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황후(獨孤皇后
문헌황후(文獻皇后)) 장례 때 소평중(蕭平仲)이 그 묘지를 보고서 “장자(長子)에게 불리하다. 황위의 전수가
2세(世) 30년에 불과할 것이다. 만일 밀랍으로 만든 봉황으로 눌러 놓으면 흉(凶)을 길(吉)하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으나 듣지
않았는데, 과연 그의 말대로였다. 풍수지리를 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가지고 자신들의 술수가 사실과 근사하다는 증거로 삼는다. 그렇지만 만일 운명을
말하는 사람들이 처음에 태자(太子) 용(勇)의 운명을 점쳤다면 분명 “천자가 되지 못하고 비정상적으로 죽을 것이다.”라고 했을 것이고,
만일 수 문제(隋文帝)가 즉위하는 날에 방책을 찾았다면 반드시 진 세조(晉世祖)의 사례를 얻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독고황후의 장지(葬地)가 전위(傳位)에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더욱이
독고황후가 살았을 때 태자 용은 이미 폐위되었지 않은가. 더구나 방언겸(房彥謙) 등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손가락을 꼽으며 망하기를 기다렸지 않은가.
또한 밀랍으로 만든 봉황으로 눌러 나쁜 기운을 이기고 나라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면,
주공(周公)의 나라는 천지가 있는 한 영원히 존재할 수 있었을 것이니, 어찌 이치에 마땅하겠는가. 만일 문제(文帝)에게 한 고조(漢高祖)나 당
태종(唐太宗)의 방략이 있었고, 양광(楊廣
양제(煬帝))이 아버지인 문제와 비슷하게나마 근면하고
검소했다면, 독고황후를 그 땅에 매장했더라도 소평중이 분명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참으로 풍수지리가 실제로 그러하다면 독고황후의 묘지는
자연 그곳에 잡지 않았을 것이다. 길흉화복은 서로 올라타고 사라지며, 명운은 스스로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지, 독고황후의 장지가 수나라를 빨리
망하게 한 것이 아니다. 이곳을 버려두고 다른 곳에 장례 지내서 장구할 수 있는 이치도 없고, 또 무덤을 살펴보고 증험할 이치도 없지 않다.
이러한 뜻은 오직
“위험한 담장 아래에는 서지
않는다.”라는 이치를 깊이 아는 사람만이 더불어 이야기할 수 있고, 마음속에 화복에 대한 사사로운 미혹이 없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