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법문 037-3/퇴옹 성철
5. 유식중도설(唯識中道說)03
“공(空)도 아니고
공 아님도 아나리는 것은,
공성에 말미암은 까닭이며
허망한 분별이 있기 때문이다.
공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이제(二諦)가 있기 때문이여,
공 아님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능취와 소취의 둘,
혹은 아와 법의 둘이니
둘이 모두 없으므로
공 아님이 아니니라.”
非空非不空者는
謂由空性故며 及妄分別故라
言非空은 以二諦有故오
非不空者는
謂所取能取二나 或我法二라
二皆無故로 非不空也라.
분명히 공하면서
허망한 분별이 있고
허망한 분별이 있으면서
분명히 공하므로
공도 아니고
공 아님도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공이 아님(非空)은
진속 이제(二諦)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니,
즉 유무든지 진속이든지
이사(理事)라든지
이런 것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공 아님도 아님(非不空)이라는 것은
능취와 소취 또는 아와 법,
이 두 가지가 전부 다 공한 것이므로
공 아님도 아닌 것입니다.
“있고 없음과 함께 있음이라,
있음은
허망한 분별이 있기 때문이요,
없음은
이취(二取)나
자아와 법이 없기 때문이며,
함께 있음(及有)은
허망한 분별 가운데에
진공이 있기 때문이며,
진공 가운데에도
허망한 분별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마땅히
세 번이나
때문(故)이란 글자를 말하니,
있기 때문이란
곧 허망한 분별이요,
없기 때문이란
곧 능취와 소취요,
함께 있기 때문이란
곧 세속과 공이 서로 있는 것이니라.”
有無及有故者는
有는 謂妄分別有故요
無는 謂二取我法無故며
及有者는
謂於妄分別中에 有眞空故며
於眞空中에 亦有妄分別故라
此中에 應言三故字하니
謂有故는 卽妄分別이요
無故는
卽能所取요
及有故로는 卽俗空互有니라.
여기서는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 전체를 총합하여
결론짓고 있습니다.
있음(有)은
허망한 분별심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요,
없음(無)은
능취와 소취,
자아와 법이 없다는 것이며,
그 가운데 함께 있음(及有)은
허망한 분별심 가운데
진공(眞空)이 있고,
진공 가운데
또한 허망한 분별심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비유비무(非有非無)이면서
역유역무(亦有亦無)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진(眞)중에 속(俗)이 있고
속 중에 진이 있어서
진과 속이 서로 무애(無得)가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속과 공이 서로 존재하여
색즉시공. 공즉시색과 같이
허망한 분별 자체가 진공이여,
진공 이대로가 허망한 분별인 것입니다.
그래서
진공이 묘유이고
묘유가 진공으로
묘유 밖에 진공이 따로 없고,
허망분별 밖에 진여가 따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유식에서 주장하는 것은
생멸변견(生滅邊見)이 아니고,
유와 무를 떠나고
그러면서
유와 무가 서로 통하는
중도에 입각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중도에 계합이 된다 함은
이제(二諦)가 있다는 것은
청변(淸辯)의 주장과 같지 않고
이취(二取)가 없다는 것은
소승부파 와 같지 않다.
그러므로
중도에 머무른다고 하느니라.”
是則契中道者는. . . .
謂二諦有는 不同淸辯이요
二取無는 不同小部라
故處中道니라.
청변(淸辯)은
공을 주장하는
중관파(中觀派)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진제와 속제의
이제가 있다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공을 주장하는
청변의 견해와 다르다는 말이고,
능취와 소취의
이취가 없다는 것은
법유(法有)를 주장하는
소승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므로
중도에 계합된다는 점을
다시 부연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