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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에는 내용이 좀 깁니다. 다음주에는 쉬기로 하고요.
‘의롭고 흠 없는 자’ 노아가 아들을 저주하다
바벨탑Tower of Babel을 쌓다-혼란을 초래하다
바벨Babel-혼란
님로드nimrod-사냥꾼, 얼간이
님로드와 아이작 월턴의 후예들disciples of Nimrod and Izaak Walton-사냥꾼과 낚시꾼
대홍수가 끝난 후, 노아는 세 아들 셈, 야벳, 함과 함께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나날이 너무나 평온한지라 노아가 더러 포도주를 즐기곤 했었던가 보다. 어느 날이었다. 노아가 낮술 한잔을 하고서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잠이 들었겠다. 함이 이 모습을 보고 깔깔대며 형제들에게 ‘아빠 꼬락서니 좀 봐’라고 했던 모양이다. 형제인 셈과 야벳은 함과는 달리 웃기는커녕 얼른 자기가 입고 있던 옷으로 노아의 알몸을 가려 주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노아는 “네 후손 가나안 사람들은 형제들에게 천대 받는 종이 될 것이다.”하고 저주를 퍼부으면서 함을 내쫓았다.
이는 훗날 함의 후손인 가나안 인들이 셈의 자손인 이스라엘 민족에게 정복됨을 정당화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가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의롭고 흠 없다’는 노아가 고작 알몸뚱이로 자는 저를 가려주지 않고 웃었다는 죄 하나만으로 남도 아닌 자기 자식에게 저주를 내렸겠는가.
셈은 나중에 엘람, 아시리아, 룻, 아람을 낳아 메소포타미아와 아라비아 지역에 정착했으며, 그 후손 중 에벨 계의 하나가 아브라함으로 유대인들의 조상이 된다.
야벳의 자손은 유대인, 아르메니아 인 페니키아 인, 아라비아 인들로 갈라졌고, 함의 자손은 구스(지금의 에티오피아), 이집트, 리비아, 가나안 등으로 퍼져나갔는데, 그 중 가나안 인들은 셈을 조상으로 하는 유대인들과는 두고두고 이웃이자 경쟁자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성서에는 사람 이름과 지명이 같은 경우가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조상의 이름을 민족 이름으로 쓰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이를 ‘이름시조eponym'라 한다.
추방당하는 함과 그의 일족
노아에게 저주를 받은 함의 손자 중에는 가나안 인 말고도 니므롯Nimrod이란 인물도 있었다. 사냥꾼으로 유명했던 그는 성서에서 인류 역사상 권력을 잡은 최초의 인물이자 왕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니므롯이란 이름은 곧 ‘인류가 신에게 반기를 들도록 부추긴 자’로 해석되고 있다. 그는 동쪽에서 건너와 시날 들판에 정착한 것으로 되어 있다. 과연 니므롯이 어떤 일을 벌였기에 그런 해석이 따르는 걸까? 성서에서는 그가 바빌론, 아카이드, 아시리아 등 당대의 막강한 부족국가를 지배했던 권력자로서 신을 거역하고 그 유명한 바벨탑이란 걸 세운 자로 기록하고 있다.
바벨탑이 뭔가? 성서는 인간이 하나님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천국까지 닿기 위해 세운 매우 불경스러운 탑이라고 했다. 그런 즉 하나님이 이를 용납할 리가 없다. 그때까지만 해도 같은 말을 쓰고 있던 사람들을 서로 다른 말을 쓰게 한 것이다. 말이 다르면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질 수 없고, 서로 소통이 되지 않으면 분열이 일어나는 법. 결국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던 바벨탑은 결국 사람들의 분열로 인해 건설이 중단되었으며, 곧 무너지고 만다.
이 사건을 두고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오만이 신을 기만함으로써 이루어진 하나님의 징벌이라 여긴다. 더불어 ‘바벨탑Tower of Babel’은 ‘분열’ 또는 ‘혼란’이라는 의미로, ‘바벨탑을 쌓다’라는 말은 ‘혼란을 초래하다’라는 은유적 표현이 되었다.
영어 단어 중 ‘님로드nimrod’(니므롯의 영어식 표현)란 명사가 있다. ‘사냥광’ ‘사냥꾼’이라 뜻의 보통명사이다. 한때 그의 직업이었던 사냥꾼에서 나온 말이다. 니므롯은 바벨탑을 쌓았다는 죄로 ‘얼간이’라는 속어로도 쓰인다.
‘님로드와 아이작 월턴의 후예들disciples of Nimrod and Izaak Walton’란 숙어도 있다. ‘사냥광과 낚시광’이란 뜻인데, 아이작 월턴이 어떤 양반이기에 이런 말이 나왔을까? 그는 크롬웰 정권 때 왕당파로 활약했던 영국의 수필가 겸 전기 작가였으며, 1653년에 <조어대전釣魚大全The Complete Angler>이란 책을 출간할 정도로 낚시를 좋아한 사람이었단다. ‘아이작 월튼의 후예the children of Izaak Walton’은 ‘강태공들’이란 뜻으로 쓰인다.
성서에 기록된 바벨탑은 과연 역사적으로 존재했을까? 아마 한참 뒤에나 소개될 ‘바빌론 유수’ 때 유대인들이 ‘지구라트ziggurat’를 보고 지어내었을 가능성이 많다. 창세기에 자주 등장하는 ‘시날’ 들판은 오늘날 이라크 남부 지역으로서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당 사이의 평원 곧 메소포타미아(두 강 사이라는 뜻)로서 알다시피 이 지역은 고대문명의 발상지로 유명한 곳이다. 이 지역에 터를 잡고 문명을 일으킨 수메르 인들로서 이미 기원전 6500년경에 도시를 세웠고, 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지었으며, 기원전 3500년경에 이들은 청동기와 60진법, 알파벳을 사용한 문명인들이었다.
지구라트는 고대 수메르 인들이 그들이 신앙하던 하늘의 신神들과 지상을 연결시키기 위한 것이었단다. 지구라트 대부분은 굽지 않은 흙벽돌을 쌓아 만들었기에, 지금은 거의 무너져 원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우르의 지구라트로서, 우르 제1왕조 때 세운 것을 제3왕조 때 복구한 것이다.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은 바빌론의 지구라트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수메르 어로 ‘바벨’은 ‘하느님(유대인들의 하느님과는 다르다)에게 다가가는 입구’라는 뜻이다. 바빌론, 바빌로니아란 도시 이름 역시 여기에서 나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유대교 랍비인 조너선 삭스가 바벨탑 사건을 동서양의 문화 충돌을 피하기 위한 인간의 도전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하느님이 여러 말을 하게 하고 바벨탑을 무너뜨린 의도를 전 세계의 문화와 언어 그리고 종교가 통일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그리하여 인간은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법을 배우도록 하느님이 조치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럴 듯한 생각이 아닌가?
바벨탑을 쌓다
위대한 아버지 아브람
가나안Canaan, 젖과 꿀이 흐르는 땅the land of milk and honey-약속의 땅, 천국
젖과 꿀milk and honey-갖가지 즐거움
이스마엘Ishmael-추방당한 사람,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 사회의 적
세월은 흘러 기원전 2166년경 바빌로니아 남부 갈대아(칼데아Chaldea)의 우르Ur 지역에 살던 아담의 직계 후손이자 노아의 아들 중 셈의 자손인 데라Terah는 아들을 낳아 아브람Abram(위대한 아버지)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히브리어 '아브ab(또는 abba)'는 ‘아버지’란 뜻이다. 다시 세월이 흘러 청년이 된 아브람은 이복동생 사래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다.
우르는 메소포타미아 하구의 지역 도시로 청동기를 사용하던 수메르 인들의 근거지였다. 장차 인류 4대 문명 중 가장 처음 불을 밝힌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생지로서 이미 쐐기문자를 사용했을 정도로 발전한 곳이었으며, 당연히 상업과 교통, 관료제도가 발달한 곳이었다. 인류의 발전은 욕망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우르 역시 발전과 더불어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으로 가득 찬 도시였다.
최초로 하나님과 계약을 맺게 될 인간인 아브람의 아버지인 데라가, 풍요로웠으나 퇴폐적 도시 우르를 떠난 것은 이미 예견된 일. 데라는 가족과 함께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떠돌다가 하란(지금의 시리아 지역)에 정착한다. 그런데 땅 이름이 좀 묘하다. 하란은 바로 함께 우르를 떠난 아브람의 남동생이자 장차 그와 땅을 나눈 조카 롯의 아버지 이름이기도 하니 말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하란은 이름시조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하란에 자리를 잡고 살던 중 데라가 사망하자 아브람이 가장이 되었다. 헌데 어느 날 하느님이 나타나시어 아브람에게 이른다. 고향과 친족, 아버지의 땅을 떠나 ‘장차 내가 보여줄 땅’ 가나안Canaan으로 가라신다.
그러고는 ‘네 이름을 떨치게 하고 남에게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저주를 내리리라’라고 하신다. 아브람이 어찌 말씀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바리바리 짐을 꾸려 가족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향한다.
갖은 고생 끝에 그들이 다다른 곳은 가나안 중심 세겜 땅. 다시 하느님이 말씀하시길 ‘내가 이 땅을 네 자손들에게 주리라’ 하였고, 이때부터 가나안은 ‘약속의 땅promised land’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하느님이 내려주신 약속의 땅이니만큼 유대인들에게는 ‘천국’과도 동일한 개념이 된다. 그런데 요즘엔 “날 찍으신다면 우리 모두 당장 천국 같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We can all reach the promise land right here on Earth if you just vote for me.”라고 공갈치는 개념 상실한 미국 정치인들도 더러 있다. 괘씸타! 신성한 하느님 말씀을 감히 국민 우롱하는데 써먹어?
후에 하느님은 이집트에 있던 모세에게도 비슷한 말을 하신다. 즉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the land of milk and honey milk and honey‘으로 표현하신 거다. 역시 즐거움이 넘치고 풍족한 땅이란 뜻이다. 영어권에서는 이 말씀 중 ’milk and honey‘란 문구만 똑 떼어내서 ’갖가지 즐거움‘이라는 뜻의 관용구도 만들어 쓰고 있다. ‘인생의 즐거움을 놓치지 말라. Do not miss milk and honey of your life.‘라는 문장에서처럼.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 땅은 지금의 어디쯤일까? 넓은 의미에서 지중해 동부 연안에 있는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요르단 등지를 포함한 지역이다. 대체로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 분할되어 있어서 정치적인 구심점을 갖지 못한 탓에 오랫동안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를 받았던 곳이다. 더욱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잇는 교량 역할을 하다 보니, 주변국들 간의 전쟁터가 되곤 했는데, 지금 역시 그러하다.
아브람 가족이 가나안에 정착했으나 이 땅에는 이미 원주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하느님의 약속처럼 큰 일가를 이루기 어려웠다. 게다가 오랜 가뭄으로 먹을 것마저 부족했다. 당시 이집트 지역은 워낙 비옥했던지라 종종 이민족들의 피난처가 되곤 했다. 아브람 역시 양식을 찾아 그곳으로 향했다. 이집트에서 아브람은 아내 사래를 파라오의 첩으로 맡기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지만, 어쨌거나 그곳에서 재산을 불려 가나안으로 돌아왔다. 그는 가나안의 네겝 땅에 다시 터를 잡고 유목생활을 시작했는데 살림살이는 나아졌지만, 원주민들의 견제는 떠날 때보다 오히려 더 심했다.
롯이 차지했던 지역으로 추정되는 가나안 땅(가운데로 요르단강이 흐른다)
동생 하란은 이미 세상을 등진 지 오래였다. 조카인 롯과 함께 유목으로 가족을 부양했지만, 좁은 땅에서 원주민들의 견제까지 받다 보니 자연히 두 가족 간에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아브람이 롯에게 “땅과 물 때문에 우리가 다퉈서야 되겠니? 그러지 말고 너도 이제 내 그늘을 떠나 독립적으로 가족을 이끌도록 해라. 우리 이제 땅을 나누자. 단 네가 먼저 살 곳을 정해라.”라고 하여 롯에게 우선권을 주었다. 큰아버지다운 통큰 배려였다.
롯은 사양 한번하지 않고 근처에 있는 언덕에 올라 주위를 살피고는 이내 쓸 만한 땅을 골랐으니, 언덕 동쪽의 요르단 분지가 그곳이었다. 땅이 비옥했고, 숲이 무성하여 마음에 꼭 들었다. 게다가 인근 사해 부근에 소돔과 고모라라는 융성한 도시들이 있었기에 롯은 지체하지 않고 그곳을 택했다. 아브람은 서쪽방향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또한 언덕에 올라 서쪽을 바라보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동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황량한 땅이었기 때문이다.
아브람이 실망하고 있을 즈음 다시 하느님이 나타나시어 말씀하신다.
“동서남북 네가 보이는 땅 모두를 너에게 주마. 그리고 너에게 많은 자손들이 일어나리라.”
하느님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 믿는 그였지만, 자손 문제만큼은 믿기 어려웠다. 그의 말대로 자신에게 대를 이를 자라고는 종밖에 없었으나, ‘하늘에 있는 별만큼 많은 자손이 생길 것이니 걱정 말라’는 하느님의 말을 굳게 믿었다. 그리고 그 날 밤, 하느님은 아브람의 꿈에 나타나 훗날 바빌론 유수를 암시하는 말씀도 남기신다.
“네 자손은 남의 나라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를 할 것이다. 그러나 네 자손을 부리던 민족은 내가 심판하리라. 그런 다음 네 자손에게 많은 재물을 들려 다시 돌아오게 하리라.”
가나안에 도착한지 10년째, 75세가 된 사래에게 아들을 기대하기 힘이 들자 아내의 권유로 아브람은 이집트 출신 여종 하갈을 소실로 맞는다. 마침내 하갈이 임신했다. 그런데 하갈이 오만방자해졌다. 이를 두고볼 사래가 아니었다. 명색이 본처가 아닌가.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자 하갈은 견디지 못하고 이집트로 피신한다.
하갈이 이집트로 향하던 중 광야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였다. 천사가 나타나 하갈에게 다시 아브람에게로 돌아가라고 하면서 너의 아들은 형제와 불목하며 살 것이라고 예언했다. 다시 아브람에게 돌아온 그녀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이스마엘Ishmael(하느님이 그녀의 고통의 소리를 들었다는 뜻)이다. 이슬람에서는 이스마엘을 이스마일이라 하며, 그를 아랍민족의 시조로 본다. 또 그의 어머니 하갈은 하쟈르로 불린다.
그런데 영어권에서는 ‘이스마엘Ishmael’을 ‘추방당한 사람’,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 ‘사회의 적’ 등 매우 부정적인 인물의 대명사로 쓰인다. 하느님이 하갈의 고통스런 목소리를 듣고 점지해 주신 아들이었는데도 이런 뜻으로 쓰이는 이유는 이슬람교를 폄하하려는 기독교인들의 의도였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편견과 모함으로 이루어진 이 용어는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소설 <백경白鯨, Moby Dick>에서도 이스마엘은 아브람의 서자로 태어나 이삭에게 적자의 자리를 빼앗기고 세상을 떠도는 성경 속의 이스마엘처럼 바다를 떠도는 인물로 그려졌다. 이 작품에서 이스마엘은 화자로 등장하여 글을 이끌어나가는데, “내 이름은 이스마엘Call me Ishmael.”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것으로 소설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 소설은 '별다방' 즉 스타벅스Starbucks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창업자가 바로 <백경>의 주무대인 포경선 피쿼드Pequod의 일등항해사이자 커피를 즐겨 마시는 스타벅Starbuck에서 그 이름을 차용한 것이란다. 교사 출신들로 이루어진 창업자 멤버들은 스타벅스 로고에서도 자신들의 유식함을 과시했는데, 엠블렘에 나오는 여자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요정들인 세이렌Seiren이다.
알다시피 세이렌은 아름다운 노래나 악기 연주로 지나가는 배의 승무원들을 유혹, 암초나 얕은 물로 유인해서 배를 난파시키는 역할을 하는 요정들이다. 경고음을 뜻하는 사이렌Seiren이 이 신화에서 비롯되었는데, 창업자들이 스타벅이 탄 포경선 피쿼드 호가 침몰한 것을 상징하여 만든 엠블렘이란다.
세 종교의 선조 아브라함
아브라함의 품안에서in Abraham's bosom-천국에서
소돔Sodom과 고모라Gomorrah-성적 퇴폐가 만연한 곳, 죄악의 도시
소도미sodomy-남색男色, 비역질[鷄姦]
소도미법sodomy law
수간獸姦sodomia
유황불fire and brimstone-지옥의 고통, 천벌
불과 유황fire-and-brimstone-설교 따위가 지옥의 불을 연상케 하는
이스마엘이 13세 되던 해, 아브람은 98세, 사래는 89세였다. 여전히 사래는 아이를 갖지 못했는데, 이때 하느님이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의 아버지’란 뜻의 아브람을 아브라함(많은 백성의 아버지란 뜻)으로 바꿀 것을 명령하고 이미 맺은 계약은 자손들에게 영원히 이어지며 가나안 땅을 영원히 그들의 땅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또한 아브라함과의 계약의 증거로 모든 남자의 성기 표피를 자르는 표식 즉 할례割禮의식을 치를 것이며 할례를 받지 않은 자는 결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없음을 천명하셨다.
또 ‘나의 공주’라는 뜻의 사래를 ‘많은 나라들의 공주’라는 뜻의 사라로 바꾸면 내년 이맘때 아들을 낳게 하리라 하였다. 그리고 아들 이름은 꼭 이삭(이사악Isaac;웃는다는 뜻)으로 지으라고 하며 이스마엘이 대를 이을 자식이 아님을 예고했다. 이날 아브라함 가족 중 남자들은 모두 할례의식을 치렀다.
이때가 이스마엘의 나이 13세였으니, 이때부터 이스마일 자손인 무슬림들이 13세에 할례 하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
아브라함이 100세 때 일이다. 하느님의 세 번째 약속이 실현되었다. 사라가 아들 이사악을 낳은 것이다. 8일 후에 이삭 역시 할례를 받는다. 유대인들이 생후 8일만에 할례를 받는 것 역시 이 때부터 비롯되었다. 이사악이 젖을 뗄 무렵 아브라함의 기도 중 하느님은 하갈 모자를 내치자는 사라의 말을 따르라고 한다. 아브라함은 많은 음식과 물을 하갈에게 주고 이스마엘을 축복한 후 브엘세바의 빈들로 보냈다.
하갈은 고향 이집트를 향했으나 이스마엘이 더위를 먹어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하갈이 하느님을 찾으면서 기도를 드리자, 천사가 나타나 샘을 만들어주고 이스마엘이 큰 민족을 이루리라 예언한다.
이 샘은 훗날 메카의 모스크에 있는 '잠잠Zamzan우물'로 인식되어 무슬림들의 경배를 받게 된다. 예언대로 이집트에 정착한 이스마엘은 후손을 융성케 했으니 이들이 아랍인이다.
그러나 이슬람의 해석은 좀 다르다. 아브라힘(아브라함)이 하쟈르(하갈), 이스마일(이스마엘)과 함께 지금의 아라비아에 정착했으며 후손인 마호메트가 메카에서 이슬람교를 창시했다고 한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선조가 된다. 그래서 ‘천국에서’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아브라함의 품안에서in Abraham's bosom’ 라는 말이 나온 것 같다.
하느님께 기도하는 하갈
다시 이야기는 아브라함이 살고 있던 가나안으로 돌아간다. 이스마엘 모자를 보낸 후의 일이다. 그때 가나안 땅에 온갖 죄악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특히 심했던 곳이 롯이 살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였는데, 비역질(남성끼리의 성교)이 난무하던 도시였다. 그래서 나온 말이 ‘소돔Sodom과 고모라Gomorrah’ 즉 ‘성적 퇴폐가 만연한 곳, 죄악의 도시’,‘남색男色, 비역질[鷄姦]’라는 뜻이다. 여기에 더하여 미국에서는 ‘소도미법sodomy law(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텍사스 주의 법)’이라는 법률용어까지 등장하게 된다.
사정이 이러했으니 하느님이 얼마나 노하셨겠는가. 바로 천사를 불러 조치를 취했다. 천사가 먼저 아브라함에게 곧 퇴폐적인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것이라고 하자, 아브라함은 의로운 사람 10명만 있어도 도시 파괴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소돔인들은 천사까지 욕정의 대상으로 보고 달려들었다. 이제 소돔인들을 설득하던 아브라함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브라함은 결국 그곳에 살던 조카 롯 부부와 두 딸 및 예비 조카사위들에게 즉시 피하라고 일렀다. 롯 가족은 소알이란 곳으로 몸을 피했으나 예비 사위 두 사람은 아브라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결과는 처참했다. 하늘에서 유황비가 내리더니 두 도시는 불바다로 변했고, 근처 사해死海가 끓어올랐으며, 모든 사람들이 불에 타 죽었다. 도시는 완전 폐허로 변했다.
사해의 소금기둥-롯의 아내가 변해서 생겨났다는...
안타까운 것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경고를 잊은 채 자기가 살던 곳이 불타오르는 것이 안타까워 뒤를 돌아보고만 롯의 아내는 소금과 유황을 뒤집어쓰고 소금 기둥으로 변하고 말았다. 실제로 사해 연안에는 롯의 아내가 변했다는 그 소금 기둥이 지금도 여러 개 남아있다. 당연히 보통의 바다보다 염분이 높은데다가 비가 자주 내리지 않고 바람이 많은 지역 특성에 의해 생긴 자연의 소산물이며, 소돔과 고모라 사건도 역사적인 사실로 입증되지 않았다. 어찌 되었거나 이 사건은 ‘지옥의 고통’, ‘천벌’을 의미하는 관용어 ‘유황불fire and brimstone’과 함께 ‘설교 따위가 지옥의 불을 연상케 하는’이란 뜻의 ‘불과 유황fire-and-brimstone’이라는 말을 남긴다.
그런데 말이다. 이 사건이 끝난 다음, 근친상간이라는 그야말로 또 하나의 막장 드라마가 펼쳐진다. 성서에서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해괴망측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어찌된 일인가 하니, 소알에 몸을 피해 겨우 목숨을 구한 롯의 두 딸이 “이제 우리 후손을 이어줄 남자들이 다 불에 타 죽어버렸으니, 아버지로부터 씨를 받을 수밖에 없구나.”하고 내린 결론에서 비롯되었다.
롯의 두 딸은 아버지를 술에 취하게 한 다음 차례차례 그의 씨를 몸에 품었다. 그 결과 큰 딸은 모압 족의 조상이 되는 모압Moab를 낳았고, 작은 딸은 암몬Ammon족의 조상인 벤암미Benammi를 낳게 된다. 훗날 이 두 종족은 유대인들과 사사건건 대립하게 되는데, 성서학자들은 이 사건을 두고 아브라함의 친족이지만, 직계 후손이 아니며 약속의 땅에 대한 소유권도 주장할 수 없는 존재로 부각시키기 위해 만든 장치로 여긴다. 이런 흉측한 사건은 후에 몇번인가 다시 반복된다.
다음은 '이삭과 야곱'편입니다.
첫댓글 읽어 보는데 한참 걸리네요..
좋은 성경 공부를 하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위대한 아버지 아브라함!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감사해요.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재미있게 읽을수있는 글이니, 많은 친지들에게 꼭읽어보라고 권해요.
Christian들은 읽으면서 좀더 폭넓은 구약 이해가되리라 믿어요.
다음 이삭과 야곱편이 기다려지내요. 내가 구약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야곱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