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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강의(經史講義) 8 ○ 논어(論語) 1 신축년(1781)에 이시수(李時秀), 홍이건(洪履健), 이익운(李益運), 이종섭(李宗燮), 이현묵(李顯默), 박종정(朴宗正), 서용보(徐龍輔), 김재찬(金載瓚), 이조승(李祖承), 이석하(李錫夏), 홍인호(洪仁浩), 조윤대(曺允大), 이노춘(李魯春) 등의 대답을 뽑았다
위정(爲政)
위정이덕(爲政以德)을 혹자가 “그 덕으로 정치를 한다.”로 보려 하니 주자가 허락지 않고 말하기를, “굳이 저 이(以) 자에 집착할 것은 없다.”라고 하였고, 혹자가 “자기 몸으로 솔선한다.”로 보려 하니 주자가 또한 허락지 않고 말하기를, “억지로 그들을 이끌어 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덕(以德) 두 글자가 어떤 뜻이 되어야 본래의 취지에 맞는 것인가? 《집주》에는 “하는 일이 없어도[無爲] 천하(天下)가 귀의(歸依)한다.”라고 하고, 또 “위정이덕(爲政以德)을 한 뒤에라야 무위(無爲)할 수 있는 것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미 위정(爲政)이라고 하였고 보면, 조교(條敎)나 법령(法令)이 필시 위정(爲政)의 실상이 없지 않을 것인데, 이덕(以德)이 무위가 될 수 있는 것에 대해 그 뜻을 가리켜 말할 수 있겠는가?
[이노춘이 대답하였다.]
위정이덕은 불위(不爲)가 아니라 천하의 이치를 따라서 그 소무사(所無事)를 행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어류》에 이른바, ‘일을 만들지 않고 민심을 흔들지 않고 덕이 자기 몸에 닦여지면 사람들이 절로 감화되는 것’이 아마 바른 의미일 듯합니다.
여기서 말한 사무사(思無邪)라는 것은 시(詩)를 지은 사람의 사무사를 가리키는가, 시를 배우는 사람의 사무사를 가리키는가, 아니면 시를 가르치는 사람의 사무사를 가리키는가? 이연평(李延平)이 이르기를 “시인이 풍자를 할 때에는 반드시 예의에 맞게 해야 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시를 지은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주 부자는 “단지 시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무사하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시를 배우는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이며, 또 이르기를, “성인(聖人)이 시(詩)를 말하여 입교(立敎)를 한 것이 이러하다.”고 하였으니 이는 시를 가르치는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어느 학설을 정설로 삼아야 옳은가?
[홍이건이 대답하였다.]
사무사는 시를 읽는 사람의 사무사를 가리킨 것입니다. 《집주》에 이른바 “그 쓰임이 사람들로 하여금 정성(情性)의 정(正)을 얻게 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악형정(禮樂刑政)이 동일하게 정치를 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고 보면 덕(德)과 형(刑)은 본디 등급이 있는 것이겠으나 정(政)과 예(禮)에 무슨 한계가 있겠는가? 위 장의 위정이덕(爲政以德)은 정(政)과 덕(德)을 합하여 말하였고 이 장의 이정(以政), 이덕(以德)은 정(政)과 덕(德)을 나누어 말하였는데, 그 나누기도 하고 합하기도 한 까닭을 또한 상세히 말할 수 있겠는가?
[이노춘이 대답하였다.]
정(政)은 관부(官府)의 통치하는 법도이고 예(禮)는 민생들이 하루하루 실천하는 것이니, 정과 예가 어찌 구분이 없겠습니까. 그리고 나누고 합하는 까닭에 대해서는 선유가 “앞 장은 옛 위정자를 말하였고 이 장은 후대의 위정자를 말하였다.”고 하였는데, 이 말이 극진합니다.
성학(聖學) 공부는 지(知), 행(行) 두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데, 이 장의 지학(志學)은 지와 행을 통틀어 말한 것이고, 불혹(不惑)과 이순(耳順)은 지(知)의 의미를 담아 말한 것이고, 입(立)과 불유구(不踰矩)는 행(行)의 의미를 담아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입(立)이 불혹(不惑)과 이순(耳順)의 앞에 놓여진 것이, 지(知)가 먼저이고 행(行)이 나중이 되는 순서에 어그러짐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종섭이 대답하였다.]
주자가 말하기를, “지학(志學)은 지(知)의 시작을 말한 것이고, 불혹(不惑)과 지명(知命)과 이순(耳順)은 지(知)의 지극함을 말한 것이고, 입(立)은 행(行)의 시작을 말한 것이고, 종심불유구(從心不踰矩)는 행(行)의 지극함을 말한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지와 행을 섞어 말한 뜻을 알 수가 있습니다.
공자는 나이 일흔에 바야흐로 불유구(不踰矩)의 경지에 이르렀는데, 선유가 이르기를, “안자(顔子)는 성인(聖人)보다 단지 한 칸을 도달하지 못하였다.”고 하였으니, 또한 거의 이순(耳順)에 가까웠던 듯하다. 그렇다면 공자가 예순에 비로소 가능했던 일을 안자는 겨우 서른에 도리어 가능했던 것인가?
[이종섭이 대답하였다.]
성인은 본디 스스로 성인의 자질이 있는 것이고 스스로 성인의 학문이 있는 것이고 또한 스스로 성인의 진취가 있는 것이어서 일반인들의 생각으로는 헤아려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그 십오지학(十五志學)은 이미 다른 사람들의 지학(志學)과는 다름이 있습니다. 안자가 한 칸을 미처 도달하지 못한 것을 두고 이순(耳順)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규구(規矩)는 방원(方圓)의 지극함이고 성인(聖人)은 인륜(人倫)의 지극함이다.”고 하였다. 대개 지(知)는 원(圓)하고자 하되 원(圓)은 규(規)를 넘지 않음을 지극함으로 삼고 행(行)은 방(方)하고자 하되 방(方)은 구(矩)를 넘지 않음을 지극함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여기서 구(矩)를 넘지 않음만을 말하고 규(規)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이종섭이 대답하였다.]
규(規)와 구(矩)는 모두 법도(法度)의 기구이지만 규원(規圓)은 둥글둥글하여 지킬 만한 계한(界限)이 없고 구방(矩方)은 모서리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넘지 않음을 말한 것은 구에 있는 것이지 규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개나 말에 이르러서도 모두 길러 줌이 있을 수 있다.”고 한 것에 대해, 구주(舊註)에는 “개는 집을 지키고 말은 짐을 져 나르니, 모두 노동을 하여 사람을 봉양한다. 저들에게 부족한 것은 오직 경(敬)일 따름이다.”고 하였고, 하안(何晏)에 이르러서 비로소 아들이 그 어버이를 봉양하는 것과 사람이 개와 말을 먹여 주는 것으로 비유한 뜻을 삼았는데, 주자가 그 학설을 따랐다. 대체로 지극히 높고 친한 것이 부모이고 지극히 낮고 천한 것이 개와 말이다. 지금 천한 개와 말로써 존귀한 부모에 견주었으니 어찌 성인(聖人)의 사불박절(辭不迫切)의 뜻이겠는가?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소인들도 모두 그 어버이를 봉양하니, 공경이 아니면 어떻게 분변하겠는가?”라고 하였으니, 바로 구주의 풀이와 같은 뜻이다. 후유(後儒)의 학설에 대해서는, 혹 “개와 말이 사람을 섬길 줄 알기 때문에 능(能)이라고 한 것이다. 만약 사람이 개와 말을 기르는 것이라면 무슨 능(能)이랄 것이 있겠는가?” 하였고 “비유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옛사람들은 금지했었다. 어찌 어버이를 개나 말과 같은 격으로 낮추어서 말을 입 밖에 내고 문자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주주(朱註)에 마음이 편치 못하여 구주(舊註)를 정설로 삼은 말들이다. 그 학설을 어찌 따를 수 없는 것인가?
[김재찬이 대답하였다.]
선유가 혹 이르기를, “이 장의 뜻은 부모와 개나 말이 분별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어버이를 봉양하는 사람이 먹여 주기만 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없다면 개나 말을 먹여 주는 사람과 분별됨이 없음을 말한 것이니, 《집주》에 이른바, 개나 말을 기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고 한 것이 바로 이 뜻이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주자의 풀이도 또한 굳이 비유가 맞지 않는다고 한탄할 것까지는 없을 듯합니다.
자유(子游)와 자하(子夏)가 모두 성인 문하의 수준 높은 제자들인데 자유는 봉양은 잘 하지만 혹 공경하는 마음이 부족하였고 자하는 곧고 의로웠지만 혹 온화한 얼굴빛이 적었으므로 부자가 그 질문을 인하여 각기 치우친 바를 따라서 고해 준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와 자하의 효를 견주어 볼 때에 과연 누가 낫고 누가 못하며, 후세의 학자들은 어느 것을 따라야 폐단이 없겠는가?
[김재찬이 대답하였다.]
부자의 답으로 살펴보건대, 봉양만 잘하면서 공경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효를 손상시킴이 참으로 큰 것이지만, 그러나 봉양을 잘 못하는 것은 그래도 어버이를 사랑함에는 해롭지가 않지만 곧고 의로움이 지나치면 도리어 거스름이 되기 쉽습니다. 마땅히 자유를 나은 것으로 봐서 그쪽을 따라야 또한 폐단이 없을 듯합니다.
봉양의 의리가 크구나. 살아서는 그 뜻을 봉양하고 그 몸을 봉양하고 죽어서는 종묘에서 제사를 받게 하고[宗廟饗] 자손들을 보전하며[子孫保] 초상을 삼가고[愼終] 제사에 정성을 다함[追遠]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봉양의 도이니,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무릇 어버이 섬기는 방도는 대개 양(養)이라는 한 글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또한 봉양하는 일 가운데 하나인데, 자유, 자하와의 두 구절의 문답으로 보자면, 봉양은 쉬운 듯하고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기는 어려운 듯하며 봉양은 가벼운 듯하고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기는 무거운 듯하다. 어째서인가?
[이현묵이 대답하였다.]
성인이 그 인품(人品)을 따르고 그 성향의 치우침을 인하여 각기 맞추어 가르쳐 인도한 것이니,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기와 봉양은 일찍이 어렵고 쉽고 가볍고 무겁고의 분별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증상에 맞는 좋은 처방을 가지고 바로잡는 방법을 일러 준 것입니다.
여기 ‘물러가거늘 그 사생활을 살펴보니’라고 하였는데, 물러감은 누가 물러가는 것이며 살핌은 누가 살피는 것인가? 안자(顔子)가 물러가고 부자(夫子)가 살핀 것이라고 한다면, 부자가 안자의 거처에 가서 그 사생활을 살핀 것인가?
[서용보가 대답하였다.]
‘물러간다’는 것이 다만 그 사차(私次)에 물러나 지내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부자 앞에 있다고 하더라도 참으로 청문(請問)하는 때가 아니면 그 일상생활의 모두가 어딘들 물러난 곳 아닌 곳이 없고 사생활 아닌 것이 없습니다.
시기소이(視其所以), 관기소유(觀其所由), 찰기소안(察其所安)은 부자(夫子)가 사람을 관찰하던 방법이었고, 청기언(聽其言), 관기모자(觀其眸子)는 맹자(孟子)가 사람을 관찰하던 방법이었다. 선유(先儒)가 이르기를, “부자의 방법은 사람마다 모두 사용할 수 있지만 맹자의 방법은 남보다 뛰어난 총명(聰明)을 가진 자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하였다. 그렇다면 사람을 관찰하는 방법이 맹자가 부자보다 나은 것인가?
[서용보가 대답하였다.]
주자가 “이 세 가지는 사람을 관찰하는 큰 법칙인데, 성인이 일반 사람을 위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성인이 사람을 관찰하는 방법은 본디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지 아니한다.”라고 하였으니, 아마 이것을 성인이 사람을 관찰하던 방법이라고 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이 장(章)은 《중용》에 있는 것과 같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인데, 《중용》에서는 두 마디로 나누어서 보았고 이 장에서는 한마디로 보았으니, 어째서인가? 어떤 이는 말하기를, “온고(溫故)는 달로 그 능한 바를 잊음이 없음이고 지신(知新)은 날로 그 없는 바를 새로 알아감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신(新)과 고(故)를 함께 진취시켜 감을 일컫는다. 여러 선유들의 풀이와 견주어 볼 때 어찌 분명하고 간략한 풀이가 아니겠는가?
[서용보가 대답하였다.]
이 장과 《중용》은 위주로 하여 말한 바가 같지 않습니다. 이 장의 고(故)는 남에게서 들은 것이고 《중용》의 고(故)는 자신에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장은 하나의 이치를 가지고 뭇 이치를 미루어 안다는 말이고, 《중용》에서는 통체(統體)를 온전히 하여 맥락(脈絡)을 더욱 잘 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안다면 혹자의 학설은 취할 것이 없다는 것은 많은 말을 할 것도 없겠습니다.
《집주》에 ‘주(周)는 보편(普徧)이다’라고 하였다. 보편이라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 바가 없다는 말이니, 앞 장(章)의 범애중(汎愛衆)과 서로 비슷한데, 앞 장에서는 범애중 아래에 이친인(而親仁)이라는 한 구절이 있지만 이 장에서는 단지 주이불비(周而不比)라고만 하고 말았다. 묵자(墨子)의 겸애(兼愛)에 가깝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익운이 대답하였다.]
보편(普徧)의 사랑은, 멀면 먼 대로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어질면 어진 대로 어리석으면 어리석은 대로 각각 그 분수에 알맞게 사랑을 주는 것이고, 묵자(墨子)의 사랑은, 친한 사이거나 소원한 사이거나 후하게 해야 할 사이거나 박하게 해야 할 사이거나 간에 처음부터 차등을 두지 않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로 비슷한 듯하면서도 실상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 장의 사(思)와 학(學)은, 사(思)는 지(知)에 소속되고 학(學)은 행(行)에 소속되는데, 《집주》에 정자(程子)가 말한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辨)은, 학(學)과 사(思)가 모두 지(知)에 소속된다. 본문(本文)과 주설(註說)이 서로 합치되지 않는 듯하니, 어째서인가? 정자(程子)의 이 학설은 본디 《중용》을 해석한 것인데, 중용(中庸)의 학(學)과 사(思)는 모두 지(知)를 말하고자 한 것이고 보면, 《집주》에서 굳이 이것을 이끌어다 풀이를 한 것은 과연 무슨 뜻에서인가?
[이익운이 대답하였다.]
학(學) 자는 오로지 한 가지로만 말하자면 지(知)와 행(行)을 겸(兼)한 것이고, 학(學)과 사(思)를 나누어 말하자면 사(思)는 지(知)에 소속되고 학(學)은 행(行)에 소속되는 것이며, 학(學)과 사(思)와 행(行)을 나누어 말하자면 학(學)과 사(思)는 지(知)에 소속되고 행(行)은 행(行)에 소속되는 것이니, 말이 각기 위주로 하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공호이단(攻乎異端)의 공(攻) 자를, 《집주》에서는 전치(專治)로 풀이를 하고 또 “전치(專治)하여 정밀히 알고자 하면 매우 해롭다.”고 하였다. 대저 이단(異端)의 해로움이야 사람이라면 누가 모르겠는가. 그런데도 전치하지 말라고 경계하고 나서 또 “해로울 따름이다.[害而已]”라고 매듭지었으니, 좀 범범하고 허술하게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맹자》 7편(篇)이 오로지 인욕(人欲)을 막는 공부인데도, “마음을 기르는 방법은 욕심을 줄이는 것[寡欲]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라고 하여, ‘없앤다[無]’고 하지 않고 ‘줄인다[寡]’고 하였는데, 이 과(寡) 자가 이 장의 사해(斯害)의 해(害)와 말의 뜻이 느슨하기가 서로 엇비슷하다. 이것이 《논어》와 《맹자》 가운데에서 가장 의심스러운 곳인데 그에 대한 말을 들어 볼 수 있겠는가?
[이현묵이 대답하였다.]
부자(夫子)의 시대에는 노담(老聃)과 양묵(楊墨)의 도(道)가 아직 널리 퍼지기 전이었으니, 이 장에서 말한 이단(異端)은 대개 향원(鄕愿) 같은 부류를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이 좀 느슨한 것입니다. 해(害) 자와 이(已) 자로 보건대, 해(害)는 바로 도(道)를 해침이고 이(已)는 또 결사(決辭)이니, 말을 두어 후세에 경계를 남긴 것이 어찌 엄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맹자》의 과욕(寡欲)의 과(寡) 자는 참으로 이 장의 사해(斯害)와 서로 엇비슷한데, 배우는 사람의 공부로 말하자면, ‘없앤다’고 하지 않고 ‘줄인다’고 한 것이 또한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이치에 밝은 것이고 한편으로는 뜻이 정성스러운 것이니, 그 알지 못함이 본디 자기의 앎에 끼치는 손실이 없는 것인데, 꼭 참 앎을 가졌다고 할 수도 없는 대부분의 후세 사람들은 모두가 스스로 자기는 안다고 여긴다. 우리 유학(儒學)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제자백가(諸子百家)나 잡기(雜技)를 지닌 자들까지 어디든지 이러한 병통에 물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 모른다고 하기의 어려움이 안다고 하는 것보다 어찌 그토록 더 어렵단 말인가?
[홍인호가 대답하였다.]
모름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그 병통이 오로지, 이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毋自欺]’라는 세 글자가 치지(致知)와 성의(誠意)의 교접처(交接處)로서 절실하고 중요한 공부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데에서 말미암는 것입니다.
이 장의 장(莊), 효자(孝慈), 거선교불능(擧善敎不能)은 모두 내가 마땅히 실천을 해야 하는 것이고 백성들이 스스로 보고 느끼는 것이다. 그 감응이 각기 그 같은 것끼리 되는 것이라면 경(敬)이 장(莊)에 감응하고 충(忠)이 효(孝)에 감응함은 본디 그러한 것이나, 자(慈)는 마땅히 《대학》의 효(孝), 제(弟), 자(慈)의 자(慈)처럼 저대로 백성을 부리는[使衆] 도(道)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백성들을 충성스럽게 하는[使民忠] 방도에 굳이 거론할 것이 없을 듯한데, 부자가 “효도하고 사랑하면 백성들이 충성한다.[孝慈則忠]”라고 아울러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이석하(李錫夏)가 대답하였다.]
주자가 말하기를, “효(孝)는 몸소 솔선하는 것이고 자(慈)는 은혜로 맺는 것이니, 이 두 가지를 겸해야 바야흐로 백성들로 하여금 자기에게 충성을 하게 할 수가 있다.”고 하였으니, 이 말이 극진한 말입니다.
《집주》에 이르기를, “공자가 벼슬을 안 한 것이 혹인에게 말하기 어려운 바가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가탁하여 고한 것이다.” 하였다. 석 달만 섬길 군주가 없어도 안절부절못하는 성인의 마음으로 일찍이 도를 행할 것을 하루도 잊은 적이 없다면, 지금 이렇게 정치를 안 하는 것은 필시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르겠다만, 혹인에게 말하기 어려웠던 것이 과연 무슨 일인가?
[이석하가 대답하였다.]
그 당시에 노(魯) 나라는 계평자(季平子)가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공자가 벼슬살이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른바 혹인에게 말하기 어려웠다는 것은 대개 이 일입니다.
위는 위정편(爲政篇)이다.
[爲政]
爲政以德。或以以其德爲政看。則朱子不許曰。不必泥這以字。或以以身率之看。則朱子亦不許曰。不是強去率他。然則以德二字。將何爲義。乃合本旨歟。集註曰。無爲而天下歸之。又曰。爲政以德。然後無爲。然旣曰爲政。則條敎法令。必不無爲政之實。以德之能無爲。可以指其義歟。魯春對。爲政以德。非不爲也。循天下之理而行其所無事而已。語類所謂不生事不擾民。德修於己。而人自感化者。恐是正義。此云。思無邪者。指作詩者之思無邪耶。指學詩者之思無邪耶。抑指敎詩者之思無邪耶。李延平謂詩人興刺必止乎禮義。則此以作詩者言也。朱夫子謂只要讀詩者。思無邪。則此以學詩者言也。又謂聖人言詩之立敎如此。則此以敎詩者言也。當以何說爲正。履健對。思無邪。指讀詩者之思無邪。以集註所謂 其用歸於使得情性之正者觀之。可見。禮樂刑政。同一爲治之具。則德與刑。固有等級。而政與禮。有何界限耶。上章爲政以德。以政與德合言之。此章以政以德。以政與德分言之。其分合之故。亦可詳言歟。魯春對。政是官府之治法。禮是民生日用之所行者。則政與禮。豈無界限。而至於分合之故。先儒以爲前章言古之爲政者。此章言後之爲政者。此說儘然。聖學工夫。不出知行兩端。而此章志學。統說知行。不惑與耳順。說知底意思。立與不踰矩。說行底意思。則立之居不惑耳順之前。得無乖於知先行後之次序耶。宗燮對。朱子以爲志學。言知之始。不惑知命耳順。言知之至。立言行之始。從心不踰矩。言行之至。卽此而知行錯說之義。可見。孔子年七十。方到不踰矩之域。而先儒云。顔子於聖人特未達一間。則似亦幾於耳順矣。然則孔子之六十始能者。顔子纔三十。反能之耶。宗燮對。聖人固自有聖人之資。又自有聖人之學。 又自有聖人之進。非常情所可窺測。則其十五志學。已有異於人之志學。顔子之未達一間。恐未可以耳順當之也。孟子曰。䂓矩。方圓之至也。聖人。人倫之至也。蓋知欲其圓。而圓以不踰䂓爲至。行欲其方。而方以不踰矩爲至。則此言不踰矩而不及於䂓者。何歟 宗燮對。䂓矩。皆法度之器。而䂓圓則善於轉旋。無界限之可守。矩方則有廉隅截然一定。故此言不踰。在矩而不在䂓也。此云至於犬馬。皆能有養。而舊註謂。犬以守禦。馬以負乘。皆能服勞以養人。則彼所不足者。獨敬耳。及何晏。始以子之養其親。人之養犬馬。爲取譬之義。而朱子從之。夫至尊親者。父母也。至卑賤者。犬馬也。今以犬馬之賤。比之父母之尊。豈聖人辭不迫切之意乎。禮記曰。小人皆能養其親。不敬何以辨。正與舊註所訓同義。若後儒之言。則或曰。犬馬能事人。故曰能若人養。犬馬何能之有。或曰。擬非其倫。古人所禁。豈有斥親爲犬馬。而可以出口語立文字者。此皆不安於朱註。而以舊註爲正者。其說豈不可從耶。載瓚對。先儒或云。此章之義。非謂父母與犬馬無別。言養親之人。能養而不能敬。則與養犬馬之人。無所分別。集註所謂與養犬馬者何異。卽此意。如是看。則朱子之解。亦未必有擬非其倫之歎矣。游,夏之徒。俱是聖門高弟。而子游能養。而或失於敬。子夏能直義。而或少溫潤之色。夫子因其就問。各隨其偏處而告之。則較游,夏之孝。果孰優孰。而後之學者。的從何者。然後爲無弊耶。載瓚對。以夫子之答觀之。能養而不能敬者。傷於孝固大矣。而然失於能養。則猶不害爲愛親。過於直義。則反易歸於拂戾。似當以子游爲優而從之。 亦無弊歟。養之義大矣哉。生則養其志養其體。沒則宗廟饗子孫保。以至愼終追遠。皆是養之之道。則自天子至於庶人。凡係事親之道。蓋無出養之一字。然則色固爲難。亦不過養中之一事。而以子游,子夏兩節問答觀之。養似易而色似難。養似輕而色似重。何歟。顯默對。聖人隨其人品。因其性偏。各施鑢錘以敎導之。則色與養。未嘗有難易輕重之分。特拈其對證之良劑。告之以矯捄之方也。此云退而省其私。退是誰之退。而省是誰之省耶。若謂顔子退而夫子省。則夫子往顔子所居之處而省其私耶。龍輔對。退者。不獨指其退居私次也。雖處夫子之前。苟非請問之時。則其日用動靜之間。無往非退也私也。視其所以。觀其所由。察其所安。夫子觀人之法也。聽其言。觀其眸子。孟子觀人之法也。先儒云。夫子之法。人皆可用。孟子之法。非有過人之聰明者不能。然則觀人之法。孟子賢於夫子耶。龍輔對。朱子謂此三者。觀人之大經大法。而聖人爲常人說。聖人觀人。固不用得如此。則恐不當以此。爲聖人觀人之法也。此章與中庸。同一溫故而知新。而中庸則作兩截看。此章則作一截看。何歟。或曰。溫故者。月無忘其所能。知新者。日知其所亡。此則新故竝進之謂也。較諸儒所訓。豈不直捷徑約耶。龍輔對。此章與中庸所主而言者不同。此章之故。是聞於人者。中庸之故。是存於己者。此章卽其一理而推見衆理之謂。中庸全其統體。而益見脈絡之謂。知此則或說之不足取。不在多言。註曰。周。普徧也。普徧者。無所不愛之謂也。與前章汎愛衆相似。而前章則汎愛衆下。有而親仁一節。此章則但稱周而不比而已。得不近於墨子之兼愛耶。益運對。普徧之愛。遠近賢愚。處之各得其分也。墨子之愛。親疎厚薄。待之初無差等也。若相似而實相懸也。此章思與學。思屬知而學屬行。集註程子說。學問思辨。則學與思。皆屬於知矣。本文與註說。若不相合。何也。程子此說。本釋中庸。而中庸之學與思。皆所以言知。則集註之必引此爲解者。果何義歟。益運對。學字。專言則兼知行。分學與思言。則思屬知而學屬行。分學與思與行言。則學與思屬知而行屬行。言各有所主也。攻乎異端之攻字。集註訓以專治。又曰。專治而欲精之。爲害甚矣。夫異端之害。人孰不知。而旣戒之以不專治。又結之曰。害而已。則無或近於泛忽耶。孟子七篇。專是遏人欲之工。而曰養心莫善於寡欲。不曰無而曰寡。此寡字。與此章斯害之害。語意之鬆緩恰相似。此是論孟中最可疑處。欲聞其說。顯默對。夫子之時。老聃楊墨之道。猶未肆焉。此章所指異端。蓋如鄕愿之流是也。故其辭少緩。而以害字已字觀之。害是害道。已又決辭。其立言垂戒。豈可謂不嚴耶。至於孟子寡欲之寡。固與此章斯害恰相似。而以學者之工夫言。則亦無恠乎不曰無而曰寡也。知爲知。不知爲不知者。一則理明。一則意誠。其所不知。固無損於自己之知。而大率後世之未必有眞知者。皆自以爲知。不獨吾儒爲然。如百家衆技之流。無往而非此箇病痛。何其不知之難難於知耶。仁浩對。不知爲知之。其病專由於不知此毋自欺三字。爲致知誠意交接處切要工夫也。此章。莊也孝慈也。擧善敎不能也。皆爲吾所當爲。而民自觀感。其應也各以其類。則敬之應於莊。忠之應於孝固也。而至於慈。則當如大學之孝弟慈。自爲使衆之道。則不必擧似於使民忠之道。而夫子以孝慈則忠。竝言之者。何歟。錫夏對。朱子謂孝是以躬率之。慈是以恩結之。兼此二者。方能使民忠於己。此說儘得之。集註曰。孔子之不仕。有難以語或人者。故託此以告之。夫以聖人三月皇皇之心。未嘗一日而忘行道。則今此不爲政。必有其說。未知其難語或人者。果何事歟。錫夏對。當是之時。魯有平子之亂。故孔子不仕。所謂難以語或人者。蓋此事也。以上爲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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