897년 사이에 출간하였고, 영국의 존스(J.Jones)는 1949~1956년 사이에 완역하여 런던에서 《Mahavastu》(3권)를 출간하였다. 이들의 연구 이후 부분적인 번역과 다른 전적과의 비교, 언어학적 연구, 사상사적 연구 등 여러 방면의 연구가 이루어졌다. (출처: 두산 세계 대백과 EnCyber) 2. 불본행집경[Abhiniskramana Sutra, 佛本行集經] : 석가모니의 생애를 기록한 장편문학의 불전집성(佛典集成). 석가의 생애를 문학적으로 묘사한 경전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불소행찬(佛所行讚)》 등도 있는데, 《불본행집경》은 주로 역사적인 사례를 충실히 기록한 사실적 경전이다. 석가의 탄생과 출가(出家) ·성도(成道) 등 일대기를 설화식으로 적고, 그 제자들의 귀의(歸依)에 관한 인연까지 기록하였다. 현재 전하는 한역본(漢譯本)은 수(隋)나라의 사나굴다(옵那색多)가 BC 590~BC 587년에 번역한 것으로서 총 60권에 이른다. 이 60권은 발심공양품(發心供養品)까지 60품(品)으로 이루어졌는데, 내용은 크게 전생기(前生期) ·금생기(今生期) ·전도기(傳道期)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3. 불소행찬[Buddhacarita, 佛所行讚] : 인도의 마명(馬鳴)이 불타의 일생을 찬술한 서사시. 이제까지는 북량(北凉)의 담무참(曇無讖)이 412~421년에 번역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연구 결과로는 진(晉)나라 보운(寶雲:376~449)의 번역이라는 설이 유력시되고 있다. 5언(五言)의 게송(偈頌)으로 전편(全篇)이 5권 28품(品)으로 구성되었다. 아름다운 시구와 철학적 내용을 담은 본경은 불교문학사상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제1탄생품(第一誕生品)에서 제8궁우비품(第八宮憂悲品)까지에는 태자 싯다르타의 고뇌와 세속적 행복에 대한 그의 무상감이 묘사되어 있으며, 제9추구태자품(第九推求太子品)에서 제15전법륜품(第十五轉法輪品)까지에는 대각(大覺)의 환희, 그리고 교화사업 등을 서술하고 있다. 제16병사왕제제자품(第十六甁沙王諸弟子品)에서는 왕사성으로 입성(入城)하는 석가의 모습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으며, 제17제자출가품(第十七弟子出家品)에는 덕이 높은 제자들인 사리불(舍利弗) ·목련(目蓮) ·대가섭(大迦葉) 등의 출가 인연을, 제18화급고독품(第十八化給孤獨品)에서 제24이차사별품(第二十四離車辭別品)에는 교화의 발자취와 많은 신도들에게 정법(正法)을 설명하는 석가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제25열반품(第二十五涅槃品)에서 제27환열반품(第二十七歡涅槃品)까지에는 생자필멸의 도리를 이야기하며 제자들의 흐느낌 속에 입적하는 광경을 그렸다. 마지막 제28분사리품(第二十八分舍利品)에는 사리를 나누어 10개의 탑을 건립하는 사실을 기재하였다. 교조(敎祖)의 생애를 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고대 인도의 습관적 전통이었다. 불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불타의 입멸 후 2세기경에는 많은 불전(佛典)들이 이러한 전생의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만들어졌는데 《본생담(本生譚)》 《현우경(賢愚經)》 등이 이에 속한다. 이외에도 티베트어역과 영역본 ·불역본 등이 있어 전세계에 널리 유포되었는데, 이 작품은 후세에 발달한 산스크리트 미문체(美文體)로 쓰여진 카비아문학의 가장 초기의 걸작으로서 인도문학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4.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 중국 후한(後漢) 때 인도 사람 가섭마등(迦葉摩騰) ·축법란(竺法蘭)이 번역하여 최초로 중국에 전한 불경. 1권. 고(苦) ·무상(無常) ·무아(無我) ·보시(布施), 애욕의 단절 등 불교의 요지를 42장으로 나누어 적절한 비유를 들어 간명하게 풀이한 것으로 석가의 교훈집이다. 《고려대장경》에 있는 《사십이장경》의 서(序)에 따르면, 후한의 효명제(孝明帝)가 금인(金人:황금색의 사람) 꿈을 꾸고, 월지국(月氏國)에 사신을 파송, 불경을 구해오도록 하였는데, 이때 가져온 것이 《사십이장경》이었다고 전한다.
11. 부처님이 도솔천에 보살로 머물고 계실 때의 이름은?
석가모니 부처님은 본래 도솔천에서 호명보살로 계시다가 적당한 때가 되자 이 세상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한량없는 오랜 세월 전, 연등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셨을 때 수많은 보살행을 닦은 뒤 '지금으로부터 무량한 겁(劫)이 지난 후 세상에 출현하여 부처님이 될 것이다'라는 수기를 받고 도솔천에 머물게 되었다. 부처님이 도솔천에서 보살로 머물고 계실 때의 이름은 무엇인가? ( )
12. 마야부인이 부처님의 태몽을 꿀 때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온 동물의 이름과 동물의 특징 1~2가지를 함께 쓰시오
마야부인이 침실에 누워 있는데 여섯 개의 흰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가 연꽃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코끼리는 마야부인의 침실을 세번 돌더니 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부인이 일어나 보니 꿈이었습니다. 그 꿈을 이상히 여긴 부왕이 해몽가들을 불러 물어 보았더니 그들은 한결같이 태몽이라고 말했습니다. 후대에 저술된 부처님의 전기서인 "팔상록"에서는 이를 '도솔내의상'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코끼리는 불교에서 위용과 덕상을 상징하고, 보현보살이 타는 동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다음은 부처님의 탄생당시 태몽인데, ( )에 들어갈 알맞은 말은?
정반왕과 결혼한 지 20년이 넘도록 자식이 없던 마야왕비는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그러 던 어느날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눈처럼 하얗고 빛나는 여섯 개의 이빨을 가진 ( )가 도솔천에서 내려와 마야왕비에게 엎드려 큰절을 올리고는 왕비의 오른쪽 옆구리 속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1) 개 (2) 사자 (3) 호랑이 (4) 흰코끼리
다음은, 싯달다 태자가 12세 때 부왕과 함게 농경제에 참석했을 때의 접한 상황이다. 당시 태자의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은?
농부는 낡은 옷을 입고 땀을 흘리면서 일하고, 소는 채찍을 맞으며 힘들게 밭갈이를 하고, 쟁기질에 흙밖으로 노출된 벌레는 새들에게 잡아 먹히고 만다. 이처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 먹고 사는 것이 과연 이 세상의 올바른 질서인가? |
(1) 강한 자가 살아 남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2) 약한 자가 잡아 먹히는 것 또한 당연한 이치다.
(3) 약육강식의 먹이 사슬구조에서 어떻게 하면 세상을 고통 속에서 구원할까?
(4) 괴롭고 혼란스러운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아 떠날 수 있을까?
13. 다음은 부처님의 사문유관과 관계 있는 내용을 짝지은 것이다 잘못된 것은?
1. 서문-죽은 시신 2. 동문-노인 2. 북문-갓난아이 4. 남문-병자
사문유관(四門遊觀) : 석존이 출가하기 전 태자로 있을 때 왕성 사대문 밖을 나가 생노병사의 고를 보고 인생의 무상을 느낀 바가 커서 출가를 결심한 것. 곧 동문을 나가서 노인의 모습을 보고, 남문을 나가서 병자가 신음하는 것을 보고, 서문을 나가서 죽은 사람을 보고, 끝으로 북문 밖에서 沙門(출가자)를 만나 자신이 나갈 길을 깨달았다고 전한다.(修行本起經 卷下)
성년이 된 싯달다 태자가 부왕 몰래, 백성들의 사는 모습을 살피기 위해 성문밖으로 시찰을 나섰다가 서문(西門)에서 만난 사람은?
(1) 늙은 사람 (2) 병든 사람 (3) 죽은 사람 (4) 출가 수행자
14. 부처님의 사문 유관중 북쪽에서 만난 사람은?
15. 부처님의 특징적 모습을 일컫는 말로 바르게 묶어진 것은?
1. 32 상-60종 2. 30상-80종호 2. 32상-80종호 4. 30상-60종호
불타의 형상은 인간의 신체를 이상화한 것으로 그 각 부분의 모습을 통틀어 32상(相) 80종호(種好)라 하는데, 이는 위대한 왕인 전륜성왕(轉輪聖王) 같은 대장부가 가지는 특수한 모습(相:laksana)을 말하는 것이라 한다. 즉, 머리 위에는 살이 융기된 육계가 있고(頂몲相) 눈썹 사이에 길이가 1장 5척이나 되는 흰털이 하나 붙어 있으며(白毫相),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막이 있어 기러기가 발가락을 펴면 그 막이 나타나고 안펴면 보이지 않는 것과 같으며(手足指칸綱相), 몸의 키와 팔의 길이가 같은 모습(身度長等相), 전신이 미묘한 금빛으로 빛난다(金色相)는 등의 내용이다. 더욱 구체적인 모습이 80종호로 설명된다.
16. 다음은 부처님의 상호에 관한 몇가지 설명이다 틀린 것은
1. 두발바닥이 모두 평평하다. 2. 치아는 가지런하고 36개이다.
3. 두발바닥에 수레바퀴의 무늬가 있다. 4. 바로 서서 무릎을 만질 수 있을 정도로 팔이 길다.
32상(相) : 원래 왕중의 왕인 위대한 전륜성왕과 같은 대장부(mahapurusa)의 모습이었는데, 이는 부처도 세속의 전륜성왕처럼 법계의 왕과 같은 존재이므로 그러한 독특한 모습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마다 조금씩 달리 표현되고 있지만 현격한 차이는 없으며, 대지도론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발바닥이 평평한 모습(足下平安立相) 발바닥에 2개의 바퀴가 있는 모습(足下二輪相)손가락이 긴 모습(長指相) 발꿈치가 넓고 평평한 모습(足廣平相) 손발가락에 갈퀴가 있는 모습(手足指網相)손발이 유연한 모습(手足柔軟) 발등이 복스러운 모습(足跌高滿) 어깨가 사슴어깨와 같은 모습(伊泥膊相) 손이 무릎까지 내려간 모습(正立手摩膝相) 말의 성기처럼 성기가 감추어진 모습(陰藏相) 몸의 넓이와 길이가 같은 모습(身廣長等相) 터럭이 위로 향한 모습(毛生上向) 모든 구멍에 터럭이 있는 모습(一一孔一毛生) 몸이 금색으로 된 모습(金色相)신체주위에 광채가 빛나는 모습(丈光相) 더러운 흙이 몸에 묻지 않은 모습(細薄皮相) 두 손, 두발, 두 어깨, 정수리가 둥글고 단정한 모습(七處降滿相) 겨드랑이가 보기 좋은 모습(兩腋下降滿相)상체가 사자같은 모습(上身如師子相)똑바로 선 모습(大直身相)어깨가 둥근 모습(肩圓好相)40개의 이가 있는 모습(四十齒相)이가 가지런한 모습(齒齊相)어금니가 흰 모습(牙白相)사자 같은 얼굴모습(師子顔相)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모습(味中得上味相)혀가 긴 모습(大舌相)가장 아름다운 목소리(梵聲相)연꽃같은 눈(眞靑眼相)소 같은 눈시울을 가진 모습(牛眼腱相)주먹같은 육계가 있는 모습(頂髮相)이마 중간에 흰털이 있는 모습(白毛相)
80종호(相) : 32상보다 더 구체적으로 모습을 세분한 것으로 수상(隨相), 소상(小相)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부처님의 모습뿐 아니라 성격, 음성, 행동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정수리가 보이지 않음(無見頂) 코가 높고 곧으며 김(鼻直高好孔不現) 눈썹이 초생달 같고 짙푸른 유리색임(眉如初生月紺琉璃色) 귓바퀴가 쳐짐(耳輪成) 몸이 견실함(身堅實如那羅延) 뼈끝이 갈고리 같음(骨際如銅銷) 몸을 한 번 돌리면 코끼리왕과 같음(身一時回如象王) 발걸음이 4촌임(行時足去地四寸而印文現) 손톱은 적동색이며 얇고 윤택함(瓜如赤銅色薄而潤澤) 무릎 뼈는 단단하고 원만함(膝骨堅箸圓好) 몸이 깨끗함(身淨潔) 몸이 유연함 (身柔軟) 몸이 곧음(身不曲) 손가락이 길고 섬세함(指長纖圓) 손금이 장엄함(指文莊嚴) 맥이 깊음(脈深) 복사뼈가 보이지 않음(不現) 몸이 윤택함(身潤澤) 스스로 몸을 지탱함(身自持不委陀) 몸이 갖추어져 있음(身滿足) 정신도 갖추어져 있음 (識滿足) 위의(威儀)도 구족함(容儀備足) 있는 곳이 평안함(住處生意和悅輿語) 위엄스러움(威震一切) 즐겁게 봄(一切樂觀) 얼굴 크기가 적당함(面不大長) 용모가 단정함(正容貌不효色) 얼굴이 구족함(面具足滿) 입술이 붉음(盾赤如보婆果色) 목소리가 깊음(音響深) 배꼽이 둥글고 깊음(臍深圓好) 터럭이 오른쪽으로 선회함(毛右회) 손발이 있음(手足滿) 손발을 마음대로 함(手足如意) 손금이 분명하고 곧음(手文明直) 손금이 김(手文長) 손금이 연속됨(手文不斷) 보면 즐거워짐(一切惡心衆生見者知悅) 넓고 둥근 얼굴(面廣姝) 달과 같은 얼굴(面淨滿如月) 중생의 뜻에 따라 기뻐함(隨衆生意和悅與語) 터럭구멍에서 향기가 남(毛孔出香氣) 입에서 향기가 남(口出無上香) 사자 같은 모습(儀容如師子) 나아가고 물러남이 코끼리같음(進止如象王) 행동이 거위 같음(行法如계王) 머리는 마타라 열매와 같음(頭如摩陀羅果) 음성이 구족함(一切聲分具足) 예리한 어금니(牙利) 붉은 혀(舌色赤) 얇은 혀(舌薄) 붉은 터럭(毛紅色) 깨끗한 터럭(毛潔淨) 넓고 긴 눈(廣長眼) 구멍이 구족함(孔門相具足) 손발이 붉고 휨(手足赤白如蓮華色) 배꼽이 나오지 않음(臍不出) 배가 나오지 않음(腹不現) 가는 배(細腹) 기울지 않은 신체(身不傾動) 신체가 묵중함(身持重) 신체가 큼직함(身分大) 신체가 장대함(身長) 손발이 정결함(手足淨潔軟澤) 신체 주위에 빛이 비침(邊光各一丈) 빛이 몸에 비침(光照身而行) 중생을 평등하게 봄(等視衆生) 중생을 가볍게 보지 않음(不輕衆生) 중생에 따라 소리를 냄(隨衆生音聲不過不感) 설법에 차이가 없음(說法不差) 중생에 맞는 설법을 함(隨衆生語言而爲說法) 중생의 언어로 대답함(一發音報衆聲) 차례로 인연에 따라 설법함(次第有因緣說法) 다 볼 수 없음(一切衆生不能盡觀) 보는 이가 싫증을 안 느낌(觀者無헌足) 긴 머리칼(髮長好) 머리카락이 고름(髮不亂) 머리카락을 잘 틀어 올림(髮시好) 푸른 구슬 같은 머리칼(髮色好如靑주相) 덕스러운 손발 모습(手足有德相)
17. 다음은 부처님 당시의 시대 상황에 대한설명이다 가장 옳은 것은?
1. 인더스 지역이 인도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2. 정치적으로는 부족장 중심제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3. 잉여농산물에 바탕하여 상공업과 화폐경제가 발달하였다
4. 부족간의 영토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였다
BC 1,500경 서북 인도의 펀잡 지방에 침입한 아리안족은 서서히 동남으로 이주하여 갠지스 강 상류에 정착했고, BC 9세기 무렵까지 베다문화를 형성했다. 이후 다시 동쪽의 중류 지방으로 이주하여 원주민과의 혼혈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그 사회의 구성과 문화에는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브라만교의 전총적인 습속이나 의례를 지키는 기풍이 약화되고 새로운 사고가 양성되어 BC 6세기 무렵에는 새 계급이 출현했다. 비옥한 갠지스 강 유역에서 산출되는 농산물 등의 물자가 풍부해짐에 따라 점차 상공업이 성행하게 되어 다수의 소도시가 성립하고 있었다. 도시의 출현은 종래의 부족적 계급제도를 무너뜨렸고, 이와 동시에 소도시를 중심으로 점차 군소국가가 구성되어 귀족정치나 공화제적 정치가 실행되었으며, 이런 국가들은 이윽고 국왕이 통치하는 대국으로 병합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도시의 발전은 화폐의 유통을 성행하게 했으며, 상공업자들은 각기 조합을 구성하여 도시의 경제적 실권을 장악해 가고 있었다. 이처럼 경제적 지위의 향상과 더불어 종래의 고정적 사상이나 종교에 만족할 수 없었던 토착부족이나 혼혈화 된 새로운 부족의 지위도 향상되었고, 이에 따라 자유로운 사상을 품은 사람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특히 갠지스 강 중류의 마가다와 코살라라는 두 대국을 중심으로 많은 사상가들이 배출되었다. 이들 혁신적인 자유사상가들은 사문(沙門; 노력하는 사람)이라 불렸다. 이들은 보통 육사외도(六師外道)로 분류되는 데, 그 중에도 자이나교의 개조인 니간타 나타푸타, 유물론자인 아짙나, 회의론자 또는 불가지론자인 사자야, 도덕 부정론자인 푸라나, 결정론자인 마칼리 등이 히 잘 알려져 있었다.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도 그런 사문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18. 마가다국의 왕으로 부처님께 귀의한 최초의 왕이며, 수도 라가가하 근교 가란타 촌에 있는 죽림원을 불교단체에 기증하여 최초의 절 죽림정사를 짓게 한 왕은 누구인가?
1. 빔비사라 2. 수닷타 3. 야사 4. 아쟈타삿투
1. 불교의 교단은 부처님의 성도와 초전법륜이 시작되면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부처님께서 중생구제를 위한 법문을 설하자 많은 수행자와 재가자들이 제자로서 귀의하였다. 이 때부터 불교 교단은 수행과 설법의 근거지가 필요하게 되었다. 교단의 최초 근거지는 왕사성의 빔비사라(Seniya-Bimbis ra)왕이 귀의하면서 보시한 죽원(竹園)이다. 이 죽원은 승가의 거주처로서 교단의 근거지가 되었다. 다음으로 교단의 삼보정재로 기진된 것이 기원정사(jetavana)이다.
2. 이 기원정사는 부처님의 재가신자 중 으뜸으로 칭송되는 수닷타(Sudatta)가 사위성의 제타숲을 승가의 거주처로 사들여 정사를 세우고 승가에 보시한 것이다.
수닷타는 사위성의 주인이면서 대상인으로 고아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등의 선행을 행하던 중 부처님을 찾아가 귀의한 사람이다.
3. 쿠쉬나가라[Ku?inagara, 拘尸那伽羅]성에 사는 돈 많은 장자(長者)의 아들인 야샤스[Ya?as, 耶舍]는 총명하고 유복하기로 성안에서 으뜸이었는데, 날마다 기녀(妓女)들에 둘러싸여 오락에만 탐닉하고 있었다. 런데 어느 날 밤 기녀들이 잠자는 추한 꼴을 보고 나서 그것에 혐오를 느껴 밤중에 집을 뛰쳐나와 아, 괴롭다라고 높은 소리로 외치면서 므리가다와 쪽으로 달려갔다. 때마침 붓다께서 그 소리를 듣고 그에게 다가가 법을 설하자 야샤스는 그 자리에서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다. 얼마 후 그의 부친도 아들 야샤스의 뒤를 따라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고 제자가 됨으로써 교단사상 최초의 우바새(優波塞 : 재가의 남자신도)가 되었다.
4. 데바닷타는 부처님의 가까운 친척으로 아난 존자의 형이었다. 그는 우파리, 아난과 같은 다른 형제들과 함께 출가하여 부처님의 교단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데바닷타는 올바른 수행을 하지 않았으며, 날이 갈수록 나태함에 빠져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부처님과 다름없는 존경을 받고 싶어하였다. 그 당시 마가다 나라의 왕은 독실한 불교 신자인 빔비사라였으며, 태자는 아자타삿투였다. 하지만 아자타삿투는 데바닷타의 꾐에 빠져 부왕 빔비사라를 옥에 가두고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올랐다. 이렇게 해서 아자타삿투왕의 두터운 신임과 후원을 얻게 된 데바닷타는 부처님의 교단을 빼앗을 궁리를 하였다. 자신은 범왕이 되고 아자타삿투 왕은 국왕이 되어, 둘의 힘으로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는 야심을 품었던 것이다. 데바닷타가 이와 같은 나쁜 야망을 키워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설법을 시작하시는데, 데바닷타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찾아와 부처님께 무례한 제의를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이제 너무 연로하신 데에다 건강도 좋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교단은 이제 저에게 맡기시고 편히 쉬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데바닷타의 사람됨을 잘 아시는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데바닷타야 잘 들어라. 나는 아직 누구에게도 교단을 맡기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설령 다른 이에게 맡긴다고 하더라도 여기 사리불이나 목련같이 총명하고 뛰어난 제자가 있지 않느냐. 너는 어찌하여 스스로 교단을 맡겠다고 나서느냐?" 부처님께서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분명하게 데바닷타의 요구를 거절하셨다. 그러자 데바닷타는, 반성의 기색도 없이 오로지 망신당한 것만을 분하게 여겨, 아자탓삿투 왕의 힘을 빌어 부처님을 죽이려는 무서운 음모를 꾸몄다. 그리고는 칼을 잘 쓰는 자객을 부처님께 보냈다. 그러나 부처님을 살해할 목적으로 그 옆에까지 간 자객은 몸이 떨리기만 할 뿐 꼼짝할 수조차 없었다. 이 모습을 보신 부처님께서 "어찌하여 그렇게 떨고만 있느냐?"고 말씀하시자, 자객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부처님 앞에 엎드려 용서를 빌었다. 죄를 뉘우친 자객은 그 뒤에 오히려 부처님의 충실한 제자가 되었다. 그후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내려오시는 길에서 생긴 일이다. 데바닷타의 무리들은 부처님을 해하려고 벼랑 위에 숨어 있다가, 부처님께서 그 아래를 지나가시는 순간 커다란 바위들을 굴려 떨어뜨렸다. 하지만 바위들은, 정확하게 겨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몇번 구르다가 좁은 골짜기에서 멈추고 말았다. 제자들은 걱정이 되어 부처님 둘레를 감쌌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여래는 폭력에 하여 목숨을 잃는 법이 없다."고 말씀하신 후 태연히 길을 가셨다. 두 차례의 살해 음모가 모두 실패하자 데바닷타는 부처님께서 지나시는 길에 성질이 몹시 사나운 코끼리를 풀어 놓았다. 그러나 미친듯이 날뛰던 코끼리까지도 부처님 앞에 이르자, 코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꿇어앉았다. 멀리서 데바닷타와 함께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자타삿투 왕은 마음에 큰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 부처님을 헤치려는 데바닷타의 꾐에 빠져 부왕을 옥에 가둔 것이 큰 잘못이었음을 마침내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아자타삿투 왕은 데바닷타가 왕궁에 출입하는 것을 금하고, 부처님을 찾아뵙고 설법을 듣기 시작하였다. 하루는 데바닷타가 왕궁으로 아자탓삿투 왕을 만나러 갔다가 문전에서 거절당하며 쫓겨났다. 하는 수 없이 돌아서는 길에 연화색 비구니를 만났는데, 그 비구니가 "부처님을 해치려고 하는 일은 무서운 과보를 받게 되는 끔찍한 일이다."라고 그를 꾸짖는 것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데바닷타는 그만 연화색 비구니를 주먹으로 때려 죽이고 말았다. 치미는 분노와 시기심을 이기지 못한 그는 열 손가락에 독을 바르고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갔다. 데바닷타가 부처님께 가까이 다가가 손가락으로 할퀴려는 순간 갑자기 밟고 있던 땅이 갈라져 그는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19. 부처님 당시의 사회적 배경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는 것은?
1. 도덕적 타락이 확대되고 있었다.
2. 바라문을 정점으로 하는 계급질서가 더욱 강화되고 있었다.
3. 경제적부를 축적한 자산가들이 새로운 세력층으로 부상하였다.
4. 바라문 계급중에서도 잡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불교의 개조인 샤카무니 붓다(Sakyamuni Buddha)가 출현하였던 기원전 6세기 무렵의 갠지스 강 중류지방은 사회적으로 크게 변화하고 있었다. 당시 인도는 강대한 신흥왕국의 출현과 도시의 형성 등으로 급격한 정치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고 이에 따라 종교 사상계 또한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인도의 고대문명은 기원전 3000년 경부터 시작하여 대략 1000년 동안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인더스 문명으로 불리는데 오늘날 인더스강 유역의 하라빠와 모헨조다로 등 도시 유적들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고대문명은 문다족, 드라비다족 등을 비롯하여 일찍부터 인도대륙에 살아온 여러 종족들에 의해 이룩되어 왔다. 그러나 이후 인도의 문명은 코카서스 지방으로부터 인더스강 상류의 펀잡지방에 침입해 온 아리야인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아리야인들은 기원전 16에서 13세기 무렵 인더스 강 상류의 펀잡지방에 침입하여 기원전 11에서 9세기 무렵에는 이미 갠지즈강 상류지방으로 이주하였는데 시대가 흐름에 따라 계속 동방으로 진출하여 기원전 5세기 무렵에는 갠지스강 중류지방에 정착하였다. 이와 함께 이 지방에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현저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먼저 당시 존재하고 있던 군소부족이 점차 통합되어 강대한 국가체계가 형성되었다. 초기불교 경전에 의하면 16대국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서도 특히 강성했던 나라는 마가다, 코살라, 밤사, 아완띠 등이었으며 전제적인 국왕이 통치하는 군주정체의 이들 4대국에 의해 군소 국가들은 점차 합병되어 갔다. 그리하여 붓다시대에 이들 나라는 이미 갠지스강 중류지방에 각각 강대한 신흥왕국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신흥 왕국의 중심지는 도시였는데 이 갠지스강 중류 지방의 여러 도시가 경제적으로 크게 번성하였다. 처음 이 지방으로 이주해온 아리야인 사회는 변함없이 종전과 같은 씨족제 농촌사회의 촌락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였지만 농업생산의 증대, 상공업의 발달, 화폐 경제의 촉진, 인구의 집중화 등에 따라 곳곳에 도시를 형성하고 경제적 번영을 이루어 갔다. 이 같은 국가적 정세에 부응하여 사회의 구성도 점차 변모하기에 이르렀다. 인도 사회구성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들 수 있는 계급제도는 아리야인들이 갠지스강 상류지방에 이주하였던 시대에 확립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사성(四姓) 계급제도라고 한다. 사성이란 바라문(Brahmana), 왕족들(ksatriya), 서민(vaisya), 노예(sudra) 등의 네 가지 계급을 가리킨다. 이 가운데 바라문은 제사와 종교의 권리를 독점하는 최상위의 계급이었으며, 정치력과 군사력을 장악하는 왕족이 그 다음에, 농업 목축업 상공업에 종사하는 서민이 그 뒤에 위치하였다. 그리고 비천한 노역에 종사는 노예가 최하위 계급에 속하였다. 이것을 근대에 와서 카스트라고 하였는데 원래 카스트란 개개의 계급집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쨌든 이 사성계급은 인도 아리야인의 사회구성을 특징짓는 계급제도로서 이를 기반으로 하여 바라문교가 성립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계급제도가 점차 변모하기에 이르렀다.이 같은 변모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것은 정치적 패자(覇者)로서의 국왕과 경제적 실력자로서 새롭게 등장한 자산가(資産家)이다. 국왕은 종전의 농촌사회에 있어서는 단순히 부족의 수장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동방의 신흥 왕국에서는 이들이 지방적 분권이기는 하지만 이미 국가의 지배자로서 그 지위를 갖기에 이르렀다. 또 자산가란 도시를 배경으로 한 상업 자본가나 지방의 거대한 토지의 소유자를 가리킨다. 이 시대에 이르러 이들은 서민 계급과는 구별되는 토지의 소유자를 하나의 사회적 신분으로 간주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장자로 불리는 직업조합의 장들은 상업 자본가들의 대표로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지위에 있었다. 이처럼 국왕이나 자산가가 사회에 커다란 세력을 가지게 됨에 따라 예로부터 내려오던 계급제도는 점차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인종적으로도 아리야인이 동방으로 진출하게 됨에 따라 시작한 원주민과의 혼혈은 계급 붕괴에 한층 더 박차를 가하였다. 그리하여 브라흐마나 문헌에서 사성(四姓)을 열거할 경우에 반드시 바라문, 왕족, 서민, 노예의 순서로 하여 바라문을 최상위에 두고 있지만 초기불교의 성전에는 거의 대부분이 왕족, 바라문, 서민, 노예의 순서로 나타난다. 즉 바라문과 왕족의 위치가 바뀌어져 있는 것이다. 원래부터 바라문의 세력은 농촌사회를 중심으로 뿌리깊게 잔존해 있었지만 도시를 중심으로 한 사회에서 옛날의 권위는 더 이상 지켜지지 않았다.
20. 쟈이나교와 불교의 주장에는 유사한 점이 많다 다음 중 유사점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은?
1. 사성계급제도를 반대함 2. 중도 실천을 가르침
3. 베다 성전의 권위를 부정함 4. 바라문의 제의가 무의미하다고 봄
자이나교(jaina 敎) : 불교와 함께 인도의 유력한 보편적 종교. BC6 ~5 세기 경부터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는 무신론. 개조는 지나(jina : 勝者(승자))라고도 부르며, 지나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자이나(jaina)교라고 부른다.자이나교에서는 우선 우주 구성의 요소를 영혼(영혼 :jiva)과 비영혼(非靈魂 : ajiva)으로 나눈다. 비(非) 영혼은 다르마(dharma : 운동(運動)의 조건), 아다르마(정지(靜止)의 조건), 허공, 물질의 4이며, 영혼과 합하여 5개의 실체(實體)라고 한다. 물질은 원자(原子)로 되어 있고, 그 자체는 일체지(一切智)이며 행복하지만 물질이 업(業)의 힘에 의하여 그 주위에 부착(附着)하여 업신(業身)을 형성하고 영혼을 속박(束縛)한다. 이것이 고통스러운 윤회(輪廻)의 원인이다. 이 윤회를 벗어나자면 무살해(無殺害), 불망어(不妄語), 불투도(不偸盜), 불음(不淫), 무소득(無所得)이라는 <참회를 같이한 5대서(大誓)의 계율(戒律)에 맞는 엄격한 도덕적 행위를 하며, 또한 출가고행(出家苦行)에 의하여 선(善), 악업(惡業)의 누입(漏入)을 막고 (제어 : 制御;samvara), 이미 얻은 업을 헐어버리고 영혼의 본성을 발현(發顯)시켜 지멸(止滅)에 이르러, 해탈(解脫)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열반(涅槃)이다. ② 부처님은 실천적 측면에서 고락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를 주장하였다. 이 고락중도의 내용은 8정도로서 자이나의 고행주의, 바라문의 수정주의, 신흥사문들의 쾌락주의가 그 주된 비판대상이 었다.
21. 고대 인도 의 바라문들은 네가지 생활단계를 따라 살아가야 했다. 다음 중 네 시기의 순서가 바른 것은?
1. 범행기-가주기-임서기-유행기 2. 가주기-범행기-임서기-유행기
3. 범행기-임서기-가주기-유행기 4. 임서기-유행기-범행기-가주기
당시의 바라문 사회는 네 종류의 생활 단계(아시라마)가 있었다. 학습기(學習期), 가주기(家住期), 임서기(林棲期), 유행기(遊行期)가 그것이다. 노예를 제외한 세 계급(바라문, 왕족, 서민)의 출신자는 어린 시절에 바라문 계급인 스승의 집에서 수년간에 걸쳐 범행자(梵行者)로서 베다를 학습하며, 끝마치게 되면 가주기에 들어가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였다. 베다의 성전에는 처음 두 개의 생활 단계에 대해서는 의무를 나타내고 있으나, 출가나 유행(遊行)에 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상고의 우파니샤드에서는 세번째의 생활단계를 말하였으며 다시 네번째의 생활단계를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혁신적 종교가 나타난 시대에 작성된 일련의 바라문계의 문헌(法經, 法典, 신우파니샤드)에는 임서, 유행의 생활 단계를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임서, 유행의 두 단계는 학습, 가주의 앞 두 단계에 대립한다. 그들의 이상이라고 하는 정신적 단계가 세속적인 잡다한 환경을 버림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고 하는 데에 그 특색이 있다.
싯달다 태자의 가장 직접적인 출가동기를 간략히 쓰시오.(100字 이내)
( )
22. 부처님의 깨달음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불법승의 삼보가 성립하여 역사적인 종교 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 것은?
1. 부처님의 출가 2. 6년간의 고행 3. 녹야원의 전법 4. 부처님의 열반
초전법륜(최초의 설법) : 성도한 직후 삼, 칠일간(21일간)은 법열(法悅)에 잠겨 있었다. 붓다는 법열의 자리로부터 몸을 일으켰다.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세상 사람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자비의 빛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인도의 종교 사상계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여는 이와 같은 불교의 출발에 대해, 불전은 역시 설화적으로 그 광경을 표현해 놓고 있다. 브라흐만이 붓다 앞에 나와 경배를 올리고, 세상에 나아가 법을 설해 주실 것을 거듭 3번이나 간곡하게 청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범천권청(梵天勸請)의 이야기이다. 새로운 가르침을 펴기 위하여 붓다는 길을 나섰다. 그가 보드가야의 보리수 밑을 떠나 처음으로 향한 곳은 바라나시 근방의 녹야원(鹿野苑)이었다. 그 곳에서 앞서 싯다르타가 타락했다고 생각하고 그의 곁을 떠났던 다섯 수행자들이 도를 닦고 있었다. 붓다는 누구보다도 이들에게 법을 설하기 위해 보드가야로부터 600리나 되는 먼 길을 걸어 그 곳으로 간 것이다. 다섯 수행자는 어느 날 멀리서 싯다르타가 자기네들을 향해 오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그가 성도(成道)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그들은 수행을 포기하고 타락한 싯다르타를 아는 체 하지도 말고 맞아주지도 않기로 서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붓다가 점점 가까이 이르자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함께 일어나 자리를 권하였다고 한다. 진리를 깨달은 이의 그 빛나는 얼굴과 자신에 찬 걸음걸이 형언하기 어려운 위엄과 자비의 힘 앞에 그들은 압도당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붓다는 이들에게 양극단을 떠난 중도(中道)의 길과 사성제(四聖諦)등에 대한 가르침을 폈다. 자상하게 반복하여 법을 설하고, 함께 명상하는 가운데 여러 날이 지났다. 그러던 중 5명의 수행자 가운데 콘딘야가 가장 먼저 붓다의 가르침을 깨달았다. 이어 다른 4명의 수행자들도 차례로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붓다로부터 가르침을 듣고 깨달은 이들 다섯 수행자는 붓다의 최초 제자들이 되었다. 녹야원에서 베풀어진 최초의 가르침을 흔히 '초전법륜'이라 한다. '처음으로 법의 수레바퀴를 굴렸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법'이란 진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붓다의 이 첫 설법은 불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불교의 구체적인 출발이 이 초전법륜으로 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즉 초전법륜을 통해 불, 법, 승의 교단 구성 요소가 모두 갖추어진 것이다. 이 3가지 요소는 교단 구성의 핵심이기 때문에 '3가지 보배' 즉 삼보(三寶)라고 부른다. 5명의 수행자들이 붓다에 귀의하여 제자가 된 직후, 바라나시의 한 장자(長者)의 아들로서 인생을 비관하고 번민하던 야사(Yasa)가 설법을 듣고 붓다 밑으로 출가하였다. 뒤따라 그의 부모와 아내도 붓다에게 귀의함으로써 이들은 불교교단의 최초의 재가 신자가 되었다. 즉 출가 제자인 빅슈(비구)에 이어 남자 신도인 우빠사까(우바새), 여자 신도인 우빠시까(우바이)가 된 것이다. 또한 야사의 친구 4명과 다른 친구들 50명도 감화를 받고 따라 출가하여 붓다의 제자가 되었다.
불교의 세 가지 보물인 삼보가 성립하게 된 계기가 된 일은?
(1) 부처님이 출가하시면서
(2) 부처님의 10대 제자가 탄생하면서
(3) 빔비사라왕이 죽림정사를 기증하면서
(4) 교진여 등 다섯 수행자가 부처님께 귀의하면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다음 가르침의 내용과 관계가 먼 것은?
"수행자여, 이 세상 사람들은 두 가지 극단으로 치우치는 길이 있느니라. 그 하나는 육체의 요구대로 자신을 내맡기는 쾌락(快樂)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육체를 지나치게 괴롭히는 고행(苦行)의 길이다. 수행자는 마땅히 이 두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택해야 한다. 나는 바로 중도를 깨달았으며, 그 길에 의해 생노병사의 온갖 괴로움을 버리고 평화로운 해탈의 기쁨을 얻었느니라." |
(1) 최초의 설법으로 흔히 '초전법륜'이라 한다.
(2) 중도와 사성제, 팔정도 등 연기의 이치를 설한 것이다.
(3) 녹야원에서 교진여 등 다섯 수행자에게 설법한 내용이다.
(4) 지혜제일인 사리불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23. 다음의 가르침은 부처님께서 어느 때 설하신 것인가?
자기 자신에게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며 남에게 귀의하지말라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으며, 남을 등불로 삼지말라.
1. 성도 하신 직후에 2. 녹야원에서 처음 설법 하실때
3. 열반시에 4. 제자들에게 전도를 선언하실 때
아난다의 말을 들으시고 부처님은 마지막 가르침을 펴시었다.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삼고 진리를 의지하여라.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너희들은 내 가르침을 중심으로 서로 화합하고 공경하며 다투지 말아라. 물과 젖처럼 화합할 것이요, 물 위에 기름처럼 겉돌지 말아라. 함께 내 교법(敎法)을 지키고 함께 배우며 함께 수행하고 부지런히 힘써 도(道)의 기쁨을 함께 누려라. 나는 몸소 진리를 깨닫고 너희들을 위해 진리를 말하였다. 너희는 이 진리를 지켜 무슨 일에나 진리대로 행동하여라. 이 가르침대로 행동한다면 설사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그는 항상 내 곁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죽음이란 육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육신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다. 육신은 여기에서 죽더라도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진리와 깨달음의 길에 살아 있을 것이다.내가 간 후에는 내가 말한 가르침이 곧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덧없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이 말씀을 남기고 부처님은 평안히 열반에 드셨다.
24. 부처님의 성도 및 열반시 나이가 맞게 짝지어 진 것은?
1. 29세~70세 2. 29세~80세 3. 35세~70세 4. 35세~80세
부처님의 일생 연표
623년 1살 중인도 카필라 성 숫도다나왕(정반왕)의 장남으로 탄생617년 7살 18세까지 12년간 학당에서 비사바 말다라 및 찬제제바 선생으로부터 배움. "제왕의 학"에 대해 8세때부터 4년간 배움.612년 12살 농경지에 나아가 생태계의 참혹한 약육강식의 실상을 관찰함. 농민의 심한 노동과 자연과의 모진 싸움을 실감.605년 19살 "야쇼다라"와 결혼 (천비성 선각왕의 딸)604년 20살 사문유관하면서 생,노,병,사를 목격하고 "苦"의 해탈을 결심.595년 29살 "야쇼다라"가 "라훌라"임신. 2. 8일 그믐날 밤에 출가를 단행589년 35살 6년간 고행 끝에 12.8일 나이란자나강변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서 새벽별을 보면서 깨달음을 얻음.588년 36살 바라나시의 녹야원에서 5명의 비구에게 최초로 설법함. 야사와 친구등 56명과 가족을 제도하고, 마가다국으로 가서 왕사성 근처 숲속에서 30여명의 청년을 제도, 카샤파 3형제 제도(500. 300. 200명). 야 산정에서 묘법연화경을 설함. 왕사성에서 빔비사라왕의 귀의를 받고 죽림정사를 희사 받음.587년 37살 왕사성에서 하안거 지냄. 대가섭이 32세에 출가.586년 38살 영축산에서 하안거를 지내고 사위성으로 유행함. 제다 태자와 수닷타(급고독) 장자가 의논하여 기원장사를 지음585년 39살 영축산에서 하안거를 지내면서 "사리자"와 "목건련"을 제도584년 40세 바이샬리성의 가뭄퇴치(1주일 머물다, 죽립정사에서 5일 여정). 미녀 "암라파알리"창녀 출가.583년 41세 기원정사에서 지냄. 카필라 사신 "우다인"의 연락으로 고국방문 결정. "난다", "라훌라"(12세) 출가, 니그로다정사에 머뭄. 코올라이족과 석가족의 로히니강 물싸움을 중재-양쪽에서 250명씩 출가.582년 42세 말라족의 나라 아누피야 마을에 머뭄. 500명 출가. 석가족의 "아니룻다", "바드리카"왕, "브리구킹바라", "아난다", "데바닷타", "난디카" 등의 귀족들이 출가.581년 43세 왕사성에서 부왕인 "정반왕"의 부고(97세)를 받음. 니그로다정사에서 "마하프라자파티"가 출가의 뜻을 보임.580년 44세 바이샬리 대림정사 중객당에 머물다가, 코삼비 국에서 여름안거 지냄. 승단이 분쟁하므로 이를 피해 파알리레야카 동산으로 감. 3개월간 머물다가 사위성 기원정사로 감.579년 45세 코삼비 신자들이 분쟁 승려에게 일절 공양하지 않으므로 비구들의 뉘우침(사위성에로 세존 배알하러 감). 다시 마가다 국으로 유행함.577년 47세 마가다국에서 여름안거 생활. 사위성으로 가서 "라훌라"를 위해 설법함.575년 49세 사위국 기원정사에서 여름안거를 지냄. "라훌라" 구족계를 받음(20세)574년 50세 니그로마 동산에서 멸망 직전의 카필라 성주인 "마하나만"에게 설법함.572년 52세 왕사성에서 여름안거 지냄.571년 53세 왕사성에서 여름안거 지냄.570년 54세 사위성 석이산중에서 여름안거 지냄.569년 55세 "아난다"가 세존의 시자가 됨. (이때부터 25년간 시봉)568년 56세 사위성 석이산중에서 여름안거 지냄. 살인귀 "앙굴리라마"를 제도함.567년 57세 "빔비사라"왕과 후비 "바히테하"사이에 "아쟈타삿투"태자가 태어남.(빔비사라왕은 코살라국의 공주였던 "데비"왕비와의 사이에 "아바야바"태자가 이미 있었다. )562년 62세 이때부터 546년 (79세, 16년간)까지 사위성에서 지냄.551년 73세 "아쟈타삿투"태자가 부왕을 죽이고 왕위 찬탈함. 데비 왕비가 자결하매 코살라국과 전쟁548년 76세 사위국 "비두다바" 태자가 부왕 "프라세나짓"왕을 쫓고 왕위 계승함. "프러세나짓"왕은 "아쟈타삿투"왕에게 의지하려고 왕사성까지 갔으나 그만 병사하고 말았다.545년 79세 왕사성 영축산으로 유행함. "아쟈타삿투"왕의 밧지국을 치고자 사신을 보낸 것을 바르게 교도함. "사리불"이 죽고 "목건련"이 순교, "마아프라자파티" 사망.544년 80세 바이샬리 근교 벨루바에서 하안거 지냄. 3개월 뒤에 열반하시기로 예언하심. 핫티-암바-잠부-보오가-피아바-카꿋타 강에서 목욕, -쿠쉬나가라까지 유행하다가 춘다의 공양 음식인 전단향 나무 버섯 요리를 드시고 사라나무 숲에서 입멸하심.
25. 다음의 가르침에 대한 설명을 적절하지 않는 것은? 비구들이여 길을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두사람이 함께 가지 말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게 법을 설하라
1. 흔히 "전도선언"이라고 하는 가르침이다
2. 순교이생( 巡敎利生)의 명령이라고도 한다
3. 아라한과를 증득한 60명의 제자들에게 설하신 가르침이다.
4.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한 설법이다.
"비구들아, 자,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그리고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 비구들아,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진리, 가르침)을 설하라. 또 원만 무결하고 청정한 범행(梵行)을 설하라. 사람들 중에는 마음에 더러움이 적은 이도 있거니와, 법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약에 떨어지고 말리라. 들으면 법을 깨달을 것이 아닌가. 비구들아, 나도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베라의 세나니가마(將軍村)로 가리라."(상응부경전, 계제, 한역동본, 잡아함경) 여기에 든 일절은 이른바 붓다의 '전도 선언' 이라고 불리는 대문이다. 그것은 붓다가 아직 미가다야(鹿野苑)에 머물고 있었을 무렵의 일이었다. 붓다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가르침을 받은 끝에 출가하여 제자가 된 사람의 수효가 불어나서 60명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붓다는 그들을 전도하러 떠나 보냄으로써 이 새로운 진리를 널리 세상에 펴고자 결심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그들을 모아 놓고 타이른 말씀이 이것이었다.
다음은 부처님의 가르침 중 '전도 선언문'의 내용인데, 이 글에서 유추할 수 없는 것은?
"비구들이여, 자!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두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진리)을 설하라. 사람 중에는 마음의 더러움이 적은 이도 있거니와 법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악에 떨어지고 말리라. 들으면 법을 깨달을 것이 아닌가 비구들이여! 나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리벨라로 가리라." |
(1) 법을 전하는 목적을 제시하고 있다.
(2) 설법자의 태오와 방법을 언급하고 있다.
(3) 법을 설하는 시기와 장소를 규정하고 있다.
(4) 설법의 대상에 차별을 두지 말 것을 언급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전도 선언 이후 마가다국의 우루벨라에서의 교화활동과 거리가 먼 것은 ?
(1) 왕사성의 국왕인 빔비사라왕과 그 신하들을 교화하였다.
(2) 이무렵 사바티의 부호 수닷타가 기원정사를 지어 바쳤다.
(3) 이 무렵 부처님의 10대 제자인 사리불, 목건련, 가섭이 출가 하였다.
(4) 당시 이름 있는 가섭 삼형제와 그의 제자 1000여 명을 함께 교화하였다.
26. 부처님이 태어나신 동산의 이름은?
룸비니는 석존께서 탄생하신 성스러운 곳이다. 오늘날은 인도와 네팔의 경계인 소나울리에서 약 20km거리에 위치한 네팔의 작은 도시이다. 석존이 열반에 드신지 300년이 지난후 아쇼카 대왕은 룸비니를 방문하고 필라(루멘데이 필라 또는 루판데이 필라라고도 함)를 세웠다. 숫도다나(정반왕)의 대를 이을 첫 아이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카필라바스투를 떠나 친정(데바다하)으로 향하던 마야부인은 룸비니 동산의 큰 사라수나무아래서 갑자기 산기를 느끼고 싯달타 왕자를 낳게된다. 이곳 룸비니의 연못에서 목욕을 즐긴 후였다는데, 그 깊이를 알기 어려운 향기를 지닌 연(連)을 피워낸 샤가족(석가족)의 왕자 싯달타 고타마는 이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것이다. 후대의 예술가들에 의하여 그의 탄생은 목욕을 마치고 나선 마야 부인이 사라수 나뭇가지를 잡고 서 있을 때, 그녀의 옆구리를 통하여 세상에 나온 것으로 상징화되어 묘사되고 있다. B.C.624 또는 B.C.544년 부처님은 태어 나시자마자 동.서.남.북 사방을 차례로 둘러본 후 북쪽을 향해 일곱 걸음을 걸었으며, 걸음걸음마다 땅에는 연꽃이 피어 올랐다고 한다. 부처님은 걸음을 멈춰 한손으로 하늘을 가르키고 한손으로 땅을 가르킨 후 다음과 같이 외치셨다. "하늘 위 땅 아래 오직 나만이 존귀하도다. 일체의 모든 괴로움-내 중생들을 위해 기필코 그치게 하리라. 이는 나의 마지막 탄생으로, 더이상의 태어남이 없을 것이다." 그 말을 마치자마자 땅에는 잇달아 일곱개의 기적이 생겨났다. 천지는 진동하고 바람은 흐름을 멈추었으며, 새들은 은신처를 찾고 모든 나무들은 꽃피고 열매를 맺었다....... 룸비니는 석존의 탄생지로서 깨달음의 장소인 보드가야, 처음으로 법을 나누었던 장소인 사르나트와 더불어 불교의 4대 성지중의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룸비니는 이곳에 미치는 불교의 영향력이 줄어들 때마다 밀림으로 덮여버리곤 하여, 1896년의 유적지 발굴단으로 하여금 이곳을 룸비니로 확인시켜 줄 수 있었던 유일한 흔적은 아쇼카 왕이 세운 기둥뿐이였다.
27. 부처님이 처음으로 법을 설하신 곳은
성자가 머무는 곳이라는 뜻의 리쉬파타나(Rishipatana)라고도 불리었던 이곳은 부처님이 스스로 증득한 '위 없는 깨달음'의 내용을 처음으로 세상에 펼친 곳이다. 그러므로 사르나트(녹야원)는 법의 바퀴(Darma Chakra)를 처음으로 굴린 초전법륜지로서 불교 4대 성지중의 하나이다.
'위 없는 깨달음' 이후의 부처님이 보냈던 첫번째 하안거 장소이기도 한 사르나트는 부처님의 열반 후 마우리아, 굽타, 팔라시대 등을 거치며 계속 번창한 상태를 유지하였다. 따라서 순례승 현장이 이곳에 당도하였을 때 이곳은 1,500여 명의 승려가 머무는 곳이며, 불교와 관련된 학문과 예술이 융성한 곳이었다. 그러나 인도에서 불교가 몰락되면서 함께 잊혀지기 시작한 이곳은 1017년 바라나시를 점령한 회교세력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계기로 하여 결정적으로 퇴락하였다.
28. 불교의 4대 성지는 부처님의 생애 가운데 어떠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정해 진 것이며 불교의 4대 성지와 그 의미를 쓰시오
4대성지는 탄생지인 룸비니, 성도지(成道地)인 부다가야, 최초의 설법지인 바라나시, 그리고 입멸지(入滅地)인 구시나가라이다.
부처님 당시 세워진 불교 최초의 사원은?
( )
29. 다음은 가르침에 대한 설명이다 적절치 않는 것은
비구들아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 눈이 불타고 있고 모든 사물(色)이 불타고 있고 안식(眼識)이 불타고 있고 시각(視覺)이 불타고 있다. 괴로움이든 즐거움이든 비고비락(非苦非樂)이든 시각으로 인해 일어난 모든 감각이 불타고 있다 그것들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불로타고 있다 또한 그것은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그리고 슬픔과 고통과 비탄과 번민으로 불타고 있느니라.
1. 부처님이 카필라성에서 행한 유명한 설법이다
2. 흔히 기독교의 산상수훈 에 비견되는 감동적인 가르침이다
3. 약 1천명의 비구들을 향하여. 한 설법이다
4. 가섭 3형제를 귀의시킨 후에 한 설법이다
부처님은 그들을 각각의 지방으로 파견하여 교화할 것을 명하고 스스로 마가다국으로 향했다. 그런데 마가다 지방에는 일찍부터 우루벨라 캇사파(Uruvela Kassapa)의 형제들이 종교적으로 위세를 일찍부터 떨치고 있었다.그들 삼형제인 우루벨라, 가야(Gaya), 나디(Nadi)는 불을 섬기는 무리로서 각기 수백명씩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부처님께서는 그들이 있는 세에나 마을에 도착하여 우루베라 거처로 찾아가 그의 사당인 성화당에서 하루밤 쉬어갈 것을 청했다."대사문이시여, 저에게는 지장이 없습니다만 그 곳에는 신통력을 가진 용왕이 있고 무서운 독을 가진 독사가 있습니다. 그것이 당신을 해칠까 두렵습니다."라고 은근히 겁을 주었다. 안에 들어간 부처님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화가난 용왕과 대결을 한다. 용왕이 연기를 뿜으면 같이 뿜고, 화염을 토하면 같이 화염을 토하면서 부처님은 용왕의 화력을 없애 버렸다. 우루벨라의 제자들은 부처님이 참된 수행자의 기품은 지녔지만, 결국 용왕에게 당하고야 말 것이라고 염려하였다.그러나 다음날 아침에, 부처님은 그 용을 바릿대에 담아서 우루벨라에게 보였다. 이에 우루벨라는 탄복하여 그만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합장한 뒤 법을 듣기를 간절히 청했다."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눈은 불타고 있다. 색채와 형태는 불타고 있다. 눈의 식별작용은 불타고 있다. 눈의 접촉(색, 형태, 식별작용)은 불타고 있다. 눈의 접촉에 의해 꼭 생기는 감수는 좋거나 나쁘거나 흑은 그 어느 쪽도 아닐지라도 그것 역시 불타고 있다. 무엇에 의해서 불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로, 혐오의 불로, 미혹의 불로 모든 것은 타오르고 있다. 탄생과 노쇠, 죽음과 근심, 슬픔과 고통, 번뇌와 번민에 의해서 불타고 있는 것이다." 라고 부처님은 이들 삼형제와 그들의 제자에게 인간의 고뇌를 불에 비유한 '불의 설법'을 하여 모두 해탈시켰다.이렇게 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된 우루벨라, 가야, 나디 삼형제와 그들 제자 100명은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다. 이리하여 부처님은 그들을 거느리고 마가다국의 수도인 라자가하(王舍成)로 향했다.
30. 부처님이 성도시 얻은 삼명(三明)의 종류를 써라
삼명(三明)이란 아라한과를 성취한 성자에게 갖추어진 불가사의한 능력으로 세 가지에 대해 밝게 아는 것인데, 즉 천안명, 숙명명, 누진명을 말합니다. 또 육통은 여섯 가지 신통력을 말하는 것으로 삼명에 세 가지를 더 추가한 것을 말합니다. 삼명이 세계를 보는 세계관이나 또는 지혜의 눈이라는 측면이 강한 반면 육통(六通) 어떤 불가사의한 능력, 부처님이나 아라한에게 갖추어진 자유자재한 권능이라는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각 항목에 대해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 삼명(三明)
1. 천안명(天眼明) - 거리의 멀고 가깝고에 상관없이 일체 세간(世間)의 모든 고락(苦樂)의 모습(相)과 가지가지의 유형(有形)과 색(色)에 대해 밝게 아는 것을 말합니다. 천안명은 단순히 거리상으로 멀리 있는 것을 보는 생리적 능력이라기 보다 차라리 세계관에 가까운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일체 중생이 무명(無明)으로 인해 고통에 쌓여 있음을 여실하게 보는 것입니다.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三惡道)를 비롯해서 육도(六道)의 온갖 중생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아는 것이 천안명 입니다. 지옥에 떨어지고, 아귀에 빠지고 축생에 떨어지는 육도윤회는 모두 인과윤회의 법칙에 따라 이뤄지는 것입니다. 결국 천안명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인과의 올바른 법칙을 이해하고 있음을 말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아무튼 천안명은 고해(苦海)에서 허덕이는 중생의 전현실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모두 꿰뚫어 보는 지혜의 눈을 말합니다. 중생에게는 그런 눈이 없습니다. 세상은 행복하다거나 물질에 집착하거나 부질없는 것에 가치를 두고 언제나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래서 중생들은 그 전도된 눈으로 인해 육도의 수레바퀴 속에서 끊임없이 윤회하며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삶을 다룬 본생경에 보면 부처님께서는 성도하시던 날 새벽에 천안명을 얻어서 모든 중생이 고통 속에 쌓여 있음을 여실히 보시는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2. 숙명명(宿命明) - 지나간 과거생의 모든 일들을 자유자재롭게 아는 지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전생(前生)의 일을 아는 신통력입니다. 과거 여러 생에 걸친 우리의 전생을 숙세(宿世)라고 합니다. 즉 숙명통은 겹겹이 쌓인 우리 과거 전생의 일을 밝게 보아서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일들을 다 아는 지혜를 말합니다. 역시 본생경에 보면 부처님은 사람들의 전생을 보시고 너는 전생에 어떠어떠했던 누구인데 어떠어떠한 일 때문에 지금 그 과보를 받는다라는 형식의 설법을 하시는데 그처럼 전생 일을 환히 아는 것을 숙명명이라고 합니다. 결국 이 숙명명은 연기(緣起)의 법에 기초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라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법칙을 여실히 아는 것이라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숙세의 업연은 모두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니까요.
3. 누진명(漏盡明) - 누진명은 이 생에서 모든 종류의 고통을 밝게 알아서 인간의 모든 번뇌를 끊는 지혜를 말합니다. 앞에 나열했던 천안명을 통해서 육도 중생의 전현실적인 삶을 관조한 다음 숙명명을 통해서 숙세의 모든 인과관계를 꿰뚫어 보게 되면 오늘의 자기 존재를 모두 알게 됩니다. 즉 인간존재의 연기적 인과관계를 모두 알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 자신의 삶이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그 이유를 알게 되며, 존재를 둘러싼 고(苦)의 원인을 환하게 꿰뚫어 보게 됩니다. 그렇게 원인과 결과를 잘 알기 때문에 모든 번뇌를 다 끊을 수 있습니다. 본생경에 보면 부처님은 천안명을 얻어 중생들의 고통을 꿰뚫어 보신 다음 다시 숙명통을 통해 모든 생명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밝게 보시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누진명을 얻어서 모든 번뇌를 끊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 육통(六通)삼명(三明)에 세 가지를 더 보탠 것이 육통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삼명이 세계관으로써의 지혜를 말한다면 육통은 부처님에게 갖추어진 하나의 권능, 즉 자유자재한 능력이라는 측면이 강합니다. 그래서 육통에 대해서는 그런 측면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1. 천안통(天眼通)보통 인간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신통력을 말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일체 세간의 멀거나 가까운 곳에 있는 모든 고락의 모양과 가지가지의 유형과 색을 밝히 내다볼 수 있는 자유 자재한 신통력을 말합니다. 무리 멀리 있어도 능히 볼 수 있는 부처님의 능력이지요. 이는 곧 바로 중생을 향한 자비의 힘이라고 보아도 좋습니다. 무명으로 고통받는 중생이 어느 곳에 있든 부처님은 능히 그 모습을 보시고 해탈의 가르침을 주시는 능력으로 이해하면 되겠지요. 즉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시는데 필요한 권능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이 천안통에서 나온 말이나 개념이 우리 주변에 참 많습니다. 통신회사 중에 천리안(千里眼)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불교의 이 천안통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안통의 올바른 이해는 앞의 천안명의 설명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2. 천이통(天耳通)보통 인간의 귀로는 듣지 못할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신통력을 말합니다. 세간 일체의 좋고 나쁜 말, 멀고 가까운 말, 또 사람이나 사람 아닌 것들의 소리까지 모든 소리를 듣고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자재한 능력을 말합니다. 중생이 어디서 무슨 소리로 하든 불·보살님은 어디서든 들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동통신회사에서 이 개념을 쓴다면 천리안처럼 이미지에 걸맞는 상표가 되겠지요. 옛날에 외화중에 "소머즈"라는 프로가 있었는데 그 소머즈가 이 천이통 같은 능력이 있었죠.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천이통이란 단지 멀리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런 차원의 것이라기 보다는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의 아픔을, 발원하는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천이통은 단순히 멀리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이해한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우리 현대인들은 매일매일 수 많은 소리와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 많은 소리들을 다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심지어 가까이 있는 사람이 하는 소리는 충분히 들을 수 있지만 우리들은 마음의 장벽이 가려놓여 그 소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대화가 단절되고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는 천이통에서 단순히 멀리 있는 소리를 듣는다는 그 자체 보다 남의 말을 겸허한 자세로 듣고 받아 들일 수 있는 자세야 말로 참된 천이통을 얻는 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다.
3. 타심통(他心通)다른 사람의 마음을 자유자재하게 아는 신통력을 말합니다. 요즘 말로 한다면 독심술(讀心術)같은 신통력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타심통을 처음으로 보여주신 때는 룸비니 동산에서 5비구들을 만났을 때입니다. 5비구들은 부처님이 가까이 오셔도 일어서서 경배하지 말자고 서로 약속을 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이 막상 그들에게 다가서자 그들은 일어서서 인사를 하고 발 씻을 물을 가져오는 등 성자를 맞이하는 예를 다했습니다. 부처님은 "그대들은 나를 아는채도 하지 않기로 하지 않았느냐?"라고 말씀하시죠. 그들의 마음을 다 이미 알고 계셨음을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타심통은 또 유심히 봐야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선종에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이 법을 전하는 중요한 방법이 됩니다. 부처님이 꽃을 드니 가섭이 그 뜻을 알고 은근히 미소를 지었다는 염화미소(粘花微笑) 같은 것도 결국 타심통이라는 연결선상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타심통 역시 단순히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독심술 차원에서 이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의도로 그같은 행동을 하는지를 곰곰히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어떤 형태로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호의든 악의든 말입니다. 우리들은 그 상대방의 행위 속에서 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들은 상대방의 마음을 알면서도 애써 모른채 외면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리의 마음 자세가 이렇다면 타심통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먼저 남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심정을 헤아릴 줄 아는 아량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숙명통(宿命通)모든 생명이 지나온 과거와 미래를 꿰뚫어보는 신통력을 말합니다. 전생의 일을 볼 수 있는 신통력인데 앞에서 설명한 숙명명의 설명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이 숙명통은 신통력의 크고 작음에 따라 과거 1세의 일만 알기도 하고 , 2세 또는 3세 더 나아가 천만세를 아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4. 신족통(神足通)다른 말로 여의통(如意通)이라고 합니다. 이 신통력은 크고 작은 몸을 나타내서 자기 생각대로 자유자재하게 날아다니는 신통력을 말합니다. 중국 무협소설에 나오는 축지법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요즘 어린이 프로그램 지오 레인저에 나오는 공간이동과 같은 개념이겠지요.
5. 누진통(漏盡通)누진통은 모든 종류의 고통을 밝게 알아서 인간의 모든 번뇌를 끊을 수 있는 신통력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연기의 인과관계를 모두 알게 되는 신통력을 말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앞의 누진명을 참고하십시오.
싯달다 태자의 출가 이후 상황을 바르게 설명한 것은?
(1) 처음부터 다른수행자들처럼 고행의 길에 들어 갔다.
(2) 사랑하는 아내와 아쇼다라, 아들 아훌라를 데리고 출가했다.
(3) 끝까지 고행을 함으로써 욕망을 억제하고 정신생활의 향상을 꾀했다.
(4) 당시 유명한 수도자들을 찾아 수행을 배웠지만 결국은 그들 곁을 떠나 독자적인 수 행을 시작하였다.
수행자 고타마가 촐가 사문이나 인도 사람들이 했던 그러한 고행을 포기한 이유로 타당 한 것은?
(1) 고행을 통해 전혀 깨달은 바가 없었으므로
(2) 고행을 통해 얻은 신비하고도 초인간적인 힘이 두려워서
(3) 육체를 학대하는 것만이 진정한 깨달음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4) 당시의 사상이나 관습을 버리고 새로운 극단적인 수행법을 찾기 위해서
싯달다 태자의 가장 직접적인 출가동기를 간략히 쓰시오.(100字 이내)
( )
31. 부처님은 대략 얼마동안 고행을 하였는가?
1. 2년 2. 3년 3. 4년 4. 6년
32.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정각을 이루었는가?
1. 일주일 2. 한달 3. 일년 4. 하루
수행자 고타마 싯달다가 깨달음을 얻을 당시 "내 여기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차라리 이 몸이 부숴지는 한이 있더라도 마침내 이 자라를 떠나지 않으리라."라고 다짐했던 장소는?
(1) 사라나무(沙羅樹) 아래 연화좌(蓮花座)
(2) 염부나무(閻浮樹) 아래 연화좌(蓮花座)
(3) 보리수(菩提樹) 아래 금강보좌(金剛寶座)
(4) 무우수(無憂樹) 아래 금강보좌(金剛寶座)
33. 불교교단 구성의 필요 충분 요건이라 할 수 있는 사부대중이 성립하게 된 시점은?
1. 5비구의 출가 2. 빔비사라왕의 귀의 3. 마하파자파티의 출가 3. 위제희부인의 귀의
불교교단을 구성하는 사부대중이란 남자 수행승인 비구와 여자 수행승인 비구니, 남자 재가신도 인 우바새, 여자 재가신도인 우바이를 말한다. 이 사부대중이 성립하는 역사적 과정은 다음과 같 다. 먼저 녹야원에서 교진여 등이 부처님께 귀의함으로써 비구승이 형성되었으며, 다음으로 여섯 번째 비구가 된 야사의 출가에 의해 그의 아버지인 구리가 장자가 최초의 우바새가 되고 그의 어 머니가 최초의 우바이가 되었으며, 마지막으로 마하프라자파티 고타미와 500석종녀가 출가함으로 써 비구니가 형성되었다.
다음 중 연결이 바르지 못한 것은?
(1) 최초의 비구 - 교진여 등 다섯 비구
(2) 최초의 비구니 - 마하파자파티
(3) 최초의 우바새, 우바이 - 야사의 부모
(4) 최초의 재가 신도 - 유마거사
34. {장로게경}제1087에는 다음과 같은 게송이 나온다 여기서 나는 누구인가?
불국토가 있는 한 대모니(大牟尼)를 제외하고 두타(頭陀)의 덕이라는 점에서 나보다 우수하고 나와 대등한 자는 없다.
1. 마하가섭 2. 사리불 3. 목건 4. 라훌라
마하가섭은 부처님의 10대 제자의 한분으로서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닦는 고된 수행을 잘 하여 두타제일로 불린다.
다음은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가섭을 비롯한 많은 제자들은 비탄에 잠겨 잇었는데, 이 모습을 지켜보던 가섭은 '서둘러 부처님의 교법과 계율을 결집하지 않으면 멀지 않아 비법(非法)과 비율(非律)을 말하는 자가 횡행하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경전 결집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
부처님의 교법과 계율을 결집하는데 크게 공헌한 부처님의 십대제자를 순서대로 바르게 연결한 것은?
(1) 사리불 - 라훌라 (2) 우팔리 - 아나율
(3) 아난다 - 우팔리 (4) 아난다 - 라훌라
35. 부처님이 천상에 태어나기 위해서 고행을 한다는 박가바 선인을 떠난 이유로 맞지 않는것은?
1. 내일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일부러 격심한 고행을 한다해도 즐거움과 괴로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2. 천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미래의 일이며 확신할 수도 없기 때문에
3. 천상에 태어난다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인간세계에서 고통을 격게 될 것이기 때문에
4. 천상이 인간계보다 못하기 때문에
④ 부처님은 천상이 인간계 보다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천상에 가더라도 궁극적으로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간파했기 때문에 박가바의 곁을 떠났다.
36. 부처님이 알라라 칼라마 웃다카 라마푸타와 같은 수정(修定)주의 수행자에게서 공부하다가 떠난 이유를 쓰시오?
선정에 들어 있을 때는 기쁨을 느끼지만 선정에서 벗어나면 다시 번뇌와 고통을 겪기 때문에 계속해서 선정에 들어야 함.자유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택한 선정이 결국 목적이 되어 버림(목적과 수단이 뒤바뀜)
그때 고오타마는 점점 앞으로 나가 조용히 바이샬리 성으로 향하였다. 그 성에 이르기 전 중도에 한 선인이 도닦는 곳이 있으니 이름은 아라라요, 성은 칼라마이었다. 그때 고오타마는 곧 나아가 그 아라라 선인의 처소에 이르렀는데, 때에 그 선인은 얼마 안되어 멀리서 고오타마가 보이므로 곧 나아가서 받들어 영접하면서 찬탄하여 말하였다."잘 오셨습니다. 사문 고오타마시여."아라라 선인은 기뻐하며 이어 말하였다."옛날의 여러 왕들은 한창일 때에는 다섯 가지 욕심을 마음껏 받다가 감관이 늙어짐에 이르면 그런 후에야 곧 나라와 즐거움의 도구를 버리고 집을 떠나서 도를 배웠으므로 이는 기특할 거리가 못되었거니와, 태자께서는 이제 이 한창인 나이에 다섯 가지 욕심을 능히 버리고 멀리 여기까지 오셨으니 참으로 장하십니다. 부지런히 힘써 정진하시어 속히 저 언덕을 건너셔야 하시리다."이를 듣고 고오타마는 말하였다."저는 당신의 말씀을 들으니 매우 기쁩니다. 당신을 저를 위하여 늙고 병들어 죽어 가는 고통을 끊는 법을 말씀하시면 저는 이제 즐거이 듣겠습니다." "그 사람은 이런 일을 생각하고 나서 삼매에서 일어나 그 몸의 빛에 여러 가지 허물과 근심이 있는 것을 보고 색신(色身)을 버리고, 이 일체 색상(色相)이나 또는 색상 안에 나무 등 모든 물건에서 다 가없는 허공이라 분별하나니 이렇게 일체 색처를 밝게 분별하여 가없는 허공을 얻고나서는 곧 수승한 곳〔무소유처(無所有處)〕을 증득하나이다. 당신께서는 이미 큰 지혜의 장부이시니 이 법을 감행하실만 합니다. 이 법을 행하고 나면 능히 좋은 곳 해탈의 과보를 얻으실 것입니다." 그때 고오타마는 곧 아라라 선인 곁에 나아가 이렇게 말하였다."나는 존자를 따라 이 법을 듣고서 존자의 말대로 내 믿어 알고 행하여 이 법을 증득하였으니, 만약 지혜 있는 이가 알고 행하는 경계를 가진다 하더라도 또한 이런 법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다만 내가 본 바로는 이 법이 비록 묘하나 구경(究竟)을 다한 것은 아니다. 존자가 비록 나는 청정한 해탈을 얻었노라 고 말하지만 만약 분별하여 관하면 이것은 인연법이라, 인연을 만나면 도로 나므로 참 해탈이 아니로다."그때 아라라 선인은 이 말을 듣고 나서 고오타마에게 이뢰었다."어지신 고오타마시여, 애가 해득한 법을 당신께서도 또한 알았습니다. 내 오늘이 대중의 스승이 되듯 당신도 또한 이와 같이 스승이 될 만 합니다. 고오타마시여, 이제 나와 마음을 같이 하여 우리 두 사람은 함께 이 대중을 이끌어 교화하고 나타내 보이십시다."이때 아라라는 비록 스승이란 이름이었으나 다만 고오타마와 평등하게 하고자 스스로 반 자리로서 고오타마에게 나누어주고 고오타마를 공양하였다.그때 고오타마는 이렇게 생각했다.'이 법은 능히 사람을 열반에 이르지 하지 못하며, 스스로 깨치고 남을 깨치게 하여 사문행(沙門行)을 지을 수 없으며, 모든 악의 번뇌를 멸할 수 없도다. 이 법을 행하면 오직 비상천(非想天)에 나서 모든 업(業)을 짓는 까닭에 이 법으로써는 중생을 구제할 수 없도다.'이 생각을 하고서 아라라를 등지고 떠나갔다. 그때 이 염부제 땅에 떠 다른 큰 도사〔大道師〕가 한 분 있었으니 이름을 '나마(羅摩)'라 불렀으며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 무리들의 주인 나마의 큰아들웃타카가 대중을 영도하였다. 그 웃타카는 항상 대중을 위하여 법을 설했으며 라자그리하 가까운 아란야 숲 가운데 머물렀다. 그는 무소유처를 넘어서 갖가지의 생각을 떠나서 생각도 생각 아님도 아닌 곳 〔非想非非想 〕을 가르쳤다. 그때 고오타마는 그를 찾아가서 배우고 정진하여 그 경지에 이르렀으나 이 또한 모든 중생을 구제할 진정한 해탈을 가르치는 법이 아님을 알고 곧 그를 떠났다.
37. 우리나라에서는 부처님이 출가하신 날을 음력 몇월 몇일 로 정하고 있는가?
<불교의 명절 날>부처님 오신날 - 음력 4월 8일이며 사슴동산 룸비니에서 태어나셨고 모든 중생이 경축하는 날입니다.부처님 출가하신 날 - 음력 2월 8일이며 싯다르타 태자로서 궁중 생활을 하다가 해탈의 길을 찾고자 집을 떠나신 날 입니다. 진리를 향하고 바른 법을 얻기 위한 출발입니다.부처님 성도하신 날 - 음력 12월 8일이며 수도의 길에 들어서서 인간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깨달음의 도를 성취하신 부처님이 되신 날입니다.부처님 열반하신 날 - 음력 2월 15일이며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45년 동안 교화하시다가 열반하신 날 입니다.
38. 우리나라에서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날을 음력 몇월 몇일로 정하고 있는가?
39. 우리나라에서는 부처님이 성도하신날을 음력 몇월 몇일로 정하고 있는가?
40. 부처님이 성도할 것을 우려해 군대를 동원하여 부처님을 위협하고 미녀를 동원하여 부처님을 유혹했다는 하는 자는?
염부제수(閻浮提樹) 밑에서 그 나무를 보시면서 생각에 잠기시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고 큰 광명을 놓아 마의 궁전까지를 덮으므로 마왕 파순(波旬)이 겁이 나서 그의 네 딸을 태자께로 보내어 갖가지 교태로 홀리려 하였다. 그러나 태자께서 요동치 않으시니, 다시 80억의 졸개를 거느리고 와서 괴롭히고 무너뜨리려 하면서 만일 여기를 떠나지 않으면 너를 바다에 던져버리리라. 하였다. 태자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네가 먼저 나의 이 물병을 움직인다면 능히 나를 던질 수 있을 것이다.80억 무리들이 힘을 다했으나 물병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점차 갖가지 위협을 보이되, 돌을 들어 때리려 하나 돌을 들지 못하였고, 설사 들더라도 내리지 못했으며, 나는 칼과 춤추는 검도 허공에 멈추었으며, 우레와 번개와 우박과 비는 다섯 빛깔의 꽃이 되니, 마군들은 스스로 지쳐 더 어쩔 수 없었다.
41. 다음의 사항들은 다음의 어느 것과 관계가 있는가?
네란자라강 - 목욕 - 수자타소녀 - 유마족
① 고행을 그만둠 ② 수정(修定)을 그만둠 ③ 출가를 그만둠 ④ 전도를 시작함
부처님께서 깨달음의 진리를 최초로 전한 대상은?
(1) 가섭의 삼형제 (2) 카필라국의 백성들
(3) 정반왕과 왕실가족들 (4) 교진여 등 다섯 수행자
42 부처님의 십대제자로서 기원정사에서 수행하던 중 졸다가 부처님께 꾸지람을 듣고 그 뒤 잠을 자지 않고 수행을 한 결과 육체의 시력은 잃었으나 지혜의 눈이 밝아 천안제일(天眼第一)의 제자가 된 분은?
① 아난다 ② 목건련 ③ 아나뉼 ④ 수부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하신 후 사라쌍수 아래에서 입멸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제자를 교화하셨다. 그 중에서도 {아함경}, {유마경} 등에서는 뛰어난 열명의 제자가 자주 등장한다. 부처님의 많은 제자 가운데 이 열명의 제자를 석가모니 부처님의 십대제자라고 한다. 이들은 바로 사리불(지혜제일)·마하목건련(신통제일)·마하가섭(두타제일)·수보리(해공제일)·부 루나(설법제일)·마하가전연(논의제일)·아나율(천안제일)·우팔리(지계제일)·라후라(밀행제일)· 아난(다문제일)을 말한다. ① 아난은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때 까지 언제나 정성을 다해 부처님 가까이에서 시중을 들었다. ③ 아나율의 범어원명은 아니룻다(Aniruddha)이다. ④ 수부티(Subh ti)는 수보리의 범어원명이다.
43. 수드라 출신의 샤캬족 궁중 이발사로서, 부처님이 성도 후 카필라성에 돌아 왔을 때 샤캬족의 귀공자들이 부귀영화를 버리고 부처님께 출가하는 것이 부러워 한발 앞서 출가하여 지계제일(持戒第一)의, 제자가 된 분은?
① 부루나 ② 아난 ③ 목건련 ④ 우팔리
① 부루나존자는 부처님 제자 중 언변이 가장 뛰어나 설법제일이라고 불리며 무려 9만 9천의 사 람을 교화했다고 전해진다.
44. 부처님당시는 부족들이 강력한 국가에 의해 잇달아 멸망해 가는 시대였다. 부처님의 종족인 석가족도 강력한 국가에 의해 멸망하였는데 석가족을 멸망시킨 국가와 왕으로 올바르게 짝지워진 것은?
① 코살라국 - 비두 닷다 ② 마가다국 - 파사익 ③ 마가다국 - 아자타삿투 ④ 코살라국 - 빔비사라
① 코살라국의 파세나디왕은 석가족과의 친분이 두터워 하녀출신의 석가족 여성을 아내로 맞이 하였다. 이 때문에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비두닷바는 수모를 받아오다가 아버지가 죽고 왕위 에 오르자 그 한을 풀기 위해 석가족을 멸망시켰다고 한다. ② 파사익왕은 그의 아버지로서 파세나디라고도 한다. ③ 아자타삿투는 빔비사라왕의 아들로서 데바닷타의 부처님 살해음모에 가담하였으나 나중에 는 부처님께 귀의한 인물이다. ④ 빔비사라왕은 부처님께 귀의한 최초의 왕으로 죽림정사를 건립한 인물이다.
45. 마가다의 바라문출신으로 사리불의 친구이면서 전통적인 바라문교에 만족할 수 없어 라자가하에 있던 회의론자 산자야의 문하에 들어갔다가 뒤에 부처님의 교단에 들어가 처님의 제자가 되었던 사람은 누구인가?
① 가섭 ② 목건련 ③ 부루나 ④ 가전연
부처님의 십대제자 : 부처님의 성도 이후 입멸까지 그 제자는 수없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10분의 고명한 제자가 있었으니 이를 10대제자라 한다.① 사리불… 지혜(智慧)제일. 사리붓다, 사리자라고도 하며 바라문족 출신으로 육사외도의 한 사람인 산자야를 섬기어 7일만에 그의 교지를 통달해 목건련과 함께 그의 제자 250인을 통솔하고 있었으나 고(苦)를 끊지 못하고 있었고 그 스승이 죽자 불제자 아설시를 만나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이치를 깨닫고 목건련과 함께 그의 제자들을 데리고 불문에 들어왔다. 부처님의 입멸 사흘 전 목건련이 세상을 떠나자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자기 고향인 나알다촌으로 가서 바로 입멸하였다고 한다.② 마하목건련… 신통(神通)제일. 대목건련이라고도 한다. 사리불과 함께 죽원에서 부처님을 뵙고 제자가 되었으며 부처님보다 먼저 사흘 전에 입멸하였다. 신통을 얻은 후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처님께 방법을 물어 천도하였다. 사리불과 대목건련은 10대제자 중에서도 가장 상수의 제자였지만 부처님보다 먼저 입멸하였기에 부처님 입멸 후의 교단 일은 자연 다음의 가섭에게로 돌아가게 되었다.③ 마하가섭… 두타(頭陀)제일. 대가섭 또는 가섭이라도도 한다. 소욕지족(小欲知足)하여 항상 두타행을 하였다. 부인과 같이 출가하여 다자신처에서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8일 후 정지(正智)를 발하여 자기의 승가리를 벗어 부처님께 드리고 부처님께서 주신 분소의(糞掃衣)를 받아 입고 곧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고 한다.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전해받고 부처님 입멸 후 500아라한을 데리고 제1결집을 하고 그 상수가 되었다. 특히 선종에서는 삼처전심(三處傳心)의 고사로 유명하며 선종 정통의 제1조로 칭한다.④ 아나율… 천안(天眼)제일. 아니루타라고도 하며 부처님의 종제로 아난 난타와 더불어 출가하였다. 부처님 앞에 앉아 졸다 꾸중을 듣고 자지 않고 수도 정진하다가 눈이 멀었으나 천안통을 얻었다고 한다.⑤ 수보리… 해공(解空)제일. 지혜가 총명하여 따를 자가 없었다고 하며 처음에는 성품이 악하여 모든 것에 성을 내 부모친족이 싫어하는 바 되어 집을 더나 산속에 들어갔으며 때에 선인이 있어 그를 부처님께 귀의시켰다고 한다.⑥ 부루나… 설법(說法)제일. 생년월일이 부처님과 같다고 한다. 그는 수로나국의 사람들이 포악하다는 말을 듣고 부처님의 허락을 얻어 그곳에 가 500의 우바새에게 설법하고 500의 사원을 세우고 한 여름 안거하여 지혜를 구족하고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었다고 한다.⑦ 마하가전연… 논의(論議)제일. 국광의 명을 받아 부처님을 영접하러 갔다가 법을 듣고 출가하였다고 하는데 변방에 이르기까지 각 곳을 다니며 교화하였다고 한다.⑧ 우바리… 지계(持戒)제일. 석가 왕가의 이발사였다. 아난 난타 등 석가족 출신의 남자들이 출가했을 때 그들의 머리를 깎아 주었으나 천민이라 하여 끼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함에 부처님께서 그의 출가를 허락하였으며 부처님께선 출가이전엔 지위의 고하, 종성의 차별이 있으나 출가 후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설하셨다고 한다. 계율을 잘 지켜 율장전지(律藏傳持)의 제1조로 추앙되며 제1결집 때는 율(律)을 외워냈다고 한다.⑨ 라후라… 밀행(密行)제일. 부처님의 아들이다. 15세 때 부처님이 귀국하였을 때 어머니와 함께 출가하였으며 최초의 사미가 되었다.⑩ 아난다… 다문(多聞)제일. 아난이라고도 하며 부처님의 종제다. 아난의 전기 중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① 부처님을 모시고 그 누구보다도 설법을 가장 많이 들었다는 것과 ② 부처님의 이모 마하파자파데가 출가할 수 있도록 부처님께 간청하여 허락을 얻은 것과 ③ 제1결집 때 부처님께 들은 바를 외워내어 경을 결집토록 한 것이다. 아난은 스스로 입멸이 가까워 옴을 알고 마가다국을 지나 베살리성을 향하여 간지스강을 건너려 할 때 마가다국의 아사세왕은 그의 덕을 흠모하여 군대를 보내 그를 모셔오게 하고 베사리왕은 아난이 옴을 듣고 역시 군대를 보내 북쪽 언덕에서 그를 맞이하려 하기에, 그는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이 강의 중간에서 배로부터 허공에 올라 스스로 불을 내어 몸을 태우고 그 유해를 양분하여 남북 양쪽에 떨어뜨려 양쪽 군인들은 이에 크게 통곡하고 각각 본국으로 돌아가 탑을 세우고 공양하였다고 한다. 종의 제2조로 추앙된다.(고순호 저 「佛敎學槪觀」에서)
46. 라자가하 시내에서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가 조용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너무 감동하여 그가 말한 연기(緣起)의 법칙을 듣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으며 목건련과 함께 회의론자 산자야의 제자이기도 했던 분은 누구인가?
① 사리불 ② 가섭 ③ 우팔리 ④ 아난
47. 부처님의 제자로소 불교 교단의 대표자가 되려고 했지만 부처님의 허락치 않아 교단을 탈퇴하여 오법(五法)을 제창하며 라자가하에서 독립교단을 만들었던 사람은 누구인가?
① 아자타삿투 ② 구가리 ③ 우데다 ④ 데바닷다
② 구가리는 데바닷타의 대제자이다. ③ 우데나는 중인도 밧지국 코삼비성의 왕으로 부처님께 귀의하여 최초로 불상을 조성한 인물 로 알려져 있다. ④ 데바닷타(Devadatta)는 부처님의 사촌이자 부처님께 반기를 든 인물이다. 데바닷타를 한문으로 음사하여 제바달다(提婆達多)라고 한다.
48. 부처님의 출가제자는 천여명을 넘었고 이들 모두는 훌륭한 성자로 세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들 중 특히 수행과 지혜가 특출한 제자 10인을 간추려 십대제자 또는 석가십성이라 부른다. 이중 부처님의 열반 후 교단의 법을 이은 제자는 누구인가?
① 목건련 ② 가섭 ③ 사리불 ④ 아난
49. 부처님의 탁발에 관한 설명으로서 옳은 것은
① 처음 눈에 띄는 집부터 일곱집을 차례로 다니며 탁발 하셨다
② 부처님은 직접 탁발을 하지 않으셨다
③ 가난한 집에서는 폐를 끼칠까봐 탁발을 하지 않으셨다
④ 부자들을 미워하며 부자집을 찾아가지 않았다
② 부처님께서도 친히 탁발하셨다. ③④ 부처님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탁발하도록 하셨다.
50. 부처님의 경전을 번역할 때 처음으로 항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라고 설한 이유는?
여시아문 [如是我聞] : 여시는 이와 같이, 아문은 내가 들었다의 뜻으로 들은 교법을 그대로 믿고 따라 기록한다는 의미이다. 모든 불교경전에는 첫머리에여시아문일시불재(如是我聞一時佛在) …라는 글귀가 나오는데 경전의 내용은 불타가 어느어느 장소에서 설교한 것으로 내가 확실히 들었으니 의심하지 말 것을 권유하는 뜻에서 써놓았다. 이는 불타가 죽으면서 제자들에게 불경의 첫머리에 두도록 한 데 따른 것이다.
《불지론》에는여시아문은 자기가 들은 것을 모두 나타낸 것이며 불교를 전하는 자의 말이다. 여시한 일을 나는 옛날에 일찍이 여시하게 들었다라고 했으며, 《대지도론(大智度論)》에는 모든 불경에 어떤 근거로 첫머리에 여시란 말을 사용했는가라는 물음에, 불법의 대해(大海)는 믿어야 들어갈 수 있고 지혜가 있어야 능히 제도(濟度)한다. 여시란 곧 이 믿음이란 뜻이다라고 하였다.
51. 싯다르타는 열두살 되던 해 농경제에 참석했을 때 염부수 아래에서 사색에 잠긴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사색의 주요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1. 생로병사의 괴로움 2. 황폐한 농촌3. 농부들의 싸움 4. 약육강식의 비참한 현실
26.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수승한 능력을 지닌 십대제자의 이름을 쓰시오.
( )
27. 부처님의 십대제자로 원래는 육사외도의 회의론자였던 산자야를 섬겼으나, 마승비구를 만나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목건련과 함께 십대제자 중에서 제일 먼저 귀의한 인물이며 특히 지혜가 뛰어난 사람은 누구인가?
(1) 라훌라 (2) 아난다 (3) 사리불 (4) 가전연
28. 마가다국 왕사성에서 대부호집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나 가업을 이어 받았으나, 세속적 생활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출가하여 의식주에 대한 탐착을 없애고 엄격히 수행하여 두타제일의 십대제자가 되었으며, 부처님 입멸 후 경전 결집과정에서 상수가 된 사람은 누구인가?
(1) 가섭 (2) 수보리 (3) 우팔리 (4) 부루나
29. 선종에서는 부처님의 법이 가섭에게 전하여진 것을 삼처전심(三處傳心)이라고 한다. 삼처전심이란 무엇인지를 쓰시오.
( , , )
30. 사위국 바라문족 출신으로 기원정사를 기증햇던 급고독장자 수달(須達)의 동생인 수마나(須摩那)의 아들로 태어나 기원정사를 봉헌하는 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했으며, 우리나라 조계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인 금강경(金剛經)에서 부처님의 상대역으로 등장하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
(1) 아나율 (2) 아난다 (3) 사리불 (4) 수보리
31. 다음 중 부처님의 십대 제자인 아난다의 업적을 설명한 내용으로 잘못된 것은?
(1) 불멸후 경전편찬회의에서 경을 외운 일
(2) 라훌라를 출가시켜 부처님의 뒤를 잇게 한 일
(3) 여성의 출가를 세 번이나 간청하여 허락을 얻은 일
(4) 부처님의 시자로서 25년 동안 열반에 들 때까지 보필한 일
32. 다음의 경전 가르침에 나타난 그는 누구인가? ( )
<법화경 >'오백제자수기품'에서는 그의 걸림 없는 언설로 부처님 말씀을 잘 전해 중생들에게 이익을 베푼 결과 장차 법명(法明) 여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는다. 그는 불법을 전하기 위해 민심이 흉악하고 성미가 급한 사람들로 득실대는 수파란타카국으로 가겠다고 하자 부처님께서, "그들이 나무나 돌로 때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칼을 가지고 해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하다 생각할 것입니다." "칼로 상처를 입힌다면?" "그들은 지혜롭기에 그런 무기로 저를 해치기는 하되 죽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끝내 칼로 죽인다면?" "온갖 고뇌 때문에 칼이나 독물로써 자신의 생명을 끊으려 했던 자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좋은 사람입니다." "그 지방 사람들이 너에게 욕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모두 착한 사람들이어서 때리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하겠습니다." "죽인다면 어떻게 하겠는냐?" "세상에는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고 자신을 죽여줄 것을 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원하는 죽음을 나에게 베풀어 준다고 생각하겠습니다." 부처님은 그의 착한 마음을 칭찬하고 이를 허락하셨다. "훌륭한 일이로다. 너는 능히 인욕을 배웠으니 수파란타카국 사람들 사이에 머물 만하다. 너는 거기에 가서 제도 못 받은 자를 제도하며, 안심 못 얻은자를 안심케 하며, 열반 못 얻은 자를 열반에 들게 하라."고 하셨다. |
33.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 부처님께서 출가, 재가신도들을 모아 놓고 기원정사에서 설법하실 때, 부처님 앞에 앉아 졸다 꾸중을 듣고, 그 후 자지 않고 수도 정진하다가 육신의 눈은 멀었으나, 지혜의 눈을 얻어 천안통을 얻은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 한 분은 누구인가 ?
(1) 목건련 (2) 아난다 (3) 우팔리 (4) 아나율
34. 다음 중 설명이 바르게 된 것은?
(1) 부처님 제자 중에는 부처님보다 나이가 많은 연장자는 없다.
(2) 부처님에게 교화되어 귀의한 사람들 중에 이교도들은 아무도 없다.
(3) 부처님은 귀족, 평민, 노예를 차별하지 아니하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대하셨다.
(4) 불교가 당시의 최대 교단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의 신분이 왕족출신이었 기 때문이다.
35. 다음은 부처님께서 어느 때 설하신 것인가? ( )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 하라. ......내 가르침을 중심으로 서로 화합하고 공경하여 다투지 말라. ......모든 것은 덧없다. 게으로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
36.부처님 입멸 후, 상좌부와 대중부의 근본 2부의 분열이 시작된 시기는?
(1) 제 1결집 (2) 제 2결집 (3) 제 3결집 (4) 제 4결집
37. 부처님의 말씀이 최초로 문자화되고 경과 율 이외에 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내용인 논장이 결집된 시기는?
(1) 화씨성 결집 (2) 왕사성 결집 (3) 바이샬리 결집 (4) 카쉬미르 결집
39. 도솔천에서 보살로 머물면서 부처님이 되기 위해 정진하고 계신다는 분으로,
석가모니불 다음으로 미래에 오실 부처님은 누구인가?
(1) 가섭불 (2) 미륵불 (3) 바사부불 (4) 구나함모니불
40. 다음 글의 내용과 관련된 인도의 왕은 누구인가?
• 제3결집을 주선했다. • 인도 사상 최초의 통일제국을 건설했다. • 부처님의 정법사상에 입각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 포교사를 해외에 파견하여 불교를 널리 전파하였다. |
(1) 파사익왕 (2) 아쇼카왕 (3) 빕비사라왕 (4) 아자타삿투왕
41. 우리나라 국보 제32호이며, 유네스코에서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한 이것은 무엇인가?
( )
43. 불교경전의 특징을 바르게 설명한 것은?
(1) 부처님 입멸 후 제자들에 의해서 편찬되었다.
(2) 처음 경전이 만들어진 이후 단 한 권의 증감도 없었다.
(3) 이전 부터 내려오던 서적들이 부처님에 의해 정리되었다.
(4) 오늘 날 불교 경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교법만을 말한다.
44. 대장경이란 부처님의 모든 말씀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것으로 일체경(一切經), 삼장경(三藏經), 장경(藏經)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삼장이란 무엇인가?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