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
마태복음 10장 38-42절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주 예수님이『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했다. 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았으니 우리도 고난에 동참하자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세상에 대해서 주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세상과 분리를 의미한다. 세상을 사랑하는 옛사람이 죽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요한1서 2장 15절에서『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세상에 대해서 죽어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로마서 6장 6절의 의미와 같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그리고 에베소서 4장 22절에서『너희는 유혹의 욕심에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버리고』, 로마서 8장 7절에서는『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서 육체의 일에 대해서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세상을 버리는 자만이 하나님의 말씀(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 말씀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세상을 사랑하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자신은 예수님을 알고 있는데, 예수님은 모른다』라고 할 자이다. 그리고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율법에 얽매여 있는 자도 하나님의 검을 받지 못한 자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루신 율법의 완성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예수와 더불어 율법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이다. 주 예수님이 이루신 것을 믿지 않으면, 검에 의해 주 예수님과 분리된 자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율법에서 벗어난 자요, 이 세상과 분리된 자이다. 이런 자에 대해서 성경은 말한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 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세상에 대해여, 죄에 대하여, 율법에 대하여 죽는 자만이 하나님께로 난 자가 될 수 있다. 검을 주러 왔다는 말씀은 세상과 분리되라는 말씀이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선지자는 헬라어로 『프로페테스』라고 하는데 『앞서』를 뜻하는 프로스와 『말하다』는 뜻의 페미의 합성어다. 이것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히브리어 『나비』에서 온 말로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출 4:16)를 뜻한다. 그런 점에서 『앞서』는 시간적인 앞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성령으로 하나님과 하나된 자를 의미한다.
마태복음에서 선지자(예언자)의 모습은 구약성서와 마찬가지로 고난받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마태복음10장에 나타난 보냄 받은 제자들의 모습이 이와 같다. 그리고 그 고난의 원형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러므로 주 예수님을 영접한 제자들도 역시 그 고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의인의 의(디카이오수네)는 팔복에서부터 나타나 있다. 주 예수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5:6)라고 말씀하시며 팔복의 마지막을『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5:10)라는 말씀으로 맺는다.
박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박해받는 이유가 하나님의 『의』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는 고난을 당해온 의인의 역사이고 그것은 주 예수님을 거쳐 제자들에게도 계속된다. 더욱이 주 예수님은 이 의를 두고 마태복음 5장 20절에서『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더 나은 의』는 율법의 행위에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율법의 의는 유대인만을 이웃으로 규정하며 의인으로 여긴다.
말하자면 나는 유대인이기에 옳고, 이방인은 그르다는 것이다. 이것을 지적한 주 예수님에 대한 박해는 예정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선지자나 의인을 영접하는 자에게 고난은 필수적인 것이다. 나아가 주 예수님께서는 그냥 선지자를 영접하고 의인을 영접하고 라고 말씀하지 않고 그 앞에 선지자의 이름으로, 의인의 이름으로 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름은 한 가족이 되는 것이다. 하나로서 일체성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1장 12-13절『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조건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세상에서 부모로부터 받은 육의 몸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영의 몸을 가진 자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영의 몸은 바로 부활하신 주 예수님의 몸과 같은 것이다.
로마서 6장 3-4절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세례를 받은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세례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여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대부분 아버지)의 성씨를 물려받는다. 마찬가지로 영의 몸으로 태어나면 아버지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이 땅에서 주 예수님라는 이름으로 태어나셨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의 아버지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여호와(예수)의 이름으로 권세를 나타낸다.
로마서 8장 14-18절에서『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고난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이다. 십자가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면 반드시 고난이 찾아온다. 그러나 이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생각하면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회개하는 자는 비록 십자가의 고통이 있지만, 영의 몸으로 거듭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우편에 있는 영광을 얻게된다.
할렐루야 ~! 주님께 영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