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23 오전 11시 30분 양재동 서울행정법원에 소재한 융선당홀에서 德川 前대한변협회장의 차녀 성진孃과 사위 현직판사 남승정君의 결혼식이 있었다. 식장은 새신랑과 새신부의 장래를 축복하려는 일가친지와 법조계 인사를 비롯 많은 하객들로 발디딜틈 없었다,
장흥위씨 문중에서는 대종회장(송담 위자형)과 미발협회장(겸산 위성복) 및 청장년회장(선암 위옥량)이 화환을 보냈다. 법조인을 대표하여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화환이 자리를 빛냈다.
松潭대종회장을 비롯 貞巖(승렬)재경종친회장, 蟬巖(옥량)재경중장년회장, 위승호 장군, 위성훈 검사, 종훈부회장, 순섭부회장, 재종형 운파(평환) 부회장과 아우(정환 매경부장) 등 일가친지들, 靑蓮(두량) 사무국장, 총무단(성현, 성진, 윤기)등 20여 명이 참여하여 혼사를 축복했다.
덕천 종친은 33世, 양곡공파, 1958年, 장흥 장평출신으로 변호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아내(이시응)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두고있다. 아래는 <장흥위씨요람> 에 현대사 위씨문중을 빛낸 8인의 인물란에 등재된 원산(정철) 제2대 씨족문화연구소장이 기록한 위변호사에 대한 프로필이다
<아래>
' 철환(哲煥) 변호사는 장흥 장평출신이다. 아버지는 원량(元良, 일명 月良), 어머니는 밀양 손행순(孫杏順)의 장남으로 1958년에 출생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을 접고 서울교육대를 선택했다. 졸업한 후에 6년간 초등교사로 봉직했다. 그러다 법조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성균관대 법학과 2학년으로 편입해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1989년에 수료했다. 나이 때문에 법관이나 검사로 임관될 수 없어 부득이 변호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수원에서 개업했다. 변호사로 활동하면서도 늘 여기서 안주하지 말자고 자신을 채근했다. 그런데 2013년 대한변협이 회장을 직선제로 회칙을 바꿨다. 그는 이 기회에 회장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주변에서는 그의 도전을 돈키호테 같은 돌출행동으로 여겼다. 왜냐하면 이전까지 간선제 회장은 높은 지위의 판검사를 역임하지 않은 사람은 엄두도 못 냈다. 그걸 모르고 덤빈 것은 아니다. 그는 변협의 관료적인 시스템을 파파해야 할 고질적인 병폐라고 진단하고 덤볐다. 그래서 자신의 출마가 한낮 객기에서 출발한 무모함이 아님을 보여주고자 했다. 전국의 변호사를 대상으로 발로 뛰며 득표활동을 벌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최초로 실시된 직선제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에 당선된 것이다. 2013년 1월 21일이다. 변협 61년의 역사를 새로 쓰는 날로 기억된 날이다. 회장에 취임한 그는 협회의 숙원사업을 임기 중 대부분 해결했다. 그의 당선은 위씨가 전국적인 선출직에 당선된 최초의 케이스가 된다.' (출처 : 장흥위씨요람/2018년 보정판)
●새신랑 새신부의 백년해로를 하나님께 두손 모아 기도드린다. (벽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