챵족의 세시풍속과 금기
가정:
챵족은 일부일처의 부계가장제가 기본이다. 한 가정은 보통 조손 3대 또는 부모, 자녀 2대로 이루어지며 매 가정이 생산과 생활의 기본 단위가 된다. 아들은 결혼하면 분가하며 외독자나 막내 아들이 부모와 함께 생활한다. 한 가정에서 아버지가 가정 경제생활을 지배하며 자녀의 혼인대사나 재산 계승 문제를 결정하고 종교 제사와 인간교제 행사에 참가한다. 어머니는 주로 노동생산에 참가하고 가사일을 돌본다. 챵족은 외숙의 권리가 혼인이나 가정에서 비교적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남녀 혼인의 경우 반드시 어머니와 외삼촌의 허락을 먼저 받아야 하며 어머니가 돌아가면 외삼촌의 동의가 있어야 장사를 지낼 수 있다. 분가 시에도 외삼촌이 조카들을 가르치거나 부양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혼인:
새 중국 창건전 챵족의 혼인은 ‘부모의 명에 따라’야 했으며 ‘지복혼인’(指腹婚)과 ‘동자혼인’(童子婚), ‘매매혼인’등이 존재했다. 혼인은 집안 사정이 엇비슷해야함을 강조하고 데릴사위를 맞기도하며 약탈혼인의 풍속도 있었다. 새 중국창건후에는 자주적인 혼인이 위주이지만 일부 전통적인 예의절차가 줄곧 보존되어 내려오기도한다. 오늘날 챵족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예전의 혼례식에 새로운 내용이 가미되어 챵족의 전통문화가 잘 녹아있으면서도 경사스러운 분위기도 한껏 연출된다. 챵족은 약혼식과 결혼식을한다. 챵족은 중매꾼을 ‘훙예’(紅爷)라고부른다. 보통 남자측이 여자측에 훙예를 파견하며 여자측은 외삼촌의 허락을 먼저 받는다. 허락을 받으면 훙예가 돼지고기나 술 등을 준비해 여자측에 가 ‘허락주’를 마신다. 그리고 수개월이나 수년뒤 남자측이 훙예를 여자측에 보내 결혼날짜를 정하며 정식 약혼예로 여자측 일가족을 청한다. 그뒤 양가에서는 혼례준비에 들어간다. 결혼식날 외삼촌이 신부복을 입은 신부에게 붉은 비단을 씌워주며 신부는 울음을 크게 우는 곡가(哭嫁)의 방식으로 부모형제와 친지들과 작별한다. 남자측 집앞에 이르면 챵족의 제관인스비가 신령에게 제를 지내는 의식을 주재해 신랑, 신부에게 축복을 전한다. 그뒤 신혼부부가네번절을 올리면 혼인을 맺는것으로되며 연회로 이어진다. 신혼부부는 결혼 삼일뒤 신부의 본가에 돌아간다. 신랑은 신부측에서 며칠 잠깐 머물지만 신부는 며칠내지 몇개월 심지어 더 긴시간동안 본가에 머물수있으며 남편이 와서 마중해야 신랑집에 돌아가 정식혼인생활을 한다.
출산:
챵족은 여성들이 출산하면 이웃에서 계란이나 면식을 선물하며 주인은 손님에게 식사 대접을 한다. 아기가 밥을 먹을 때가 되면 마을의 먹을 복이 있고 일 잘하는 사람을 모셔다 아기에게 파를 먹이며 “네가 먹게 될 가장 맛 없는 음식이 내가 먹었던 가장 맛없는 음식보다 나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행사가 끝나야만 아기는 쌀밥과 요리, 고기를 먹을 수 있다. 챵족은 18세가 되면 성대한‘성인례’를 행한다. 성인례에서 백돌신에게 제를 지내는데 흰 양의 심장을 산채로 도려내고 검은 양은 그대로 살생하며 양고기를 나누어 먹는다. 양신에게 제를 지낼 때에는 어미양 한 마리를 ‘신양’으로 모시며 이 양은 자연사 할 때까지 도살하지 않는다.
장례:
챵족의 장례에는 화장과 토장, 암장(岩葬)이있다. 그중 화장의 역사가 가장 오래며 매 가족마다 자체의 화장터가 있다. 또 대부분 지역에서는 한족들의 영향을 받거나 봉건왕조의 창의대로 토장을 주로 한다. 챵족의 각 마을에서는 청하지 않아도 찾아와 장례를 도와주는 풍습이 있다. 제사관인 스비가 양을 잡아 제물로 올리고 장례날을 정한다. 보통은 삼일뒤 망자를 땅에 묻는다. 가족은 새무덤앞에서 우등불을 지피고 나뭇가지를 태우며 술과 주류 등을 준비해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장례가 끝난 삼일뒤 재차 제물을 준비하고 묘지를 가꾼다. 이때에야 비로서 장례식이 마무리 된다. 암장은 주로 북천의 일부 곳들에서 행해지는데어린이가 3살이 안되어 요절하면 벌통이나 간단한 나무상자에 넣어 산속의 동굴에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